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한해는 미국의 경기회복 여파가 전세계로 확산되는 가운데 각국이 환율을 경기부양의 수단으로 삼으면서 환율정책이 세계금융시장에 최대 이슈가 됐다.특히 미국이 달러 약세로 환율카드를 적극 가동하면서 글로벌 달러 약세 기조가 이어지는 가운데 아시아 국가에서는 중앙은행 또는 정부의 외환시장 개입이 주요 이슈로 부상했다.올해 미국의 달러화 약세 기조는 암암리에 지속적으로 이뤄져 왔으나 세계금융시장에 부상하며 불연속적인 계기가 됐던 것은 '두바이 공동성명'이었다.지난 9월 하순 아랍에미레이트 두바이에 열린 서방선진 7개국(G7) 재무장관 회의에서 '유연한 환율제도를 권고한다'는 공동성명이 발표된 뒤 달러/엔 환율이 급락하는 등 달러 약세가 한단계 가속화됐다.아들 부시 행정부 들어서 잇단 경기부양책과 세금감면 등에 따라 미국이 재정적자로 다시 돌아서면서 강한 달러정책이라는 관리들의 수사어구가 의심받던 차에 두바이 공동성명은 달러약세 기조에 대한 공식적인 용인으로, 또 이를 막는 국가에 대한 강력한 압력으로 해석됐다.◆ 미국의 달러 정책 노선: 강한 달러 vs 약한 달러 미국의 강한 달러정책은 클린턴 행정부가 기업구조조정의 성과를 바탕으로 줄기차게 연방정부의 재정적자에 대한 감축을 이끌면서, 정보기술(IT) 혁명과 함께 신경제를 이끌었던 로버트 루빈 재무장관 등을 통해 미국 정부의 공식적인 정책노선으로 채택됐다.그리고 그 바탕에는 연방정부의 재정흑자 전환이라는 성과와 함께 소련으로 지칭되는 사회주의 경제권의 붕괴 이후 자본주의 경제체제의 주도국으로서 갖는 우월의식, 냉전 종식 이래 미국 주도의 국제정치적 단일패권이 형성됐다는 역학관계가 자리잡고 있었다.특히 강한 달러정책은 미국 경제가 1980년대 우울한 구조조정의 기나긴 고통에서 획득한 경쟁력을 바탕으로 지난 1997년 아시아의 IMF 외환위기를 타개하는 정책코드이자 소위 세계화라는 미국식 패러다임의 세계적 확산을 주도하는 근저를 제공했다.그러나 21세기 세기적 전환과 함께 찾아온 정보기술(IT) 버블 붕괴와 세계적인 경기침체 국면에서 지속적인 금리인하 속에서 미국 달러화는 약세 전환의 조짐이 생겨났고, 부시 행정부 이래 이라크 전쟁과 경기부양용이라지만 부자에 혜택을 주는 세금감면 등에 따라 쌍둥이 적자의 나라가 된 미국에서 정책 한계를 타개하는 수단으로서 환율카드가 제시되기에 이르렀다.환율전쟁은 세계 각국이 경기회복을 이루기 위해 자국의 통화가치를 경쟁적으로 낮추고자 하는 국가간 환율정책의 충돌에 따른 결과물이다. 더욱이 경기회복이나 무역적자 감축이라는 경제적 이해관계뿐만 아니라 정치권력을 재획득하기 위한 정치적 목적까지 중층적이면서도 강력한 이해관계가 밑바탕에 깔려 있다.미국이 촉발시킨 환율전쟁은 중국이나 일본을 중심으로 한 아시아 각국 정부나 중앙은행들의 외환시장 개입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아시아 국가들의 외환시장 개입과 그에 따른 통화가치의 절상억제 때문에 미국의 무역수지 적자가 급증하고 있다는 주장이다. 중국은세계의 공장으로서 발돋움하고 있으나 경제제도의 후진성으로 인해 아직 고정환율제도를 채택하고 있다. 