앨런 그린스펀(Alan Greenspan) 전 연준 의장이 다음 주초 발간되는 회고록을 통해 자신이 평생 몸담아왔던 공화당에 대해 비판했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이 15일 전했다.
신문에 따르면, 그린스펀은 이 책에서 부시가 이끄는 공화당이 '작은 정부' 원칙을 저버리는 등 그릇된 재정정책을 구사해 민주당에게 패배할 수밖에 없었다고 주장했다.
한편 그는 디플레이션 위험을 봉쇄하기 위한 금리인하는 정당했으며, 그에 따른 거품이나 인플레이션에는 차후에 대처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주장했다.
인민주의 및 반연준 정서가 다시 불거질 수 있어 연준의 독립성이 훼손될까 우려한 그는, 앞으로 성장률이 둔화되는 가운데 인플레이션을 억제하려면 일시적으로 금리를 두 자리 수 위로 인상해야 될 때도 있을 것이라는 전망을 제출하기도 했다.
미리 의도한 듯 출간일은 9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회의 바로 전날이다. 버냉키 현 연준 의장은 이날 4년 만에 처음이 될 연준의 금리인하를 결정할 것으로 예상된다.
한편 이번 회고록을 출간하는 펭귄(Penguin)사는 저작료로 800만 달러 이상을 지급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 "자유방임주의적 공화당원", "과거 금리결정 옳았다"
자신을 "영원한 자유방임주의적 공화당원(lifelong libertarian Republican)"이라고 묘사한 그린스펀은, 공화당이 의회를 지배하는 동안 백악관이 "통제할 수 없는" 재정지출을 발생시킬 몇몇 법안들에 대해 거부권(veto)을 발휘해야 할 것이라고 충고했다.
그는 부시 대통령이 이렇게 하지 못한 것이 "큰 오류였다"고 지적하고, "공화당 위원들은 원칙을 권력과 바꾸어 먹으려했지만, 아무 것도 얻은 것이 없다. 패배를 스스로 자초한 것"이라고 비판의 날을 세웠다.
한편 이번 회고록에서 그린스펀은 연준이 너무 오랜 기간 저금리 기조를 유지하여 새로운 주택시장의 거품을 불러일으켰다는 일부 경제전문가들의 주장을 의식한 듯, 과거 금리인하 정책에 대해 방어하고자 했다.
그는 "우리는 침식성이 강한 디플레이션이 발생할 가능성을 완전히 닫아버리고자 했다"며, "금리를 인하함으로써 거품, 즉 일종의 인플레이션을 동반한 경기호황을 불러일으킬 가능성은 그 다음에 정정하면 된다고 보고 기꺼이 수용하고자 했다... 그건 올바른 결정이었다"고 주장했다.
그린스펀은 주택시장의 거품이 발생한 이유에 대해 공산주의의 종말에 따라 글로벌 시장에 수억 명의 노동력이 공급되었고 이에 따라 임금과 물가에 대한 하방 압력이 발생하고 나아가 장기금리 하락을 이끌어 냈기 때문이란 설명을 제시했다.
◆ 향후 인플레 억제 위해 두 자리 수 금리 필요할 수도
그린스펀은 이번 저서의 절반 정도는 현재 세계 경제의 상태와 미래 전망에 할애했다.
물론 상당 부분은 그의 이전 공식 발언이나 여타 저작에서 가져 온 것이지만, 기존 정책 결정의 배경이나 판단에 대해 새로운 빛을 던져주었으며, 자신이 알고 있는 대통령들에 대한 신랄한 지적이나 몇몇 놀라운 경제 예측을 제시했다.
먼저 미국과 세계 경제가 직면한 몇 가지 경제적 해결과제를 다룬 부분 중에서, 에너지 문제를 해결하는 길은 핵 에너지를 더 사용하는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탄소 배출한도나 조세부과 등은 실패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그는 지적했다.
한편 소득 양극화 문제는 미국 사회의 결속력을 끊어 놓거나 나아가 대규모 폭동으로 이어질 수 있는 문제이며, 이를 치유하기 위해서는 부자들에 대해 조세를 더 걷는 것이 아니라 교육의 개선이며, 수학선생들의 급여를 좀 더 높이는 것이 도움이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향후 경제에 대해서 그린스펀은 성장률이 2.5% 밑으로 떨어질 것이며, 세계화 추세가 종료되면서 인플레이션이 더욱 제어하기 힘들게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최근 중국으로부터의 수입제품 가격 상승과 장기금리 상승은 "이 같은 상황의 반전이 생각보다 빨리 올 것임을 시사하는 것"이라고 그는 경고했다.
