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승부는 하락국면서 드러나...덜 깨지는 게 가장 중요"
"젊은 후배들과 경쟁...언제든 지고 싶지 않다"
두 자녀도 증권사 영업직으로 뛰는 '증권가족'
[뉴스핌=박민선 기자] 미두시장, 격탁매매, 시장대리인. 로보어드바이저 대중화 시대를 앞둔 지금 '이보다 아날로그적일 수 없다' 싶을 만큼 생소한 단어들이 쏟아졌다. 70년대 주식시장. 요즘 젊은 세대들은 책에서나 확인할 수 있겠지만 누군가에게는 불과 몇 년 지나지 않은 일처럼 기억이 선명하다.
김종인(69) 메리츠종금증권 영업부 상무이사가 증권업계에 발을 들인 지는 어느덧 40년. 증권가 최장수 최고령 현역 브로커 중 한 명이다. 그의 자녀(아들과 딸) 역시 현역 주식브로커로 활동하고 있다. 그를 만나 40년 증권 인생의 역정을 들어봤다.
◆ 빼곡한 거래내역 수기, 그리고 90대 고객

주식투자 인구가 많지 않았던 시절인 1976년 동서증권에 입사해 78년 한일증권(현 메리츠종금증권)으로 자리를 옮긴 것 말고는 그야말로 한눈 한 번 팔지 않은 외길이었다. 수기로 작성해온 빼곡한 매매 거래내역 일지는 그가 하루도 빠짐없이 쌓아온 내공을 그대로 보여준다.
"내가 지금 여기에 있을 수 있는 이유는 단순합니다. 나이가 많고 적음은 상관없어요. 오직 돈으로 하는 진검승부에서 이기기 위해 노력하고, 또 그것이 성과를 내고 있기 때문이겠죠. 솔직히 젊은 후배들하고 겨뤄서 지고 싶은 마음은 추호도 없어요. 만일 진다는 생각이 들면 당장이라도 관둬야겠죠."
그는 주식에 대해 "내 천직"이라면서도 "알 수 없고 무서운 것"이라고 했다. 그런 주식시장에서 매일같이 피 말리는 승부를 견뎌내기 위한 길은 오로지 노력밖엔 없다고 했다. 그리고 그의 이런 노력을 그와 오랫동안 거래하고 있는 고객들을 통해 조금 엿볼 수 있었다.
"고객 중에는 90세를 넘긴 분도 계세요. 고객들의 연령대가 높다 보니 일부는 서서히 자산을 정리하는 고객들도 계십니다. 함께한 세월이 있고 가족처럼 지낸 분들이다 보니 아무래도 감회가 남다르죠."
그야말로 2만원짜리 삼성전자 주식을 사서 때로는 고비, 때로는 기쁨을 함께 맛본 고객들이 여전히 그와 함께 걷고 있는 것이다.
오랜 고객이라고 수익률을 조금이라도 소홀히 할 순 없다. 주식투자를 평생 이어온 고객들인 만큼 주식을 통해 안정적이고 꾸준한 수익을 내려는 기대심리가 되레 더 높다고 한다. 실제 인터뷰 도중 걸려온 한 고객의 전화 역시 코스닥의 한 대형주에 대한 문의였다.
새로운 기업이 매일 등장하고 신기술을 선보이며 빠르게 변화하는 주식시장에서 빠른 정보력으로 무장한 젊은 후배들과 경쟁해 그가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경쟁력은 뭘까.
"주식이 상승장일 때는 젊은 친구들이 더 과감할 수 있어요. 하지만 진정한 승부는 하락 국면에서 납니다. 덜 깨지는 것이 진정한 실력이죠. 이건 치열하게 주식과 싸워보고 큰 흐름을 겪어본 사람이 유리해요. 증권사에서 가장 실적이 좋은 건 대리, 과장급들이에요. 차장, 부장이 되면 서서히 주식의 무서움을 알게 되고, 무서움이 생기면서 힘들어합니다. 이렇게 말하면 어떻게 들릴지 모르지만 정말 하루도 빠짐없이 매매를 해온 것이 쌓여 '감(感)'이라는 게 생겼다고 하면 맞는 표현일 겁니다."
그는 여전히 공부하고 젊은 친구들에게 자문을 구하는 것도 주저하지 않는다. 정보 공유의 속도가 빨라진 데다 특히 상하한가 제한폭이 30%로 확대된 뒤론 시장 스피드가 한층 높아졌다. "매일 실수와 성공을 반복하면서 훈련 중입니다. 그래야만 살아남을 수 있어요."
