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같은 위기 대응은 금융시장의 불안을 일단 가라앉히는데 성공했지만, 아직 구체적인 대책에 대한 의문은 남기고 있다. 고위 당국자들은 복잡한 판단이 필요한 구제 금융의 세부안을 도출하고 합의하는데 진통을 겪고 있는 중이다.
19일(현지시간) 헨리 폴슨(Henry Paulson) 미국 재무장관은 전반적인 구제안이 도출될 것이라며, 미국 금융기관으로부터 부실자산을 매입하는데 적어도 '수천억 달러(hundreds of billions)'의 공적 자금이 투입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 같은 공적 자금 투입의 목적은 금융시장을 안정시켜 전체 경제는 물론 나아가 글로벌 금융시장과 경제에 미칠 파급 효과를 차단하고, 위기에 빠진 미국 금융기관들의 재무 여건을 회복시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납세자의 돈이 막대하게 들어가는 이번 대책에 대해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은 "상황이 상황이니만큼 불가피하게 됐다"고 해명했다.
이번 미국 정부의 대책에 금융시장은 '환호'했다. 다우지수가 이틀 사이 778포인트 급등하며 주간 낙폭을 대부분 만회했고, 아시아 증시와 유럽 증시도 폭등했다. 단기 국채 금리가 급반등한 가운데, 자금시장의 리스크 프리미엄은 신속하게 줄어들었다. 연방기금이 2%보다 낮은 1.75%에 거래되기도 했다.
이번 대책에 의회 지도부는 전반적인 아이디어에 대해 동의한다는 입장을 밝혔으나, 구체적인 내용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사실상 지금부터 세부안이 도출될 때까지는 각종 로비스트와 정책 전문가들 그리고 금융업체 경영진 등이 모여 치열한 각축전을 벌일 것으로 예상된다.
일단 주말에 몇 가지 대책이 발표됐다.
먼저 재무부가 일시적으로 위험해진 머니마켓펀드(MMF) 시장에 대해 예금보험과 같이 기금보호 역할을 맡고, 연방준비제도(Federal Reserve)가 MMF로부터 상업어음(CP)을 매입하기로 했다.
미국증권거래위원회(SEC)는 799개 금융주에 대해 공매도를 금지한다고 밝혔으며, 공적관리 체제 하에 편입된 패니메이와 프레디맥 등이 주택시장을 부양하기 위해 주택저당증권(MBS) 매입을 늘릴 것이라고 밝혔다.
◆ 핵심은 '부실자산 처리'.. 어떻게 되나
그러나 시장이 가장 주목하는 대책은 바로 정부가 금융기관으로부터 부실자산을 매입하는 것이다. 역경매 형식을 취할 것으로 보이는 이번 부실자산 매입 과정은 정부가 설립하는 '기관' 형태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일각에서는 1989년 설립된 '정리신탁공사(Resolution Trust Corp.; RTC)'의 재판이 될 것이란 관측을 내놓고 있으나, 아직 확실한 모양은 나오지 않고 있다.
관련 소식통들은 재무부가 산하에 새로운 기관을 설립하여 주택모기지, 상업용모기지 그리고 모기지유동화증권 및 여타 증권 등의 부실자산을 매입, 관리하고자 하며, 이 기관을 관리할 자산관리 전문가들을 고용할 예정이라고 전하고 있다.
미국 정부 관계자들을 당혹하는 대목은 과연 크게 손상을 입은 이들 자산을 적정 시장가치 이상으로 매입할 것인지, 아니면 대폭 할인된 가격으로 수용할 것인지에 뚜렷한 답이 나오지 않는다는 데 있다.
이들 자산을 적정 가치 이상 주고 매입해서 납세자들의 돈에서 손실을 흡수하게 해도 좋은가 하는 것은 당장 비판 여론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반대로 대폭 할인된 가격에 매입하는 방식은 금융기관들이 더욱 큰 폭의 대손상각을 단행해야하고 이에 따라 심각한 상황에 몰릴 수가 있어 대책의 취지가 무색해진다.
결론은 이런 양쪽의 사이에서 이루어질 가능성이 높다. 폴슨 재무장관은 "과감하게 접근하는 이런 [공적자금을 대거 투입하는) 방식이 금융기관들의 파탄이 지속되어 신용경색이 장기화되는 것에 비해 오히려 미국 가계의 손실을 줄이는 길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런 설명에 모두가 설득된 것은 아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이날 더글라스 엘멘도프(Douglas Elmendorf) 전 재무부 관료 출신이며 현재 브루킹스연구소(Brookings Institute)의 시니어펠로우가 납세자에게 엄청난 부담을 물리는 대책은 실효성이 없을 것이란 주장을 내놓았다고 소개했다.
엘멘도프는 "사태를 관망하는 것은 위험하지만, 재무부의 계획은 납세자들에게 막대한 비용을 부담시킬 가능성이 있다"며, "이런 납세자들에게 짐을 지우는 방식은 잠재적인 상방위험이 제한적인 반면 하방위험이 대단히 클 것"이라고 말했다.
◆ 상업은행들, 즉각 불만 제기
이번 연방 당국의 대책들에 대해 상업은행들이 즉각 반발하고 나섰다.
이들은 재무부가 MMF에 대해 은행의 예금보호와 같은 장치를 제공할 경우 자신들의 예금자산이 이자를 더 높게 제시하는 MMF로 모두 이동하도록 만들 수 있다고 주장했다.
한편 미국 독립지역은행협회는 재무부가 뮤추얼펀드에 대한 보증 프로그램을 발표한 것에 대해 심각한 우려를 제기했다.
