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국내 금융시장은 이같은 교과서적인 시장원리가 통하지 않고 있다. 중앙은행인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5.25%에서 4.0%로 1.25%를 단기간내 내리고 RP방식으로 유동성 공급에 나서고 있지만 시중금리는 요지부동이다. 시중금리가 하향세로 돌아서기는 커녕 회사채 금리는 오히려 오름세를 보이고 있다.
물론 기준금리를 내린다고 시장금리가 뒤따라 즉각 떨어지는 것은 아니다. 유동성이 시장에 순환하는데는 어느 정도 시간이 필요한 만큼 일정기간의 시차를 두고 효력이 나타나게 마련이다. 이런 점을 감안하더라도 시장금리가 오름세에 있다면 시장상황은 정상이 아닌게 분명하다. 시장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 돈이 돌지 않고 있다고 봐야 한다.
증권업협회의 고시를 보면 우량투자등급에 해당하는 AA-급 회사채 금리는 연 8.8%수준이다.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내리기 시작한 지난 10월초의 7.8% 수준보다 1%포인트가 올랐다. 우량회사채의 상황이 이렇고 보면 신용도가 낮은 회사채의 사정은 뻔하다. 투자등급이 하위인 BBB-급 회사채 금리는 연 12%선까지 거래되고 있다. 10월초에 비해 1.5%가 올랐고 외환위기 직후인 지난 2001년 5월이후 7년6개월만에 최고 수준이다.
안정적 투자대상인 국공채 금리만이 조금 내렸을 뿐 기업자금의 조달원인 회사채 금리는 역주행하고 있는 것이다. 한국은행의 유동성 공급확대책에도 불구하고 기업의 자금조달부담은 심화하는 셈이다.
시장상황이 이 지경에 이른 이유는 너무도 명확하다. 미국발 금융위기로 촉발한 신용경색의 우려 때문이다. 유동성 부족에 대비해 금융기관들이 돈이 들어오는 대로 금고에 쌓아 놓고 탓이다. 은행은 예금인출을, 자산운용사는 펀드환매에, 보험사는 계약해지 등의 만약의 사태를 걱정해 유동성 확보에 진력할 수 밖에 없는 처지이다.
다시 말해 한국은행이 풀은 돈이 금융기관을 통해 회사채 매입과 기업대출자금으로 흘러가는 시장원리가 고장난 것이다. 유사시 현금상환을 위해 금융기관이 유동성을 쌓아 놓는 바람에 돈 흐름의 정상적인 통로가 막혀 있는 셈이다. 채권시장의 큰 손이던 외국인도 지난 10월과 11월 두달동안 외국인의 채권 순매도규모가 6조원에 이른다. 당분간 외국인의 채권매수는 기대하기 힘든 상황이어서 유동성 부족현상이 쉽게 풀리지 않을 전망이다.
시장여건으로 볼때 현금을 틀어쥐고 있는 금융기관을 탓할 수도 없다. 은행들은 국제결제은행(BIS)자기자본비율을 맞추지 못할 정도로 취약하다. 증자를 위해 회사채를 발행을 서두르고 있는 상황에 몰려 있을 만큼 은행들은 딱한 처지가 아닌가.
문제는 시장금리가 적어도 내년 상반기까지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이다. 증권가는 내년 상반기중 우량등급인 AA-급의 회사채 금리는 연 7~8%수준으로 전망하고 있다. 한국은행이 추가적으로 기준금리를 1%포인트 내린다는 전제조건을 포함한 예상치인데도 시장금리 전망은 어둡다. 막혀 있는 돈의 순환통로가 시원하게 뚫리지 않는 한 한국은행이 아무리 유동성을 풀어도 시중자금경색은 불가피하다고 보고 있는 것이다.
시중자금 순환을 어렵게 하는 큰 요인은 실물경제 위축과 경기침체로 인한 부도공포이다. 신속한 기업구조조정이 선행조건인 셈이다. 기업의 자산가치와 부채 등을 따져 생존가능기업과 퇴출기업을 가려내 시장불안을 해소해 주는게 상책이다.
여기에 현재 추진중인 10조원 규모의 채권시장펀드를 조속히 조성하고 필요하다면 펀드규모를 확대해 시장안정자금으로 써야 한다. 구조조정과 채권펀드조성에 지금처럼 미적대는 한 시장안정과 금리하향은 기대할 수 없다. 금융당국의 강력한 리더쉽과 추진력이 어느 때 보다 필요한 시기가 아닌가 생각된다.
[김남인 편집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