낡은 외투에 무거운 모자 눌러쓰고
말없이 들어서는 남자
그런 벽 같은 침묵 속에서도
그림을 그렸다 아내는 고독한 화가이다
그토록 열렬한 애정과 친밀을 다 주어도
무엇이 그리 한스러워 묵묵히 듣기만 할 뿐
손 한 번 잡아주지 않는 사람
그 고독을 캔버스 삼아
그 슬픔 위에
처량함과 서글픔,
안타까움,
이해되지 않는 냉정 위에
아내는 그림을 그렸다
3.
아내의 그림이 점점 어두워지고
빛깔 곱던 물감들,
푸르게 칠하던 소나무에
짙은 잿빛 질감 드리워도
시인이라 자칭하는 남편은 알지 못했다.
화가는 하루하루 고독의 파출부로 전락해 갔고
화가를 그렇게 만든 냉혹한 남자는
버젓이 시인이 되어갔다
화가인 아내는 아무 트집 잡지 않았고
축하한다고 눈물의 박수 쳐주었고
긍정 못할 불순을 긍정해 주고 있었고
자신의 그림들을 하나하나 거두어 갔다
마지막까지 지키고 있던 캔버스, 자기 가슴마저
흐르는 강물에 버리고 떠났다.
가선 안 될 비운의 땅 혹은
눈물 속에 꿈꾸어온 꿈의 화실로.
4.
시인은 너무도 무딘 사람이었다
그제서야 알았다
그 숱한 눈물의 화폭과
죽어가는 아내의 몸부림
하나 둘 거두어 가던 빛깔 고운 감성들
숨막히는 오열과 응어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