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면 가치 투자란 기업의 자산가치, 수익가치, 성장가치 등을 분석하고, 이에 비해 가격이 낮을 때 사서 적정한 가격에 다다르면 파는 것. 워런 버핏, 피터 린치 등이 대표적인 가치투자자로 꼽힌다.
국내에도 여전히 소수지만 가치 투자를 지향하는 투자자들이 있다. 이에 온라인 종합경제미디어인 뉴스핌(www.newspim.com)은 대표적인 가치 투자자로 꼽히는 이들을 만나 그들의 투자 철학과 성과, 고민과 꿈을 들어보았다.

[뉴스핌=김성덕 기자] "우리 회사 펀드는 스타일, 목표, 전략이 다 같아요. 회사 전체가 '하나의 펀드'라고 보시면 됩니다. 이게 다른 회사와 다르다면 다른 점이죠"
1시간을 예상한 인터뷰는 어느새 1시간 30분을 훌쩍 넘겼다. 왼손에 찬 손목시계를 본 그가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네"라고 혼잣말을 했지만 그 뒤로도 인터뷰는 20여분 더 이어졌다.
허남권(48) 신영자산운용 자산운용본부장(전무)과의 인터뷰는 그렇게 '놀이'에 빠진 아이가 해 지는 줄 모르듯 시간의 방해를 받지 않았다.
"별 내용이 없을 것 같다"며 인터뷰를 주저하던 그를 "가볍게 얘기나 하자"고 해 지난 18일 오후 여의도 신영자산운용 빌딩 7층 회의실에서 만났다.
허 본부장은 명함을 교환하고 자리에 앉자마자 "가치투자가 요즘엔 별로 주목받지 못하는데…"라며 운을 뗐다.
"가치투자하고 가치주투자가 있는데, 대부분 투자는 가치투자죠. 그 가치가 미래가치냐 현재가치냐일 뿐인 거죠. 저희 회사는 '가치주'에 주로 투자하는 회사입니다. 성격이 좀 다르죠"
그가 말하는 가치주란 좋은 사업과 우수한 매니지먼트가 있지만 밸류에이션(실적대비 주가수준)이 낮은 기업의 주식이다. 여기에 장기 투자해 평균 리스크보다 높은 수익을 추구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 시장의 움직임은 그의 주요 고려 대상이 아니다. '철저한 종목투자' 이게 전부다.
허 전무에 따르면 신영자산운용의 자산은 5조원이다. 그 중 주식이 4조원이고, 그 가운데 95%가 가치주라 불리는 주식들이다.
◆허남권 자체가 하나의 가치주… '영원한 신영맨'
"사람들이 오해하는 게 있어요. 가치주 하면 리스크도 작고 수익도 작다고 생각하는데 그렇지 않아요. 리스크는 작지만 수익은 무한대라고 생각하면 돼요"
허 본부장의 가치투자 철학은 어찌보면 간단했다. 낮은 가격에 사니까 리스크는 제한돼 있지만 위(목표가)는 기업이 어떻게 변하느냐 또는 시장이 어떻게 변하느냐에 따라 3~4배도 될 수 있다는 거다. 일반적인 투자자들은 '그걸 어떻게 기다리나?' '인기도 없는 주식을 왜 사나'라는 반응을 보이지만 실천한다는 게 다른 거였다.
"다른 사람들이 외면할 때 사고, 모두가 열광하고 원할 때 파는 겁니다. 그런데 90%의 사람들은 이렇게 하질 않죠. 거꾸로 가야 합니다. 살 때는 인기가 없고 팔 때는 인기가 있어야 합니다."
허 본부장은 지난 1989년 대학 졸업과 함께 신영증권에 입사한 후 현재까지 22년 동안 한 회사에 몸담고 있는 '우직한 신영맨'이다. 주식으로 치면 허남권 자체가 하나의 '가치주'인 셈이다. 그간 부도 명예도 눈덩이처럼 커졌다. 그는 '가치주의 위력'을 증시에서만이 아니라 온몸으로 웅변하고 있다.
