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하지 못했기에 다른 산이 그 역할을 한 것이다.
나는 내가 쓴 시 <작약도>가 흉악하게 일그러지는 느낌이 들었다. 작약도는 저렇게 원래 그대로의 모습으로 빛나고 있는데 나의 시 작약도는 그 빛을 받아 한번 빛나고는 퇴색한 얼굴로 퀘퀘묵은 나의 서랍 안에서 죽은 잠을 자고 있었던 것이다. 나 역시 그렇지 않았는가.
작약도는 눈 앞에 다가서는 듯 하더니 이내 멀어지고 있다. 순항선을 탄 것이 순간 아쉬웠다. 시간에 맞는 배가 순항선이라서 탄 것이었지만 내 발로 섬을 딪지 못하자 아련함이 밀려왔다. 작약도는 자꾸 멀어져 가고 있다.
그러나 내 안에 작약도가 생겨나고 있었다. 밝은 빛과 그것을 메아리로 고스란히 돌려주는 의지의 산이 계절의 변화 속에 늘 생생하게 유지되는 곳. 봄의 작약꽃과 겨울의 함박눈. 작약꽃. 함박꽃. 함박눈...작약도가 멀어질수록 내 안의 작약도는 자꾸 커지고 있었다.
연안 부두 앞 길이 눈이 녹아 질척거리고 있었다. 배에서 내려 눈길에 구두를 푹푹 파묻으며 걸었다. 찬 바람을 맞으며 무턱대고 터덜터덜 걷는 동안 슬며시 집이 걱정되었다. 전화박스 앞에 마냥 서성이다가 전화기를 들었다.
“거기 어디야?”
“인천이야”
“인천? 인천은 왜?”
“작약도에 갔다 왔어”
아내가 살짝 웃었다. 전화기를 통해서도 여린 웃음의 신선도가 느껴질 정도로 아내는 하얀 아카시아 꽃 같은 웃음을 살포시 참고 있었다.
“오늘 들어올 거야?”
“글쎄, 봐서. 생각해 보고”
“들어와”
전화를 끊고 생각하는 척 하다가, 집으로 향한 지하철에 올라탔다. 창유리 밖으로 함박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