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핵심 요약
beta- 탈북민 최가희 씨가 11일 포항서 여성 정비사로 일했다
- 그는 편견을 넘어 고난도 정비를 혼자 해내는 기능공이 됐다
- 남편과 1급 정비소를 꿈꾸며 자격증과 진학을 준비하고 있다
!AI가 자동 생성한 요약으로 정확하지 않을 수 있어요.
통장 빌려줬다 범죄 연루 시련도
"남편과 1급 정비소 차리는 게 꿈"
[서울=뉴스핌] 이영종 통일북한전문기자 = 포항의 한 자동차 정비소. 리프트가 천천히 올라가고 공구로 바닥을 두드리는 소리가 적막을 깨운다. 엔진오일 특유의 냄새가 작업장 안을 가득 채운 가운데, 작업복을 입은 정비사들이 분주히 움직인다.
그 사이 능숙한 손놀림으로 차량 아래를 살피는 한 여성이 눈에 띈다. 170cm가 넘는 훤칠한 키의 그녀는 커다란 엔진오일 통을 말끔히 비운 뒤에야 하얀 장갑을 벗고 사무실로 향했다.

남한 정착 16년 차 탈북민이자, 포항 '자동차정비제이'에서 2년째 정비사로 일하고 있는 최가희(37) 씨. 그녀가 선택한 것은 단순한 직업을 넘어, 오랫동안 당연하게 여겨져 온 '여성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직업'이라는 고정관념에 묵묵히 균열을 내는 일이었다.
자동차 정비는 무거운 부품을 다루고 기름때를 묻히며 일하는 특성상 여전히 남성들에게조차 힘든 직업으로 꼽힌다.
편견의 뿌리는 생각보다 단단했다. 하루아침에 뽑아낼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녀는 공구를 들고 하루하루의 경험을 쌓으며 그 단단한 뿌리를 조금씩 흔들어 나갔다.
편견의 뿌리를 흔들다… "한계를 넘어선 순간"
작은 부품을 다루고 엔진오일을 교체하는 일은 수없이 반복하며 익숙해졌지만, 진짜 고비는 하부 작업이었다. 차량 아래에서 무거운 부품을 분리하고 조립하는 일은 단순한 체력만으로는 해낼 수 없는, 숙련된 기술과 정확한 판단이 필요한 작업이었다.
처음에는 부품 하나를 분리하는 데도 진땀을 흘렸다. 몇 번이고 자세를 고쳐 잡으며 씨름해야 했고, 작업 하나를 끝내는 데도 적지 않은 시간이 걸렸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공구를 다루는 방법, 몸을 지탱하는 자세, 부품의 무게를 분산시키는 요령까지 하나씩 몸에 익었다. 경험이 쌓이면서 이제는 두 사람이 함께해야 했던 작업도 차분한 손놀림으로 거뜬히 혼자 해내는 기능공으로 성장했다.
최 씨는 "얼마 전 고난도 정비가 필요한 차량을 처음부터 끝까지 혼자 수리한 적이 있어요. 점검 과정에서 다른 부품의 이상을 발견해 고객님께 설명드리고 정밀 수리를 진행해 문제를 모두 해결했죠. 작업을 마치고 시동이 걸리는 순간 '나도 해냈구나'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습니다"라고 말했다.
그동안 흘린 땀과 포기하지 않았던 시간들이 한꺼번에 떠오르더라는 것이다. 고객에게는 자동차 한 대가 수리된 순간이었겠지만, 최 씨에게는 스스로의 한계를 넘어선 날로 오래 기억될 것이란 얘기다.

