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기사 최신뉴스 GAM
KYD 디데이
홈 금융

속보

더보기

[전문] 김중수 한국은행 총재 신년사

기사입력 :

최종수정 :

※ 본문 글자 크기 조정

  • 더 작게
  • 작게
  • 보통
  • 크게
  • 더 크게

※ 번역할 언어 선택

임진년 2012년의 업무를 시작하는 새해의 첫 아침이 밝았습니다. 지난 한 해를 되돌아보고, 올해 우리가 해야 할 일을 함께 다짐하기 위해, 우리 모두 이 자리에 모였습니다. 작년 오늘, 저는 지난 60년을 이어 온 유구한 역사와 전통을 초석으로 딛고, 새로운 도약을 위한 한국은행의 비전으로 “Global BOK”의 기치를 내걸었으며, 우리가 해결해야 할 세 가지 과제로서 글로벌 금융위기의 극복, G20 및 Basel회의 등 국제공조에 적극적 참여, 그리고 국가경제의 안정적 발전전략의 모색을 여러분에게 제시한 바 있습니다. 또한 “다양성, 유연성, 개방성”을 향후 조직운영의 세 가지 원칙으로 주창하였던 기억이 새롭게 떠오릅니다.

지난 일 년, 우리에게는 과거 그 어느 해에 못지않은 크고 작은 많은 변화가 불어 닥쳤습니다. 격변의 환경 속에서도 맡은 바 임무를 충실하게 수행해 온 임직원 여러분들의 노고에 우선 치하의 말씀을 드립니다. 국제경제 환경을 보면, 글로벌 금융위기가 유로지역의 국가채무문제로 전이되면서 전 세계경제의 지속적 성장과 안정의 걸림돌로 대두되었으며, 이러한 글로벌 여건은 대외의존도가 더욱 심화되어 온 우리 경제의 안정적 성장에 큰 위협요인으로 작동하여 왔습니다. 국내경제를 보면, 경제성장률은 당초 예상치보다 조금 낮은 3%대 후반에 머물 것으로 예상하고 있으며, 반면 물가는 물가안정목표치가 허용하는 상단 수치인 4%에 달해, 물가안정이 그 어느 때보다 더 중요한 국민적 관심사로 떠오른 상황입니다. 이와 동시에 최근에는 북한정세에 중대한 변화가 발생하는 등 우리 경제에 새로운 지정학적 잠재 불안요인이 추가적으로 대두되고 있는 실정입니다.

한편, 한은 내부적으로는, 주지하다시피, 한은법 개정이라는 역사적인 변화를 경험하였습니다. 중앙은행 조직에 근무하는 우리들의 감회가 관건이 아니라 향후 우리 경제의 운영에 있어서 중앙은행의 기여도가 과거와는 달라질 수 있다는 의미에서 감히 역사적이라는 표현을 사용하였습니다. 한 마디로, 현재도 진행되고 있는 글로벌 금융위기를 극복하고 미래의 금융위기를 방지하는 데에 있어서 중앙은행의 더 큰 역할을 기대하는 국민의 요구가 그러한 변화를 가능하게 했다고 말씀드릴 수가 있습니다. 이와 같은 국민의 높은 뜻을 받들어, 더 큰 책무를 수행해야 한다는 각오를 가슴에 다지면서, 여러분들과 지난 한 해를 회고하고, 우리가 당면한 대내외적 경제현상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지, 우리는 어떠한 중앙은행 위상을 만들어 나아가야 국가경제에 기여할 수 있는 것인지, 그리고 이러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서울 본부 뿐 아니라 지역본부와 국외사무소를 포함한 우리의 조직은 어떻게 변화해야 하는지, 직원들의 사고방식과 행동양태는 어떠해야 하는지에 대해 여러분과 생각을 공유하는 시간을 가지면서, 새해의 포부를 함께 열어 나아가고자 합니다.


<지난 일 년의 회고: 업무의 외연 확대와 능동적이며 진취적 기상 제고>

우선, 저는 지난 한 해 여러분들에게 우리의 업무를 다양화시키면서 질적으로 한 단계 더 높이는 데 힘을 모으자고 주창한 바 있습니다. 눈을 밖으로 돌려 넓은 세상을 보면서, 꿈을 높이 세워야 올바른 비전을 찾을 수 있다고 하였고, 우리나라가 글로벌 금융위기를 가장 먼저 극복하는 나라로 기록되기 위해 “불 꺼지지 않는” 한국은행을 만들어 국민들에게 보답하자고 하였습니다. 또한 다른 사람이 과거에 세워 놓은 특정한 이념에 매몰되어, 한국 특유의 특성을 도외시해서도 안 되며, 현재 변화하는 글로벌 추세를 이해하는 데에 뒤떨어져서는 더욱 안 된다는 점도 강조하였습니다.

