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래 상장기업들의 주요 목적 중 하나가 직접금융 시장인 주식시장을 통해 자금조달을 원활하게 하는 것인 만큼 활황장을 이용한 기업들의 적극적인 자금조달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문제는 이를 악용하는 편법 3자배정 유증이다.
3자배정 유증시에는 주가 급등락을 막기 위해 증자에 참여하는 주주들로 하여금 일정기간 주식을 팔지 못하게 하는 보호예수 조항이 없다는 점 등을 이용해 결과적으로 일반 투자자들만 골탕을 먹게 되는 상황이 속출했기 때문이다. 증시를 통한 건전한 자금조달 수단이 돼야 할 유증이 대주주 및 특정 세력의 머니게임 수단으로 전락한 것이다.
'빈대 잡으려다 초가삼간 다 태운다' 우려도
감독당국도 칼을 빼 들었다. 시장 퇴출을 피하려는 부실기업, 혹은 경영권 인수자금을 조달하는 수단으로 이용된 3자배정 방식의 유증에 대한 유가증권신고서 심사를 대폭 강화하고 나섰다.
장기투자자로 경영에 참여하는 것이 아닌 투기적인 매매로 주가 급등락을 부추겨 시장 혼란을 야기하는 이들에 대해 금융당국이 제도 강화 및 규제를 통한 조치를 내놓기 시작한 것이다.
하지만 일각에선 빈대 잡으려다 초가삼간을 모두 태우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동시에 제기되고 있다. 그러잖아도 기업 입장에선 깐깐하게 여기던 유가증권신고서 심사가 더욱 강화돼 선의의 피해를 보는 기업들이 생기고 있기 때문이다.
코스닥기업 한 공시 담당자의 하소연을 들어보자.
"한 번에 승인이 떨어지기 어려운 것이 유가증권신고서인데 이제는 정정요청이 완전히 관행화됐다. 이 때문에 자금조달 일정이 차일피일 늦어지고 투자를 약속한 외국계 법인들은 이 때문에 자금조달 자체를 취소하는 사례가 잦아지고 있다. 회사로선 사업 일정에 차질을 빚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사실 기업 공시를 검색해보면 [정정]이 붙은 공시가 수두룩하다. 한 사안을 두고 적게는 3~4번에서 10여차례 이상 정정이 붙는다.
또 다른 코스닥기업 공시 담당자의 말이다.
"모범 가이드라인을 만들어 줬으면 좋겠다. 아무리 완벽한 신고서를 내더라도 감독원에선 관행적으로 정정요청을 하곤한다. 혹시 신고서를 접수한 기업에게서 무언가를 받은 게 아니냐는 불필요한 오해를 받을까봐 첫 신고서에 대해선 무조건 승인을 불허하는 게 현실이다. 기업들만 힘들게 됐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코스닥이 자초한 당국의 '3자배정 유증 규제'
물론 이번 3자배정 유상증자와 관련한 감독당국의 군기잡기는 코스닥시장에 있는 기업이 상당부분 자초한 측면이 크다.
이번 사태의 발단은 최근 코스닥 황제주로 등극한 동일철강에서 비롯됐다. 불과 한 두달 전만 해도 9만원대이던 동일철강은 최근 150만원까지 치솟다 현재 100만원 수준을 오르내리고 있다. LG그룹 대주주 일가 3세 구본호씨가 지난 8월 24일 자신이 대주주로 있는 레드캡투어와 함께 동일철강의 지분 34.44%와 경영권을 확보했다고 밝힌 뒤 급등세를 보였다. 동일철강은 해외플랜트 사업 투자와 철강공장 증설을 위해 실시하는 260억원 규모의 3자배정 유상증자에 구본호씨가 참여한다고 공시한 바 있다.
즉 구본호 레드캡투어 대주주가 대주주 지분매각과 3자배정 증자를 통한 인수가 3자배정 유증에 대한 시장 감시를 강화하게 한 출발점이 된 것이다.