낯선 땅의 시련...'금융범죄 피의자'로 조사
지금은 정비소를 찾는 고객들로부터 '믿고 맡길 수 있는 멋진 여성 정비사'라는 찬사를 받지만, 남한 정착 초창기의 삶은 십 평 남짓한 방에 웅크린 채 세상 밖으로 나서기조차 두려워했던 소심한 청춘이었다.
가장 힘들었던 것은 경제적 어려움보다 '말'이었다. 북한 말투는 사람들 앞에서 자신을 작아지게 만들었고, 자연스러운 대화조차 큰 용기가 필요해 자존감마저 무너뜨렸다.
특히 정착 2년 차에 겪은 일은 잊을 수 없는 상처이자 뼈저린 교훈이 됐다. 같은 동네에 살던 북한 출신 지인이 "살아가려면 돈이 돈을 버는 구조를 알아야 한다"며 빈 통장을 잠시 빌려달라고 부탁한 것이다.
사기나 범죄와는 전혀 관련이 없다는 말에 선의로 빌려주었던 통장은 타인의 금융범죄에 악용되었고, 그녀는 한 번도 상상해 보지 못한 '피의자'라는 이름으로 경찰 조사를 받아야 했다.
"그 일을 겪으면서 명의와 통장을 함부로 빌려주면 안 된다는 걸 절실히 깨달았어요."
아픈 기억은 원망으로 끝나지 않았다. 그녀는 주변 탈북민들에게 명의와 통장은 어떤 이유로도 절대 빌려주서는 안 된다고 거듭 당부하며, 상처를 값진 배움으로 바꿨다.
간호사에서 탈북, 그리고 다시 찾은 꿈
1989년 함경북도 회령에서 태어난 최 씨에게 어린 시절 가장 선명한 기억은 아버지의 작업복이다. 자동차를 고치던 아버지는 늘 기름 냄새를 밴 채 집으로 돌아왔고, 그녀에게 그 냄새는 세상에서 가장 익숙한 아버지의 향기였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군 병원 소아과 간호사로 근무했던 그녀는 생명을 살려야 할 병원이 현실의 벽 앞에 생명을 포기해야 하는 공간이 되는 비극을 마주해야 했다. 제대로 된 약 한 번 써보지 못한 채 아홉 살 어린 환자를 품에서 떠나보내야 했고, 아이를 안은 채 복도에서 "살려달라"고 절규하던 아버지는 아직도 그녀의 뇌리에 깊게 박혀 있다.

'내 아이도 언젠가 이런 세상에서 살아야 할까.' 두려움 속에 부모님 몰래 두만강을 건넜고, 중국에서의 숨죽인 삶을 거쳐 사촌 언니의 도움으로 마침내 대한민국에 도착했다.
북한 병원에서 생명을 살리지 못했다는 자책을 안고 살아가야 했던 간호사는 대한민국에서 수없이 넘어졌지만 끝내 주저앉지 않았다. 무용강사, 회사원을 거쳐 이제는 자동차 정비사로 자신의 길을 단단하게 다져나갔다.
"버티는 사람이 결국 이깁니다"
남한 출신 남편을 만나 결혼해 두 자녀의 어머니가 된 그녀. 남편을 처음 만났던 날 마음을 움직인 것도 어린 시절 아버지에게서 맡았던 기계 기름 냄새였다.
자동차 정비사인 남편에게서 풍기던 그 냄새는 아버지를 떠올리게 했고, 새로운 가족과 함께 살아가는 오늘의 냄새이자 그녀를 다시 일어서게 한 스승의 향기였다.
현재 최 씨는 자동차정비 기능사 자격증 취득을 준비하고 있으며, 더 높은 전문성을 갖추기 위해 산업기사 자격증 도전에 이어 대학 진학까지 꿈꾸고 있다.
언젠가는 남편과 함께 자동차 검사시설을 갖춘 1급 정비소를 운영하는 것이 최종 목표다.
그녀가 강조하는 한마디는 거창한 성공담이나 특별한 철학이 아니었다. 그저 "버티는 사람이 결국 이기더라고요"라는 말이다. 하지만 그 짧은 한마디에는 북한에서의 삶과 두만강을 건너던 밤, 낯선 나라에서 흘린 눈물, 그리고 정비소에서 흘린 땀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더 나은 정비사가 되기 위해 공부하고, 더 좋은 엄마가 되기 위해 살아가며, 더 나은 내일을 위해 오늘도 작업복을 입는 최가희 씨. 기름 냄새 속에서 삶의 진짜 시동을 켠 그녀의 내일을 응원해 본다.
<뉴스핌-남북하나재단 공동기획>
yjlee@newspim.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