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많고 탈도 많았던 국책은행 역할 재정립 방안이 모습을 드러내자 산업은행 일각에선 최악 같은 차악의 방안이라는 반응이 나올 정도로 부정적인 반면 기업은행과 수출입은행은 환영하는 반응을 보였다.
정부가 금융산업 발전의 총아로 IB부문을 꼽으면서도 산업은행을 그 동력원에서 완전히 배제한 채 오로지 증권계 금융투자회사에 맡기라는 해법을 택했다는 점은 갑론을박이 예상된다.
그것도 자본시장통합법 시행 일정에 맞춰서 인위적으로 산은 업무를 이관시켜 선도 금융투자회사로 키우자는 발상까지 제시돼 논란이 불가피 할 전망이다.
재정경제부가 6일 오전 경기도 과천 정부종합청사에서 열린 경제정책조정회의에 '국책은행 역할 재정립 방안'을 상정한 결과 원안대로 통과된 것으로 발표됐다.
이번 재정립 방안의 뼈대는 "정책금융역할을 효율적으로 수행하되 민간과의 마찰은 최소화 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정부는 금융발전심의회 산하에 금발심 위원 및 외부전문가 등 8인 안팎으로 이뤄진 정책금융심의회를 신설하기로 했다.
정책금융심의회는 국책은행 역할의 시장마찰 여부를 모니터링하고 평가하며 국책은행 업무조정 방안 등을 지속적으로 조율하고 점검하게 된다.
산업은행 역할과 기능 일부를 대우증권에 넘기는 일이나 산은과 수출입은행이 해외 사업에서 부딛히지 않도록 제어하는 역할도 여기서 맡는다.
◆ 정책금융 수행하되 민간과 마찰 최소화
이번 역할재조정안은 산업은행을 타깃 삼은 것 답게 산은의 골격과 근육의 급격한 재구성을 꾀하고 있다.
그동안 산은측에서는 정책금융을 수행하는 본체에서 IB부문을 분리한 뒤 민영화함으로써 민간마찰 논란을 해소하고 경쟁력도 본격적으로 강화하자고 요청해 왔다.
그러나 정부가 마련한 방안은 IB부문의 상당비중을 차지하는 상업적 IB부문을 인위적으로 떼어 내 대우증권(이 전환하는 금융투자회사)에 넘긴 뒤 매각하겠다는 복안이다.
일선 금융사의 기대와 정부 정책이 이처럼 어긋나면서 당연히 큰 고통과 일부 기관의 축소 또는 분할을 하는 수술이 불가피하다.
산업은행에는 정책금융 수요에 효율적으로 부응할 업무수행 및 평가체계를 개편하고 정책금융을 주도하는 산업은행 본체말고 자회사인 금융투자회사가 금융산업 재편과정에서 선도적 역할을 하라는 중책을 수행하도록 했다.
산은 업무 가운데 시장과 마찰을 빚는 부분을 대우증권에 넘기면서 증권사 자체적으로도 역량을 강화해 자본시장통합법(이하 자통법) 시행 이후 국내 선도 금융투자회사 등장과 국내외 금융투자회사간 경쟁 수준을 끌어올릴 동량으로 쓰겠다는 포석이다.
정부는 일단 현행 체제에서 시장마찰을 최소화 하는 것을 1단계로 삼았다.
시장마찰 해소책을 연내에 확립해 이행하라는 주문이 떨어졌다. 실제 마찰해소에 시간이 걸리면 시한을 확정하고 대우증권에 넘길 것은 넘기라는 주문이다.
2단계로는 자통법 시행에 발맞춰 다른 금융사보다 앞서 있는 산업은행의 IB업무와 그 노하우는 물론 국제적 네트워크까지 통째로 대우증권에 이전한다는 방안이 포함됐다.
이 때문에 산은 내부에서는 "민간부문과의 마찰이 실제로 얼마나 심각한지 검증도 없이 마찰을 빚는다는 논란이 있다는 것만을 근거로 상업적 IB업무를 대우증권에 이관하라는 것은 금융사 비즈니스를 모르는 발상"이라는 반발이 터져 나왔다.
업무만 넘겨주면 노하우 전수가 안되고 노하우를 살리자면 사람이 옮겨가야 하는데 뱅커들이 증권사에 대거 옮긴다는 것이 말처럼 쉽지 않고 실효성이 있는지도 의문스럽다는 게 첫번째 이유다.
설사 업무를 아는 사람이 가더라도 영업관련 네트워크가 그대로 따라온다는 보장이 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신용등급을 비롯한 자본규모와 자금조달 능력, 그리고 그동안 국내외 무대에서 과시한 거래실적(레코드)등 산업은행의 공신력으로 하던 업무를 일거에 옮긴들 동일한 영향력을 발휘하기 어렵다는 게 금융계의 중론이다.
