② 그린스펀의 “균형잡힌 비밀주의”와 버냉키의 “명시주의”
그렇다면 커뮤니케이션 혹은 투명성․개방성의 증대는 어느 정도가 적절한가? 사실 이 문제를 두고 연준은 이미 오래 전부터 고민을 거듭해 왔다.
일단 과거에는 보다 많은 정보의 제공이 불필요하게 시장 변동성을 조장할 수 있다는 게 연준, 아니 글로벌 중앙은행 전반의 주류 시각이었다. 특히 영국의 전설적인 중앙은행가 몬태규 노먼은 “결코 설명하지도, 변명하지도 말라”는 좌우명으로 유명하다.
그리고 연준도 199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정책 결정을 공개해 달라는 대내외의 요구에 대해 ‘시장의 과민반응’을 경계하며 완강히 저항했다.
실제로 1994년 이전까지만 해도 연준은 금리 변경 사실을 공표하지 않았는데, 따라서 시장에서는 그저 연준의 ‘공개시장 조작’만을 지켜보며 그 여부를 추론할 따름이었다. 이른바 ‘페드 워처’가 몸값을 날리던 시절도 이 때였다.
특히 폴 볼커 전 연준 의장은 투명성의 가치에 대해 오랫동안 회의적이었던 인물이다. 그는 아예 시장에 충격을 주기를 선호한다고 말하기도 했는데, 자칫 투자자들이 금리 향방에 대해 과도한 확신을 갖게 돼 너무 과도한 리스크를 추구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불과 얼마 전까지 연준의 금리 행보의 확실성과 결부된 예의 ‘과도한 리스크 감수’ 행태를 반성해 볼 수 있는 대목이다. 볼커는 2006년 초 한 컨퍼런스에 참석해서도, “다소간의 건설적인 불확실성을 선호했다”고 실토한 바 있다.
그러나 그린스펀 시대 중반에 접어들며 연준도 달라지기 시작했다. 1994년 2월 그린스펀이 전격적으로 금리 결정 사항을 공표하기로 결정한 것. 이후 투명성과 개방성 혹은 커뮤니케이션의 개선을 향한 대장정이 시작됐다. “신전의 문이 열린” 것이다.
하지만 정작 그린스펀이야말로 “모호함의 대명사”라 할 수 있다. 그의 모호한 수사법, 혹은 그 자신의 표현대로 “들리는 것보다 덜 말하기”(says less than it sounds)라는 표현 방식은 익히 유명하다.
그의 이런 태도는 무엇보다 시장 커뮤니케이션의 한계에 대한 인식에서 비롯된 것이다. 중앙은행 자신이 경제 인식이나 전망에서 각종 불확실성과 단서에 굴복할 수밖에 없고, 또 시장이라는 게 본래 한편으로 ‘합리적 태만’, 또 한편으로 ‘과민 반응’에 취약한 때문이다.
그리고 다양한 구성원들로 채워진 연준 내 각양각색의 이견들을 여과없이 노출하는 것이 과연 타당한가 하는 점에 대해서도 여전히 문제점이 제기된다.
특히 미국의 특징이기도 한데, 분권화와 중앙집권화, 그리고 민관(民官)의 절묘한 균형에서 창출된 연준인 만큼 통일된 시각이나 견해를 도출하기가 더더욱 힘들다고 할 수 있다. 사실 위원회 구조가 지니는 이런 측면은 버냉키도 이미 주지하고 있는 바다.
그 역시 “FOMC가 흔히들 생각하는 것처럼 ‘단일 행위자’가 아니라는 점”에 주목하며, “최상의 의지에도 불구하고, 세부적인 전망에 관해 FOMC의 컨센서스를 도출하는 것은 언제나 단기적으로는 극히 힘든 일일 수밖에 없고, 따라서 FOMC 커뮤니케이션 상에 일정한 모호성은 불가피하다”고 지적한다.
나아가 일부 전문가들은 “연준을 보다 민주적으로 만드는 것이 전세계가 미국의 중앙은행에게서 기대하는 강력한 리더쉽과 양립불가능하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리고 세인트루이스 연방준비은행의 고문을 역임한 바 있는 마이클 빌롱지어는 “싫건 좋건 연준은 시장을 움직일 수 있는 능력을 지니고 있고, 옳건 그르건 시장에 다양한 메시지를 보내는 12명의 지역 연준 총재와 [의장을 제외한] 6명의 이사들을 모두 받아들일 수 없다”고 역설한다.
