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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딜리트 펴낸 김유열 EBS PD “혁신을 위해선 버려야 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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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지식지도를 바꾼 콘텐츠 기획자
“딜리트의 기술은 버리는 기술”
“분산된 투자와 관심 딜리트하고 핵무기급 콘텐츠에 집중해야”

[서울=뉴스핌] 장현석 수습기자 = 때는 1999년. 뉴 밀레니엄을 맞아 모든 언론이 디지털 판타지로 달려갈 때 EBS의 한 기획자는 이런 생각을 했다. ‘죽이고 죽여도 죽지 않고 남는 것, 깎고 깎여도 깎이지 않고 남는 것, 시공을 초월하고 변치 않는 것, 에센스, 본질···.’ 그리고 그 고민 끝에 나온 프로그램. 도올 김용옥의 ‘노자와 21세기’였다.

21세기를 사는 시민들이 열광했다. 그 열기에 방송계도 깜짝 놀랐다. 대한민국의 인문학 열풍은 그렇게 시작됐다. 그 열풍의 진앙지 역할을 한 사람이 EBS 김유열 PD다.

혁신의 바람은 2000년 이후에도 계속됐다. 편성기획부장에 발탁된 김 PD는 EBS가 성공하기 위해선 EBS만의 고유한 영역을 개척해야 한다고 믿었다. 그는 기존 프로그램의 70%를 폐지하는 대신 유아, 다큐멘터리에 집중했다.

그 결과 2008년 이후 시청률이 10년간 지속적으로 상승했다. 프라임 시간대 시청률은 무려 600%나 올랐다. ‘세계테마기행’ ‘극한직업’ ‘다큐프라임’등 EBS의 정체성을 확고히 한 인기 프로그램도 모두 그의 손에서 탄생했다.

그 후 EBS는 ‘국민들이 가장 신뢰하는 미디어’ 2위에 올랐고 삼성그룹에 가치혁신 성공사례로 소개되기도 했다.  

[서울=뉴스핌] 윤창빈 수습기자 = 김유열 EBS PD가 12일 서울 영등포구 뉴스핌 본사 스튜디오에서 뉴스핌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18.12.12 pangbin@newspim.com

김 PD는 기획자로서 자신이 25년간 해왔던 업무의 성패를 분석하다가 ‘딜리트(DELETE)’라는 아이디어를 떠올렸다고 한다. 그는 “딜리트는 버리는 기술이다. 딜리트 전략의 핵심은 가장 잘할 수 있는 영역에 전력을 집중하는 것”이라며 “줄이고 삭제하고 단순화하는 ‘딜리트’ 법칙을 통해 누구나 혁신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리고 그 혁신의 키워드는 <딜리트>라는 한 권의 책에 담겨 11월 출간됐다.

뉴스핌은 12일 서울 여의도 <뉴스핌> 스튜디오에서 김 PD 인터뷰를 진행했다. 다음은 김 PD와의 일문일답.

-책을 쓰게 된 동기는.

▲2008년 EBS가 프라임 시간대의 70%를 교육 다큐멘터리로 전면 개편하면서 시청률이 급상승했다. 그리고 EBS에 대한 이미지도 달라지기 시작했다. 여기저기서 ‘EBS가 달라졌다’ ‘EBS가 가치혁신에 성공했다’며 관심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그러던 차에 출판사로부터 EBS의 성공스토리를 써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EBS의 변화에 '딜리트' 원리가 적용됐다는 것인지.

▲입사 8년차에 편성기획부장이 됐을때 생각은 교육방송이 살려면 가장 교육방송적이고 공익적이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물론 당시에는 딜리트라는 말을 쓰지 않았지만 '선택과 집중' '차별화'해야 성공한다고 믿었다. 당시엔 유아 어린이 프로그램에 집중해 편성 비율을 한때 45%까지 높였다. 어린이 분야에서도 방송 4사중 꼴찌였던 EBS가 선택과 집중을 하니 시청률이 급상승해 1등까지 올라갔다.

2007년에 다시 편성기획부장이 됐는데 이때는 성인대상 프로그램을 혁신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래서 프라임 타임대 프로그램의 70%를 폐지하고 교육 다큐멘터리에 집중했다. 사람들이 말초적인 즐거움에만 빠져 살지 않는다. 어려운 책을 읽으면서도 즐거움을 느낀다. 다큐도 충분히 즐겁고 재미있을 것이라 생각했고 그것이 먹혔다. 

-초다채널, 초다매체 시대인 지금도 ‘딜리트 전략’이 통한다고 보는가.

▲초다채널, 초다매체 시대야말로 ‘딜리트 전략’을 사용해야 한다. 초과잉 시대가 되면서 사람들은 선택하는 것이 힘들어졌다. 인간의 뇌는 많은 것을 한꺼번에 인지할 수 없다. 상품과 서비스가 넘쳐나니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다. 흔히 햄릿 증후군이라고 한다.

딜리트는 사람들의 고민을 획기적으로 줄여주면서 매출 향상에도 도움을 준다. 독일에 알디(ALDI)라는 슈퍼마켓 체인이 있다. 알디는 품목을 획기적으로 딜리트했다. 월마트가 5만 개의 품목을 취급한다면 알디는 생필품 중심으로 1,500개 정도만 취급한다.

품목만 딜리트한 것이 아니라 브랜드도, 기획실도, 홍보도, 시장조사도 딜리트했다. 그러니 원가를 얼마나 줄일 수 있겠나. 알디의 경우 품목당 매출이 380억 원에 이른다는 보고가 있다. 이에 반해 월마트는 2000만 원 정도다. 

