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23. 새벽 5시. 집에서
꽃과 바람
소중한 그대의 꽃향기를,
너무 강해 날려버리지도
너무 약해 사그러들지도 않게 하는
극진한 바람 되어
그 곁에
부드럽게 바라보는 시선으로
나, 머물러 있겠네
겨울 되어 꽃 지면
화사한 봄날 다시 피어나도록
꽃보다 먼저 그 자리에 돌아와
꽃의 소생 지켜보는
온후한,
눈 먼 바람 되겠네
아내가 고통스러워하는 어느 날 밤, 할까 말까 망설이다가 얘기를 꺼냈다.
“사실 몇 개월 전에 나도 혜진을 만났어. 우연이었어”
그 말이 계기가 되어, 아내와 나 사이에 얼어붙은 대화의 실마리가 풀려나가길 바랐다. 털어 놓을 수 없는 고민으로 아내 혼자 무겁게 괴로워하는데, 내게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고 하면, 기분은 나쁘겠지만 공감대가 형성되어 대화의 물동량이 많아질 줄 알았다. 아내의 심적 부담을 덜어주는 배려라고도 생각했다. 그러나 결과는 정반대였다. 얘기를 듣자마자, 아내는 등을 돌리며 홱 돌아누웠다.
내가 취하는 일체의 최선의 방식들은 실패로 돌아가고 있었다. 이런 애절한 편지 역시 마찬가지이다. 식탁에 올려놓아 밤늦게 들어오는 아내가 보게 하거나 출근 전에 슬쩍 건네주곤 했는데, 쓱 훑어보고는 그만이었다.
이따위 글 나부랭이는 아내의 상처와 절망에 어림도 없는 수작이었다. 내 모든 노력은, 그 진정성에도 불구하고, 아내를 설득하지 못하는 것이다. 왜 그럴까. 나는 내 과거와의 만남을 통해 아내와, 그 남자까지 포용할 가슴 아픈 여유가 생겨나는데, 더 심한 입장으로도 아내는 그러질 못했다.
왜 그럴까. 인간 관계, 특히 남녀 혹은 부부 사이에 진실이나 바닥까지 가 닿는 절절함으로도 통하지 않는다면 무엇이 문제일까. 진실만으로는 세상을 아우르지도 아픈 마음을 되돌릴 수도 없는 것일까. 바닥까지 가 닿으려 몸부림 쳐도 그 자체를 비웃으며 또다른 것을 요구하는 세상 속에서 대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한단 말인가.
끔찍했다.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것, 내가 진정성의 최고 높이에서 참회의 눈물을 흘리고 온갖 수를 쓰더라도, 그 모든 노력이 벌레 먹은 낙엽처럼 땅바닥에 내동댕이쳐진다는 사실. 이 냉정함이 대다수인 세상에서 그 세상을 떠받고 있는 바탕이 무엇인지 알 것 같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