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환, 산업, 신한, 농협 등 4개 채권은행은 8일 오전 운영위원회를 열고 재무약정 체결을 거부하고 있는 현대그룹에 대해 1차적으로 신규 대출과 지급보증 등을 모두 중단하기로 결의했다.
향후 현대그룹이 재무약정 체결을 계속 거부하면 만기도래 채권 연장 거부나 기존 여신 회수 등 제재 수위를 높인다는 방침이다.
현대그룹이 이들 채권은행에게 갚아야 할 대출금은 모두 2조 5000억원이다. 올해 연말까지 만기연장 거부 조치가 이루어지면 4000억원 정도를 일시 상환해야 할 입장이다.
채권은행이 제재 조치에 들어간만큼 현대그룹이 전세를 역전시키기는 어려워 보인다.
상황은 이렇지만 현대그룹은 "기존 입장에 전혀 변화가 없다"며 반발을 이어가고 있다. 외환은행의 대출금을 모두 갚고 주채권은행을 교체하겠다는 게 주요 골자다.
주채권은행 교체에 따른 재평가가 이루어지면 현대상선 실적 개선 등으로 재무약정 대상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현대그룹과 채권은행이 이견을 좁히지 못한 채 극한의 대립을 이어가자, 업계에서는 우려의 시선이 높다.
업계 한 관계자는 "돈 꿔준 사람이 하겠다는 건데 어쩌겠냐"면서 "하지만 은행이 단순한 사금고 이상의 위상을 정립하고 있는 시대에 돈 꿔줬으니 경영도 내가 마음대로 하겠다는 태도는 '윈윈'하자는 의도로는 보이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전례를 찾아볼 수 없는 대립양상에 대한 자성과 함께 재무약정의 문제점도 속속 제기되는 분위기다.
재계 고위 관계자는 "양측이 신속한 합의점에 이르기를 기대한다"면서도 "현대그룹이 채권은행의 조치에 반발하고 있는 것은 단순히 힘겨루기 차원만은 아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단순히 갑과 을의 관계로 비춰지며 일종의 하극상으로 몰아가는 것은 잘못된 시선"이라며 "선정의 문제, 은행의 문제 등 최종 판단에 대한 법적 장치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한 시민단체 관계자도 "채권단 주도의 기업구조조정은 은행이나 기업 모두에게 부담일 수 있다"며 "특히 이해관계자의 일방인 주채권은행 주도의 구조조정은 당국의 간섭을 불러올 수 있는 문제점을 안고 있다"고 분석했다.
업계에서는 현대그룹의 반발을 십분 이해한다는 반응이다. 재무약정 대상 선정의 중요한 기준이 되는 부채비율만 놓고 봐도 산업활동을 제약할 소지가 많다는 것이다. 적용 부채비율은 200%이다.
업계 한 고위 관계자는 "수천억에 달하는 선박 비용은 투자의 개념으로 이해해야 한다"며 "채권은행들이 형평성에 맞지 않아 적용 대상별로 고려하기 어렵다고 하는데, 이는 결국 투자도, 사업도 하지 말라는 얘기와 같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신조선 도입은 해운업의 필수인데, 이것은 부채비율에 넣어 기업을 옭아매는 것은 제도적으로 하루빨리 개선되어야 할 부분이라는 게 이 관계자의 지적이다.
금융권이 나서 위기에 처한 기업의 자구노력과 체질 개선을 돕겠다는 의도는 긍정적이다. 하지만 산업별 기업의 특성과 업황을 고려하지 않는다면 결국 기업에게는 재도약의 기회를 빼앗는 결과로 이어질 수도 있는 문제다.
이진방 한국선주협회 회장은 지난 달 18일 선주협회 창립 50주년 행사장에서 기자들과 만나 "국내 금융권이 해운산업에 가지고 있는 인식이나 서포트가 부족하다"며 "선박금융 선진화와 이해가 아쉽다"고 꼬집은 바 있다.
이에 대해 금융권 관계자는 "채권단의 재무구조 평가는 단순히 실적과 부채비율만 가지고 하는 것이 아니다"며 "유동성 등 각종 지표와 업황, 특성 등을 전반적으로 평가해 약정 대상을 결정하게 된다"고 반박했다.
이 관계자는 "해당 그룹과의 약정상 밝힐 수 없는 부분이 많다"며 "재무약정은 기업을 살리기 위한 제도이지, 죽이기 위한 제도가 절대 아니다"고 말했다.
한편, 업계 일각에서는 현대그룹이 단순히 업황 회복과 주력 계열사인 현대상선의 실적 개선 등을 이유로 재무약정 체결을 거부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고 보고 있다.
현대그룹이 외환은행 등 채권은행의 압박에 대한 전세 역전을 원한다면 구체적인 수치를 공개하고 시장에 확신을 줘야한다는 지적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