③ 인플레이션 타겟팅 도입...아직은 신중하고 더딘 행보
버냉키 시대 최대 현안으로 시장에서 관심을 끌고 있는 인플레이션 타겟팅 문제는 당분간 획기적인 진전은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아직 내부적으로 이견이 큰 상황에서, 신임 의장의 상대적으로 여린 지도력 하에서는 합의 도출에 상당한 시간 소요가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물론 최근 버냉키를 정치적, 이론적으로 보좌할 일부 인사들(프레드릭 미시킨 이사 등)의 가세로 점차 무게 중심이 그의 구상 쪽에 쏠리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컨센서스를 중시하는 연준의 관행과 그의 성향 상, 그리고 쉽게 매듭짓기 힘든 세부적 쟁점들이 산적해 있다는 점에서 당장에 뚜렷한 성과를 도출하기는 힘들 것이라는 게 중론이다.
일단 현재 연준의 기류를 보자면, 인플레이션 타겟팅 혹은 명시적인 수치적 인플레이션 ‘타겟’(target)과 같은 엄격한 의미의 ‘타겟’보다는 다소 유연하고 온건한 ‘목표’(objective)로 쏠리고 있다는 게 상당수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즉, 물가 안정을 특권화한다는 혐의를 받고 있는 ‘타겟’이라는 표현 대신 단지 한 가지 구체적인 ‘목표’일 뿐이라는 표현법을 활용하는 식으로 기류가 흐르고 있다는 것. 따라서 고용이나 산출 등과 같은 다른 관심사도 배제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수치적 인플레이션 목표의 설정 자체에 대한 회의적인 입장도 상존한 실정이다. 특히 지난해 중간선거에서 민주당의 압승으로 워싱턴 정가의 기류가 일종의 “경제적 포퓰리즘(polulism)”으로 바뀌고 있다는 점도 부담이다. 이런 맥락에서 아예 명시적인 차원이 아니라 암묵적인 혹은 ‘연성’(soft) 타겟 방식이 현실성이 크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그리고 설령 어떤 형식으로든 수치적인 인플레이션 목표의 설정에 합의한다 치더라도, 이는 제 1보에 지나지 않는다. 여전히 각종 세부적 쟁점들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1) 과연 어느 정도의 목표가 적절한 것인지, 그리고 여기서도 (2) 특정한 타겟(가령 2%?)을 잡는 게 맞는지 아니면 느슨한 레인지(가령 1~2%?)가 보다 타당한 것인지, 나아가 (3) 인플레이션의 척도는 무엇(가령 여전히 코어 PCE 디플레이터?)이어야 하며, 또 (4) 이런 목표의 달성과 관련된 시계(時界: 가령 2년?)의 설정이나 (5) 인플레 전망을 얼마나(모조리?) 공개해야 할 것인가 하는 점 등 말이다.
먼저 첫 번째와 두 번째 쟁점과 관련해서는 대체로 인플레이션 목표로 일정한 레인지(range: 범위)를 설정하는 쪽에 무게가 실리고 있지만, 과거 버냉키가 제기했던 이른바 “안도지대”(comport zone) 1~2%에 대해서는 아직 컨센서스가 이뤄지지 못한 실정이다.
사실 연준 내부적으로는 디플레이션 리스크 등을 감안할 때 이 수준이 너무 낮다는 견해(2~2.5% 정도가 적정?)가 부상하고 있지만, 글로벌 차원으로 시각을 돌려보면, 특히 BIS 등과 같이 최근 과잉 유동성 문제와 결부돼 맹아적인 인플레 압력을 감안할 때 아예 제로 수준으로까지 인플레이션 목표를 낮춰 잡아야 한다는 발본적인 제안도 제기되고 있다.
한편 세 번째 쟁점과 관련해서는, 진정한 인플레이션 척도로서 그린스펀의 탁월한 성과 중 하나라 할 ‘코어 PCE(개인소비지출) 디플레이터’의 효용에 대해 점차 회의론이 부상하고 있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린스펀이 코어 PCE 디플레이터의 가치에 주목할 때만 해도, 전통적인 물가지수, 즉 CPI의 ‘상향편의’ 문제가 심각했고, 다른 한편으로 PCE 디플레이터야 말로 소비자들의 구매력을 측정하는 척도로 실제 소비지출 패턴을 잘 반영한다는 인식이 비교적 굳건했었다.
하지만 최근 수년간 GDP 통계의 대폭적인 수정과 맞물려 PCE 및 PCE 디플레이터도 대대적인 수정을 거치고 있는 데다, 통계적으로 CPI의 상향편의를 유도했던 문제점들도 이제는 상당부분 시정된 실정이다. 그리고 식료품과 에너지를 제외한 ‘코어’ 자체가 과연 적절한 인플레 척도인지에 대한 의구심도 점차 고조되고 있다.
한편 목표 달성의 시계 문제는 그간의 경험상 2년 내외가 선호되고 있으나, 특정한 시기를 못박기보다는 탄력적인 의미에서 ‘중기’라는 기준이 적절하다는 견해도 제기된다. 역시 인플레이션 억제만이 아니라 실업 억제 혹은 최대한의 성장 도모라는 ‘이중 임무’를 감안해야 한다는 논리에서다.
