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큐 1' 일사각오 주기철 목사 일대기 조명…일제 탄압 속 신사참배 거부&항일운동 순교
[뉴스핌=대중문화부] KBS ‘다큐 1’이 일제 탄압 속에서도 신사참배를 거부하고 항일운동을 펼치다 순교한 주기철(1897∼1944) 목사의 일대기를 그렸다.
지난달 25일 방송된 KBS ‘다큐 1’은 성탄특집으로 ‘일사각오, 주기철’ 편이 전파를 탔다.
일제의 탄압이 극에 달했던 1930년대, 주기철 목사는 자신의 신념을 지키기 위해 가족을 돌볼 수 없었다. 가족을 뒤로 한 채 주기철 목사는 신사참배 반대라는 일사각오의 길로 오롯이 걸어갔다. 당시 13살이었던 그의 아들 주광조는 그런 아버지를 원망했다. 그리고 신에게 분노했다. 가족을 희생시키고, 자신의 목숨을 버리면서까지 아버지가 지키려 했던 신념의 길을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이다.
주기철의 아들 주광조가 지켜보았던 시대의 풍랑과 일본의 거대 권력 앞에서도 결코 타협하지 않았던 주기철 목사의 삶을 ‘다큐1’이 드라마로 재구성했다.
1930년대로 들어서면서 일제의 탄압은 극에 달했다. 황국신민화 정책을 내세운 일본은 천황이 사는 곳을 향해 절하는 궁성요배와 신사참배를 강요했다. 우리 민족을 정신적·종교적으로 일본 국민으로 만들기 위한 강압 정책이었다.
1939년 마침내 조선예수교장로회는 신사참배를 결의하기에 이른다. 한국 교회사에 씻을 수 없는 오점과 치욕의 역사를 남긴 순간이었다.
그러나 모두가 신념을 버리고 침략자의 거대한 권력 앞에 무릎을 꿇던 시대에, 홀로 저항의 길을 걸어간 이가 바로 주기철 목사였다.
주기철이란 이름 앞에는 언제나 순교라는 수식어가 따라 붙는다. 그러나 주기철은 순교자이기 전에 독립운동가였다. 남강 이승훈이 세운 오산학교에서 청년 주기철은 애국애족 정신을 이어받는다. 1919년 3.1운동이 일어나던 때 고향에서 적극적으로 만세운동에 참여했으며, 조만식 교장을 따라 전국을 순회하며 물산장려운동을 펼치기도 했다. 민족정신은 그가 평양신학교로 진학하면서 신사참배 저항으로 발전하게 된다.
한국교회사에서 가장 존경받는 믿음의 선배라 불린 주기철 목사. 광복 70년인 오늘날, 주기철 목사가 흘린 피와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은 신념을 잊고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어떤 메시지를 전해주는 것일까.
◆“일본이 지은 죄를 용서해 주시기 바랍니다”
가미카제 특공대원 출신인 무토 키요시(88)씨의 명함엔, 한국에 대한 사죄의 마음이 담겨 있다.
“지난날 일본이 지은 죄를 용서해주시기 바랍니다”라고 한글로 적힌 문구가 바로 그것이다.
열여덟 살에 특공대에 들어간 그는 ‘일곱 번 새로 태어나 천황을 위해 일곱 번 죽으라’는 교육을 받았다고 한다. 당시 일본에서도 일왕에 대한 충성은 종교 이상으로 강요되고 있었던 것이다. 1945년 전쟁이 끝나고 일왕은 신이 아니라는 사실이 공론화되면서 그는 지난날의 일본 역사가 부끄러웠고, 한국에 사과해야 한다고 고백한다.
무토 키요시눈 “한국에 뼈를 묻고 제 무덤에 과거에 일본이 지은 죄를 용서해달라고 적고 싶어요. 천년 후에도 몇 만 년 후에도 남아 있도록 그렇게 용서를 빌어야 해요. 주기철 목사님은 천황의 거짓말로 인해 비난 받아 돌아가신 분입니다. 일본은 당시 일본의 거짓말로 인해 죽음에 이른 분들에게 죄송하다고 사죄해야 합니다”라고 말했다.
죽음으로써 신념을 지켰고, 일사각오의 정신으로 일제에 항거했던 주기철. 70여 년 전 가시덤불 같은 시대상황 속에서 고난을 겪었던 아버지 주기철과 아들 주광조의 이야기는 오늘날 가해자의 땅 일본에서 주기철의 정신을 이어가고자 하는 아버지와 그 아들의 이야기로 이어진다.
[뉴스핌 Newspim] 대중문화부(newmedia@newspim.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