잃어버린 불황의 10년을 뒤로 하고 경제회복을 위해 외환시장 개입을 주요수단으로 삼고 이를 공식적으로 밝히고 있는 게 일본이다. 또 한국이나 태국 등 아시아국가들은 변동환율제도를 채택하고 있으나 정부의 입김이 막강하게 작용하고 있어 시장개입 논란은 시장 내외를 막론하고 계속될 전망이다.◆ 한국의 외환시장 개입 논란 한편 한국 내에서도 정부의 외환시장 개입과 개입방식을 둘러싼 논란은 생생히 돌아가는 시장과 함께 여전히 진행형이다. 정부와 외환당국은 경기회복과 수출경쟁력을 위한 '경제국방비'라는 명분을 내세우고 있으나 시장의 자율성을 해치고 중장기적으로 기업들의 근본적인 경쟁력을 해친다는 입장도 강력하다. 더욱이 달러약세 기조 속에서 개입비용이 국민의 부담을 가중시킬 정도로 폭증하고 있어 논란은 그칠 줄 모르고 있다. 지난해 1조8,000억원에 달했던 외국환평형기금의 순손실이 올해는 외평채 발행 급증에 따른 이자비용과 환차손 등에 따라 급증할 것이라는 예상이다. 이를 의식한 탓인지 정부의 경기회복 등 경제펀더멘털 차이에 원-엔 디커플링(de-coupling) 유도나 수출호조세 유지 등을 근거로 한 지속적인 개입의 또다른 이면에는 경기회복을 위한 성장률 3%대 근접화 유도와 함께 평가손 축소 의도도 작용하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시각도 제기되고 있다.아무튼 외환시장 개입 방식을 현재의 한국은행 차입이나 외평채 발행을 통한 직접 개입 방식에서 시장 메카니즘에 순응하는 간접방식으로 바꿔야 한다는 목소리는 IMF 이후 대한민국의 외환·금융시스템의 안정성 확보라는 주요 국가 과제임에 틀림없다.외환시장에 직접 몸을 담고 있는 국내외 은행 딜러 등 시장참가자들한테서는 예전부터 제기돼 왔던 얘기이지만, 최근 대한민국의 국책두뇌집단(Think-Tank)인 한국개발연구원(KDI)과 민간 경제연구소장들이 수출만을 위한 환율방어정책은 △ 내수시장의 위축 △ 통화관리의 어려움 △ 외국과 불필요한 마찰 등의 부작용을 수반한다며 지나친 외환시장 개입에 대해 우려감을 표해 주목된다.내년도 한국 경제는 수출을 중심으로 5%대 수준의 성장을 할 것이나 가계신용문제나 실업 등을 고려할 때 내수 회복은 더딜 것이라는 게 예측기관들의 중론이다. 재정경제부 등 정부 경제부처 역시 내년도 경제운용계획을 작성하면서 주요 정책 과제를 두고 부처별 관점별 입장에 따라 논쟁과 논란이 한창일 시점이다. 한국의 경제상황이나 정책부처 입장 등 현실적인 여건을 고려할 때 정부의 입장이 쉽게 바뀌지는 않을 것 같지만 귀를 열어놓아야 한다는 것은 분명하다. [뉴스핌 Newspim] 이기석 기자 reuhan@newspim.com
2003년 한해는 미국의 경기회복 여파가 전세계로 확산되는 가운데 각국이 환율을 경기부양의 수단으로 삼으면서 환율정책이 세계금융시장에 최대 이슈가 됐다.특히 미국이 달러 약세로 환율카드를 적극 가동하면서 글로벌 달러 약세 기조가 이어지는 가운데 아시아 국가에서는 중앙은행 또는 정부의 외환시장 개입이 주요 이슈로 부상했다.올해 미국의 달러화 약세 기조는 암암리에 지속적으로 이뤄져 왔으나 세계금융시장에 부상하며 불연속적인 계기가 됐던 것은 '두바이 공동성명'이었다.지난 9월 하순 아랍에미레이트 두바이에 열린 서방선진 7개국(G7) 재무장관 회의에서 '유연한 환율제도를 권고한다'는 공동성명이 발표된 뒤 달러/엔 환율이 급락하는 등 달러 약세가 한단계 가속화됐다.