그리고 버냉키도 한 강연에서 인플레이션 타겟과 관련해 이른바 “최적 장기 인플레이션율”(the optimal long-run inflation rate: OLIR)이라는 개념을 활용한 바 있는데, 역시 특정한 시계를 못박는 개념이 아니며, 나아가 그 의미도 “인플레이션과 산출 목표 둘 다와 관련해 상당한 시간에 걸쳐 최상의 평균 실적을 달성하는 장기적인(균제상태의) 인플레이션율”이라고 정의하면서 상당한 유연성을 발휘하고 있는 모습이다.
마지막으로 인플레이션 전망을 얼마나 상세히 공개해야 하는가 하는 점도 역시 골치 아픈 쟁점이다. 일단 목표 달성이 어떻게 가능한가 하는 점을 판단하기 위해서는 인플레이션 전망의 확정이 선결요건이 아닐 수 없다.
지금 연준은 ‘중심 경향’(certral tendency)과 더불어 ‘레인지’(range) 형태로 FOMC 참석자들의 전망을 포괄해 제시하는데, 각자가 이미 여러 상이한 가정을 전제한 것이기 때문에 평면적으로 비교될 수 있는 성질의 것은 결코 아니다. 그렇다면 누구의 전망을 기준으로 삼아야 하는가? 혹은 단일한 전망에 대한 합의가 가능한가, 그렇다면 어떻게 가능한가? 역시 답보다는 의문이 많다.
게다가 인플레이션 타겟팅 도입과 관련해 보다 근본적인 쟁점 중 한 가지는 바로 오늘날 인플레이션 과정 자체에 대한 이해가 여전히, 아니 더욱 일천하다는 점이라 할 수 있다.
실제로 도널드 콘 연준 이사회 부의장 등 일부 연준 관계자들은 이런 측면에 주목하면서 인플레이션 타겟팅의 도입이 현실화될 가능성에 대해 회의적인 태도를 취한다. 여기서 특히 관심을 끄는 것은 바로 세계화가 인플레이션에 미칠 영향이라 할 것이다.
사실 이 문제야 말로 임기 말 그린스펀의 최대 고민거리, 혹은 “마지막 지적 도전” 중 하나였던 것으로 알려진다. 그의 독특한 방법론을 빗대자면, 역시 또 하나의 “누락 고리”(missing link)를 찾고 있는 셈이다. 그의 회고록에서도 이 문제가 집중 조명될 계획으로 알려진다. 물론 아직은 분명한 답을 찾을 수 없지만 말이다.
다른 한 가지 문제는 최근 들어 인플레이션 리스크가 새로운 쟁점으로 부상하고 있다는 점이라 할 것이다. 특히 위 첫 번째 쟁점과 맞물려 지금 디스인플레이션 기조의 한 가지 축으로 각광받던 ‘세계화 순풍’의 반전 가능성에 많은 관심이 쏠리고 있다.
그리고 인플레이션 타겟팅, 특히 수치적 인플레이션 목표의 설정에 대해 회의적인 시선이 아직 큰 상황에서, 또 수장 교체의 부담이 말끔히 해소되지 못한 상황에서, 경제 내 인플레이션 압력, 혹은 인플레이션 리스크가 확고히 제어되지 못하는 이상에는 성급히 ‘통화정책 체제의 변화’를 도모하다가 정치권으로부터 역공에 직면할 수 있다. 당분간은 인플레이션 리스크의 척결 혹은 인플레이션 기대 안착이 급선무지, 제도 변화를 운운하기는 힘든 셈이다.
좌우간 버냉키 시대 연준은 이미 내부적으로 커뮤니케이션 문제를 집중 탐구할 소위원회를 구성, 지난 8월 FOMC 회의 이후 논의를 계속하고 있다. 올 여름 말 정도면 결론이 내려질 계획인 것으로 알려진다.
여기서 인플레이션 타겟팅 등 그의 취임과 더불어 현안으로 부상한 쟁점들이 주요 안건으로 다뤄지고 있지만, 이런 굵직한 현안들에 대해 당장에 답이 내려지기 보다는 간접적인 방식으로 점진적인 투명성 및 커뮤니케이션 개선에 치중할 공산이 큰 것으로 판단된다.
한편 그 외에도 연준과 월가 간에 상호이해 증진을 목적으로 별도의 통화정책 포럼(U.S. Monetary Forum)을 개최키로 한 점도 주목을 끈다. 특히 오는 3월 9일 예정된 제 1회 포럼의 주제는 ‘인플레 결정 과정’과 ‘유동성이 통화정책에 대해 지니는 중요성’으로, 역시 버냉키노믹스의 향배와 관련해 비상한 관심을 불러일으킨다.
[뉴스핌 장보형 객원이코노미스트]
※본 특집의 저자인 장보형은 연세대학교 경제학과와 한신대 대학원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지난 10여년간 국내 정보컨설팅 업체인 와이즈 인포넷에서 '국제금융/경제 팀장'을 맡아 국제 금융시장과 세계 경제 동향 점검 및 이슈 분석을 전담한 후, 현재는 '글로벌 마켓 이코노미스트'로서 프리랜서 활동을 하고 있으며, 올해부터 뉴스핌 객원 이코노미스트로 합류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