[뉴스핌=신동진 기자] "너무 먹고 싶다 길래 집사람 몰래 빵 한 조각을 줬습니다. 차마 그걸 바로 먹지 못하고 손에 들고 다니면서 빵 냄새만 맡더군요. 냄새가 너무 좋다면서요. 외국에는 저단백빵, 저단백과자, 저단백스파게티까지 나와있는데... 이 아이들이 먹을 것이 우리나라에는 이렇게 없습니다"
이는 CJ제일제당에서 근무하는 윤창민 부장(40, 하나로마트 서울영업팀 팀장)의 한탄이다. 윤 부장은 선천성 대사질환의 일종인 '페닐케톤뇨증(PKU)'을 앓고 있는 딸 하영(5)이가 있다.그동안 윤 부장은 고생하는 딸을 위해 일본에서 수입한 저단백 즉석밥을 먹여왔지만 너무 맛이 없어서 아이가 외면할 때마다 가슴이 아팠다.
'페닐케톤뇨증'은 음식 속 단백질(단백질 성분의 일종인 페닐알라닌)을 먹으면 소화, 흡수되는 과정에서 생기는 대사물질이 뇌나 신체에 심각한 손상을 주는 질환이다. 때문에 '페닐케톤뇨증' 환자는 사람들이 흔히 먹는 빵과 밥, 고기반찬 등을 섭취하면 음식이 체내에서 독처럼 작용하게 된다.
이로 인해 하영이는 쌍둥이 동생 하은이가 먹는 모습을 그저 바라보기만 한다. 하영이에겐 밥은 단백질성분만 낮춘 저단백밥, 반찬은 단백질이 함유량이 낮은 야채 반찬이 전부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고기나 햄, 소시지 등은 그저 냄새만 맡을 뿐이다. 심지어 일반 밀가루로 만든 빵과 과자도 먹어서는 안 된다.
저단백 식이요법을 하지 않고 일반인들이 먹는 음식을 그대로 먹으면, 페닐알라닌 대사산물이 혈액과 뇌 속에 축적돼 지능지수가 저하된다. 심지어 생후 1년까지 치료를 시작하지 않으면 지능지수는 50 이하로 떨어지기도 한다.
이들에게 저단백 식이요법은 치료방법인 동시에 질환의 진행을 막는 최선의 예방책이다.

"선천성 대사질환 의무검사를 통해 생후 3일만에 이 병에 걸린 것을 알았어요. 다행히 국내에 PKU 환아들을 위해 특수제조된 분유가 있어 아기 때는 그 분유를 먹고 자랐습니다. 이유식을 먹을 나이가 되면서 고민이 시작됐어요. 분유 말고는 국내에 이들 환자들을 위해 만들어지는 저단백 가공식품이 전무했습니다. 할 수 없이 일본에서 만들어진 저단백 즉석밥을 먹였는데, 맛이 너무 없어서 아이가 배가 고파도 먹으려 하질 않았어요. 딱딱하고 쉽게 굳어 가위로 밥을 오려서 줄 정도였으니까요"
윤 부장은 지난 2월 김진수 대표이사와의 식사 자리에서 용기를 내 '햇반 저단백밥'을 만들어 줄 것을 건의했다.
국내에 이 질환을 앓고 있는 환자들은 140여명 남짓. PKU와 비슷한 아미노산 대사질환자들을 합쳐봐도 저단백 밥의 수요는 200여명에 불과하다.
하지만 윤 부장의 설명을 들은 김진수 대표이사는 그 자리에서 제품 출시를 결정, 다음날 제품 개발을 담당하는 식품연구소에 저단백밥 개발 착수를 지시했다.
그렇게 '햇반 저단백밥'은 지난 3월부터 본격 제품개발에 들어갔고, 7개월 만인 이달 말부터 완제품 생산을 시작했다.
제품 개발을 담당한 식품연구소 정효영 연구원은 "단백질은 쌀알의 구조를 잡아주는 역할을 하기 때문에 단백질을 제거한 쌀은 쉽게 뭉개지고 끈적여 단백질을 제거하면서도 밥 맛을 유지시켜주는 것이 관건이었다"고 설명했다.
정 연구원은 "단백질 제거를 위해 주로 사용되는 화학용액(알칼리액) 처리 대신 단백질 분해효소를 이용하고, 단백질 제거에 효과적인 독자적 제조장치를 개발해 밥 맛도 살리고 단백질도 기존 흰 밥에 비해 1/10로 줄인 햇반 저단백밥이 나올 수 있었다"고 강조했다.
그는 "쌀에는 단백질이 7% 정도 포함돼 있고 보통의 밥 한그릇의 단백질 함량은 6.3g 정도라 밥을 먹는 것만으로 페닐케톤뇨증 환자들은 상당한 부담이 된다"며 "하지만 햇반 저단백밥에는 페닐알라닌 성분이 약 90% 제거가 돼 있어 부담 없이 밥을 먹을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CJ제일제당에 따르면, '햇반 저단백밥'은 일본의 저단백 즉석밥과 밥 맛에 큰 차이가 있다.
일본 밥은 떡지고 쉽게 굳어 포크로 밥을 찍으면 밥 전체가 딸려 올라올 정도이지만 햇반 저단백밥은 찰지고 밥알이 살아 있어 일반 밥과 거의 차이를 느낄 수 없다.
단백질이 1/10로 줄었기 때문에 밥맛이 약간 밍밍하게 느껴질 뿐이다.
환아 부모들로서는 경제적인 부담도 크게 줄었다. 일본 제품은 개당 4000원이라 그 동안 형편이 어려운 가정에서는 즉석밥보다 밥 맛이 훨씬 떨어지는 전분미(옥수수 전분으로 만들어 쌀 모양으로 성형한 성형쌀) 등을 먹어왔지만, CJ제일제당의 저단백밥은 제조원가 수준인 1800원에 판매된다.
CJ제일제당 관계자는 "이번 제품 개발에 투자한 비용만 8억원에 이르지만 제조원가 수준에서 판매되기 때문에 영원히 손익분기점을 맞출 수 없는 특별한 제품"이라고 말했다.
윤 부장은 "하영이는 요즘 태어나서 처음으로 제대로 된 '밥 맛'을 느끼고 있다"며 "어려운 결정을 해준 회사에 무한한 감사와 자부심을 느낀다"고 감사를 표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