아들 부시 행정부 들어서 잇단 경기부양책과 세금감면 등에 따라 미국이 재정적자로 다시 돌아서면서 강한 달러정책이라는 관리들의 수사어구가 의심받던 차에 두바이 공동성명은 달러약세 기조에 대한 공식적인 용인으로, 또 이를 막는 국가에 대한 강력한 압력으로 해석됐다.◆ 미국의 달러 정책 노선: 강한 달러 vs 약한 달러 미국의 강한 달러정책은 클린턴 행정부가 기업구조조정의 성과를 바탕으로 줄기차게 연방정부의 재정적자에 대한 감축을 이끌면서, 정보기술(IT) 혁명과 함께 신경제를 이끌었던 로버트 루빈 재무장관 등을 통해 미국 정부의 공식적인 정책노선으로 채택됐다.그리고 그 바탕에는 연방정부의 재정흑자 전환이라는 성과와 함께 소련으로 지칭되는 사회주의 경제권의 붕괴 이후 자본주의 경제체제의 주도국으로서 갖는 우월의식, 냉전 종식 이래 미국 주도의 국제정치적 단일패권이 형성됐다는 역학관계가 자리잡고 있었다.특히 강한 달러정책은 미국 경제가 1980년대 우울한 구조조정의 기나긴 고통에서 획득한 경쟁력을 바탕으로 지난 1997년 아시아의 IMF 외환위기를 타개하는 정책코드이자 소위 세계화라는 미국식 패러다임의 세계적 확산을 주도하는 근저를 제공했다.그러나 21세기 세기적 전환과 함께 찾아온 정보기술(IT) 버블 붕괴와 세계적인 경기침체 국면에서 지속적인 금리인하 속에서 미국 달러화는 약세 전환의 조짐이 생겨났고, 부시 행정부 이래 이라크 전쟁과 경기부양용이라지만 부자에 혜택을 주는 세금감면 등에 따라 쌍둥이 적자의 나라가 된 미국에서 정책 한계를 타개하는 수단으로서 환율카드가 제시되기에 이르렀다.환율전쟁은 세계 각국이 경기회복을 이루기 위해 자국의 통화가치를 경쟁적으로 낮추고자 하는 국가간 환율정책의 충돌에 따른 결과물이다. 더욱이 경기회복이나 무역적자 감축이라는 경제적 이해관계뿐만 아니라 정치권력을 재획득하기 위한 정치적 목적까지 중층적이면서도 강력한 이해관계가 밑바탕에 깔려 있다.미국이 촉발시킨 환율전쟁은 중국이나 일본을 중심으로 한 아시아 각국 정부나 중앙은행들의 외환시장 개입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아시아 국가들의 외환시장 개입과 그에 따른 통화가치의 절상억제 때문에 미국의 무역수지 적자가 급증하고 있다는 주장이다. 중국은세계의 공장으로서 발돋움하고 있으나 경제제도의 후진성으로 인해 아직 고정환율제도를 채택하고 있다. 잃어버린 불황의 10년을 뒤로 하고 경제회복을 위해 외환시장 개입을 주요수단으로 삼고 이를 공식적으로 밝히고 있는 게 일본이다. 또 한국이나 태국 등 아시아국가들은 변동환율제도를 채택하고 있으나 정부의 입김이 막강하게 작용하고 있어 시장개입 논란은 시장 내외를 막론하고 계속될 전망이다.◆ 한국의 외환시장 개입 논란 한편 한국 내에서도 정부의 외환시장 개입과 개입방식을 둘러싼 논란은 생생히 돌아가는 시장과 함께 여전히 진행형이다. 정부와 외환당국은 경기회복과 수출경쟁력을 위한 '경제국방비'라는 명분을 내세우고 있으나 시장의 자율성을 해치고 중장기적으로 기업들의 근본적인 경쟁력을 해친다는 입장도 강력하다. 더욱이 달러약세 기조 속에서 개입비용이 국민의 부담을 가중시킬 정도로 폭증하고 있어 논란은 그칠 줄 모르고 있다. 