그는 연준이 인플레이션을 1%~2% 범위에서 억제할 수는 있겠지만, 이렇게 하기 위해서는 "폴 볼커 의장 시절 이래로 볼 수 없었던 두 자리 수로의 금리인상이 불가피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여기서 그린스펀은 "앞으로 FOMC를 이끌어 갈 내 후임들이 백악관이나 의회로부터 파퓰리즘적인 정치적 저항에 무릅을 꿇게 될까 우려된다"며, 만약 이렇게 된다면 지금 2%를 약간 넘는 정도의 인플레율이 2030년 정도까지는 평균 4%~5% 정도에 이르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또 현재 5%를 밑돌고 있는 10년 재무증권 수익률은 "최소한 8%까지 상승할 것"이며, "일시적으로는 그 보다도 훨씬 높은 수준까지 상승할 가능성이 있다"고 그린스펀은 예상했다. 이렇게 되면 주식시장과 채권시장은 침체할 것이며, 주택가격 상승 폭은 상당히 작을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그는 덧붙였다.
WSJ는 이 부분에서는 그린스펀이 과거 주식시장 거품과 주택시장 거품을 유발한 정책에 대해 계속 방어하는 것이나 일부 주장이 역사적 기록과 다소 차이가 있는 점 등은 비판의 대상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일례로 회고록에서 그린스펀은 1997년 초 자신이 연준의 동료들에게 주식시장 거품을 억제하기 위해 선제적인 금리인상을 주장한 바 있다고 밝혔으나, 실제 당시의 연준의 의사록에는 그린스펀이 원칙적으로 금리인상이란 인플레이션에 대응하는 것이 되어야 한다는 주장을 내놓았을 분 주식시장 거품에 대응할 필요가 있다는 식의 내용이 전혀 발견되지 않았다고 신문은 지적했다.
그린스펀은 공산주의의 몰락이 지니는 중요성에 대해 거듭 강조했다. 이것이 전세계의 중앙계획경제에 대한 신뢰를 무너뜨렸고, 중국과 인도가 사회주의적 정책을 포기하게 만들었다고 그는 지적했다.
그는 중국의 한 생산분배센터 관리자였던 사람과 만났을 때의 일화를 전했다. 이 사람은 이전같으면 잠도 자지 못하고 분배 결정을 내리는 중노동에 시달렸지만, 시장의 입찰에 이를 맡기자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시장이 자동적으로 알아서 해주고 있다는 식으로 언급했다고 그린스펀은 소개했다.
또 그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한 자문역을 만났을 때 자신과 절친한 자유방임주의 철학자 에인 랜드(Ayn Land)에 대해 토론할 수 있냐고 물어와 놀란 경험이 있다고도 말했다.
◆ 부시 행정부 비판, 과거 대통령들 평가도 눈길
그린스펀은 부시 대통령이 자신이 제럴드 포드 행정부의 경제자문위원회에 재직할 당시 동료들인 딕 체니와 폴 오닐을 각각 부통령과 재무장관에 임명했을 때, "이 정부라면 1976년 포드가 지미 카터에게 패배할 때와는 다를 수 있겠다는, 다소 환상에 빠지기도 했다"고 술회했다.
그러나 그가 발견한 부시 행정부는 포드 대통령 때보다 "훨씬 더 정치적 동기가 지배적"이었으며, "정력적으로 경제정책에 대한 논의를 하거나 장기적인 결과에 대해서 고민하지 않았고 가치를 두지도 않았다"고 회고록은 전했다.
그린스펀은 오랜 기간 여러 명의 대통령을 보좌해봤기 때문에, 대통령직에 오를만한 어떤 일을 하려고 하는 남다른 점이 있다는 판단을 얻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포드 대통령의 경우 "대통령으로서는 거의 평범한 인물에 가까웠다. 하지만 그른 선거를 통해 선출되지 않았기 때문에 예외"라고 그는 지적했다.
오히려 포드가 대통령이 될 수 있었던 계기, 즉 워터게이트로 물러난 리처드 닉슨 전 대통령은 "엄청나게 명민한 사람"이었지만, "아쉽게도 편집증적이며 염세적이고 냉소적인 인물이었다"고 평가했다.
그는 닉슨을 반유대주의자라고 말하는 누군가에게 자신은 "반유대주의자로만 분류하면 안 된다. 그는 동시에 반유대주의자, 반이탈리아주의자, 반그리스주의자, 반슬로바키언주의자다. 대체 그가 동조하는 사람을 본 적이 없다"는 말을 해주었다고 회고했다.
로널드 레이건(Ronaldo Reagan) 전 대통령이 특정한 정책을 지지하기 위해 순간적으로 재치있는 표현을 사용하거나 일화를 제시하는 능력은 "지성의 기묘한 형태(odd form of intelligence)"를 보여주었으며, 빌 클린턴은 "정보수집에 몰두하는 사람으로 일관되고 원칙있게 장기 경제성장을 중시하는 사람"이었으나 르윈스키와의 관계 때문에 "실망했고 또 슬펐다"고 그는 말했다.
이번 회고록에서 그린스펀은 후임 버냉키 연준 의장에 대해 전혀 언급하지 않았으며, 다만 "그렇게 노련한 후임에게 자리를 물려주게 되어 상당히 홀가분했다"고만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