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손실보전성격 자본확충초래 사실상 세번째 공적자금
[뉴스핌=한기진·배규민 기자]일각에서 ‘우리나라에서 은행업이 가장 해볼만한 업종’이라고 비아냥거리는 데는 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리스크관리는 소홀이 하고 대출에만 열을 올리다, 대출자산이 부실화되면 정부라는 산타클로스가 나타나 ‘공적자금’이라는 선물을 안겨줘서다.
때문에 이런 비판을 무마시키기 위해서라도 공적자금의 철저한 관리와 지원을 받은 은행들은 그에 상응하는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질 수 밖에 없다.
외환위기 때 공적자금 투입을 받아 생환했던 우리은행.
황영기 전 우리금융 회장 겸 우리은행장(현 KB금융 회장)과 박해춘 전 우리은행장(현 국민연금 이사장)이 이어 달린 궤도는 사실상의 공적자금 수혈에 기착했다.
이로써 우리은행은 전신인 상업·한일 은행 시절 처음 받은 이래 직전 전신인 한빛은행 탄생 때에 이어 공적자금 수혈을 받는 단골이 되는 비운에 휩싸였다.
◆ ‘시장 좋아지겠지….’ 근거없는 낙관론에 손절매 타이밍 놓쳐
‘더 벌면 그만, 그러니 밀어붙이자.’
CDO(부채담보부채권)투자 결과 처음 손실처리한 것은 2007년 7월. 황 전 회장이 물러나고 박 행장이 취임한지 4개월 시점. 그 해 투자액의 90%가 손실처리됐다.
박 전 행장은 그럼에도 이듬해 IB 영업수익 목표를 1조원으로 끌어올리라는 목표를 제시했다.
박 전 행장의 논리는 '손실로 얻은 경험으로 더 많은 수익을 벌어들이면 된다'는 지극히 단순한 것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우리은행 관계자들은 박 전 행장의 이 같은 행보 때문에 CDO와 CDS(신용부도스와프) 손실이 폭발적으로 늘었다고 지적한다.
1조6200억원에 이르는 손실 가운데 누가 어느 만큼의 책임이 있느냐 가리기란 결코 쉽지 않아 보인다.
하지만 재임 시절 투자를 시작했고 무르익은 시점에 박해춘 전 행장에 바통을 넘겨 준 장본인은 황 전 회장이란 사실은 분명하다.
황 전 행장측은 상품 투자 당시에는 별 문제가 없다고 방어논리를 펴기도 했다.
그럼에도 손실의 단초는 황영기 행장의 재임시절 제공했다는 비판은 피하기 어렵다.
위험 상품에 투자했던 그 시기에는 별문제가 없었다고 방어논리를 펴지만, 같은 시기 투자를 권유받고서도 유동성문제 등 위험을 들어 아예 투자를 하지 않은 금융회사가 더 많아서다.
특히 IB(투자은행)의 전유물과 같던 것을 상업은행이 투자한 것이 옳으냐는 은행 종사자들의 비판을 초래했다.
어찌됐든 황 행장이 물러난 직후 첫 손실이 난 2007년 중반 시장에서는 ‘매수자가 나타나지 않아 손절매가 어렵다’는 비관적인 분석이 흘렀다.
하지만 ‘시장이 안정될 경우 손실이 줄어들 수 있다’는 낙관론이 우리은행내부서 여전히 흘렀다.
당시 우리은행 관계자는 “투자규모가 크지 않아 평가손실을 계산하는 데 의미를 두지 않는다”는 고백까지 했다.
시장은 완벽하게 다른 방향으로 흘렀다. 서브프라임사태는 악화일로를 걸었고, 국제금융시장의 혼란은 심해져 국내금융기관들의 해외채권 발행 등 조달시장에서 어려움을 겪을 것이라는 경고까지 나왔다.
결국, 우리은행은 2007년 3/4분기 2006년에 투자한 CDO 4억9200만달러 가운데 약 30%를 감액손실로 처음 반영하고 4/4분기 50%를 추가 감액하며 총 90%가 손실처리됐다.
그런데 이 같은 경험서 나온 대책이란 것이 아이러니하기 짝이 없다.
‘2008년 IB본부 영업수익 1조원 달성’, 해외네트워크를 2010년까지 200개로 늘리는 ‘글로벌 10200 전략’의 지속 추진, 즉 확장정책의 지속추진이라는 초강수다.
위기의 불길이 번지는 데 확장기조를 고수하는 기름 끼얹기 전략을 방불케 한다.
CDS(신용부도스와프)투자가 박 행장 재임시절 집중적으로 이뤄진 것을 보면, 이 같은 정책이 충실히 이행됐다는 점을 시사한다.
하지만 박 행장의 확대정책은 불과 1년도 안돼 손실로 돌아왔다.
결국 우리은행은 투자금액의 90%인 1조6200억원을 손실을 입은, ‘완벽한 실패’를 경험한다.
박 행장은 지속적인 손실이라는 시장에서 주는 분명한 메시지를 무시하고, 이전과 변함없는 확대정책을 편 것이다.
◆ 사실상 공적자금 또 받아 경영진 책임론 일었어도 '모르쇠'
나아가 우리은행이 스스로 이 같은 대규모 손실에 자본적정성지표마저 흔들리자 정부는 올 3월 자본확충펀드를 통해 1조3000억원을 투입한다.
사실상 공적자금을 받은 셈이다. 금융시장 안정 및 금융회사 건전성 제고 등의 조성목적이나 조성자금의 내역 등을 보면 공적자금과 흡사해서다.
은행자본확충펀드는 은행들의 자기자본비율 하락에 따른 시장의 불안감을 해소하기 위한 것으로 기금 조달은 일반투자자로부터 일부 조성하지만 한국은행 10조원, 산업은행 2조원, 그외 기관투자자 등이 주축이다.
금융권 부실채권과 구조조정 기업 자산을 사들일 목적의 구조조정기금, 금융권의 자본확충을 지원하기 위한 금융안정기금도 정부보증 채권 등을 통해 조달된다. 한결같이 공적 성격이 강하다.
특히 자본확충펀드의 지원명분이 구조조정 및 실물지원을 위한 목적인데 반해 우리은행은 손실보전 성격이 짙어 이 같은 분석을 뒷받침한다.
결국 지난 1998년 3조3000억원, 2001년 4조6000억원씩 각각 투입된 것까지 포함하면 세 차례 투입된 직·간접 공적자금은 9조원을 웃도는 셈이다.
금감원 고위관계자는 “당사자들의 확장정책이 부른 책임도 있지만 다른 은행들과 비교해 손실이 컸던 데는 사외이사들의 힘이 약해 행장을 견제하지 못했고, 임기가 짧은 부행장들도 제목소리를 내지 못한 것도 원인이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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