지난해 1조8,000억원에 달했던 외국환평형기금의 순손실이 올해는 외평채 발행 급증에 따른 이자비용과 환차손 등에 따라 급증할 것이라는 예상이다. 이를 의식한 탓인지 정부의 경기회복 등 경제펀더멘털 차이에 원-엔 디커플링(de-coupling) 유도나 수출호조세 유지 등을 근거로 한 지속적인 개입의 또다른 이면에는 경기회복을 위한 성장률 3%대 근접화 유도와 함께 평가손 축소 의도도 작용하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시각도 제기되고 있다.아무튼 외환시장 개입 방식을 현재의 한국은행 차입이나 외평채 발행을 통한 직접 개입 방식에서 시장 메카니즘에 순응하는 간접방식으로 바꿔야 한다는 목소리는 IMF 이후 대한민국의 외환·금융시스템의 안정성 확보라는 주요 국가 과제임에 틀림없다.외환시장에 직접 몸을 담고 있는 국내외 은행 딜러 등 시장참가자들한테서는 예전부터 제기돼 왔던 얘기이지만, 최근 대한민국의 국책두뇌집단(Think-Tank)인 한국개발연구원(KDI)과 민간 경제연구소장들이 수출만을 위한 환율방어정책은 △ 내수시장의 위축 △ 통화관리의 어려움 △ 외국과 불필요한 마찰 등의 부작용을 수반한다며 지나친 외환시장 개입에 대해 우려감을 표해 주목된다.내년도 한국 경제는 수출을 중심으로 5%대 수준의 성장을 할 것이나 가계신용문제나 실업 등을 고려할 때 내수 회복은 더딜 것이라는 게 예측기관들의 중론이다. 재정경제부 등 정부 경제부처 역시 내년도 경제운용계획을 작성하면서 주요 정책 과제를 두고 부처별 관점별 입장에 따라 논쟁과 논란이 한창일 시점이다. 한국의 경제상황이나 정책부처 입장 등 현실적인 여건을 고려할 때 정부의 입장이 쉽게 바뀌지는 않을 것 같지만 귀를 열어놓아야 한다는 것은 분명하다. [뉴스핌 Newspim] 이기석 기자 reuhan@newspi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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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중간선거 출구조사' 유권자 65% "인플레 트럼프 탓"
[서울=뉴스핌] 최원진 기자= 3일(현지시간) 치러진 미국 중간선거 출구조사에서 유권자의 절대다수가 현재 미국 경제 상황을 비관적으로 평가하고 있으며, 고물가와 경제 난국의 책임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에게 돌리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NBC, CNN, CBS 등 미국 주요 방송사의 의뢰로 여론조사기관 SSRS가 실시해 이날 발표한 출구조사 결과에 따르면, 전체 응답자의 75%가 "현재 미국 경제 상황이 악화됐다"고 답했다.
3일(현지시간) 미국 일리노이주 시카고에 있는 윌리엄 C. 가우디 기술 아카데미의 중간선거 투표 현장. [사진=로이터 뉴스핌]
특히 유권자의 65%는 "트럼프 대통령의 정책이 경제를 더 악화시켰다"고 응답했으며, 62%는 고물가의 책임이 트럼프 대통령에게 있다고 지목했다. 유권자의 44%는 "2년 전 트럼프 대통령 취임 당시보다 가계 재정 상태가 악화됐다"고 답한 반면, 좋아졌다는 응답은 18%에 그쳤다.
