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아차 빠질 것 같아요 오를 것 같아요?”
“글쎄요”
기아차 코드번호를 눌러 거래량을 체크하고 일봉, 주봉을 누르며 그래프를 들여다봐도 오리무중에 빠져들 뿐이었다.
“오르겠죠?”
다급해진 고객이 자기 희망대로 되물어오면
“예. 오를 것 같네요”
하는 게 다반사였다. 다른 고객이 그 직후에 똑같은 주식에 대해 “빠질 것 같죠?”라고 물어오면, “예. 그럴 것같아 보이네요”라고 대답하는 식이었다. 그 뻔뻔한 얘기를 들을 만한 거리에 있는 누구든, 앞서 오르겠냐고 물은 고객이든 그 누구든,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예상이 아리송할수록 말도 아리송해졌다.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드네요”
이런 말에 항의하거나 토를 다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모두들 고개를 끄덕였다. 미심쩍어하며 “정말 그럴 것 같은 생각이 들어요?”라고 되물어오면, “그럴 것 같지 않아요?”라고 하면 큰 탈이 없었다. 이러한 말장난 아닌 말장난은 객장 브로커들이 알게 모르게 터득해가는 삶의 요령이요, 도깨비같은 주식시장에서 자기를 지킬 수 있는 보호색이었다.
“틀림없이 오릅니다”
“무조건 파세요”
이렇게 큰소리치는 브로커들은 대개 집을 팔아야 했다.
이런 상황에서 약정은 약정대로 올려야 했다. 그렇게 하려면 만만한 계좌들에 손이 가게 된다. 수익을 내주는 경우도 있지만 대개 반토막이 나거나 거덜이 난다. 만회를 하려고 미수를 지르거나 신용을 쓰면 박살이 나거나 깡통으로 가기 일쑤이다.
그렇게 되면 평소 원만하던 그들과 어색한 관계에 빠지게 된다. 전화가 오면 피하고 싶고 만나도 정면에서 바라보기가 어렵다. 나 역시 무수히 당한 경우다. 항의가 들어와 물어주는 경우, 미안해서 메꿔 넣는 경우 다 겪어봤다. 아내 몰래 대출을 받아야 할 때도 있었다.
금액이 커 도망 다니던 동료, 도저히 감당할 길이 없어 금융 사고를 낸 후배, 홍콩으로 도피한 모 과장, 구좌 모두를 한 주식에 몰빵 했는데 그 주식이 부도가 나버린 선배, 술에 떡이 돼 밤 한시에 울먹이며 한강 다리에 서 있다고 전화하던 부하직원, 사랑하는 처자식을 남겨두고 자살해버린 모 대리, 포카에 고도리, 폭탄주로 마음 달래는 동료 브로커들....
'글쎄요, 기다려 보는 것도 좋을 것 같은 생각이 드는 것 같기도 하네요’
아무 근거 없이 헛구역질처럼 올라오는 맥빠진 언어들. 뿌리 잃은 말들. 차라리, “믿습니까?” “예”가 났지.
허구한 날 돌려대야 하는 뺑뺑이. 물타기. 작전. 손절매. 큰손. 정치자금 개입. 핫머니. 분식 회계. 부도. 상한가. 하한가. 투매. 공매도. 개미부대. 박살. 공공자금 투입. 연기금 손실. 통화 환수. 블랙머니 팽창. 투자가 자살. 블랙 먼데이. 블랙 투즈데이. 블랙 웬즈데이. 블랙.....
시는 가슴에서 영영 날아가버려 생각나지도 않았고, 이단의 체험은 희석되긴 했지만 너무도 뜨겁게 데인 화상이라 아물지 않은 상처가 무의식 속에 도사리고 있었다. 열대의 야자수는 술 취한 머리 속에 빙빙 돌다가 곧바로 귓전을 때려오는 동료들 주식 얘기에 밀려나야 했다. 이러다가 나 자신이 망가지고 이대로 객장의 화석으로 굳어버릴 것 같은 지리멸렬 속에 몇 년의 시간이 순식간에 흘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