◆ 격탁매매부터 로보어드바이저까지
김 상무이사가 처음 증권업계에 발을 들여놓을 때만 해도 전산 시스템 혹은 컴퓨터가 아닌 오로지 사람의 '손'에 의해 거래가 이뤄지던 시대였다. 그에게 과거 주식시장의 형태를 묻자 일제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갔다.
"일제시대에 있었던 미두시장이 투기시장으로서는 가장 초기 모습이라고 볼 수 있죠. 하지만 주식시장 형태가 정식으로 갖춰진 건 1956년 증권거래소가 생긴 이후예요. 자본자유화 등이 이뤄지던 70년대까지는 격탁매매(擊柝賣買)라고 해서 사람이 손으로 직접 거래의사를 표현해 주식 거래가 이뤄졌습니다."
즉, 시장 대리인이라고 불리는 이들이 손뼉을 쳐서 주문 신호를 보낸 뒤 손가락으로 숫자를 표시하면 그것이 거래 가격이고 주식 수량이 됐다. 오늘날 노량진수산시장에서 수산물 경매가 이뤄지는 것과 비슷한 집단경쟁의 매매 방식이었다.
하지만 불과 40년 만에 주식 거래는 모두 전산 시스템을 통해 이뤄지고 주식 브로커들은 로봇과 경쟁해야 하는 시대를 코앞에 두게 됐다. 그는 이미 모 증권사에서 선보인 로보어드바이저 서비스를 사용 중이라고 했다.
"세상이 워낙 빠르게 변하니까 한번 사용해보는 거죠. 물론 로봇은 감정 개입이 없다는 측면에서 사람보다 유리할 수도 있어요. 하지만 로보어드바이저에 대한 검증은 좀 더 필요하다고 봐요."
주식시장에서 가장 중요한 건 돌발변수에 대한 대응인데, 로봇이든 사람이든 이를 예측하긴 똑같이 어렵기 때문에 대응 능력상 차이는 크지 않을 거란 생각이다. 그는 코스피지수가 5년째 2000선 안팎에서 박스권을 형성하고 있는 것도 일반적인 현상은 아니라고 했다. "제 생각엔 1, 2년 내에 변곡점이 올 것으로 보는데, 그때 수익률에서 또 한 번 승부가 날 겁니다."

◆ 주식은 내 천직…나의 마지막은?
김 상무이사와 함께 현역으로 뛰던 동기는 한 명도 남지 않았다. 화려한 성공보다는 치열한 승부의 반복, 혹은 한 번의 위기를 견디지 못하고 포기한 경우가 훨씬 더 많은 현실의 단면이다. 그는 금융업계 진출을 꿈꾸는 후배들에게 목표 의식을 가질 것을 조언했다. 구체적으로 어떤 분야에서 어떤 꿈을 이루겠다는 구체적인 목표를 갖지 않고는 결코 성공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 조언은 넓게는 증권업계 후배들에게, 좁게는 그의 두 자녀에게 전하는 메시지이기도 하다. 김 상무이사의 아들딸 역시 현재 국내 증권사에 재직 중이다.
"사실 자식들까지 증권사에 들어오고 나니 주식이 정말 내 천직이었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물론 이 시장의 성공 확률은 1000명에 한둘이 될까 싶을 정도로 낮고, 특히 영업직으로 성공하기란 쉽지 않죠. 고객의 돈을 내 돈이라고 생각하고 자기 욕심을 억제하라고 해요. 누구든 이 분야에 도전하려 한다면 전문가가 되겠다는 뚜렷한 목표 의식과 자기 철학을 갖고 치열하게 노력하길 바랍니다."
누구에게나 있을 법한, 하지만 왠지 조심스러운 그의 미래에 대해 물었다.
"언제 관두느냐는 내가 결정하는 게 아닌 것 같아요. 당장 다음주 월요일에라도 수익을 내지 못하고 고객들이 떠난다면 그게 나의 마지막일 겁니다. 그저 하루하루 현장에서 나에게 주어진 숙제를 해나가고 있을 뿐입니다."
내년 70대를 앞두고 있는 그의 주식시장과의 승부는 오늘도 현재진행형이다.
[뉴스핌 Newspim] 박민선 기자 (pms0712@newspim.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