이번 출구조사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국정 수행 지지율은 38%에 그쳐, 1기 임기 당시 치러진 2018년 중간선거 지지율(45%)보다 7%포인트(P) 하락했다.
유권자 10명 중 4명 이상인 43%는 "트럼프 대통령에게 심판표를 던지기 위해 투표소에 나왔다"고 답했다. 이는 상원 승패를 결정지을 4대 핵심 경합주(조지아, 오하이오, 미시간, 텍사스)에서도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부정 평가가 과반을 넘어서며 공화당 후보들에게 악재로 작용한 것으로 분석됐다.
유권자들이 꼽은 가장 중요한 선거 이슈는 경제(39%)였으며, 민주주의 수호(32%)가 뒤를 이었다. 체감 물가 상승률과 관련해서는 ▲유가 및 경유 가격(87%) ▲식료품 가격(88%) ▲공공요금(86%) ▲의료비(85%) 등 삶의 질과 직결된 전 분야에서 80%가 넘는 유권자가 불안감과 생활고를 호소했다.
지난 2024년 대선에서 트럼프 대통령 승리의 견인차 역할을 했던 핵심 유권자층의 이탈 징후도 포착됐다. 히스패닉(라틴계) 유권자 중 민주당 지지층 비율은 2024년 39%에서 올해 43%로 반등했다. 이로써 민주당의 라티노 우위 격차는 2024년 10%P에서 이번에 16%P로 크게 확대되며 우상향 곡선을 그렸다.
흥미롭게도, 유권자들은 양당 모두에 대해 높은 불만을 드러냈다. 민주당에 대한 비호감도는 54%(호감 46%), 공화당에 대한 비호감도는 59%(호감 41%)로 양당 모두 과거 두 차례 중간선거 대비 비호감도가 크게 상승했다. '양당 모두 비호감'이라고 답한 유권자 비율도 20%에 육박한 것으로 나타났다.
주요 이슈별 정당 신뢰도 조사에서는 민주당이 경제, 외교 정책, 의료, 공직 부패 등 다수 분야에서 공화당보다 우수한 평가를 받았다. 공화당은 이민 문제에서만 유일하게 우위를 점했으며, 인공지능(AI) 정책과 세금 이슈에서는 양당이 팽팽히 맞섰다.
wonjc6@newspim.com
2026-11-04 0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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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금융 해킹' 제2금융·증권사 등 모두 뚫렸다
은행을 시작으로 증권사와 카드사 뿐 아니라 저축은행 등 제2금융권까지 해킹 피해가 속출하고 있다. 난공불락으로 여겨졌던 금융사 보안 체계는 외부 공격과 내부 관리 부실 앞에서 허점을 드러냈고 사고를 사전에 탐지하거나 피해를 신속히 차단하는 대응 역량도 도마 위에 올랐다. 뉴스핌은 총 4편의 기획을 통해 업권별 사고 원인과 보안 실태를 규명하고 인공지능(AI) 기반 보안체계 구축과 망분리 규제 개선 및 실질적인 제도 개선 방안 등을 모색한다.
[서울=뉴스핌] 김양섭·김가희 기자 = 국내 금융권이 한 달 넘게 이어진 연쇄 해킹에 업권을 가리지 않고 뚫렸다.
지난달 1일 신한은행의 고객정보 유출 공개 이후 시중은행과 저축은행, 캐피탈사, 새마을금고중앙회로 번진 침해사고는 지난달 말 대신증권과 미래에셋자산운용, 미래에셋생명, 빗썸으로 이어졌고 한양증권에서도 유출이 확인됐다. 금융당국이 지난달 14일 집계한 침해 금융사만 16곳, 유출 정보는 약 10만건이었다.
