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핌=김윤경 국제전문기자] 다국적 기업들이 남유럽을 속속 떠나고 있다. 유로화 출범과 함께 경제 성장세에 불이 붙자 다투어 몰려들었던 다국적 기업들은 이제 떨어지는 출산율과 물가 하락, 해당국 기업과의 경쟁 심화 등을 이유로 이 곳을 등지고 있다.
4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기저귀 브랜드 `하기스`로 잘 알려진 킴벌리 클라크는 수년간 저출산율로 고전하다가 지난달 결단을 내렸다. 더 이상 유럽에서 기저귀 사업을 벌이지 않기로 한 것. 알루미늄 업체 알코아, 프랑스 명품 소매업체 PPR도 남유럽 사업을 대폭 줄이거나 철수키로 했다.
독일 푸츠마이스터(Putzmeister Holding)도 마찬가지. 10여년간 대규모 투자에 나섰던 푸츠마이스터는 이탈리아의 저조한 경제 성장, 스페인의 부동산 버블 붕괴 등으로 불똥이 튀자 바로 짐을 쌌다. 지난 3년간 이탈리아 공장을 닫았고 스페인 공장 규모는 확 줄였다. 그리고 절대 이전 수준만큼 투자하진 않을 것이라고 못박았다. 노베르트 샤이흐 최고경영자(CEO)는 "어떤 시장에서든 성장을 하려면 인구가 증가해야 하고 어느 정도의 부(富)가 필요하며 정부 재정도 건전해야만 한다"며 "유럽 대부분 나라들은 이런 조건을 못갖추고 있다"고 지적했다. 푸츠마이스터는 남유럽을 떠나 브라질과 터키 등 이머징 시장에서 대안을 찾으려 하고 있다.
뉴질랜드 최대 건설사 플레처 빌딩의 대변 필립 킹은 "스페인의 부동산 붐을 업고 많은 신장을 했던 게 사실"이라며 "그러나 2006년 이후 주택착공은 80%나 줄었고 수요가 줄고 있어 지난 6월 빌바오에 있는 포르미카 공장을 닫기로 결정했다"고 말했다. 이 공장을 다시 여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스위스 시멘트 업체 홀심도 3년 전 스페인 공장 등을 닫았다. 시장은 수 년간 더 침체될 것으로 보고 수요 감소에 맞춰 시멘트 가마 두 개와 로르카 공장에 대한 계획을 보류했다. 독일의 제약업체 머크 역시 스페인 사업부 인력을 20% 줄였다. 정부의 의약품 상환(Reimbursement) 금액이 줄었기 때문이다. 영국 콤파스 그룹은 포르투갈에 있는 로드샵 레스토랑들을 닫았는데 고속도로 통행료가 높아지면서 사람들이 줄었기 때문이다.
이런 움직임 속에서 남유럽에 대한 외국인직접투자(FDI)는 확실히 줄고 있다. 지난 2007년 이래 포르투갈과 스페인, 그리스로 향한 FDI는 38% 줄었다. 이 돈은 이머징 마켓으로 향한다. 유엔무역개발회의(UNCTAD)에 따르면 올 상반기 전체 FDI 가운데 이머징 마켓이 차지한 비중이 처음으로 절반을 넘어다.
회계업체 BDO 인터내셔널 조사에 따르면 다국적 기업의 재무책임자들은 "시리아보다 그리스가, 이집트보다 스페인이 더 위험하다"고 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BDO 인터내셔널은 "유럽엔 안전한 곳이 더 이상 남아있지 않다"고 했다.
WSJ은 이 같은 기업들의 남유럽 엑소더스는 자본과 혁신, 그리고 관리 전문가들까지 마르게 해 채무위기와 경기후퇴(recession)에서 벗어나고자 발버둥치는 남유럽에 타격이 될 수 있다고 진단했다.
브레시아 대학의 마르코 머티넬리 교수는 "이런 움직임은 지역은 물론 정부 사업에도 수년간 차질을 빚게 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다국적 기업들은 이탈리아 고용의 10%를 담당하고 있으며 연구개발(R&D)의 30%를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탈리아 기업들은 대개 영세하거나 가족기업이 많아 R&D에 투자할 만한 돈이 없다. 이는 마치 지난 1979~80년대 한 때 막강했던 석탄산업이 지기 시작하면서 북유럽 국가들의 실업이 심각해졌던 것과 유사한 수순이다.
옥스포드 이코노믹스의 마리 다이런 이코노미스트는 "외국 기업들은 혁신에 많이 투자하는 경향이 있다"며 "(외국 기업들이 떠날 때)국내 기업들이 갭을 메울 수 있는지 우려되며, 이 때문에 해당국 장기 성장률이 낮춰질 수도 있다"고 말했다.
[뉴스핌 Newspim] 김윤경 국제전문기자 (s914@newspim.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