 

[서울=뉴스핌] 윤창빈 수습기자 = 김유열 EBS PD가 12일 서울 영등포구 뉴스핌 본사 스튜디오에서 뉴스핌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18.12.12 pangbin@newspim.com

-다양한 이슈를 다뤄야 하는 뉴스의 관점에서도 딜리트 전략이 유효할까? 오히려 이슈 선점 등에서 뒤처지는 건 아닐까.

▲미국에 정치 전문 신문 ‘폴리티코’가 있다. 존 해리스가 ‘워싱턴 포스트’에서 독립해 나와 설립했다. 폴리티코는 정치 오타쿠를 대상으로 백악관, 의회, 행정부의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모두 보도한다. 대통령 보좌관이 결혼기념일에 어떻게 보냈는지 등 기존 매체에서 볼 수 없는 내용이다.

폴리티코는 창간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2008년 미국 대통령 선거를 계기로 급성장한다. 12명에 불과했던 정치 전문 기자가 2008년 40명, 2009년 75명으로 늘어나고 연간 수입도 2000만 달러에 달한다.

‘이코노미스트’ 역시 경제, 경영, 국제정치, 공공정책 등 위주로 보도 범위를 제한했더니 2000년 72만 2,984부에서 2009년 142만 766부로 10년 사이 갑절로 늘었다. 신문이 사양산업이라고 하지만 딜리트 전략으로 이렇게 급성장한 신문도 있다.

-방송의 미래는 어떻게 보나.

▲우리나라 지상파 방송은 위기를 맞고 있다. 케이블 종편도 마찬가지다. 방송 광고는 매년 줄고, 모바일이나 인터넷 광고로 대체되고 있다. 종합선물세트 같은 종합편성 역시 시대정신에 맞지 않는다. 풍족하지 않던 시절엔 종합선물세트가 좋았지만, 이젠 아니다. 지금은 누구도 모방할 수 없는 최강의 콘텐츠로 승부해야 하는 시대가 됐다.

HBO는 “It's Not TV. It's HBO”로 드라마 최강자가 됐다. 1995년까지는 HBO도 스포츠, 문화예술공연물, 할리우드 영화 등 다양한 편성을 했다. 그러다 잡다한 영역을 딜리트하고 극사실주의 드라마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프로그램 수를 줄이는 대신 투자 비용을 늘렸다.

그렇게 해서 완전히 새로운 드라마가 탄생했다. 그 첫 작품이 <오즈OZ>다. 교도소 수감생활을 생생하게 표현한 드라마다. 지상파 방송에서는 볼 수 없던 사실적인 드라마였다. 방송이 나가고 반응이 뜨거웠다. <소프라노스>라는 범죄드라마 역시 대박이 났다. 이들은 기존의 드라마 문법을 완전히 바꿔놓았다. 

[서울=뉴스핌] 윤창빈 수습기자 = 김유열 EBS PD가 12일 서울 영등포구 뉴스핌 본사 스튜디오에서 뉴스핌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18.12.12 pangbin@newspim.com

-유튜브 같은 채널의 인기가 급상승하고 있는데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한국방송을 보면 답답하다. 유튜브가 대세라고 하니까 모바일 콘텐츠에 몰린다. 그러나 성공한 콘텐츠는 하나도 없다. 거대 콘텐츠를 생산해 온 방송 PD들이 모바일 콘텐츠를 만들고는 몇백만 뷰에 자축한다. 하지만 개인이 만든 모바일 콘텐츠는 몇억 뷰가 나온다. 이런 원가가 들어가지 않는 수억 뷰 콘텐츠는 넘쳐난다. 난 모바일 콘텐츠 만들기를 포기하라고 과감히 말한다.

넷플릭스를 보라. 그들은 모바일과 인터넷으로 먹고 살지만 절대 모바일 전용 콘텐츠를 만들지 않는다. BBC도, NHK도, 디스커버리도, HBO도 모바일 전용 콘텐츠에 미래를 걸지 않는다. 대신 콘텐츠 퀄리티에 집중한다.

BBC와 디스커버리의 공동 제작 프로그램인 ‘플래닛 어스’ 11부작이 사실 멀티플랫폼에 대응하기 위한 전략 콘텐츠라는 걸 아는 사람은 드물다. 플래닛 어스는 그동안 보여주지 못했던 환상적인 자연 다큐를 선보였다. 거의 모든 나라, 모든 플랫폼에서 방영됐다.

이것이 콘텐츠의 힘이다. 방송사는 이제 플랫폼 회사가 아니다. 유튜브가 플랫폼 회사다. 콘텐츠 회사가 자꾸 플랫폼을 걱정한다. 콘텐츠에서 답을 찾아야 한다. 콘텐츠를 핵무기급으로 만들면 지상파도, 인터넷도, IPTV도, 모바일도, OTT에서도 서로 유통시키겠다고 덤벼들 것이다. 잡다하게 분산된 관심과 투자를 딜리트하고 한 곳에 집중해야 한다. 

-책을 쓰면서 힘들었던 점은?

▲책을 쓴다는 일이 두려웠다. EBS PD가 되기 전 신문기자 생활을 할 때부터 글에 대한 공포가 있었다. 처음 책을 쓰다 보니 무척 힘들었다. 거의 매일 새벽 5시에 일어나 읽고 쓰기를 반복했다. 하지만 EBS 얘기만 쓰고 싶진 않더라. 전 시대를 관통하는 성공 원리가 무엇일지 고심하고 또 고심했다. 그러다 보니 처음 집필 의뢰를 받은 후 책이 나오기까지 5년이란 시간이 걸렸다.

 

kintakunte87@newspi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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