지난 한 해 우리에게 일어난 가장 큰 변화는 무엇보다도 앞서 제기한 지난 12월 17일 시행된 한은법의 개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한국은행의 역할과 업무 영역이 넓어졌습니다. 이는 세계 각 중앙은행의 기능이 변화하고 있는 글로벌 조류 및 추세와 부응하는 것이었으며, 이에 따라 앞으로는 우리나라의 중앙은행도 국제무대에서 논의되고 있는 금융위기의 방지책 모색이나 금융규제 개혁노력에 적극적으로 동참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 핵심적 특징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금융안정에 유의하면서 통화신용정책을 수행하여야 하며, 연차보고서와 통화신용정책보고서 이외에 금융안정보고서를 추가로 법정보고서로 정례적으로 제출하게 되었고, 이러한 책무가 한국은행 업무수행에 있어서 획기적 변화를 초래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습니다. 한 가지 강조하고자 하는 것은 금융안정에 대한 책무는 중앙은행이 혼자서 담당할 수 있는 과제가 아니므로 유관 정부기관 및 관계 금융당국과의 상호 협조관계를 더욱 돈독하게 유지하면서 업무를 추진해야 한다는 점입니다.

둘째로, 10여명의 직원들을 IMF/BIS 등과 같은 국제기구 및 당행과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는 유수의 중앙은행에 중장기 연수를 보내어 국제적 경쟁력을 갖춘 전문가로 키우고 있으며, 동시에 국내에서도, 이에 상응할 수 있는 노력의 일환으로서, 세계적 석학과 세계 여러중앙은행의 직원들을 초빙하여 ‘글로벌 연수 및 세미나(GIP: Global Initiative Program)’와 같은 2주 기간의 매우 강도 높은 글로벌 인재양성프로그램을 정례적으로 운영하여 오고 있습니다. 이 이외에도 다양한 분야의 훈련프로그램을 제공하고 있으며, 이러한 노력은 우리 직원들의 경쟁력 향상과 전반적인 분석능력 함양에 긍정적으로 기여하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또한 상하이주재원을 개설함으로써 결과적으로 북경, 상하이, 홍콩의 세 곳에 거점을 두고 Greater China지역의 경제를 면밀하게 분석함으로써, 세계경제의 G2로 떠오르고 있는 지역경제의 동향을 넓고도 깊게 분석할 수 있는 기반을 갖춘 것도 결국은 국가경제 발전에 기여하는 중앙은행으로서의 업무수행에 일조를 하고자 하는 목적에서 시도되는 것입니다.

셋째로, 지역본부와 국외사무소의 위상과 면모를 일신함으로써 전 조직원이 서로 연관성을 갖고 유기적으로 업무를 추진하도록 하였고 이로써 조직전체의 생산성이 높아졌다고 판단하고 있습니다. 지역경제의 발전에 중앙은행이 기여하기를 기대하는 지역의 수요에 부응하기 위해 당행의 지역본부가 주축이 되어, 각 지역의 경제전문가, 지방정부의 경제정책 담당자 그리고 당행 본부의 관련 정책부서가 공동 책임 아래 정책과제를 수행함으로써 실효성 있는 대안들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이미 몇몇 지방정부의 최고 정책책임자들이 한국은행의 제안을 정책으로 채택하기 시작하였다는 것은 매우 고무적인 결과라고 하겠습니다. 국외사무소도 과거에 비해 시의성이 있는 과제를 선정하여 심도 있는 분석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성과 이외에도 외환부문의 거시건전성 부담금제도 도입, 일본 및 중국과의 신속한 통화스왑 체결을 통한 글로벌 금융안전망(Global Financial Safety Net) 확충, 아시아•태평양 지역내 금융안정위원회(FSB) 회원국과 비회원국 등 16개국이 참여하는 지역그룹 통합회의(FSB Regional Consultative Group for Asia)에서 한국은행의 초대 회원국 의장국 수임 그리고 동아시아•대양주 중앙은행 임원회의(EMEAP), 동남아 중앙은행기구(SEACEN)와 같은 국제협의체의 의장직을 동시에 수행하고 있는 것들은 중앙은행 자체로서 뿐 아니라 국위를 선양하는 데에도 작지 않은 기여를 한 업적이라고 평가할 수 있겠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많은 업적과 변화에도 불구하고, 물가안정목표제(inflation targeting)를 운
용하고 있는 중앙은행으로서 우리의 마음을 에워싸고 있는 부담감은 작년에 소비자물가가 허용 목표치의 상단에 이르렀다는 것에 연유합니다. 물가안정을 최고의 가치로 삼고 있는 중앙은행으로서 물가안정목표를 달성할 수 있는 각종 수단과 우리의 노력에 대한 면밀한 분석과 평가가 다시금 요구되고 있는 시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중앙은행이 할 수 있는 일과 할 수 없는 일들에 대하여, 또한 급변하는 국제금융 환경에서 통화신용정책이 동원할 수 있는 정책수단과 그 효과에 대해서 각 경제주체들에게 투명하고 소상하게 설명하는 소통의 노력의 중요성을 우리 모두 심각하게 느꼈을 것입니다. 물가상승률을 관리하는 데에 있어서 통화신용정책이 현실적으로 만병통치약적인 역할을 할 수 없다고 할지라도, 그리고 비록 우리가 나름대로 최선의 노력을 다했다고 스스로 평가하더라도, 사회에서 제기되고 있는 비판에 대해서는 매우 겸허한 마음과 자세로 수용할 부분이 어떤 것인지에 대한 진지한 검토를 수행해야 하며, 우리가 미진했던 부문이 있었는지, 실력을 더 쌓아 조금 더 잘 할 수 있는 부분은 무엇이었는지에 대해서 철저하게 점검하는 노력이 요구된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현 경제상황에 대한 이해: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혼재로 불확실성의 극대화>