이같은 성공한 3자배정 증자 사례가 나오면서 3자배정 증자기업으로 투자자들의 쏠림현상이 나타났고, 이 과정에서 여러 기업들에서 미공개정보 이용한 주가조작 움직임들이 포착됐던 것. 결국 당국으로선 규제의 칼을 빼들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이와 함께 기업들의 3자배정 유증 규모도 급증했다. 금감원 집계 결과 올 상반기 3자배정 유상증자 규모는 4조 9644억원. 전년 대비 4조 1169억원이 급증, 무려 485.8%가 늘어났다. 신한지주가 LG카드 인수를 위해 실시한 유상증자를 제외하더라도 전년 대비 3669억원(43.3%)가량 증가한 셈이다. 특히 전체 유상증자 중 3자배정 증자 비중은 77.2%로 전년보다 58.2%p 늘었고, 코스닥시장도 전체 유상증자 금액(1조 7087억원) 중 3자 배정 증자가 66.3%를 차지할 정도다.
하지만 이 기간 공모방식 3자배정 유상증자를 실시한 62개 회사(69건) 중 자본잠식법인은 23개(37.1%), 2년 연속 적자기업은 30개사(48.4%)에 달한다. 질적인 검증을 안할래야 안할 수가 없는 구조인 것이다.
주가도 부풀려질대로 거품이 낀 상황이다. 올 상반기에 3자배정 증자 회사의 주가는 증자 결의 당시에 비해 납일일과 상장일에 각각 평균 43.3%, 28.0%가 올랐다. 이에 대해 감독당국은 부실기업이 3자배정 증자를 추진하면서 호재성 공시를 터뜨리며 주가를 급상승시킨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독당국이 옥석을 가릴 수 있는 방법을 찾을 의무가 사라진 것은 아니라는 게 업계 입장이다.
코스닥기업의 한 임원은 "자칫 모든 기업이 이번 사태로 편법시비에 휘말려 수십년 공들인 노고를 하루아침에 잃게 된다면 그 누가 상장을 추진하겠는가"라며 울분을 토했다.
코스닥의 영원한 숙제 '공정공시'
이와 함께 코스닥시장의 발전을 위해선 끊임없이 제기되는 공정공시 문제도 감독당국과 코스닥 기업들이 협력해 풀어야 할 문제다.
정보의 비대칭성을 풀고자했던 애초 목적인 공정공시제도가 정보의 비대칭성을 되레 확산시키는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로 지난해 말 시장 혼란을 주도했던 코스닥 H기업의 경우 유전개발에 대한 공시를 냈다. 하지만 누구도 그 상황에서 검증은 불가능했다.
코스닥시장본부 관계자는 "대체에너지, 풍력개발의 경우 검증이 불가능하다. 계약사본만 갖고 어찌하겠는가. 모든 기업들의 공시마다 동남아, 중동 등으로 출장을 가서 일일이 확인할 수도 없는 것 아니냐"고 현실적인 어려움을 호소한다.
결국 이같이 허둥대는 사이 그 혼란의 틈에 끼어든 일반 개미들만 큰 손실을 봤다. 물론 이같은 투기적 매매에 좌우되는 개미들을 탓하지 않을 수는 없지만 수수방관적 태도를 매번 보이는 당국이나 관련 기업들의 책임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또한 코스닥기업들의 사업목적 변경이 지나치게 잦다는 점도 문제다. 한 사업을 하다 안되면 유증해서 또 다른 것을 추진하겠다고 공시하고 투자자들은 이에 현혹되는 이 현실. 최근까지는 자원개발이 대세였지만 바이오, 엔터테인먼트 등 무수한 테마들이 번갈아가며 시장내 머니게임을 유발하지 않았는가.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코스닥은 항상 테마가 주도한다.
자원개발, 경선테마, 재벌테마 등 순간적인 화제와 연동된 테마가 시장을 교란시킨다. 신정아씨의 학력위조 파문이 벌어졌을 당시 시장에선 신정아 수혜주를 찾으려는 사람도 있을 정도였다.
이런 상황을 감안할 때 결국 해결방안은 시장 퇴출제도를 강화할 수밖에 없는게 아니냐는 결론이 나온다. 지난 2005년 3진아웃제가 사실상 사라지면서 기업들의 공정공시에 대한 개념이 무너진 게 사실이다.
많은 부실기업이 퇴출되고 시장 정화가 진행되고 있지만 코스닥시장은 여전히 언제 부도날 지 모르는 회사가 수두룩하고, 1년에 대표이사가 수차례 바뀌는 게 현실이다. 코스닥기업들의 자정노력과 더불어 탈법에 대한 감독당국의 분명한 의지가 여느때 보다 절실한 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