◆고객 집 앞에서 '문전박대'… 독학으로 주식공부
그런 그도 주식을 내팽개치고 싶을 때가 있었다. "주식시장은 아사리판"이라고 느낄 쯤 가치주에 눈을 떴다.
그가 신영증권에 입사했던 1989년을 전후로 3년 동안 종합주가지수(지금의 코스피)가 250에서 1000포인트까지 올랐다. 그야말로 아무 주식이나 사면 오르던 때였고, 빚내서 주식투자하는 게 당연시되던 시절이었다.
그러나 주가가 하락하기 시작하자 반대로 반토막난 주식이 속출하고, 깡통계좌가 일반화되고, 패가망신한 투자가들이 말그대로 줄을 서는 시기가 됐다.
당시 허 본부장은 신영증권 압구정지점에 근무했다. 그는 당시 겪었던 일 한토막을 말한다.
"제 '큰 손' 고객 한명도 수천만원 미수가 났어요. 돈 받으러 압구정 현대아파트로 갔는데 문도 안 열어줘 장마철에 밖에서 몇 시간 동안 비를 쫄딱 맞았죠"
이 비맞은 날이 그의 투자인생을 바꿔놓는 계기가 됐다. 그때 피눈물을 삼키면서 속으로 결심했다고 한다. '나에게 앞으로 깡통은 없다'. 그 때부터 주식을 어떻게 해야 할지 밤낮으로 공부하면서 혼자 방법을 찾기 시작했다. 그리고 깨달은 것이 '알고 사자'는 거였다. 가치투자의 초보적인 형태가 시작된 것.
"당시에는 워런 버핏을 몰랐습니다. 난 나대로 서바이벌 하려니까 내 방법을 찾은 거였어요. 1995년 신영자산운용 설립 준비하면서 그때 처음 들었어요. 그 당시에 피터린치의 '전설로 떠나는 월가의 영웅들' 이런 책도 처음 읽었죠"
그는 피터 린치의 책을 읽으며 '나하고 투자스타일이 같네' '미국에도 이런 사람이 있었구나'하고 느꼈다. 독학을 통해 깨우친 방법이 워런 버핏, 피터 린치 등 세계적인 투자자들의 길과 통한 거였다.
신영자산운용을 설립할 때 허 전무는 신영증권에 설립 멤버로 차출돼 참여하게됐다. 어떤 회사를 만들까 논의하는 과정에서 허 전무의 가치투자 스타일이 밑바탕이 됐다. 그렇게 만든 신영자산운용이 지금까지 한결같이 이어진 셈이다.
"이 사람들이 미국에서 성공했으니까 우리도 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죠. 하지만 저 자신 익히 해오던 거라 색다르진 않았어요. 지금도 마찬가지구요. 이미 저한테는 경험을 해 본 투자방식이었죠"
그의 가치주 투자는 지난 1992년 외국인에게 주식시장이 개방되면서 빛을 발한다. 소위 말하는 '저PER 혁명'의 시기가 그에게 수익과 자신감을 준 것이다.
"92년 기본적 분석을 할 때 마침 외국인한테 주식시장이 개방됐어요. 기본적 분석이라는 게 다른 게 아니고 좋은 회사 그러니까 매출 크고 돈 많이 벌고, 심플하게 얘기하면 주당가치 매력이 있는 회사죠. 그때 저(低)PER(주가수익비율), 저PBR(주가순자산비율) 다 쓸어 담았어요"
허 전무가 당시 분석한 주식들은 15만~20만원 가야 정상이지만 가격은 2만~3만원에 형성되고 있었다. 자신있게 사들인 주식들은 상한가로 내달렸다. 그러다 하한가로 빠져도 그는 주식을 팔지않았다.
"10만원짜리 주식인데 1만원에서 1만 5000원 됐다고 판다면 어리석은 거죠. 그때 안 팔고 버티는 법을 배웠어요. 그랬더니 정말 5배 10배씩 오르더라고요. 제 고객들 상당수가 대박을 맛봤죠. 사람이 그동안 몰랐던 새로운 경험을 하면 여유가 생기고 시야가 넓어져요. 가치주 투자에 눈을 뜬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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