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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톡] 이성민 "'방황하는 칼날'은 정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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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핌=글 장주연 기자·사진 강소연 기자] 수십 가지 감정을 담아낼 수 있다는 건 배우로서 대단한 장기다. 이성민(46)은 바로 이 능력을 충분히 갖춘 배우다. 불과 몇 개월 전만 해도 힘없지만 인간미 넘치는 조폭(드라마 ‘미스코리아)과 밤마다 발칙하게 돌변하는 아내가 두려운 남편(영화 ‘관능의 법칙’)의 모습을 자유자재로 오가지 않았던가. 캐릭터 사이에 제법 간극이 있는데도 그는 매 순간 능란하다.

그런 이성민이 이번엔 가벼운 이미지를 걷어내고 진중한 캐릭터로 돌아왔다. 영화 ‘방황하는 칼날’은 한순간에 딸을 잃고 살인자가 돼버린 아버지, 그리고 그를 잡아야만 하는 형사의 가슴 시린 추격을 그린 드라마다. 이성민은 형사 억관이 돼 정재영과 함께 극의 중심에 섰다.

영화 개봉을 하루 앞두고 프로모션 인터뷰차 이성민을 만났다. 소재 자체가 워낙 무겁다 보니 어쩐지 어두운 표정으로 기다리고 있을 거라 생각했다. 늘상 캐릭터에 완벽히 몰입하는 데다 평소에도 묵직한 배우니 어쩌면 당연하다고 여겼다. 하지만 막상 마주한 이성민은 선한 웃음으로 인사를 건넸다. 머릿속에 그렸던 첫인상과는 완전히 달랐다.

“아내가 영화를 보고 정말 먹먹했다 하더라고요. 아무래도 일반인이고 아이를 둔 학부모니까 더 그랬을 거예요. 또 지루하지 않고 재밌었다고 해줘서 무척 기뻤죠. 저 역시 영화에 만족해요. 특히 묵직한 점이 좋았어요. 장난치지 않은 정직한 영화, 영화 같은 영화라고 생각해요.”

극중 이성민이 연기한 억관은 이수진 살인사건의 담당 형사다. 그는 한순간에 피해자 가족에서 살인용의자로 바뀐 수진의 아버지 상현(정재영)을 잡아야 하는 상황에 놓인 인물이다. 이성민은 억관을 통해 직업윤리와 인간적인 연민 사이에서 깊이 갈등하는 인물을 입체적으로 그려냈다.

“예전에 영화 ‘체포왕’(2011)을 찍으면서 경찰들과 만난 적이 있어요. 근데 우리가 선입견을 품고 있어서 그렇지 그들도 평범한, 우리와 다를 거 없는 보통 사람이더라고요. 특히 이번 역할은 외형보다 느낌이 중요하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경찰들을 따로 만나 도움을 얻진 않았어요. 대신 계산하지 않고 순리대로 연기했죠.”

사실 ‘방황하는 칼날’은 어떤 해결책을 제시해주는 영화가 아니다. 대신 관객에게 많은 질문을 던진다. 물론 그중 가장 중심이 되는 건 “딸을 죽인 소년을 살해한 아버지, 이 아버지의 살인은 정당한가”다. 이번 작품을 하면서 이성민 역시 이 질문을 수없이 들어왔다. 그러나 어쩐지 매번 답을 하기가 조심스럽다.

“아버지의 살인은 정당하지 않고 확실한 범죄죠. 근데 저는 상현처럼 피해자를 무지하게 팼을 거예요. 다만 모르는 범인을 쫓아서 눈 속에서 헤맬 용기는 없었겠죠. 상현은 범인을 찾아 나서면서도 딸에게 끊임없이 반성하고 미안해해요. 복수를 넘어선 딸에 대한 사죄죠. 영화 보면서도 정말 멋진 아버지라고 생각했어요. 사실 부모의 자식에 대한 마음은 무한하고 특히나 자식이 연약한 딸일 때 어마어마해지거든요.”

범죄지만 그래도 상현과 같은 방법을 택하겠다는 그의 목소리는 단호했다. 물론 이성민이 이런 데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 실제로 그에게는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중학교 1학년 딸이 있기 때문이다. 영화를 찍으면서도, 보면서도 남들보다 마음이 더 저릿했던 것 역시 이 때문이다.

“촬영하면서 전혀 상상하지 않았던 부분이고 지금도 하기 싫죠. 만약에 제가 상현을 연기했다면 제 기억, 제가 살아온 시간 속에서 그 정서와 감정을 끌어냈겠죠. 그러다 보면 자연스레 우리 딸이 개입될 거고요. 그게 엄청나게 끔찍했을 거예요. 그래서 한 번도 그걸 끄집어내서 대입시키지 않았고 지금도 의식적으로 피하고 있어요. 딸과 아빠의 관계에는 묘한 아련함이 있는데 그 것만으로도 충분히 상현의 심정은 공감을 얻었다고 봅니다.”