뚫린 곳은 대부분 핵심 뱅킹망이 아닌 외곽 시스템이었다. 금융당국은 지난달 4일 사고를 세 유형으로 나눴다. 본인확인 없이 대출신청 내역 등을 조회할 수 있던 정보조회 서비스, 기기 접근통제가 빠졌거나 웹 취약점이 있던 프라이빗뱅커(PB)·기업금융 담당자(RM) 등 직원 업무지원 서비스, 이미 알려진 취약점으로 악성코드가 심어져 고객정보가 담긴 로그파일이 빠져나간 홈페이지다.
금융당국이 금융회사 555곳의 자체 보안점검 결과를 공개한 지 2주 만에 증권·보험업권에서 추가 사고가 나오면서 체크리스트 방식 점검의 실효성에도 의문이 제기된다.
[AI 일러스트= 김가희 기자]
◆ 모집인 조회서비스 뚫리자 고객 정보까지…신한 2만5729명·국민 2210명 유출
4일 금융권에 따르면 이번 연쇄 해킹에서 가장 먼저 드러난 신한은행 사고는 모바일 홈페이지 'M신한'의 대출모집인용 조회 서비스에서 시작됐다. 아이디와 비밀번호만 있으면 들어갈 수 있는 서비스였다. 신한은행이 국회에 제출한 자료를 보면 공격자는 9월 28일 저녁부터 고객번호 등 입력값을 무작위로 바꿔 넣으며 조회를 반복했고 휴대전화 인증 우회도 시도했다. 8개국 인터넷 프로토콜(IP) 주소를 바꿔가며 들어왔고, 은행은 15시간26분 뒤에야 이상을 알아챘다.
유출 고객은 2만5729명이다. 이름·전화번호와 연소득, 산출 대출한도 등이 빠져나갔고 주민등록번호 66건과 연계정보(CI) 97건도 포함됐다. 금융당국은 지난달 4일 은행 4곳과 예가람·웰컴저축은행, 현대캐피탈 등 7개사 사고 가운데 여러 곳에서 동일 공격자로 추정되는 IP가 발견됐고 인공지능(AI) 도구를 활용한 정황이 있다고 밝혔다.
비슷한 접근 시도를 받은 우리은행과 NH농협은행에서는 유출이 확인되지 않았다. 우리은행은 대출모집인이 지정 태블릿에서 별도 인증서와 생체인증을 거쳐야 업무시스템에 들어갈 수 있고, 농협은행은 모집인에게 내부망 접속 권한이나 별도 업무시스템을 주지 않는다.
KB국민은행은 직원용 모바일 업무지원 시스템 'RM 에이전트'와 'PB 에이전트'가 뚫렸다. 지난달 2일 고객 119명 유출을 밝혔다가 26일 재조사에서 고객 1631명과 임직원 460명을 추가로 확인해 피해가 2210명으로 늘었다.
하나은행은 영업지원시스템(ODS)에서 고객 89명의 주민등록번호·주소·직장명 등이 유출됐다.
최병호 고려대 휴먼인스파이어드AI연구원 교수는 이번 사고를 개별 회사가 아닌 금융권 전반의 구조적 취약점 문제로 봤다. 그는 "이번 사고는 본사가 아닌 외곽 조직이 털린 것이어서 망분리와는 관계가 없다"며 "외곽 조직은 업무 편리성이나 직원 복지, 매출 때문에 보안 등급을 의도적으로 낮춰온 곳"이라고 말했다.
이어 "과거 인간 해커는 목표를 정해 오래 준비했지만 AI 에이전트는 수천 개가 금융권 전체를 실시간으로 훑다가 취약점을 찾으면 바로 공격한다"며 "관행처럼 해오던 부분을 AI 에이전트가 간파한 것"이라고 진단했다.
[AI 일러스트= 김가희 기자]
◆ 자체점검 '적정' 대신증권도 뚫려…협력사 연계서버서 3만8490명 유출
대신증권은 지난달 17일 투자일임 비대면 계좌개설 연계서버에서 비정상 접근을 포착했다. 고객 3만8490명의 이름·이메일·주소와 암호화된 계좌번호 등 8개 항목이 유출됐다고 지난달 28일 밝혔다.
