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대문은 조선 태조 7년(1398년)에 완공된 연면적 177평방미터의 2층 목조건물이다. 말하자면 축조된지 610년 된 서울에서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목조건물이 바로 남대문이다. 조선시대에 겪었던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등의 전란에도 불타지 않고 위용을 뽐내며 수도 서울을 지켜 온 자랑스런 문화유산이다. 남대문의 소실은 이런 점에서 유무형의 피해규모를 따지기 전에 국가의 수치로 볼 수 있다.
불에 타 무너진 남대문은 공교롭게도 불(火)과 관계가 깊다. 남대문은 말 그대로 남쪽에 있는 성문이다. 남쪽은 오행(五行)으로 치면 불(火)에 해당한다. 풍수적으로 관찰하면 서울을 마주보고 있는 관악산의 산세가 불꽃 모양의 화산(火山)이다. 태조 이성계가 조선을 건국하면서 수도를 개성(開城)에서 오늘날의 서울인 한양(漢陽)으로 옮길 때 경복궁을 비롯한 도성의 화재를 가장 우려했던 하나의 이유이다.
남대문의 현판인 ‘숭례문(崇禮門)’은 가로로 쓰인 다른 성문과는 달리 세로로 쓰여있다. ‘숭례(崇禮)’라는 한자가 마치 불을 연상시켜 관악산의 화기를 풍수화염으로 대항해 기세를 꺽으려는 풍수비보이다.
남대문 인근에는 이와함께 ‘남지(南池)’라는 연못을 만들어 화재에 대비했다. 지금의 서울역 광장과 대우빌딩 부근에 있었던 남지는관악산의 화기를 누르면서 실제로 화재가 일어났을때 방화수를 확보하기 위한 조치이었다. 그 만큼 화재예방에 높은 관심을 쏟았던 것이다.
지금의 서울은 600여전 수도로 조성될 때부터 건축물 하나 하나에 각각의 의미를 담았다. 남대문이 남쪽이자 오행으로 볼때 화(火 )에 해당한다면 동대문은 동쪽의 문으로 목(木)이며 인(仁)이다. 그래서 동대문의 현판은 흥인지문(興仁之門)이다.
동대문의 현판은 본래 다른 성문과 마찬가지로 흥인문의 3자 이었다. 그런데 임진왜란이후 동쪽이 허술해 도성이 함락되었다는 소문이 돌면서 이 허점을 보완하기 위해 지(之)자를 더해 흥인지문의 4자로 변했다. 풍수에서 지(之)는 현(玄)과 더불어 산의 모양을 나타내는 문자로 사용되고 있어 동쪽에 산을 쌓는 대신에 지(之)자를 더해 지세의 허점을 비보한 것이다.
실제로 동대문 지역은 서울의 동쪽 산인 낙산이 이화여대 부속병원에서 끈기면서 청계천과 동대문운동장 사이가 평지로 이어지고 있다. 성곽을 축조해도 서울의 다른 지역과 비교할 때 지세가 낮아 방어에 취약점이 들어날 수 밖에 없다.
이밖에도 홍지문(弘智門)의 지(智)를 방위로 대비하면 서(西)에 해당되어 서울의 서쪽 문으로 삼았다. 경복궁에서 보면 북쪽에 있는 창의문(彰義門)은 의(義)가 북에 해당한다. 중앙을 의미하는 신(信)은 도성의 한 가운데에 자리한 종로에 보신각(普信閣)을 세우고 종을 쳐 성문을 여닫는 시각을 알렸다.
도성의 정문인 남대문 화재는 강원도 낙산사의 전소사건이 잊혀지기도 전에 또다시 발생한 최악의 화재사건이다. 아무리 첨단과학기술을 동원에 복원한다해도 조상의 숨결을 재현해 낼 수는 없다. 남대문은 전통문화유산에 대한 철저한 보호대책을 다시 한번 촉구하는 경종을 온 몸을 불태워 울린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