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문화유산연구원 발표
[서울=뉴스핌] 이지은 기자 = 공주 무령왕릉과 왕릉원 2호분 주인이 백제 개로왕(21대)의 직계 후손 중 유일한 10대왕이던 삼근왕으로 추정된다는 결과가 나왔다.
국립문화유산연구원 국립부여문화유산연구소는 2023년 9월부터 공주 무령왕릉과 왕릉원을 재조사한 결과를 17일 발표했다. 공주시 금성동 산5-17에 있는 이곳은 백제가 공주에 도읍한 475년부터 538년까지 웅진기 왕들의 묘역이다.
연구소는 "백제가 웅진 초기부터 이미 굳건한 정치체계와 활발한 대외 교역을 했다는 것을 입증할 수 있는 유물들과 왕실의 돌방무덤 구조 및 묘역 조성 과정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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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스핌] 이지은 기자 = 공주 왕릉원 2호분(왼쪽)과 무령왕릉(오른쪽) 왕비의 장식 귀걸이 비교 사진. [사진=국가유산청] 2025.06.17 alice09@newspim.com |
이어 "또 2호분에서 화려한 금귀걸이와 함께 출토한 어금니 2점의 법의학 분석결과 10대 중후반의 것으로 밝혀짐에 따라, 2호분 주인이 개로왕의 직계 후손 중 유일한 10대 왕이던 삼근왕으로 추정된다는 결과도 얻었다"고 설명했다.
삼근왕은 제22대 문주왕의 장자로 13세 어린 나이로 즉위했다. '삼국유사'에는 삼걸왕이라고 기록돼 있다. 재위 2년에 좌평 해구의 반란을 겪고 반란이 평정된 다음해 숨을 거뒀다.
국립부여문화유산연구소가 이번에 조사한 왕릉원 1~4호분은 무령왕릉 묘역과 구분되어 북동쪽에 위치해 있다. 일제강점기때 모두 도굴된 상태로 한차례 이미 조사가 진행된 바 있으나, 연구소는 96년 만인 2023년 9월부터 재조사 중이다.
이번 조사 결과, 한성기에서 웅진기로 이어지는 백제 왕실 무덤은 내부 벽면에 석회를 바르고 바닥에 하천에서 채취한 자갈을 채운 조성방식이 확인됐다.
지하에 만들어진 무덤 속 굴식 돌방무덤은 천장을 돌 한 장으로 덮는 궁륭식 구조였다. 내부 벽면에는 모두 석회를 바르고, 바닥에는 30㎝ 두께로 강자갈을 채워 넣은 공통점이 있었다.
특히 2호분에서는 청색 유리옥이 달린 금 귀걸이, 은에 금을 도금해 줄무늬를 새긴 반지, 철에 은을 씌워 장식한 오각형 칼 손잡이 고리 장식 등 화려한 유물이 대거 발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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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스핌] 이지은 기자 = 공주 왕릉원 2호분에서 출토된 어금니. [사진=국가유산청] 2025.06.17 alice09@newspim.com |
금 귀걸이와 함께 발견된 반지는 은에 줄무늬를 새기고 금을 도금했다. 재질은 다르지만 비슷한 형태의 반지는 경주 황남대총 북분에서도 출토된 바 있어서 웅진 초기 백제와 신라의 긴밀한 관계를 미루어 알 수 있다.
또한 철에 은을 씌워 장식한 칼 손잡이의 오각형 고리 장식은 앞서 나주와 논산에서도 발견된 바 있어 당시 백제가 지방 수장층에게 하사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2호분에서 출토된 금 귀걸이와 함께 나온 어금니 2점에 대한 법의학 분석 결과, 어금니의 주인은 10대 중후반인 것으로 밝혀짐에 따라 2호분의 조성시기인 웅진기 초기 왕인 개로왕(21대)의 직계 후손 중 유일한 10대였던 삼근왕일 가능성이 높아졌다. 이와 함께, 1~4호분에 묻힌 인물들은 개로왕의 직계인 문주왕(22대, 웅진 천도)과 삼근왕을 비롯하여 혈연관계에 있는 왕족들로 추정된다.
이와 같은 조사 성과들을 통해, 그동안 정치적으로 혼란기로만 인식되었던 웅진기 전반부터도 백제는 이미 내부 정치 체계와 대외 교역망을 잘 유지하며 안정적으로 운영되고 있었던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를 발판으로, 웅진 후반기에 속한 무령왕은 '다시 강국이 되었음'을 선언할 수 있었고, 성왕은 사비로 도읍을 옮겨 한층 성숙한 문화를 완성할 수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국립문화유산연구원 국립부여문화유산연구소는 "앞으로도 백제 왕릉에 대한 체계적인 조사·연구를 지속적으로 추진하고, 축적된 성과를 국민과 공유하는 적극 행정을 이어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alice09@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