다음으로, 현재 우리가 당면하고 있는 대내외 환경을 이해하는 데에 있어서 경제 동향 및 현실인식에 대한 공감대를 형성하는 일이 시급합니다.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현금처럼 공존하고 있는 시대는 찾아보기 힘들다고 하여도 과언이 아닙니다. 과거의 지식과 경험에 의존하여 문제를 풀고자 하는 주장, 현재 새롭게 제기되고 있는 문제들에 대한 단기적인 처방, 그리고 미래 비전의 설립과 각 계층의 이해상충에 대한 장기적 해결책을 제시하고자 하는 노력이 한 데 엉켜져서 결과적으로 경제활동의 불확실성을 극대화시키고 있는 형국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이와 같은 국제금융•경제 환경과 비교할 때, 국내의 상황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고 하겠습니다. 경제현실을 인식하는 시각에 따라 문제해결책들이 상충하는 결과도 피할 수 없는 상황에 이르렀습니다. 지금까지 10년 주기로 우리에게 다가왔던 글로벌 경제위기가 불과 3년 만에 유로지역의 국가채무란 형태로 다시 우리에게 나타나고 있는 실정입니다. ‘위기와 더불어 살아가는 지혜’를 터득해야 한다는 표현이 조금도 어색하게 들리지 않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처칠은 우리에게 “과거와 현재가 다투면 미래가 실종된다.”는 경구를 남겼습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지식과 경험이 어쩌면 쓸모없게 되었을 수도 있다는 긴장감을 갖고, 미래지향적 해결책 모색에 우선순위를 두어야 할 시점입니다. 지금의 위기가 글로벌 추세의 급격한 진전에 따른 시스템적 리스크(systemic risk)에 기인했다는 점에 대해서는 이견이 없다고 볼 수 있습니다. Basel III에서 논의되고 있는 금융규제 개혁이 시스템적 리스크의 안정적 관리 및 해소를 목적으로 상호연관성(inter-connectedness) 및 경기순응성(pro-cyclicality)을 향후 문제해결의 두 핵심개념으로 상정하고 있는 것도 실은 글로벌 현상이 문제의 근본원인임을 입증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보다 중요한 것은 세계경제는 이미 글로벌화 되었으나, 글로벌 경제 문제를 책임지고 다룰 수 있는 ‘글로벌 지배관할조직’(global jurisdiction)이 없다는 것이 문제의 해결책을 마련하는 데 결정적 걸림돌로 작동하고 있다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G20 등의 국제협의체를 통해 국제적 정책 공조를 강조하고 있는 것도 바로 ‘글로벌 지배관할조직’의 결여를 보완하고자 하는 노력의 일환으로 해석할 수도 있습니다. 이것의 시사점은 경제의 대외의존도가 지극히 높은 우리로서는 단 한 시도 국제금융과 경제동향을 이해하는 노력에 소홀해서는 안 된다는 점이고, 동시에 국제동향을 적절하게 고려하지 못한 정책은 그 효과성이 매우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는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가 고민해야 할 일은 바로 위와 같은 이유로, 글로벌 균형(global equilibrium)보다는 국지적 균형(local equilibrium)이 추구되는 경향이 강한 세계적 의사결정 환경의 제약조건을 감안하면서, 이에 상응하는 우리의 입장과 전략을 포함하는 적극적인 대처방안을 적절하게 정립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국지적 균형은 ‘칼날 위의 균형’(knife-edge equilibrium)과 같은 성향을 지니게 되어 안정적이지 못하며, 약간의 충격이 외부로부터 주어질 경우, 당초의 균형으로 회복하려는 복원력이 약하게 되고, 따라서 균형의 지속성이 유지되지 못하는 특성이 있습니다. 하나의 국지적 균형으로부터 다른 국지적 균형으로 쉽게 이동하는 예측불허의 상태를 경험하게 될 확률이 높아지는 것입니다. 여러 형태의 국지적 복수균형(multiple equilibria)이 공존하는 상태가 지속될 수도 있습니다. 유로지역의 경제문제를 유로지역 국가들에 의해 국지적으로 그 해결책을 모색하기 보다는 전 세계적인 노력을 바탕으로 글로벌 균형을 찾는 것이 바람직할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진경제국가 위주의 지역적인 균형모색 노력이 국제협의의 주요 의제로 논의되는 경향이 아직도 우세한 것이 현 상황입니다. 대표적인 예로, 금융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선진경제들이 양적완화정책을 추진한 결과로 유발된 글로벌 유동성(global liquidity)과 자본 이동(capital flow)이 세계경제
에 미치는 영향이 지대함에도 불구하고, 작금의 논의는 주로 선진국 경제로부터 파생되어 신흥경제권으로 이어지는 한 방향(uni-directional)의 영향분석에 치우치고 있는 실정입니다.

