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핵심 요약
beta- 서울시극단이 10월 26일 연극 에너미를 선보인다
- 입센 민중의 적을 SNS·유튜브 시대에 맞게 각색했다
- 진실과 여론 충돌을 댓글·영상으로 체감하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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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소리·이봉련 커스틴 역…"진실이 뭘까 고민하게 돼"
[서울=뉴스핌] 정태이 기자 = 손가락 하나로 누군가를 영웅으로 만들기도, 순식간에 추락시키기도 하는 시대다. 진실과 여론이 충돌한다면,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140여 년 전 헨리크 입센이 던진 질문을 사회관계망서비스(SNS)와 유튜브 시대의 이야기로 다시 꺼내든 연극 '에너미'가 오는 10월 26일 관객을 만난다.

6일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예술동에서 서울시극단 '에너미' 제작발표회가 열렸다. 이날 자리에는 이준우 서울시극단 단장 겸 연출과 번역·윤색을 맡은 강훈구 작가, 커스틴 스토크만 역의 문소리와 이봉련, 데릭 길마틴 역의 강신구가 참석했다.
'에너미'는 노르웨이 극작가 헨리크 입센의 희곡 '민중의 적'을 스코틀랜드 극작가 키어런 헐리가 현대적으로 각색한 작품을 바탕으로 한다. 서울시극단은 이를 다시 동시대 한국 관객에게 맞게 번역·윤색했다.
입센의 '민중의 적'은 온천 도시의 수질 오염을 발견한 의사가 이를 세상에 알리려 하지만 지역사회의 경제적 이해관계와 충돌하고, 결국 자신이 '민중의 적'으로 몰리는 과정을 그린 작품이다. 발표된 지 140여 년이 지난 현재까지 진실과 다수의 이해관계, 여론과 민주주의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고전으로 꼽힌다.
'에너미'는 이 같은 원작의 질문을 SNS와 유튜브가 여론 형성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는 오늘날로 옮겨온다. 과거 사회운동가로 활동하고 공중보건학을 공부한 커스틴 스토크만은 언니가 시작한 친환경 리조트 사업에 창립이사로 참여한다. 그러던 중 수돗물이 오염됐다는 사실을 발견하면서 이를 세상에 알려야 할지를 두고 갈등한다.

이준우 연출은 작품을 선택한 배경으로 변화한 미디어 환경을 꼽았다. 누구나 정보를 접하고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있게 됐지만, 그만큼 진실이 흐려질 가능성도 커졌다는 것이다.
이 연출은 "미디어나 SNS가 좋은 방향으로 작동했을 때 사회에 좋은 영향을 끼칠 수 있는 힘을 가질 수 있다"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진실이 오히려 흐려지고 사람들이 자신의 안위와 이득에 따른 선택을 하거나 질투와 혐오가 겹치면서 예전보다 진실을 알기 어려워질 수도 있다"고 말했다.
원작과 달라진 지점도 뚜렷하다. 원작의 스토크만 형제는 자매로 바뀌었고, 온천수 오염은 지역 소멸 위기에 놓인 도시를 되살리기 위해 추진하는 친환경 리조트의 수질 오염 문제로 옮겨졌다. 여기에 언론사 기자와 대형 유튜버를 등장시켜 달라진 미디어 환경을 반영했다.
강훈구 작가는 이를 다시 한국 사회의 언어와 정서에 맞게 윤색했다. 대형 유튜버의 말투와 라이브 방송 방식 등을 현재 한국의 미디어 환경에 맞게 다듬고, 스토크만 자매의 관계에도 한국적인 정서를 더했다.
강 작가는 "번역극처럼 다가가기보다 지금 우리 동시대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처럼 다가가는 데 가장 초점을 두고 윤색 작업을 했다"고 설명했다.

특히 극 중 사건은 사실상 하루 동안 벌어진다. SNS를 통해 한 사람이 영웅으로 떠올랐다가 다시 '민중의 적'으로 추락하는 과정을 빠르게 보여준다.
강 작가는 "지금은 누군가가 영웅으로 떠오르고 다시 추락하는 과정을 실시간으로 보고 있다"며 "하루 만에 어떤 사람이 영웅이 됐다가 다시 민중의 적으로 추락하는 이야기를 더욱 속도감 있게 보여주려고 했다"고 말했다.
커스틴 역은 문소리와 이봉련이 더블 캐스팅됐다. 문소리는 "많이 각색됐다고 보일 수도 있지만 원작의 틀을 절대 벗어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클래식에는 이유가 있구나라는 생각을 많이 하면서 연습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작품을 처음 읽었을 당시 느꼈던 "엄청난 속도감과 공포심"을 무대에서도 전달하고 싶다고 밝혔다.
연습을 거듭하면서 문소리가 주목한 것은 '진실'이었다. 그는 "연습하면 할수록 진실이 뭘까 생각하게 된다"며 "언니의 이야기도 언니 입장에서는 맞고 기자의 이야기도 기자 입장에서는 맞다. SNS에 올라오는 댓글도 각자의 입장에서는 다 맞는 이야기인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각자의 진실이 다르고 그것들이 모여 힘을 가지는 과정에 대해 함께 이야기하며 작품 속으로 들어가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봉련은 작품이 먼 시대의 고전이 아닌 지금 주변에서 벌어질 법한 이야기로 다가온다는 점에 주목했다. 그는 "각색된 희곡을 통해 관객들은 옆 동네에서 일어날 법한 일처럼 느낄 수 있을 것"이라며 "SNS가 광장의 기능을 대신하게 됐다. 극장에서 던진 질문이 공연장을 나간 뒤에도 관객에게 계속 유효할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변화한 미디어 환경은 무대 위에서도 구현된다. 제작진은 실제 온라인 공간의 반응을 참고해 댓글을 수집하고 있으며 영상과 서라운드를 활용해 이를 관객에게 전달할 계획이다. 한 사람을 향해 움직이는 여론의 흐름과 그 안에서 느끼는 공포를 관객이 직접 체감하도록 하겠다는 구상이다.
강 작가는 "원작의 각색본에는 없는 많은 댓글을 수집하고 있다"며 "온라인과 SNS의 반응들이 영상과 서라운드를 통해 관객에게 다가오도록 해 '경험하는 연극'으로서 관객들이 그 공포를 직접 체험할 수 있는 시간이 되도록 하려고 한다"고 설명했다.
이 연출은 "연극은 정답을 주는 장르라기보다 같이 고민해보자고 할 수 있는 장르"라며 "점점 더 대화하기 힘든 세상이 되고, 인터넷과 SNS에서 가볍게 던지는 말의 무게가 없어지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하게 된다"고 말했다.
taeyi427@newspim.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