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 단임제인 우리나라는 흔히 정권 말기가 되면 대통령의 말발이 서지 않는 레임덕 현상이 발생하는데 이 정부는 평소의 소신을 바꾸는 특이한 레임덕 현상을 겪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지난 7일 세법개정안이 발표되는 날. 기획재정부 출입기자들은 미리 배포된 자료를 토대로 기사작성을 마치고 느긋하게 기다리다 뒤통수를 맞았다.
갑자기 당일 오전에 열린 정부와 한나라당, 청와대의 당정청협의회에서 법인세와 소득세 감세 계획이 철회됐다는 소식이었다.
법인세와 소득세 감세 철회는 단순히 기사 일부를 고쳐서 해결될 문제가 아니었다. 기사의 첫 머리는 물론 중심내용을 바꿔야 하는 수준이었다.
8일 오후 취임 100일을 맞아 기자실에 내려온 박재완 기획재정부 장관은 MB노믹스의 근간이자 자신의 정책적 소신이었던 감세 정책이 철회됐기 때문인지 표정이 그리 밝지 않았다.
취임 100일 소회를 말하면서도 시종일관 어두운 기색이 역력했다.
박 장관은 한나라당의 감세 철회 요구가 거셌고 정부로서는 이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미국 신용등급 강등의 가장 큰 원인이 정부와 정치권의 갈등이었기 때문에 글로벌 재정위기 상황에서 정치권과 갈등 상황을 연출할 수 없었다고 밝혔다.
말은 우회적으로 했지만 차기 총선과 대선에서 ‘복지’가 중요 화두로 등장할 것이 확실시 되는 상황에서 현 여당의 요구를 받아들여 결국 평소 복지 포퓰리즘이라며 비판하던 기존 입장을 바꿀 수밖에 없었다고 인정한 셈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8일 여의도 중소기업중앙회에서 열린 중소기업인들과 공생발전을 위한 방안에 대한 간담회에서는 '공생발전'을 위해 대기업에 대해서 많은 요구를 하고 있는데 중소기업도 문제가 많다며 대·중소기업을 가리지 않고 기업에 대한 비판의 날을 세웠다.
정부는 또 9일엔 비정규직 종합대책을 발표하며 비정규직을 정규직의 80% 이상 수준으로 끌어올리고 4대보험 적용, 임금인상 등을 추진하기로 했다.
MB정부가 강조해온 대기업과 부자들에 세금 깎아주면 여력을 가져서 투자하면 일자리가 생기고 서민도 먹고 산다는 트리클다운 효과(trickle down effect, 낙숫물 효과)를 역행하는 정책들이다.
당장 전국경제인연합회를 비롯한 재계는 잇단 정부의 좌클릭 정책에 대해 강하게 비판하고 나섰다.
임기를 1년여 남기고 기업 프랜들리에서 벗어나 친서민 정책을 표방하고 나선 것인데 한나라당의 내년 총선과 대선 승리를 위해 기존 정책에서 벗어나 미봉책을 택했다는 비판을 받아도 할 말이 없을 것 같다.
박재완 장관은 8일 기자들과 만나 감세 정책 소신이 바뀐 것이냐는 질문에 2013년 균형재정이 이뤄지면 2014년부터는 다시 감세정책을 실시하는 게 좋다고 생각하지만 이건 다음 정부의 일이라고 말했다.
한 정부 관계자는 내년 총선을 앞두고 정부에서 국회로 힘의 균형이 넘어갔다고 설명했다. 국회의 힘이 가장 세지는 국정감사를 앞두고 일선 공무원들만 힘들게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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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핌 Newspim] 곽도흔 기자 (sogood@newspim.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