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핵심 요약
beta- 6월 25일 제11연대는 임진강 남안에 방어선을 구축했다.
- 국군은 철수 병력을 구하려 임진강 철교 폭파를 늦췄다.
- 공병대의 두 차례 폭파 시도는 실패해 철교가 남았다.
!AI가 자동 생성한 요약으로 정확하지 않을 수 있어요.
변상문의 '화랑담배'는 6·25전쟁 이야기이다. 6·25전쟁 때 희생된 모든 분에게 감사드리고, 그 위대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제목을 '화랑담배'로 정했다.
임진강 철교, 끊지 못한 퇴로
1950년 6월 25일 아침, 국군 제1사단의 전선은 임진강을 향해 밀리고 있었다.
38도선에 배치되었던 제12연대와 제13연대 제3대대가 북한군과 교전하며 철수했다. 개성은 북한군에게 넘어갔고, 장단·고랑포·아곡동의 도로에는 전차와 보병이 나타났다.
제1사단은 문산리에 전술지휘소를 설치했다. 그러나 사단장과 참모들이 펼친 지도 위에는 하나로 이어진 방어선이 없었다. 전방부대와의 통신이 곳곳에서 끊겨 제12연대의 병력과 위치도, 제13연대 제3대대의 도하 여부도 정확히 확인하기 어려웠다.
병력과 화력은 부족했다. 휴가와 외출·외박으로 자리를 비운 장병들이 있었고, 일부 부대는 교육과 재편성 중이었다. 그사이 북한군의 포격은 경계진지를 흔들었고, T-34 전차는 국군의 사격을 받으면서도 남쪽으로 움직였다.
임진강 앞에서 그들을 막아야 할 부대는 사단 예비인 제11연대였다.

6월 25일 08:30. 수색에 있던 제11연대에 출동명령이 내려왔다.
연대장 최경록 대령은 전날 밤 육군본부 장교구락부에서 열린 재경부대 주요 지휘관과 참모들의 연회에 참석한 뒤 아직 부대로 돌아오지 않은 상태였다. 부대에서는 군장검사가 진행되었다. 외출·외박을 나갔던 장병들이 속속 복귀하고 있었다.
북한군이 전면 남침을 개시했다는 소식에 처음에는 또 한 차례의 비상이라고 여긴 장병도 있었다. 그러나 개성이 점령되었다는 보고가 들어왔다. 북쪽에서는 포성이 들렸다. 장병들은 전투장구를 착용하고 탄약을 지급받았다.
출동 준비가 한창일 때 육군본부 참모장이 제11연대에 들렀다. 그는 장병들에게 제11연대의 명예로운 전통을 이어 달라고 격려했다.
약 30분 뒤 최경록 대령이 부대로 돌아왔다. 그는 대대장과 직할대장을 소집해 문산으로 이동하고 임진강 방어선을 형성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11:00부터 15:00 사이, 열차가 수색과 문산을 세 차례 오갔다. 장병들은 열차에 나누어 올라 북쪽으로 향했다. 문산에 도착한 병력은 약 980명이었다.
그들은 도착하는 대로 방어지역으로 흩어졌다.
제1대대는 문산리 북서쪽 약 3.7km 지점인 마정리 일대 56고지에 주력을 배치했다. 한 개 소대는 도하 지점을 감제할 수 있는 금촌리 일대로 전진했다. 제2대대는 임진나루터 남쪽 무명고지의 방어진지를 점령했고, 제3대대는 적전리 구릉지대에서 연대예비로 대기했다. 제1사단의 전술지휘소는 문산리에서 파주리로 옮겨졌다.
며칠 동안 내린 비로 임진강의 수위는 높아져 있었다. 문산리–적성 사이에서 강의 너비는 300m에서 1,000m에 이르렀다. 강물은 빠르게 흘렀고, 양안의 저지대에는 논과 밭이 이어졌다. 중장비가 도하장비 없이 건너기는 어려운 상태였다.
임진강은 북한군의 진격을 늦출 수 있는 천연장애물이었다. 하지만 강 북쪽에는 아직 제12연대와 제13연대의 일부 병력이 남아 있었다.
철교를 끊으면 북한군의 길도 끊긴다. 동시에 아군의 퇴로도 끊긴다.
제11연대는 두 상황을 함께 지켜봐야 했다.
제1대대장은 임진강 철교의 방어태세를 강화하도록 명령했다. 제2중대장 김홍진 중위는 중대 병력을 철교 부근에 배치하고, 한 개 소대를 철교 동쪽 무명고지로 전진시켰다.
철교 북쪽에서 제12연대 장병들이 내려오고 있었다. 부대와 떨어진 낙오병, 부상병, 장비를 버리고 걸어온 병사들이 뒤섞여 다리를 향했다. 그들이 건너는 동안 북한군도 철교로 가까워졌다.
13:00 무렵, 임진강 철교 대안의 무명고지에 배치된 제2중대 제1소대가 급편방어진지를 완성했다. 진지 앞에 보이는 1번도로는 철교로 이어졌다.
도로 북쪽에서 전차가 나타났다. 그 뒤에는 북한군 기마대가 따랐다.
제1소대 장병들은 진지에 몸을 낮추고 접근 상황을 살폈다. 소총탄으로 전차를 멈출 수는 없었다. 전차는 철교 앞에서 일단 멈춰 섰다.