실제로는 이와 같은 한 방향의 영향에 대한 분석보다는 신흥경제권에서 다시 선진경제로 파급되는 효과를 포함하는 양 방향(bi-directional)의 영향분석이 더 중요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선진경제 주도로 국제무대에서 글로벌 이슈가 논의되고 있는 것이 현재의 환경이지만 앞으로는 선진경제와 신흥경제를 망라한 글로벌 균형을 달성하는 방안모색에 논의의 초점이 집중되도록 해야 하며, 이를 위해서는 우리가 더 적극적으로 국제공조에 참여하고 대응전략을 모색해야 하고, 또한 우리의 국익에도 부합하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는 아이디어를 개발하고 설득할 능력을 스스로 갖추는 것이 결정적으로 중요하다는 점을 우리는 주목해야 할 것입니다. 현실에 대한 비판적 시각을 갖는 것은 무엇이 문제인가를 제시하는 것에 불과하며, 새로운 아이디어에 근거한 대안을 제시하고 이를 추진할 능력을 갖추어야만 문제해결에 기여할 수 있다는 점을 유념해야 합니다. 국제무대에서 우리를 위해 일할 사람은 바로 우리 밖에 없다는 사실을 직시해야 합니다.

금융안정책무가 우리에게 부여되었으므로 우리는 시스템적 리스크를 적기에 파악하고 예방하는 노력을 해야 하며, 이를 위해서는 위기를 사전에 탐지할 수 있는 모형을 만들어야 할 것입니다. 말할 나위 없이, 국제적 상황변화와 미래의 변화 예측을 모형분석에서 적절하게 감안하지 못한다면, 우리가 만드는 모형은 ‘과거의 위기’를 잘 설명하는 역할을 하는 데에 그칠 가능성이 높습니다. 저는 언제나 ‘예견된 위기는 위기로 잘 실현되지 않는다는 점’을 강조해 왔었는데 이 관점에서 보더라도, 과거의 위기를 설명하는 모형은 미래의 위기를 예견하는 데에는 그 유용성이 높지 않을 우려가 있습니다. 미래의 위기를 예상하고 방지하기 위해서는 우리의 시각이 과거나 국내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는 점을 강조하고자 합니다.
국제적으로 논의되는 의제를 이해하는 것은 필요조건에 불과하며, 우리의 특유의 상황에 대한 인식이 올바로 정립되어야 효과적인 모형을 개발할 수 있는 것입니다. 세계에서 유례를 찾기 힘든 ‘압축 성장’으로 괄목할 발전을 이룩한 우리나라의 제도와 정책은 선진경제국가들이나 신흥경제권이 채택하고 있는 보편화된 유형과는 사뭇 차이가 날 수 있다는 점에 유의해야 합니다. 여러분들은 우리 경제가 갖고 있는 특징적인 경제적 유산 및 환경과 한국은행의 역할 간에 무슨 관계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나요? 이러한 특수한 요인들을 간과한 채, 다른 나라의 경험을 토대로 중앙은행의 역할을 수행하는 것이 효과를 나타내지 못할 것이라는 것은 자명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새로운 중앙은행의 위상: 국가경제의 특성을 대표하고 경제의 안정적 발전을 선도하는
역할>

지금까지 설명한 대내외적 경제 환경에 대한 현실 인식을 토대로 할 때, 우리는 어떠한 중앙은행을 만들어 가야 하나요? 보편타당한 가치를 기본원칙으로 삼으면서 활동하여야 국제무대에서 인정받을 수 있고 이러한 노력이 선진권경제로 도약할 수 있는 터전이 될 것입니다. 그런데 동시에 우리가 유념해야 할 것은 중앙은행은 우리 경제를 대표할 수 있어야 하며, 큰 틀에서 우리 경제의 축소판이 되어야 한다는 점입니다. 우리 정도의 경제규모를 갖고서 무역 1조 달러를 달성한다는 것은 세계경제에서 매우 이례적이라고 할 수 있고, EU 및 미국과 동시에 FTA를 체결하는 아시아의 유일한 경제라는 것도 우리나라가 갖고 있는 특수성입니다. 우리 경제가 세계와 교류하며 활동을 영위하면 우리 중앙은행도 이러한 여건에 상응하는 역할을 하여야 우리나라의 실물과 금융경제의 조화로운 균형을 맞추는 데 기여할 수 있는 것입니다. 바로 이러한 지적은 향후 우리가 함께 머리를 맞대고 개발해야 할 중앙은행의 발전전략 수립에 있어서 많은 시사점을 던져주고 있습니다.

