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핌=홍승훈 기자] "새벽부터 불러놓고 대체 뭐하자는 겁니까?"
최근 기자와 만난 한 증권사 CEO가 던진 답답함이다. 상황은 이랬다. 지난 9월 27일 아침 7시 50분 30여개 증권사 CEO들이 한 자리에 모였다. 금융투자협회에서 증권사 CEO를 초정해 연 세미나 자리. 박종수 금투협회장의 축사와 함께 자본시장연구원 박사 2명의 주제발표가 이어졌다. 주제는 그럴 듯했다. '증권업의 현황, 과제 그리고 미래전략'.
경제가 위기로 치닫고 증권업계 먹거리 찾기가 한층 어려워진 요즘, '미래전략'이란 말에 참석한 증권사 CEO들 대부분이 꽂혔다고 한다. 하지만 자료를 차례차례 넘기던 증권사 CEO들의 기대는 이내 실망으로 바뀌었다. 주제와 내용이 달라도 너무 달랐던 것이다. 기사로 치면 낚시성 제목이다.
이날 참석한 증권사 한 CEO는 "그러잖아도 위기관리로 바쁜 요즘 새벽부터 불러놓고 고등학교 교과서 수준의 세미나 발표와 강의가 이어지는 것을 보니 이게 한국의 증권업 현주소란 생각이 들더라"고 토로했다. 새로운 내용은 전혀 없고 그저 증권사 신입사원에게 교육시키는 정도의 내용을 들으라고 왜 사장들을 불러모았는지 모르겠다는 반응이다.
다른 증권사 CEO 역시 "당시 그 자리에서 만난 다른 사장들 역시 혀를 차더라"며 "시간이 아까웠다"고 기억했다.
기자가 당일 세미나 자료를 살펴봤지만 수십명의 증권사 CEO들을 불러모아 논의하고 중지를 모을만한 내용은 없었다. 기관투자자에 대한 정의부터 시작되는 알맹이 없는 내용, 누구나 아는 파생상품거래세 논란에 대한 뻔한 분석 등. 일반 실무자 대상 세미나보다도 한참 격이 떨어졌다.
뿐만 아니라 최근 업계 안팎에선 금투협이 금융당국과의 관계와 갈등에 세련되지 못하게 대처한다는 지적과 불만이 터져 나오고 있다. 효율성을 도외시하고 외부에 보여주기 위한 조직개편을 단행해 도대체 무엇을 위한 조직개편인가라는 질문이다.
취임 10개월여를 맞는 박종수 협회장은 지난 9월 초 17부 33팀의 조직을 12부 11실로 대폭 축소했다. 11명이던 임원이 7명이 됐고 본부장도 없앴다. 8년여 장기집권했던 황건호 전 회장이 만들어놓은 방대해진 조직에 대한 조직슬림화 취지였다.
물론 내부 직원들도 이 정도 변화에는 나름 공감한다. 하지만 37명의 팀장 보직을 없앤 파격 조직개편에 대해 두달여 지난 지금 부작용이 하나 둘 나타나고 있다. 업무의욕 상실과 사기저하가 핵심이다.
"요즘 외부 사람 잘 안 만나요. 모든 결제라인은 부서장으로 단일화됐고 직원들은 내부에서 시키는 일만 하면 됩니다" 과거 팀장을 하다 평직원으로 내려온 금투협 관계자의 전언이다. 기자가 만나본 여러 직원들 역시 예전에 비해 직원들의 업무태도가 수동적으로 변했다고 전해온다.
여타 다른 직원들의 반응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요는 조직슬림화라는 방향은 맞지만 집착의 정도가 지나치다는 지적이다. 슬림화에는 성공했지만 효율성면에선 과거보다도 떨어졌다는 주장도 있다. 업계의 의견을 수렴하고 당국과 정책을 조율하는 협회 본연의 기능이 저하되고 있다는 얘기다.
부서장들 역시 팀장이 없어지면서 어깨가 한결 무거워졌다. 팀장들이 나눠서 책임지고 맡아주던 부분이 없어지니 혼자서 감당할 부분이 많아졌다.
한국사회에서 팀장이라는 직책이 부여하는 의미는 상당하다. 업무관련, 일정부분의 의사결정권이 사라지고 경영진 역시 이를 부서장으로만 제한하자 업계 민원수렴과 금융당국 업무조율에 대한 성과가 줄어들고 소통 단절의 원인이 된다.
최근 일부 직원들 개개인에 보낸 '명령연수'라는 저성과자 연수프로그램 역시 명퇴압박의 예비수순으로 직원들은 받아들인다. 어려운 금융환경, 경제환경에서 구조조정은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하지만 개혁에 반해 나타나는 부작용을 자연스럽게 풀어가는 것 역시 리더의 역할이 아닌가. 업계 안팎에서 보여주기식 행정이라고 협회를 비판하는 이유를 박 회장은 신중히 되돌아볼 필요가 있어 보인다.
대형증권사 고위 임원은 "선제적인 조직슬림화도 좋고 협회비 징수방식의 변화도 좋다. 하지만 이를 통해 회원사들에 잘 보이려는 모습 보다 우리에게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는 정책조율과 업계 의견수렴에 보다 힘써주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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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핌 Newspim] 홍승훈 기자 (deerbear@newspim.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