사실 버냉키도 취임 초기 몇 차례 커뮤니케이션 파문의 경험을 통해 시장의 이런 행태를 절감한 바 있다. 반면 그린스펀은 오히려 이런 시장 행태를 수용하며 사실상 즐긴 셈인데, 자신의 각종 연설이나 증언 등에서 ‘모호한 신호’를 담았던 것도 바로 이런 연유에서다.
하지만 이제 버냉키는 다르다.
그는 자신의 전망 기반 패러다임을 본격화하면서 모호한 시그널 대신 신중한 전망을 앞세우고 있고, (그린스펀적인 의미에서) 시장과의 과도한 불장난도 기피하고 있다. 나아가 연준 의장으로서 자신을 앞세우기 보다는 연준이라는 제도 자체의 뒤에 숨으려는 모습을 보인다.
이런 맥락에서 역시 ‘페드 워처’로 이름이 높은 폴 맥컬리는 “이제 버냉키를 독해하는 것은 단지 한 문구나 특정한 발언에 집착하기 보다는 그의 전체 연설 내용을 읽을 것과 또한 그의 전망과 목표에 대한 그 자신의 설명에 보다 많은 관심을 기울일 것을 요구한다”고 평가했다. 그리고 이제 “그린스펀 식의 사운드 비트(Greenspan-style sound bites)는 뒤로 밀려나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버냉키는 취임 이후 주요 관심사로 이런 커뮤니케이션 문제를 고민하고 있다. 또 그 일환으로 연준의 오랜 베테랑인 도널드 콘 연준 이사회 부의장을, 커뮤니케이션 문제를 담당할 연준 내 소위원회 책임자로 앉혔다. 그러나 콘도 최근 미국 금융시장에서의 과도한 금리인하 기대와 관련해 “충격을 받았다”고 실토한 바 있다.
물론 그렇기 때문에 더욱 적극적인 커뮤니케이션, 그것도 (버냉키가 설파하듯이) “정성적인(qualitative) 커뮤니케이션의 한계”를 뛰어넘어 구체적인 인플레이션 타겟의 설정 등과 같이 “정량적인(quantitative) 정보”를 포괄하는 방향으로 제도적 차원의 진전이 필요하다는 얘기로 받아들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 못지않게 시장 커뮤니케이션 자체의 한계를 역설하는 대목으로도 읽을 수 있을 것이다.
다시 말해 그린스펀의 “균형잡힌 비밀주의”에서 ‘포스트 그린스펀 시대’ 버냉키의 “명시주의”로 이행해 가는 과정에서 각종 불확실성에 대한 조정은 아직도 한창 진행인 셈이며, 이런 가운데 시장 혼선이 여전히 지속되고 과민반응도 일상화되고 있는 모습이다.
잠재적으로 상호 충돌의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을 것이다. 특히 대규모 계량 모형과 세련된 경제학, 그리고 정책 현실의 풍부한 경험을 기반으로 한 버냉키의 이른바 전망 기반 패러다임이 실은 시장과의 커뮤니케이션 과정에서 제대로 소화될 수 있을지 의구심도 제기된다.
시장의 근시안적 속성을 감안한다면, 오히려 ‘소화불량’의 여지가 크다고도 할 수 있다. 특히 그의 ‘전망 기반 패러다임’을 예의 ‘데이터 의존 전략’으로 곡해(?)하는 행태가 그 단적인 예인 셈이다.
[뉴스핌 장보형 객원이코노미스트]
※본 특집의 저자인 장보형은 연세대학교 경제학과와 한신대 대학원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지난 10여년간 국내 정보컨설팅 업체인 와이즈 인포넷에서 '국제금융/경제 팀장'을 맡아 국제 금융시장과 세계 경제 동향 점검 및 이슈 분석을 전담한 후, 현재는 '글로벌 마켓 이코노미스트'로서 프리랜서 활동을 하고 있으며, 올해부터 뉴스핌 객원 이코노미스트로 합류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