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은 내 문학을 외면하거나 무시해 버리고, 내 문학은 한 발짝도 나가지 못한다. 앉은뱅이로 세상을 걷고 있다. 끝낼 수도 없는 생존의 본능이, 내 넓적다리를 타고 앉아, 투신을 가로막는다.
사십이 가까이 와도, 나는 사회적으로 철들지 못한다. 저항 한번 제대로 못 하고, 대가적인 작품이나, 인간의 면모 보이지 못한다. 대범하게 사랑하지 못하고, 대범하게 살아가지 못하고, 글 속에 올챙이처럼 유영한다. 문학의 스타일도, 아이덴티티도 얻지 못했다. 혁명에 부끄러웠고, 노동의 대열에 서지 못하였다. 자본에서조차 누락되었다. 변두리에서도 비겁하였다. 제대로 서지 못하였다. 난 날 용서할 수 있는가. 모질게 매 맞고, 이 겨울 비 다 맞고, 겨울잠 못든 개구리처럼, 추위 속에 벌벌 떨어야 정신 차릴 놈이다. 사회적으로나, 역사적으로나, 가정적으로나, 나이 값 못한다. 사는 게 이처럼 치욕의 확대 재생산이니 그래도 살려고 바둥대는 내부의 불길은 무엇을 태우기 위함인가
두 번째 들어온 까페는 마감을 기다리고 있다. 텅 빈 실내에 나 혼자 남아 있다.
아내는, 내게도 집에도 전화 없다. 삼팔선을 넘은 건지, 경계선에서 흔들리는 건지, 붙잡아가려는 저편을 겨우겨우 진정시키고 있는 건지, 안 보인다. 믿음으로 보이기도 하지만, 믿음으로 안 보이기도 한다.
이제, 마감되어 나가면 어디로 가나. 아이들은 잠들었다. 내 집에서 아이들 둘이 잠자고 있다. 어른들은 각자의 공간에서, 외롭게 싸우고 있다.
이렇게 글로도 풀지 않으면, 정말 괴로운 시간이다. 애간장 다 녹아나는 이 지독한 시간에, 질투나 폭력으로 나가지 못하게 하고, 나자신을 정밀 진단하게 해주는 글쓰기의 매력을, 난 버릴 순 없을 것 같다.
자정이 다 되어가는데도 소식이 없니? 나와의 사소한 소통의 단절이 우리를 파경으로 몰진 않겠지
비 내리는 센티멘탈리즘의 공간이 두렵다.
너에게 전화하고 싶은 마음이 내 몸에 십자수를 놓는다. 이렇게 흘러가도, 저렇게 흘러가도 좋은 마음이라면, 나는 정말 슬프다.
시간이 자정으로 갈수록 심정이 타들어간다.
어디에 있니? 전화 못할 공간에서 전화 안하고 있니? 전화하기 싫은 공간에서 전화 안하고 있니?
실체들에 눈 떠진다. 내 눈 밝아진다. 비의 알코올 한 병에, 내 시심 취한다. 불경기 속에 사회의 실체에 눈 떠지고, 사랑의 실연 속에, 사랑과 언어의 실체에 눈 떠진다. 당신 눈도 떠지면 좋은데, 당신 눈은 냉장고 안의 생선처럼 얼어있다.
불쌍한 당신, 가엾은, 작은 당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