영화 이야기에 다소 무거워졌던 표정이 본격적인 딸 이야기로 전환되자 점점 밝아졌다. 어쩌면 이성민은 그 순간 자신의 입가가 실쭉 실쭉 올라간 걸 느끼지 못했을 수도. 딸 바보라고 적어야겠다는 짓궂은 놀림에도 그저 기분 좋게 웃었다. 가만히 커피잔을 바라보던 그는 이내 “나중에도 우리 딸이랑 이런 데 와서 차 마시고 사람 많은데 같이 다니고 이러는 게 꿈”이라며 따뜻하게 미소 지었다.

“전 여전히 친구 같은 아빠가 되려고 해요. 제 딸이 커서도 어른에 대한 경계심이 없었으면 좋겠고, 저 역시 딸이 두려워하지 않는 아빠였으면 좋겠어요. 물론 사춘기라 가끔 이상하게 튈 때도 있죠(웃음). 그래도 자주 대화하고 서로 이해하려 해요. 아내에게도 항상 그러죠. 목소리 높이지 말고 아이랑 대화하라고요. 논리적으로 이야기해야 하는 거죠. 우리가 단순히 어린 아이로 대할 게 아니라 대화를 시도하고 또 힐링을 해주면서 존중해줘야 한다고 생각해요. 좀 더 관심을 가지고 서로 어울리는 시간도 많이 가지고요.”

딸에게는 이토록 조심스럽고 한결같은 아빠지만, 배우로서 이성민은 누구보다 도전적이고 욕심 많은 사람이다. 올 하반기에만 영화 ‘군도:민란의 시대’ ‘빅매치’(가제)를 들고 관객과 만날 준비를 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앞으로 새로운 것을 배워가며 다양한 연기를 펼쳐보고 싶다는 그다.

“가끔 몇 살까지 연기할 수 있을까 생각하는데 체력이 닿는 데까지 오래 할 수 있는 게 가장 행복할 듯해요. 이번에 ‘군도’를 찍으면서 처음 액션 스쿨을 갔거든요. 연기하면서 뭘 배워본 적이 별로 없는데 정말 재밌더라고요. 물리적인 땀이 가지는 묘한 카타르시스도 있고요. 그래서 남자들의 로망인 액션 장르를 나이가 더 들기 전에 꼭 해보고 싶어요. 두렵긴 하지만 배우로서 또 다른 성취감이 있지 않을까요?(웃음)”



배우 이성민의 방황하는 칼날

이성민은 재수생 시절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을 읽고 극단에 들어갔다. 그리고 군대를 다녀온 뒤 스물네 살이 되던 해, 대구의 한 극단에 입단하면서 본격적으로 연기를 시작했다. 이후 40편 넘는 드라마와 영화를 오가면서 안정적인 연기력을 인정받았고 이제는 대한민국에서 손꼽히는 연기파 배우로 자리 잡았다.

“지금껏 배우 생활을 하면서 ‘칼날’은 없었지만 ‘방황하는’ 시기는 분명 있었죠. 사실 제 인생에서 처음으로 관심 있었던 게 연기였어요. 물론 지금도 이걸 하고 있다는 게 신기하죠. 그런데 이십 대 때 연기를 하다가 한번 그만둬야겠다고 생각한 적이 있어요. 그때가 가장 큰 위기였죠.

사람끼리 충돌하는 게 연극인데 그때는 사람이 무섭고 사람을 상대하는 게 너무 힘들어서 후회한 거예요. 그림 그리는 것처럼 혼자 하는 일을 하고 싶었죠. 그래서 보따리 싸서 시골에 돌아갔는데 그렇게 반대하던 부모님이 이제 와 안 하면 어쩌냐 그러시더라고요(웃음). 

그럼에도 6개월을 쉬었죠. 그런데 정말 제가 할 줄 아는 게 없더라고요. 십대 말에 연기에 꽂혀 그것만 했으니까요. 군대 가서도 연기 생각만 했고 휴가 나와서도 극단에 갔죠. 그렇다고 제가 기술이 있는 것도 아니잖아요. 그때가 아마 제 인생의 가장 큰 방황의 시기인 듯해요. 물론 다시 돌아와서는 정말 미련하게 했어요(웃음). 앞으로도 이렇게 해나갈 거고요.”



[뉴스핌 Newspim] 글 장주연 기자 (jjy333jjy@newspim.com)·사진 강소연 기자 (kang12@newspi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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