우리가 함께 고민해야 할 첫 번째 과제는 새로운 책무로서 우리에게 부여된 금융안정 정책의 내용과 범위를 우리가 감당할 수 있는 수준에서 규정하는 것입니다. 우선 이러한 목적에 부응하도록 우리의 조직을 시급하게 그리고 적절하게 개편해야 합니다. 시스템적 리스크, 거시건전성정책의 내용과 수단에 대해서는 현재 국제기구 및 국제포럼에서 많은 논의가 이루어지고 있으며 여러 대안들이 검토 단계에 있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입니다. Basel II체제에서 Basel III 체제로 이행되는 향후 수년 동안 금융안정을 위한 제반 수단들이 지속적으로 개발될 것입니다. 따라서 중요한 것은 이러한 국제적 흐름의 맥을 짚으면서 이를 받아들일 수 있는 유연성이 높은 조직을 만들어 나아가는 것입니다. 현재의 지식과 전망에 근거하여 경직된 조직을 만들기 보다는 새로운 변화를 수용할 수 있도록 탄력적으로 조직을 운용하려는 전략이 더 바람직하다고 하겠습니다.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는 그리고 법정보고서로서의 새로운 의무가 부과되는 금융안정보고서의 작성에 있어서는 보고서의 포괄 내용이 광범위함을 고려할 때, 하나의 특정 부서가 작성의 책무를 감당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는 판단에서 여러 부서들의 네트워킹을 조직화하는 위원회를 활용함으로써 여러 관련부서의 공동책임 아래 보고서를 작성하고자 합니다.

두 번째 과제는 올해에는 특히 물가안정목표를 달성하는 데 더 각별하게 유념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비록 작년의 경우에는 물가상승률의 절반 이상이 공급측면의 요인에 의거하였고 올해에는 그 압력이 줄어들 것으로 예상된다고 하더라도, 인플레이션 기대심리가 아직도 높게 유지되고 있다는 점에서 물가안정 기반을 공고히 하기 위한 대책마련에 만전을 기해야 합니다. 한국은행법의 개정으로 가용할 수 있는 통화신용정책의 수단이 다양해졌습니다. 새로운 수단에 대한 이론적 기초를 다지고 실증적 효과분석에 매진해야 할 것입니다. 한편, 새로이 추가된 금융안정 책무 때문에 물가안정에 소홀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지 않도록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야 합니다. 금융이 안정되지 않은 상태에서 물가를 안정시킬 수 있는 수단을 찾는다는 것은 비현실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기본적으로 금융안정과 물가안정이 서로 보완적인 기능을 수행할 수 있는 효과적인 정책조합을 찾아 나아가야 하며, 이것이 바로 중앙은행이 거시건전성정책 수행에 있어서 중심적인 역할을 수행해야 하는 당위성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또한 세계 대부분의 국가에서 중앙은행이 금융안정의 책무를 부분적이나마 담당할 수밖에 없는 이유이기도 한 것입니다. 물가안정을 위한 통화신용정책의 수립이 효과를 갖기 위해서는 중앙은행의 독립성과 중앙은행에 대한 신뢰가 필수적인 전제라는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계량화해서 제시할 수 있는 수치적 목표라고 하기보다는 우리가 지켜 나아가야 할 정성적인 가치라고 할 수 있습니다. 중앙은행의 권위는 앞의 두 개념에 의해 세워지지만,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이 모든 것들의 필수조건이 바로 우리의 업무능력에 대한 국제사회와 국내 경제주체들의 인정과 존중이라는 점입니다. 우리들의 실력을 연마하는 것이 이 모든 것을 이루는 첫걸음이며, 그 아무 것도 이것을 대체할 수 없다는 점을 다시 한 번 강조하고자 합니다.

마지막 세 번째 과제는 한은에 대한 국민의 기대가 날로 높아가는 상황에 부응할 수 있도록 내부 체제의 개혁을 꾸준하게 그리고 의연하게 추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오랜 연륜의 조직을 단기간에 변화시킨다는 것은 결코 용이한 일이 아닙니다. 조직체계는 비교적 쉽게 바꿀 수는 있겠지만 사람이 바뀌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리기 때문입니다. 취임 첫 해인 작년에는 일차적으로 직군제를 폐지함으로써 직원들의 사고와 행동의 폭을 유연하게 만들고자 하였으며, 「인재개발원」과 「외자운용원」을 설립함으로써 각각 인적자원의 잠재능력개발과 인력운영의 효율화, 그리고 조직운영에 있어서 자율운영의 활력을 불어 넣고자 하였습니다. 이번에는 금융안정 책무를 수행하는 조직을 구축함과 동시에 한국은행의 하부구조(infrastructure)라고 할 수 있는 조직을 설립하거나 개편하는 데 주안점을 두고 있습니다.