이들은 "지방은행들의 자금을 고갈시킨 월가의 혼란에 대해 어떤 해결책을 내놓는 것에 대해서도 반대한다"며, "이는 지역 경제활동이 필요한 자금을 조달할 능력이나 미국 전역의 지역공동체가 성장할 수 있는 자금 기반을 제약하는 일이 될 것"이라고 비판했다.
◆ 자체적으로 활약하는 연방 당국들
재무부가 의회를 설득해서 막대한 납세자들의 돈을 투입해도 좋은 권한을 얻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가운데, 이미 몇몇 주요 제도 및 기관들은 시장의 구원에 나서고 있는 중이다.
패니메이와 프레디맥을 사실상 관장하게 된 연방주택금융청(FHFA)은 즉각 이들 업체로 하여금 자금조달시장을 지원하기 위해 추가적인 주택저당증권을 매입하도록 지시했다.
재무부 역시 패니메이와 프레디맥을 국유화할 때 실시했던 공개시장을 통해 이들 업체가 발행한 주택저당증권을 100억 달러까지 매입하도록 했다.
연준과 SEC도 나섰다. 연준은 주말 미국 금융시장이 열리기 전 MMF시장에 대한 구제작업을 실시했다. 환매가 빗발쳐 유동성 위기에 몰릴 것을 우려한 연준은 '재할인창구'를 이용해 상업은행들을 통해 ABCP(Asset-Backed Commercial Paper)를 담보로 최대 2300억 달러까지 지원하기로 했다.
ABCP는 지난해 서브프라임모기지 담보 자산을 편입했다가 심각한 상황을 맞게 한 장본인이다.
연준 관계자들은 이제는 이런 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 상황이 되었다고 하지만, 이들 ABCP는 앞으로 문제가 불거질 가능성이 있는 자동차대출이나 신용카드대출에 주로 묶여있어 안심할 수 없다.
물론 연준이 담보로 하는 어음은 상위등급이라 손실 위험이 없다고 하지만, 이들 자산가치가 떨어지거나 디폴트상황에 이른다면 물릴 수밖에 없는 것들이다.
연준은 또한 패니메이와 프레디맥 그리고 연방주택대출은행이 발행한 단기채권을 최대 690억 달러까지 매입하기로 했다.
SEC는 799개 금융주에 대한 공매도를 열흘간 금지했다. 나아가 이런 금지기간은 30일까지 연장할 수 있다고 했다.
이 같은 조치는 영국 금융감독청(FSA)의 조치를 뒤이은 것이다. FSA는 내년 1월까지 금융주에 대한 공매도를 금지하고, 매 30일마다 이에 대해 평가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프랑스와 호주, 아일랜드 등도 공매도 금지 조치를 연달아 발표했다.
◆ 근본대책이긴 한데
월가의 시장주의자들 혹은 자유주의자들은 이미 베어스턴스 구제 사태가 발생했을 때 "이제 미국은 사회주의가 됐다"고 비판했다.
유연한 시장의 기능에 가격이 결정되도록 맡기고, 스스로 판단한 투자 결정에 책임을 지도록하여 자율적인 규율은 훈육해야 한다고 이들은 말했다.
'대마불사(大馬不死)론' 혹은 '도덕적해이'에 대한 비판이 개시되면서 미국 정부와 연준은 주춤거렸다. 결국 리먼브러더스는 베어스턴스보다 덩지가 큼에도 불구하고'대마'로 인정받지 못하고 버려졌다.
하지만 AIG는 달랐다. 증권화상품, 채권을 거래하는 리먼보다 미국인들과 직접 보험계약을 하고 이로 만들어낸 자금으로 투기적인 운용을 한 AIG의 붕괴는 그 파급력이 걷잡을 수 없이 큰 '대마'임을 인정 받았다.
이중잣대가 아니냐고 비난이 일자 미국 정부는 즉각 "사안별로 다르게 판단할 수밖에 없다"며, 사실 리먼은 아니지만 AIG는 구제할 수밖에 없었다는 판단을 내렸다고 밝혔다.
문제는 월가와 세계 금융시장이 이런 일련의 행보에도 불구하고 안정되지 않았다는데 있다. 걷잡을 수 없이 다음 번 희생자나 구제 대상은 어디인가 찾으며 시장이 꿈틀거리자 결국 미국 정부는 납세자의 돈을 쏟아부어 문제의 근원지를 '청소'하는 대책을 제출했다.
자유주의자들이나 시장주의자들이 기대하는 그런 탄력적이고 유연한 시장의 기능은 중단되었다. 그 어느 때보다 시장은 '실패'했기 때문에, 평소 같으면 비난이 넘쳤을 시장은 고분하게 이를 수용하는 분위기다.
이번 대책에 기대를 거는 전문가들은 이전 구제책들이 단순이 유동성만 투입해 시간을 버는 미봉책이었던 반면, 이번 대책은 금융기관들의 장부에서 비유동화된 부실자산을 빼내고 대신 이 자금을 유동적인 시장으로 돌려 시장의 가격 결정 기능을 회복하는 근본 치유책이라고 주장한다.
이 과정에서 상당한 비용을 치르기는 하겠지만, 시장으로 돌아든 자금이 정지된 자금시장과 위축된 모기지시장에 활력을 더하고 결국 주택시장의 원만한 회복을 유발한다면 더할 나위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과정을 통해 쉽게 주택가격이 반등하고 모기지증권의 가치가 살아날 것이라는 식의 판단은 아직 섣부른 것으로 보인다.
이제껏 위기를 양산해 온 유동성 장세와 주택 경기 상승이 다시 재연되는 것은 더욱 바람직하지 않으며, 나아가 금융시장 주체들이 그 동안 받은 충격으로 아예 이런 기대가 사라진다면 정부의 대책이 생각보다 큰 효과를 보지 못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면 정말 재정만 악화되고 경기 부양은 별로 되지 않을 위험이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