대신증권은 당국의 12개 항목 자체점검에서 미흡사항이 없다고 보고한 것으로 전해졌으며, 뚫린 연계서버는 당시 점검 대상에 들어 있지 않았다고 밝혔다.
같은 날 미래에셋자산운용도 업무용 웹 시스템에 외부 IP가 비정상 접근해 일부 업무 정보가 유출됐다고 밝혔다. 고객정보 유출은 없었다고 했다. 한양증권도 지난달 29일 외부 그룹웨어에 대한 비정상 접근으로 고객정보 15건을 포함한 개인정보 31건이 유출된 사실을 확인했다. 주민등록번호가 포함된 건은 3건이다.
한 자산운용업계 관계자는 "운용업계는 개인 고객 정보를 직접 다루는 일이 적어 그동안 보안 투자 우선순위가 은행·증권·카드보다 낮았던 게 사실"이라며 "중소형사는 자체 보안 인력을 꾸리기 어려워 전산을 외주에 의존하는 곳이 많은데, 외주업체가 뚫리면 같이 피해를 입는 구조적 위험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대신증권과 미래에셋자산운용 사고가 알려진 뒤 점검 수위가 한 단계 더 올라갔다"며 "외부에 노출된 시스템을 전수 파악해 접근통제를 다시 확인하고 점검 범위를 외주·연계 구간까지 넓히고 있다"고 전했다.
빗썸은 사내 모바일 그룹웨어가 뚫려 고객 6444명과 임직원·협력사 직원 715명의 정보가 유출됐다고 지난달 29일 밝혔다. 고객 844명분은 암호화되지 않은 채 노출됐고 주민등록번호·신분증 사본 등이 포함됐다. 빗썸은 당국 자체점검 때 최신 보안패치 적용이 미흡하다고 보고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보험사 가운데 처음 해킹 유출을 신고한 미래에셋생명은 지난달 25일 이상 징후를 발견했다. 홈페이지와 청약시스템 일부가 침해돼 이름·주민등록번호·계좌번호 등 홈페이지 서비스 관련 정보가 빠져나갔다. 유출 규모는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 10년 된 데이터베이스 쓰던 예가람 4만3246명 유출…웰컴·현대캐피탈은 닷새 뒤 인지
예가람저축은행에서는 고객 4만3246명의 정보가 유출됐다. 규모가 공개된 사례 가운데 가장 많고 상반기 말 거래자(16만2731명)의 4분의 1이 넘는다. 이 중 320명은 주민등록번호·계좌번호·거래내역 등 다른 항목까지 빠져나갔다. 해커는 9월 16일 고객정보 서버에 접근했지만 은행은 14일 뒤에야 이를 알아챘다.
국정감사에서는 침해 관련 시스템에 2016년 출시된 구버전 데이터베이스(DB) '레디스(Redis) 3.0.7'이 쓰였고 1년 전 공개된 취약점도 패치되지 않은 상태였다는 지적이 나왔다. 예가람저축은행은 사고 당시 금융보안원 회원사도 아니었다.
OK저축은행은 지난달 11일 대출신청 웹페이지, 15일 모바일 수신서비스 홈페이지가 잇따라 뚫려 고객 250명의 연소득·대출금액 등과 268명의 계좌번호·잔액 등이 유출됐다.
웰컴저축은행과 현대캐피탈은 9월 27일 공격을 받고도 닷새 뒤 금융보안원이 공유한 공격 IP로 접속 기록을 살피다 침해를 확인했다. 웰컴저축은행에서는 법인 인터넷뱅킹 아이디·대표자 이름 등 2370건(중복 포함)이 유출됐다. 현대캐피탈은 주택대출 모집인 조회페이지가 공격받아 모집인 146명의 주민등록번호가 노출됐다.
새마을금고중앙회 공제 홈페이지에서도 회원 400여명의 정보가 빠져나갔고, 중앙회는 약 60시간 뒤 금융보안원이 전달한 의심 IP를 분석하고서야 이를 알았다.
