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새로운 시대 버냉키호(號)의 좌표를 찾아서...
(2) 버냉키 체제의 ‘조용한 혁명’: 연준 드라마의 쇠퇴
① 연준의 민주화와 탈인격화: 버냉키의 신뢰도 시험
버냉키 시대 1주년을 맞은 미국 연준은 이미 새로운 ‘조용한 혁명’을 경험하고 있다.
특히 지난 2월 신임 연준 의장으로 부임한 이후 버냉키 스스로 연준 내 “미묘하지만 상당한 변화”를 주도하고 있다. 가령 이제 그는 FOMC 회의에서 금리 결정 문제를 두고 논의를 벌일 때 제일 마지막에 발언하는 행태를 보인다.
과거 그린스펀 시절에만 해도 의장이 자신의 금리 권고안을 직접 제출하고 이어 나머지 18명의 FOMC 참가자들은 자신들의 동의 여부를 밝히는 식의 의사 진행 방식이 잦았다. 물론 여기서도 대부분 동의하는 게 일반적이었다.
그러나 이제 FOMC내 논의 분위기는 한결 자유로워진 셈이다. 다시 말해 이제 연준 내에서 이른바 ‘의사결정의 민주화’가 한층 진전되고 있다는 것이다. 그린스펀 시절의 다소 독재적인 시스템에서 벗어나 말이다.
사실 최근 수년간 FOMC의 정책 논의는 어느 정도 ‘사전 각본’에 따르는 식으로 진행돼 왔었다. 특히 그린스펀의 견해가 통상적으로 정책 논의의 결과를 사전에 정하는 식이었다. 그리고 FOMC의 경제 전망과 정책 조치 결과를 담은 성명서는 이미 회의를 앞두고 사전에 작성되는 식이었다.
그러나 버냉키 체제 들어 이런 기류가 180도 바뀌고 있다. 또 내부 논의(나아가 성명서 수정, 보완 논의) 활성화를 위해 2007년 중 이틀 일정의 FOMC 회의 횟수를 기존의 2번에서 4번으로 늘려잡기로 하는 등 상당한 변화가 이뤄지고 있다.
하지만 이런 변화는 FOMC 회의 자체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다. 가령 ‘페드 워처’ 그렉 이프는 “FOMC, 즉 연준 의사결정 기구의 이런 변화는 세계 최강의 경제 기관 내에서 진행되고 있는 중대한 변화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라고 지적한다.
그간 오랫동안 금융시장은 그린스펀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 실로 집착해 왔다. 이런 행태야말로 당시 연준 내에서 그의 지배력, 그리고 주의 깊게 작성됐지만 종종 모호한 강연 속에 넌지시 금리 향방에 관한 실마리를 담는 그의 습관을 단적으로 표상하는 징후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이제 신임 의장 버냉키는 연준의 의사결정을 보다 민주화하고 또 이해하기 쉽게 만듬으로써 연준을 “탈인격화”(depersonalize)하려 하고 있다. 다시 말해, “통화정책을 의장 한 개인과 덜 결부짓고, 대신 연준이라는 기관 자체와 결부짓고자 한다”는 것.
사실 버냉키는 이미 오랫동안 연준의 성공이 이전 두 거장들의 “개인적 선호”에 너무 과도하게 의존해 왔다는 점에 불만을 품어 왔다. 이런 태도는 학자로서, 그리고 지난 2002~2005년 중 연준 이사로서 버냉키의 오랜 성찰에 따른 확신과도 같은 것이다.
하지만 그 외에도 집권 초기 버냉키가 시장과의 커뮤니케이션 과정에서 직면했던 각종 난관들도 역시 시장이 연준 의장의 발언에 지나치게 목을 메고 있다는 그의 신념을 더욱 강화시키는 데 일조했다고 할 수 있다.
이런 가운데 버냉키는 점차 연준 스스로 자체 목표와 경제 전망에 대해 보다 명료해지고, 따라서 시장이 자신의 각종 발언에 예민하게 반응할 필요가 없도록 만들고자 애를 쓰고 있는 모습이다. 일각에서는 이를 “연준 드라마의 쇠퇴”로 평하기도 한다.
여기서 그의 이런 시도에 대해 과연 오늘날 연준이 굳이 이런 변화를 필요로 하는지 의문이 제기될 수도 있다.
