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팎 견제 - 감독기구도 정책흐름 밀려 소극대응, 때 놓쳐
[뉴스핌=한기진·배규민 기자]
장면 #1. “시야를 넓혀 보면 정부의 성장 유도 정책+외형확대 경쟁 촉발시킨 CEO 업무추진+감독기구의 어정쩡했던 스탠스가 빚어낸 합작품 아니겠느냐."
전 금융감독기구 고위관계자는 “황영기 전 우리금융회장 겸 우리은행장 제제논란의 배경은 종합적인 요소가 결합돼 터진 사태”라며 이같이 설명했다.
경영권 오너십이 확립돼 있거나 사외이사 영향력이 큰 다른 대형은행들은 1997년 외환위기는 물론 이번 금융위기도 잘 버틴 곳이 있다.
그런데 유독 정부계 은행인 우리은행이 부실유탄에 가장 극심한 부상을 당했다.
이 때문에 이번 사태의 논쟁의 초점은 정부계(系) 은행에서만 문제가 반복되는 근본적인 원인을 따져야 한다고 했다.
결국 CEO선임과 그 이후 분권화된 관계속에서의 견제와 성과보상으로 이어지는 지배구조 전반에 걸친 숙제가 드러났다는 지적마저 나온다.
장면 #2. 올 초 무디스(Moody’s) 관계자들이 한국을 방문했을 때, 한 미국계 은행 국내지점 모 대표는 “한국의 은행들만 유독 신용등급이 외국과 비교했을 때 낮은 건 문제가 있다”고 따져 물었다.
그러자 무디스 아시아담당 책임자는 “높은 예대비율로 인해 신용등급이 절대로 올라가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답했다.
그는 “한국의 특수성이 있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그는 또 “이런 평가를 받는 것은 은행 CEO들의 무분별한 자산확대와 단기업적주의가 빚은 스스로 자초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 CEO단기업적주의 과열돼도 통제장치 크게 미흡
황 전 행장 제재와 관련해 사회적 논란까지 불러일으키자 일각에서는 지배구조의 결함 내지 한계를 지적하는 목소리가 만만치 않다.
정부가 지분의 73%나 지니고 있으면서 경영권을 행사하는 은행인데 당시 담당 부행장은 이미 옷을 벗었고 CEO도 다른 금융회사 CEO로 옮긴 상태에서 제재 도마위에 올랐다면 정부 책임도 당연히 있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함께 나온다.
그때 그때 정책 입맛에 맞는 경영진을 외부에서 영입하고, 영입된 경영진은 정부정책에 화답하고, 1년짜리 임원들은 제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구조를 만들어 냈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공공성을 최우선해야 할 정부계 은행이 단기업적 극대화에 쏠렸다. 주주가치 제고로 이어져 우리은행의 경우 공적자금 회수 효과라는 눈 앞의 당근이란 마력이 발생했다.
급기야 정부마저 여기에 사로잡힌 나머지 쏠림현상속의 외형확대 질주를 조장한 성격도 적지 않다는 지적이다.
박리다매(薄利多賣)식 영업을 펼 수 밖에 없는 상황에서 외형확대는 이익의 질 급락이 불가피한 구조였지만 일부 우려 속에 경쟁구도에 편승하고 말았다.
왜 이렇게 된 것일까.
우리금융과 우리은행의 출범 이후 CEO를 보면 1기 윤병철 회장 이덕훈 행장, 2기 황영기 회장·행장 겸임, 3기 박병원 회장 박해춘 행장 등 대부분이 관료출신이거나 은행경력과 거리가 먼 사람들이었다.
이 때문에 정부 정책에 따를 줄만 알았지 은행에서 요구되는 위험관리는 간과됐다는 비판이다.
금융권 고위관계자는 “지배구조가 논란이 있을 수 있지만 신한과 하나금융은 CEO의 강력한 리더쉽으로 권력 등 외풍의 방패막이가 됐고, KB금융은 강력한 사외이사들이 버티고 있어 문제소지를 차단할 수 있었지만 우리금융은 그렇지 못했다”고 말했다.
그는 또 “적어도 사외이사들이 강했어도 이번과 같은 문제는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했다.
실제 우리은행 사외이사의 힘은 상당히 약하다는 게 이번 논란으로 다시 한번 드러났다.