어느 조직이든 하부구조가 탄탄해야 업무효과가 극대화되는 법입니다. 마치 모든 사람들이 빨리 목적지에 도달하기 위해서 자동차를 구입한다면, 누군가는 길을 닦아야 차의 구입이 효과를 볼 수 있다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길이 없으면 자동차는 무용지물이 아니라 오히려 애물단지가 되는 것입니다. 조직이 발전하려면 이러한 부문에 종사하는 사람들에 대한 대우와 인식이 올바로 정립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지금까지 그러한 부분에 매우 소홀했다고 판단하고 있습니다. 하부구조는 외부효과(externality)를 창출하는 공공재와 같은 순기능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외부효과를 어떻게 측정하고 어떻게 보상해야 하는지는 조직운영 책임자들의 오랜 숙제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만일 자동차를 산 사람들이 조직의 상부에 있고, 길을 닦는 사람들이 조직의 하부에 있게 되는 조직이라면, 즉 외부효과를 창출하는 직원들을 적절하게 대우하지 못한다면, 이러한 조직이 발전하지 못한다는 것이 자명하다는 것에는 우리 모두 동의할 것입니다. 상대적인 의미에서 볼 때, 개인보다 국가가 부유한 것이 선진국이고, 그 반대가 후진국이라고 합니다. 한은을 선진국처럼 만들어야 조직이 오래갈 뿐 아니라 궁극적으로 각 구성원들이 혜택을 받게 된다고 믿고 있습니다. 구성원들의 교육과 훈련 등 인적능력 개발에 조직운영의 초점을 맞추는 것도 외부효과의 창출과 직접적 연관이 있는 것입니다. 교육과 훈련에 꾸준하게 투자하고 조직발전에 헌신하는 직원을 보상하는 것이 인사와 평가의 기준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조직에 대한 기여보다 조직으로부터 받는 혜택이 더 큰 사람들이 많다면 이는 분명 지대추구행위(rent-seeking activities)가 만연한다는 것을 입증하는 것이며, 외부효과를 적절하게 보상하지 못한다는 증거이기도 합니다. 커뮤니케이션을 담당하는 부서를 설립하고 은행 전반의 미래비전을 위한 전략수립의 기능을 도입하려는 노력도 동일한 맥락에서 이해하여 주기를 바랍니다.

조직이 발전하려면 새로운 아이디어가 샘솟듯이 넘쳐나야 합니다. 우리 조직의 아이디어
맨은 누구인가요? 고민하고 생각하는 사람(thinker)은 어디에 있나요? 세상은 급변하는데 어제에 얽매어 있어서는 안 됩니다. 젊은 사람들이 선배들의 뒤만 좇아서는 희망이 없습니다.

남의 아이디어를 빌려 살아서는 남에게 종속되는 삶을 사는 것이며, 결코 일류가 될 수 없습니다. 개인의 수월성보다는 집단적 사고와 행동에 매몰되어 있는 사람들이 새로운 아이디어를 내기를 기대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자기 자신만의 부가가치를 스스로 창출할 수 있는 사람들이 다수를 이루어야 합니다. 남의 지시만을 받아서는 자신의 가치를 창출할 수가 없습니다. 끊임없는 지식습득 그리고 사색과 번민이 생활화되어야 남보다 우월하게 되고, 결과적으로 그러한 노력의 수혜자는 본인 스스로가 된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사회가 궁극적으로는 그 가치를 인정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중앙은행에서의 봉직의 가치를 사회가 인정하게 되고, 또한 여러분들의 서비스가 한은에서 퇴직한 이후에도 사회에서 다양한 형태로 요구하게 될 때까지 우리 모두 각고의 노력을 경주해 나아가는 그 원년이 2012년으로 기억되기를 희망합니다. 역사적으로, 많은 조직의 경우에 혁신은 언제나 중심이 아닌 주변에서 주도해왔다는 점을 상기시키고자 합니다. 지역본부와 하부구조를 담당하는 각 부서에서 우리 조직의 변화를 이끌어 낼 수 있는 리더십이 배양되고 리더가 나타나기를 진심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내년 신년사에서는 올해보다 더 희망찬 내용들이 가득하기를 바라면서, 60년 만에 돌아오는 흑룡 띠의 해인 2012년 한 해 동안, 용이 승천하는 웅대한 기상을 우리 모두 가슴에 품고, 한국은행이 다시 비상하는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 나아갑시다. 여러분 각자 큰 업적을 이루기 바라며, 여러분 모두의 가정에 만복이 깃들기를 기원합니다.


▶ 주식투자로 돈좀 벌고 계십니까?