김명주 인공지능안전연구소(AISI) 소장은 최 교수와 달리 뚫리지 않은 회사도 있는 만큼 개별 회사의 문제로 봐야 한다고 했다. 그는 "기업마다 부가서비스로 했거나 보안을 등한시했던 부분이 계속 뚫리고 있다"며 "금융권도 보안을 비용으로 보기 때문에 사고가 안 나면 아까운 돈이다 보니 몇 년씩 사고가 없자 늘려야 할 투자를 계속 줄이다가 이번에 터진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 금융권 정보보호 인력 비중은 수년째 10%를 밑돈다. 금융감독원이 강민국 국민의힘 의원실에 제출한 자료를 보면 올해 6월 말 7개 업권의 정보기술(IT) 인력 2만7508명 가운데 정보보호 인력은 2654명(9.6%)으로, 은행(8.8%)과 증권(9.5%)은 평균에도 못 미쳤다.
◆ 555곳 중 130곳 '미흡'…패치·인증·관제 기본 항목서 구멍
금융위원회가 지난달 14일 공개한 긴급 자체점검에서 금융회사 555곳 가운데 130곳(23.4%)이 보안패치 미적용, 기술지원이 끝난 노후 시스템 관리 미흡, 24시간 보안관제 미구축, 대외시스템 인증·인가 누락, 다중인증(MFA) 미도입 등 미흡사항을 보고했다. 나머지 425곳은 '적정'으로 보고했다.
신진창 금융위 사무처장은 지난달 14일 "수 차례에 걸쳐 전수점검과 관리 강화를 주문했음에도 금융회사에서 기본적인 부분이 잘 지켜지지 않는 사례가 발견된 것은 매우 뼈아픈 부분"이라고 말했다.
금융감독원도 금융권의 이행이 충분하지 않다고 판단했다. 사고 전부터 기본 보안 통제 보완과 외부 접점 악용 주의 등을 전파했고, 긴급 체크리스트 점검 때 필수적인 경우를 빼고 외부 접근을 원칙적으로 차단하도록 했지만 가시적인 변화가 나타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찬진 금감원장은 전날 임원회의에서 "사고 회사가 유의사항과 자체점검을 제대로 이행했는지 살피고, 종합금융투자사업자·보험사 등 대형 금융회사도 은행권과 같이 CEO 등 경영진 책임까지 엄중하게 물으라"고 지시했다. 대부업·가상자산업·온라인투자연계금융업 등 전자금융거래법 미적용사를 포함한 전 금융권의 외부 접점을 전수 점검하고, 형식적 점검에 그친 곳은 엄중 조치하라고도 했다. 오는 5일에는 이억원 금융위원장이 5대 시중은행장·금융협회장 등과 간담회를 열고 AI 해킹 대응 방안을 논의한다.
최 교수는 미국·유럽처럼 외부 공격을 가정해 취약점을 찾는 '레드팀' 점검을 상시화해야 한다고 했다. 그는 "그동안은 체크리스트로 점검하거나 자기 보고에 의존해 보고할 때는 문제가 없다고 했을 것"이라며 "정부가 보안 품질을 평가하거나 보안 성과를 공시해 주가에 반영되도록 하면 기업이 돈을 쓸 수밖에 없는 구조가 된다"고 말했다.
김 소장은 보안을 투자로 보는 인식과 CEO가 책임지는 구조를 개선 과제로 꼽았다. 그는 "지금은 CEO가 아니라 개인정보·정보보호 담당자가 책임을 지고, 사고가 나면 그 사람을 잘라버리면 끝"이라며 "갈수록 AI를 쓴 공격이 늘어날 텐데 이전 보안 시스템으로는 막을 수 없는 만큼 은행도 AI 시스템을 갖춰 미리 방어에 신경 써야 한다"고 말했다.
[사진=금융위원회]
ssup825@newspim.com
2026-11-04 06:0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