그사이에도 국군 철수병력은 강을 건너고 있었다.
15:00경, 제2중대 국지경계초소 앞에 북한군 기마대가 다시 나타났다. 곧 교전이 시작되었다. 이어 규모를 알 수 없는 북한군 병력이 모습을 드러냈다. 제12연대 장병들이 철교를 건너는 바로 뒤로 북한군 선두가 따라오고 있었다.
강창진 중위는 상황을 보고했다. 제12연대 낙오병을 수습하고 북한군을 저지하려면 화력지원이 필요했다. 그는 500명에서 600명가량의 제12연대 병력을 급히 편성하고 국군 포병의 지원사격을 요청했다.
강 남쪽의 국군 포병이 철교 대안의 북한군 접근로에 포탄을 떨어뜨렸다. 북한군의 움직임이 잠시 멈춘 사이, 흩어졌던 제12연대 장병들이 철교를 건넜다.
16:00에는 수도경비사령부 소속 57mm 대전차포 1개 중대, 6문이 제11연대에 배속되어 도착했다. 외출·외박과 휴가 중이던 장병 일부도 귀대하면서 연대 병력은 약 1,500명으로 늘었다.
장병들은 진지를 파고 기관총과 박격포를 배치했다. 57mm 대전차포도 전차가 접근할 길을 향해 사격 준비를 했다. 그러나 철교 북쪽에는 이미 북한군 전차가 와 있었다. 늘어난 병력으로도 제11연대는 완편 연대에 크게 미치지 못했다.
해가 기울 무렵, 북한군 제6사단 제15연대 주력이 임진강 철교 대안에 도달했다. 북한군은 제11연대 방어진지를 향해 산발적으로 포격했지만 곧바로 강을 건너지는 않았다.
남안의 장병들은 북쪽 도로와 철교를 번갈아 살폈다. 철수병력이 지나간 뒤에도 다리가 그대로 남아 있으면, 북한군 역시 그 길을 이용할 수 있었다.
경의선 철교는 평양–사리원–금천–개성–문산–서울을 잇는 교통로의 일부였다. 철교가 남으면 북한군은 병력과 물자, 차량을 남쪽으로 이동시킬 수 있었다. 제1사단은 전쟁 전부터 철교 폭파계획을 마련해 두었다.
문제는 시각이었다. 너무 일찍 폭파하면 강 북쪽의 아군이 건너지 못한다. 너무 늦으면 북한군이 철교에 접근한다.
제11연대장은 북한군이 철교 대안 가까이 왔다는 보고를 받고 사단장에게 폭파를 건의했다. 임무는 제1사단 공병대대에, 다시 공병대대 제3중대에 하달되었다.
제3중대장과 공병대원들이 철교로 향했다. 폭약을 장전하고 점화장치를 연결한 뒤 폭파지점에서 물러났다.
점화명령이 내려졌다.
장병들은 철교를 바라보았다. 그러나 폭발은 일어나지 않았다. 다리는 그대로 서 있었다.
제3중대장은 공병대원 두 명을 폭파지점으로 다시 보냈다. 두 대원은 북한군의 사격을 받으며 철교 위로 돌아가 끊어진 점화선을 찾았다. 총탄이 날아드는 가운데 몸을 낮춰 선을 다시 연결했다.

두 번째 점화가 시도되었다.
이번에도 폭약은 터지지 않았다.
북한군의 사격이 거세졌다. 철교 위에 더 머무르면 공병대원들이 희생될 수 있었다. 공병대는 끝내 철교를 파괴하지 못하고 철수했다.
임진강에는 물이 불어나 있었지만, 그 위의 경의선 철교는 끊어지지 않았다.
6월 25일 밤, 북한군은 철교 북쪽에 집결했고 제11연대는 남안의 방어진지를 지켰다.
다른 곳에서도 철수는 계속되었다. 제13연대는 고랑포 부근에서 임진강을 건넌 뒤 재정비했다. 제12연대 일부 병력은 북한군이 철교 대안을 완전히 장악하기 전에 다리를 건너 문산리로 물러났다. 제12연대 제1대대는 비리고개를 지나 장단반도로 철수방향을 바꾸어 석천리에 도착했다.
부대마다 강을 건너는 길이 달랐다. 철교를 걸어온 장병이 있었고, 나루터에서 배를 찾은 장병도 있었다. 배를 구하지 못한 병력은 물이 얕은 곳을 찾았다. 장비를 버리고 건넌 병사와 부상한 전우를 업고 건넌 병사가 남안에서 다시 부대를 찾아야 했다.
어둠 속에서도 철교는 보였다.
강 북쪽에서는 북한군이 다음 움직임을 준비하고 있었다. 강 남쪽의 제11연대 장병들은 진지를 지키며 철교를 살폈다. 북쪽 도로에서 전차 엔진음이 들려왔다.
임진강은 여전히 두 병력 사이에 있었다. 그러나 전차와 차량이 건널 수 있는 철교도 여전히 그 자리에 있었다.
제11연대가 급히 세운 방어선에서 가장 먼저 경계해야 할 길은, 끝내 끊지 못한 그 다리였다.
동쪽 파평산 일대에도 북한군이 접근하고 있었다.
/ 변상문 국방국악문화진흥회 이사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