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결론: 글로벌 위기의 관리
(2) 버냉키의 글로벌 위기 관리 능력에 주목
앞서 맥락에서 볼 때, 버냉키 시대, 혹은 버냉키노믹스의 진정한 시험은 이른바 글로벌 위기 관리 능력에서 판가름될 공산이 큰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이와 관련해 이제 ‘집권 2년차’가 새로운 테마로 부상하고 있다. 일련의 신뢰도 시험을 대체로 무난히 극복한 뒤 그의 진정한 진가는 이제 새로운 글로벌 위기에서 시험을 거치게 될 것이라는 얘기다.
이미 대완화로 특징지어 지는 글로벌 차원의 거시경제적 안정성 제고, 즉 대완화가 실은 그 이면에 금융시장 혹은 자산(석유 등 상품은 물론 부동산도 포함해) 붐 앤 부스트의 심화를 동반하고 있는 데다, 미국의 막대한 경상적자를 필두로 글로벌 교역 및 금융 흐름의 극심한 불균형을 조장하고 있다.
특히 세계 최대의 적자국 미국은 매일 20억달러 이상의 외자를 빌리고 있는 처지다. 여기서 인플레이션 억제에 대한 연준, 아니 현대 글로벌 중앙은행 시스템의 자신감은 실로 초래해질 수밖에 없다. 게다가 인플레이션 동학에 대한 기존의 인식도 세계화의 심오한 도전에 직면해 송두리째 흔들리고 있는 실정이다.
나아가 아예 국경의 경계를 무시하며 규제 자체를 무력화시키고 있는 각종 파생 금융상품의 급부상도 “잠재적 시한폭탄”으로 남아 있다.
특히 2007년 초 다보스 포럼에 모인 글로벌 리더들은 파생상품의 수요 급증에 따라 세계 성장 둔화에 대한 금융시장의 취약성이 가중되고 있다며 우려의 목소리를 높인 바 있다. 무엇보다 리스크에 대한 적절한 평가의 부재 때문이다.
이런 가운데 비관론자들은 시스템 차원에서 심각한 문제가 발생할 리스크가 크다고 경고한다. 그리고 이런 우려는 이번 포럼의 주제인 “변화하는 권력 균형”(The Shifting Power Equation)에 따른 ‘세계화에 대한 역공’의 가능성을 경계하는 목소리로 이어진다.
버냉키가 공고화, 제도화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는 현대 글로벌 중앙은행 시스템 자체도 실은 볼커와 그린스펀을 거치며 글로벌 자본 흐름의 이례적인 확장과 초국적 하이테크 금융상품의 급성장 시대를 주재하며 자리를 잡아 왔다. 따라서 ‘새로운 종합’의 선봉 버냉키 역시 이처럼 한층 강력해진 금융 세계화 시대의 관리라는 책임을 지닌다.
여기서 미국의 금융시스템이 지니는 글로벌 헤게모니가 그 담보 장치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이제 금융시스템의 영역은 더 이상 전통적인 무대에 머물지 않고 있다. ‘브릭스’(BRICs)와 같은 “새로운” 신흥 경제국의 부상과 지리적으로나 상품 종류로나 각종 ‘틈새시장’의 급성장에서 볼 수 있듯, 상대적으로 낯설고 또 리스크가 큰 시장이 주무대로 정착되고 있다.
이미 1990년대부터 확인됐던 것처럼, 오늘날 위기는 대부분 그 자체로 ‘글로벌한 속성’을 지니고 있다. 오히려 지난 해 태국의 쿠데타 소식이나 동유럽이나 중남미의 정치적 혼란과 같은 이벤트들의 경우 이제 글로벌 쟁점이 아닌 한 자국 시장에서조차도 별 큰 파장을 미치지 못한다. 북핵 문제도 다르지 않을 것이다.
실물과 금융 간의 전통적인 관계도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 금융의 헤게모니 하에 실물 흐름이 좌우되는 이른바 ‘자산경제’가 정착된 때문이다. ‘불균형의 균형’이 지니는 근본적으로 취약한 속성 탓에 이 시스템의 안정성은 결코 담보되지 못한다. 최근 미국을 비롯해 글로벌 경제 전반에서 연출되고 있는 경기순환의 비정형적인 패턴, 혹은 다양한 리스크의 병존과 위태로운 균형은 바로 이로 인한 것이다.
결국 버냉키가 물려받은 자리는 실로 중대한 책임을 지고 있다. 그리고 이제 진정한 의미에서 그가 직면할 최대 시련은 대단히 글로벌 차원의 문제에서 비롯될 공산이 크다.