그린스펀 시대를 거치며 연준이 이미 실로 탁월한 실적을 거두어 왔기 때문이다. 이는 비단 경제나 인플레이션 실적만이 아니라 시장은 물론 국민 대중이나 정치인, 나아가 각종 여론 매체, 그리고 글로벌 사회 전반에서 탁월한 평판과 신뢰성을 얻고 있다는 사실까지 아우르는 것이다.
대신 버냉키 취임 이후 마에스트로의 퇴장에 따른 공백과 신임 의장의 영도력을 둘러싼 불안감이 아직도 상존한 데다, 이행기 미국 경제의 불안 불안한 행보를 감안할 때 섣부른 변화가 더 큰 혼란을 유발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사실 집권 초기 그의 커뮤니케이션 파문이 바로 그 단적인 예 아닌가?
하지만 버냉키는 연준을 보다 투명하게 만드는 것이 말을 많이 하게 한다는 것은 아니라고 강조한다. 대신 연준의 목표와 전망에 대해 보다 체계적이고 구체적인 정보를 제시하는 것이 그 핵심이다.
버냉키 자신이 직접 설명하고 있다시피, 이는 크게 세 가지 측면의 수혜를 초래한다. 우선, 장기적으로, 공공의 장기 기대, 특히 가장 중요하게는 인플레이션 기대를 ‘안착’(anchor)시키는 데 일조할 수 있다.
그러나 보다 직접적인 것은 다음 두 가지다. 즉, 명쾌한 커뮤니케이션은 정책 금리 결정의 단기적인 예측가능성을 향상시키고, 통화정책의 미래 경로에 대한 금융시장 참가자들의 기대를 정책 위원회 자신의 계획이나 전망과 보다 잘 조율될 수 있게 하는데 크게 도움이 된다. 결국 이를 통해 시장이 연준의 성명이나 연준 정책 결정가들의 강연 등에 대해 특정한 단어나 문구에 덜 집착하게 만들 것이라는 얘기.
물론 이런 목표는 너무 장기적인 것이고, 또한 전망이라는 것은 본래 불확실하게 마련이다. 따라서 자칫 (목표는 아니더라도) 전망을 자주 수정하고 번복하게 되면서 오히려 스스로 시장이나 국민 대중으로부터 신뢰 상실을 자초할 가능성을 간과할 수 없다.
게다가 스티븐 로치 등 일각에서는 적어도 집권 초기 버냉키의 오락가락했던 발언을 문제 삼으며, 이를 투명성에 대한 그의 과도한 욕망과 결부시키기도 한다. 당시 온건파에서 강경파로 왔다 갔다 했던 그의 행태는 무엇보다 “경제 분석과 전망 상의 당연한 불확실성을 변덕스런 정책 평가 리스크로 곧바로 전환시킨” 것이라는, 다시 말해 불확실성을 아무런 여과없이 그대로 노출한 것에 불과하다는 얘기다.
그리고 이른바 “데이터 의존 전략”에 기반해 매번 데이터 추이에 일희일비하던 시장의 행태도 역시 마찬가지인 셈이다.
이런 맥락에서 로치는 아예 지난 2006년 5~6월의 글로벌 금융 불안, 혹은 그의 표현대로라면 “리스크 축소 거래”(risk reduction trade)가 역사에 이른바 “버냉키 시험”(Bernanke test)으로 자리매김될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사실상 ‘인과응보’였다는 지적인데, 다행히도 그 파장은 적어도 지금으로서는 대충이나마 수습된 실정이다. 물론 이제 시작일 뿐이라는 우려도 아직 상존해 있지만 말이다.
좌우간, 버냉키 스스로 지적한 것처럼, “보다 많은 말”, 즉 추가적인 정보나 견해의 무분별한 제공은 투명성 혹은 개방성의 진작이 아니라 오히려 더 많은 혼선만 유발할 수 있다. 그도 이미 “FOMC 회의의 TV 중개”는 가당치 않다고 지적한 바 있다. 결국 커뮤니케이션에도 일정한 기준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뉴스핌 장보형 객원이코노미스트]
※본 특집의 저자인 장보형은 연세대학교 경제학과와 한신대 대학원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지난 10여년간 국내 정보컨설팅 업체인 와이즈 인포넷에서 '국제금융/경제 팀장'을 맡아 국제 금융시장과 세계 경제 동향 점검 및 이슈 분석을 전담한 후, 현재는 '글로벌 마켓 이코노미스트'로서 프리랜서 활동을 하고 있으며, 올해부터 뉴스핌 객원 이코노미스트로 합류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