▶ 글로벌 투자시대의 프리미엄 마켓정보 “뉴스핌 골드 클럽”


[뉴스핌 Newspim] 김민정 기자 (thesajah@newspim.com)

[관련키워드]

[뉴스핌 베스트 기사]

사진
아이폰 듀오 내년 1월까지 배송 지연 [서울=뉴스핌] 서영욱 기자, 심재민 인턴기자 = 애플의 첫 폴더블 스마트폰 '아이폰 듀오'가 사전예약 직후 품귀 현상을 빚으며 배송 일정이 내년 1월까지 밀렸다. 이례적인 수요에 따른 흥행 신호로 해석되고 있지만, 실제로는 생산 수율 저하와 핵심 부품 공급 차질이 물량 부족을 심화시켰다는 분석이 나온다. 생산이 안정화되지 않은 상황에서 70여개국 동시 출시를 추진한 애플의 전략적 판단도 공급난을 키웠다는 지적이다. 애플의 첫 폴더블 스마트폰 '아이폰 듀오' [사진=로이터 뉴스핌] ◆ 10대 중 4대 품질 기준 미달…증산에도 공급난 지속 21일 정보기술(IT)업계에 따르면 아이폰 듀오는 지난 16일 사전예약을 시작한 지 30분 만에 일부 모델의 배송 예정일이 내년 1월로 미뤄졌다. 오는 23일 정식 출시를 앞두고 있지만, 지금 주문하면 제품을 받기까지 약 3개월을 기다려야 하는 셈이다. 애플은 사전예약 수요가 이례적인 수준이라고 평가했다. 그러나 실제 예약 건수와 초기 공급량이 공개되지 않은 만큼 장기간의 배송 지연을 수요 폭증만으로 설명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핵심은 생산 수율이다. 중국 경제매체 지몐신문은 지난달 21일 폭스콘 공급망 관계자를 인용해 아이폰 듀오의 완제품 조립 수율이 9월 17일 기준 60%를 조금 웃도는 수준이라고 보도했다. 생산된 제품 10대 중 4대 가까이가 품질 기준을 충족하지 못한다는 의미다. 당시 공급망 관계자는 애플의 품질 기준을 유지할 경우 생산라인이 안정적인 수율에 도달하기까지 6개월에서 1년이 걸릴 수 있다고 내다봤다. 수율 문제는 최근까지 이어지는 것으로 보인다. 메리츠증권은 지난 19일 보고서에서 외장 힌지와 초박형유리(UTG) 등 핵심 부품뿐 아니라 최종 조립 단계에서도 수율 부진이 발생해 생산 확대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분석했다. 애플이 공급망 주문량을 늘리고 있지만 단기간에 물량 부족을 해소하기 어려운 이유다. 중국 증권시보는 지난 10일 애플이 아이폰 듀오의 부품 주문량을 기존보다 30% 늘렸다고 보도했다. 그러나 부품 확보량을 늘리더라도 최종 조립 수율이 개선되지 않으면 실제 출하량을 확대하는 데 한계가 있다. 애플의 폴더블 스마트폰 '아이폰듀오' [사진=블룸버그통신] ◆ 70여개국 동시 출시 강행…국내 초기 물량 3만대 공급 부족을 예상하고도 글로벌 동시 출시를 선택한 판단 역시 도마 위에 올랐다. 블룸버그는 지난 18일 애플이 당초 미국과 중국에 먼저 출시한 뒤 판매 국가를 확대하려던 계획을 바꿔 70여 개 국에서 동시에 사전예약을 시작했다고 전했다. 제한된 초기 생산 물량을 여러 국가에 배분하면서 공급 부담이 커졌다는 분석이다. 국내에서도 물량 부족이 현실화하고 있다. 통신업계가 파악한 아이폰 듀오의 한국 초기 공급 물량은 약 3만대 수준이다. 통신 3사의 일평균 스마트폰 개통량인 약 2만대와 비교하면 이틀 치에도 못 미친다. 통신사들은 첫 폴더블 아이폰 출시를 앞두고 고객 유치에 나섰지만 물량 확보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제품 수령 지연에 따른 고객 문의와 불만까지 유통 현장에 집중되면서 정식 출시 이후에도 혼란이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IT업계 관계자는 "현재의 품귀 현상을 폭발적인 수요에 따른 흥행으로 단정하기는 어렵다"며 "생산 차질이 장기화하면 출하 목표 달성이 어려워지고 삼성전자 등 경쟁사가 반사이익을 얻을 수 있다"고 말했다. flurry327@newspim.com 2026-10-21 15:43
사진
