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 후의 어느 날이었다. 소파에 누워 로브그리예의 <질투>를 읽고 있었다. 남녀 간의 질투를 다룬 누보로망의 대표적 소설로 제목이 기가 막히게 상징적이었다. 질투의 불어인 ‘잘루지’는 질투라는 뜻과 블라인드라는 뜻을 동시에 갖는다. 블라인드를 통해 그 안을 엿보는 심리와, 남녀 간의 질투 심리가 절묘하게 어우러진 작품이다.
대학 때 불어 원어로 읽던 맛과, 그 맛을 다시 반추하는 맛이, 블라인드의 안과 밖처럼 내 안에서 삼투하는 또다른 맛을 느끼며 읽다가 잠시 눈을 붙이고 있었다. 눈을 떠 소파 밑의 책을 더듬으니, 없어졌다. 그런 식으로 수차례. 빽빽한 책장 속에서 <질투>를 빼오고, 아내가 <질투>를 빽빽한 책장 속에 끼워넣고, 내가 다시 빼와 가슴 위에 얹고 하다가 일곱 번짼가 밑으로 내려놓고 몽상에 잠겨들 때였다.
싱크대에서 행주를 빨던 아내가 어느새 다가와 책을 집어들었다. 순간 화가 폭발했다. 소설 속의 풍경에 아련히 젖어가던 몽상이 한순간의 칼날에 잘려 난도질당하는 상실감과, 뭔가 색다른 상상이었는데 그 순간을 놓치면 영영 만날 길 없는 휘발성이 느껴지면서 버럭 소릴 질렀다.
“내가 죽으면 일분도 안 돼 나를 화장터에 태워버릴 거야! 너는 그런 여자야”
그 말에도 아내의 표정엔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미수로 지른 주식이 박살이 나 고객에게 몇 천만원의 손실을 입히고 술에 취해 밤늦게 귀가했을 때였다. 아이들과 아내는 나를 반겼지만 요란한 텔레비전 소음 속에서였고, 그날 따라 아무 의미 없이 떠들어대는 텔레비전 소음과 그것에 비판력 없이 아이들과 함께 매몰되어가는 아내가 못마땅하게 여겨졌다.
야간 뉴스에 오늘 박살난 주식의 종가가 나오길래 “텔레비전 꺼”라고 소리 질렀다. 이거 끝나면 재미있는 드라마 할 거라고 아내는 끄지 않았다. “꺼”하고 다시 소리 질렀다. 아내는 끄지 않고 있다가 드라마가 시작되자 볼륨을 올렸다.
고객으로부터 돈을 물어내라는 협박을 받았는데 내일도 주가가 떨어지면 도저히 감당할 수가 없어 조여드는 가슴속에 멜로드라마 소리들이 얽혀들면서 “좀 쉬자”고 하소연하듯 말해도 아내는 아이들과 깔깔거리며 텔레비전 속으로 빠져들었다. 갑갑함을 느끼는 순간 광기 어린 시상이 떠올라 종이에 옮기려고 내 방에 들어갔어도 한번 신경에 걸린 텔레비전 소리가 계속 머릿속을 분열시키며 나를 삐딱하게 몰아갔다.
“텔레비전 좀 끄란 말야”
소리 지르며 문짝을 주먹으로 칠 때야 아내가 왜 그러나 싶어 방 안으로 들어왔다.
“통장 가져와. 돈 물어줘야 돼”
“아니 또야? 더 이상은 안돼”
“못 견디겠어. 내일이라도 팔아치우고 물어주고 끝내야겠어”
“안 돼. 무슨 직장이 그래?”
“할 수 없어. 내 운명이 그래. 누구는 그러고 싶어 그러는지 알아?”
“통장은 안 돼”
“가져 와”
“안 돼”
“가져 와”
“안 돼”
“가져 와”
“그러지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