은행법은 최대주주에 의한 사외이사 선임을 허용하고 있다. 따라서 우리은행처럼 정부가 임명한 사외이사들이 제대로 된 견제기능을 행사할 수 없을뿐더러 대외적 위상도 약한 태생적인 문제점이 있다.
우리은행에 대한 정부의 관리 방식은 경영정상화 이행약정(MOU)을 통해서다. MOU란 예금보험공사와 우리은행이 경영 정상화를 위한 서면약정을 체결하고 이행 실적을 분기별로 점검해 그 결과를 국회 등에 보고하는 제도다.
우리은행은 MOU에 제시된 재무 건전성, 수익성, 자산 건전성의 목표 수준을 달성하기 위한 경영계획을 세워야 하고 목표 수준을 달성하지 못했을 때 공사로부터 주의•경고 조처를 받거나 인건비 동결 따위 후속 조처를 감수해야 한다.
이 때문에 우리은행 노사는 MOU를 일종의 노비문서로 받아들였다. 때문에 MOU를 해제하고 완전한 자율경영을 바랬다.
◆ CEO검증 취약, 외고집 부리면 견제 힘들어
정부는 주주인 동시에 공적자금 회수 주체로서 우리금융 전반의 경영성과를 늘려야 하는 부담이 있다.
하지만 CDO(부채담보부채권)와 CDS(신용부도스와프)라는 상업은행 주종목이 아닌 곳에서 국내 금융계 가운데 최대 손실을 기록하는 과정에서 양쪽 의무 모두 제대로 소화하지 못했다는 비난을 면키 어렵다.
황영기 전 행장의 잘못은 자산확대를 하더라도 위험관리원칙을 준수해야 하고 상업은행인데다 공적자금이 투입된 정부계 은행으로서 더욱 보수적 리스크관리를 해야 한다는 사회적 통념을 거슬렀다는 데 있다.
이와 관련 CEO검증과정에서 뱅커로서의 적합성을 간과한 것이 원천적 잘못이라는 지적도 있다.
황 전 행장이 대부분 키우고 박해춘 전 행장이 진화하기는 커녕 불길을 더욱 걷잡을 수 없이 키웠던 문제도 따지고 보면 은행업에 부적절한 인사를 탑의 자리에 기용했기 때문이라는 이야기는 은행권에선 이미 낯익은 평가다.
정부계 다른 은행 고위관계자는 “황영기 행장은 외국계금융기관 경험이 포장됐고, 박해춘 행장은 뱅킹에는 문외한이었다”며 원칙이 무시될 수 밖에 없는 구조의 원인에 대해 분석의견을 내놨다.
그는 이어 “우리은행 내부에는 인재들이 많았지만 정치적인 분위기에 영향을 받아 쏠림현상이 나타나 제대로 된 목소리를 내기 어려울 수 밖에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금융연구원을 거쳐 컨설팅업계로 옮기 한 전문가는 “임원의 경우 매년 실적평가를 받고 언제든지 물러날 파리목숨이 되어 버렸고 정책당국 또한 드러내고 간섭할 수 없는 상황이 됐다”고 말했다.
감독당국도 따지고 보면 대규모 부실 발생에 대한 책임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롭지는 않다는 지적도 뒤따르고 있다.
과거 정부가 확대정책을 밀어붙일 때 감독당국은 우려가 있었음에도 적극적으로 감독을 하지 못한 책임이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당장 개선안을 내놓기도 쉽지 않다.
내부통제장치, 기관투자자, 주주 등 외부이해관계자에 의한 견제장치가 제대로 작동되지 않는 상황에서 CEO를 어떻게 견제할지는 은행 지배구조개선 문제와 밀접하게 연관돼 있어서다.
이 전문가는 “부행장급 임원의 임기를 2~3년으로 확대해 CEO를 견제한다든지 은행에 주인을 찾아준다든지 하는 방안이 있을 수 있으나 이 또한 미봉책이고 총체적 난국이다”라고 말했다.
이번 사태를 기회로 뜻있는 전문가들과 금융계 인사는 은행지배구조를 바로잡고 글로벌 금융위기 같은 때에도 끄떡도 않고 성장하는 체질로 바꿀 수 있도록 모색하고 머리를 맞대는 기회로 삼아야 한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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