이런 글로벌 속성은 최근 글로벌 유동성 교란의 주범으로 지목되는 (일본은행의 금리 행보와 결부된) 이른바 엔-캐리 트레이드(yen-carry trade)는 물론, 부동산 버블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특히 부동산 버블 역시 ‘일국적’(national) 현상이라기보다는, ‘일국 이하적’(sub-national)이면서 동시에 ‘일국 이상적’(sur-national)이라고 할 수 있다. 극단적으로 그린스펀은 최근 부동산 붐에 대해 “베를린 장벽의 붕괴”를 한 가지 동인으로 지목하기도 했다.
이런 면에서 볼 때, 버냉키가 새겨야 할 진정한 교훈은 글로벌 차원의 리스크나 위기 관리 능력이라 할 것이다. 글로벌 차원의 공조를 이끌어 내고, 나아가 글로벌 정치․경제적 역학 관계를 타개해 나갈 외교력과 정치력 말이다.
사실 지금 버냉키가 우려하는 세계화에 대한 역공 혹은 보호주의 문제는 미국 내 ‘협소한’ 통화정책 영역에 국한될 수 없는 쟁점이다. 결국 버냉키가 현대 글로벌 중앙은행 시스템의 진화와 관련해 진정으로 고민해야 할 제도적 혁신은 바로 이런 ‘글로벌 리더쉽’ 문제(대공황의 또 다른 교훈!)라 할 수 있다. 가령, 미국과 유럽, 즉 대서양 양안의 전통적인 갈등과 협력 관계 이상으로, 버냉키 스스로 이제 점차 아시아나 새로운 신흥시장 등에 대해 일종의 ‘전초기지’를 확보할 필요가 있을지도 모른다.
이와 관련해 예일대학 경영대학원의 제프리 가튼 교수는 “버냉키는 향후 20년 뒤가 될 수 있는 자신의 퇴임 시점에 중국과 일본, 유럽 등지의 중앙은행 동료들을 연준 회의에 직접 초청해, 실시간으로 상호 의견을 교환하고 미국의 대외 정책 행보를 시킬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보기도 했다.
그리고 “물론 이런 일들은 아직은 막연한 공상에 불과한 지도 모르지만, 지난 1987년 그린스펀이 의장으로 취임할 당시만 해도 유로화의 출범과 일본의 장기 디플레 불황, 그리고 중국의 급속한 부상 등을 누가 감히 상상이라도 했던가? 버냉키가 지금의 각종 글로벌 도전에 적격이 아니라고 생각할 이유는 없지만, 그는 이런 도전들에 대해 진지한 시험을 거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사실 지난 1990년대 중후반 그린스펀과 함께 미국 등 세계 경제를 견인해 온 미국의 로버트 루빈 전 재무장관은 2005년 그린스펀의 퇴임을 기념해 열린 잭슨홀 컨퍼런스에 참석해, 차기 의장의 자질로 다음과 같은 조건을 제시한 바 있다.
즉 “연준 의장은 단지 경제 데이터를 읽는 데 뛰어난 통찰력이나 거시경제에 대한 높은 이해와 건전한 거시경제 정책에 대한 확고한 태도만이 아니라, 동시에 시장 및 기업의 심리와 워싱턴과 글로벌 경제 공동체의 정치에 대한 예리한 이해를 갖춰야 한다”.
일단 전자의 여러 측면들에 대해서는 버냉키가 대체로 ‘예스’라 할 수 있겠지만, 후자 측면들, 특히 시장이나 실물 경제의 역동적인 심리와 글로벌 경제 공동체의 정치에 대한 이해 등에 대해서는 과연 어떨지 두고 볼 일이다. 버냉키 취임 1주년을 넘긴 지금도 글로벌 금융시장 전반에서 그린스펀의 “그늘”을 그리워하며 퇴임 후 그의 행보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는 것은 아마 이 때문일 것이다.
[뉴스핌 장보형 객원이코노미스트]
※본 특집의 저자인 장보형은 연세대학교 경제학과와 한신대 대학원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지난 10여년간 국내 정보컨설팅 업체인 와이즈 인포넷에서 '국제금융/경제 팀장'을 맡아 국제 금융시장과 세계 경제 동향 점검 및 이슈 분석을 전담한 후, 현재는 '글로벌 마켓 이코노미스트'로서 프리랜서 활동을 하고 있으며, 올해부터 뉴스핌 객원 이코노미스트로 합류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