산은 고위관계자는 "궂이 옮겨 마땅한 것이 있다면 산업은행과 대우증권이 합작하는 등 호흡을 맞추면서 데어터와 노하우를 전수시켜 주고 산은의 네트워크를 활용할 수 있게 해줘야 하는데 시간이 얼마나 들지 측량하기 어려운 사안"이라고 말했다.
물론 정부는 산은이 금융투자회사(대우증권)과 역할분담을 통해 지원 기업의 유형 및 발전단계별 맞춤형 지원이 가능하도록 포괄적인 정책금융 체제를 구축해야 한다고 인정하기도 했다.
◆ 산은 노하우 업무 떼어줘 증권사 키운 끝에 팔겠다?
하지만 상업적 IB업무를 무조건 떼어내라는 처방이 나온 마당에 산은과 국내 선도 금융투자회사로 육성하겠다는 대우증권의 역할 분담을 다시 강조한 것은 공허해 보인다.
역할분담보다 협력과 합작을 통한 토탈 금융서비스 구현을 통한 금융과 산업체의 상생 발전을 꾀해야 할 텐데 이같은 프로젝트들은 케이스마다 현실정합성에 맞게 설계하고 정착시켜야 할 일이지 미리 산은은 어디까지 대우증권은 어디까지 잘라 놓은 상태에서 협력 또는 합작을 한다는 것도 쉽지 않은 모델이라는 반론도 나왔다.
예를 들어 산은이 정통기업, 중소기업, 안정기 기업 지원을 주로 맡고 대우증권이 혁신형기업, 대기업, 초기 및 성숙기 기업을 맡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잣대는 설득력이 부족하다는 지적이다.
은행권 한 관계자는 "벤처기업과 막 창업한 기업 또는 이제 본궤도에 오르려는 기업에 대한 지원은 대형은행들이 이미 뛰어든 분야로, 대출 뿐 아니라 CB 또는 옵션부 출자참여 등의 기법이 혼용되곤 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그는 "아무리 자통법이 발효되고 자본력을 키우더라도 증권사가 금융지원 적격업체를 선별해 대출까지 동원하는 다양한 기법을 동원한 금융지원을 완벽히 구사한다는 건 하루 아침에 갖출 수 있는 일이 아니다"고 주장했다.
무엇보다 이렇듯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인데도 궁극에는 역량이 강화된 대우증권을 지칭한 투자금융회사를 매각하는 방안을 검토하겠다는 방침이 거론됐다는 사실이 산은에겐 우환 거리다.
산은 일각에서는 "산은이 고생해서 키워놓은 비즈니스를 인위적으로 떼어주기까지 해서 회사를 기껏 키워놓고서 팔겠다는 것은 누구를 위한 시나리오인지 의문스럽다"는 격한 반응까지 나왔다.
다만 정부는 떼어내야 할 상업적 IB를 어디서 어디까지로 봐야 하는지, 합작 또는 협력 관계 속에서 역할의 최종적인 조정을 언제 어떻게 할 것인지 최종 결정까지 한 달 간의 의견 수렴과 조정을 거칠 계획이다.
아직 변수와 부작용 최소화의 기회는 남아 있는 셈이다.
◆ 기업은행 수출입은행은 당연히 환영
산은과 달리 기업은행과 수출입은행은 위상강화로 이어질 정책적 뒷받침을 기대하는 맘이 부풀어 올랐다.
기업은행 관계자는 "정부의 민영화 로드맵에 동참하고 민영화 후에도 중소기업전문은행으로 역할을 다하겠다는 게 기업은행의 기본 입장"이라고 말했다.
정부는 기업은행 민영화를 추진하되 중장기 마스터플랜에 따라 단계적을 추진하겠다고 분명히 했다.
또한 추가 M&A수요 등과 관련한 은행산업 구도변화를 감안하고 업무계획을 사후보고로 바꾸는 등 경영자율성 제고방안을 검토하겠다는 당근책이 제시됐다.
수출입은행 역시 반기는 기색이다. 이 은행 한 관계자는 "대외거래전문은행으로 업무를 강화하는 방향이고 자원개발 등 정책금융과 대외경제협력기금(EDCF) 등의 시너지효과 극대화를 꾀할 수 있는 발판이 마련됐다"며 환영했다.
정부는 수출입은행에 대한 정부출자를 확대하고 EDCF 등 기금 재정지원을 강화한다고 밝혔다.
은행 관계자는 "자원이 부족한 입장에서 한국수출입은행은 자원개발전쟁에서 해외 수출입금융기구(ECA)들과 경쟁해야할 입장인데 해외투자와 자원개발 지원에 큰 힘을 얻게 됐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