김정은 사망설, 왜?…"독재 체제가 불러온 고질병" [서울=뉴스핌] 이영종 통일북한전문기자 = 북한 국무위원장 김정은(42)이 뇌출혈로 쓰러져 중국 병원에서 숨졌다는 소문이 한반도를 넘어 지구촌을 뒤흔들었다. 결론부터 말하면 이번 사망설은 아무런 근거가 없는 가짜뉴스다. 의료기록이나 목격자, 하다못해 정황을 뒷받침할 만한 최소한의 방증이나 전언도 없는 것으로 파악된다. 그런데도 소문은 외신에서 사회관계망서비스(SNS)와 유튜브는 물론 국내 언론과 증권가까지 순식간에 번졌다. 사망설 자체보다 이 소문 앞에서 우리 사회가 보인 허술한 대응이 더 큰 문제라는 지적이 나온다. [서울=뉴스핌] 북한 국무위원장 김정은이 지난 19일 '전국 피복·신발전시회-2026' 전시장을 찾아 간부들에게 뭔가를 지시하고 있다. 김정은의 오른쪽은 딸 주애. [사진=북한매체 종합] 2026.10.20 ◆'중국 반체제 인사의 X 글'에 휘둘려 메가톤급 소문의 진원지는 미국에서 활동하는 중국 반체제 인사 셰완진(謝萬軍)이다. 그는 19일 자신의 X(옛 트위터)에 "전해지기로 김정은과 시진핑이 같은 병에 걸렸다. 김정은은 죽었고 시진핑은 죽음이 아직 멀었을까"라는 취지의 글을 올렸다. 이어 김정은이 갑작스러운 뇌출혈로 의식을 잃었고 북한의 열악한 의료 여건 때문에 중국에 도움을 요청해 중국 의료진이 급파됐다고 주장했다. 베이징의 병원으로 옮겨 수술을 받았으나 골든타임을 놓쳐 결국 사망했다는 얘기다 시신은 북한으로 비밀리에 운구됐고 북한은 이를 숨기고 있다는 내용도 덧붙였다. 이런 엄청난 이야기를 던지면서도 그는 어떤 출처나 근거를 제시하지 않았다. 셰완진이 중국에서 불법단체로 규정된 '중국민주당 주석'을 자처하며 시진핑 주석 사망설이나 대역설 같은 허위·날조 사실을 SNS에 올려온 인물이란 점에서 신빙성은 떨어진다.  그런데도 영국 더선 등 해외 매체들이 이를 받아 전하면서 소문은 증폭됐고 여기에 김정은의 여동생인 김여정 노동당 부장의 권력 장악설이나 중국군 파병설까지 얹혔다. 근거 없는 이야기에 그럴싸한 살이 덧붙여지면서 가짜뉴스는 눈덩이처럼 커졌다. 사실 사망설이 한창 번지기 시작한 19일 김정은은 부인 이설주, 딸 주애와 함께 평양에서 열린 '전국 피복·신발 전시회-2026'을 참관했다. 이튿날 북한 관영매체들은 여러 장의 사진과 함께 이를 보도했다. 하지만 집요한 가짜뉴스는 이를 견강부회식으로 해석했다. '사망 사실'이 퍼지니 북한 당국이 이를 은폐하고 기만하기 위해 거짓으로 김정은과 가족의 일정을 공개한 것이란 주장까지 내놓으면서 그럴듯하게 포장을 했다. ◆'뇌졸중 쓰러져 中병원 이송'…뻔하고 반복된 레퍼토리 눈여겨볼 대목은 김정은 사망설에서 드러나는 클리셰(Cliché)다. 뇌출혈로 쓰러졌다거나 북한 의료진이 속수무책이라 중국 병원으로 옮겼다, 혹은 시신은 몰래 평양으로 반입했다는 등의 레퍼토리는 과거 북한 지도자의 신변 이상설이 나올 때마다 되풀이된 판박이다. 과거 북한 최고지도자의 사망설 확산 사례를 돌아보면 그 패턴이 드러난다. 1986년 11월 김일성 주석 피격 사망설이 나왔다. 당시 외신과 국내에서 소문이 크게 부풀렸고 최전방 북측 지역에 조기가 걸렸다는 말까지 나왔다. 결국 김일성이 얼마 뒤 공개석상에 모습을 드러내면서 오보로 판명됐다. [서울=뉴스핌] 지난 2011년 12월 28일 평양 금수산태양궁전 앞에서 열린 김정일 국방위원장 장례식에서 아들이자 후계 최고권력자인 김정은 국무위원장(당시 직책은 당중앙군사위 부위원장)이 운구차 옆을 걷고 있다. [사진=북한매체 종합] 2026.10.20 2008년 9월에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정권수립 60주년 행사에 불참하면서 와병설이 퍼졌다. 이 경우는 뇌졸중으로 수술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사망설과는 별개였고 김정일은 이후에도 3년 넘게 통치했다. 정작 2011년 12월 김정일의 실제 사망은 이틀 가까이 지난 뒤에야 공식 발표됐다. 김일성 주석 때도 1994년 7월 사망 후 하루 이상 지나서 발표됐다. 소문은 엄청나게 번지고 정작 진짜 사망 때는 깜깜무소식으로 있다가 북한 발표가 나오고서야 알게되는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김정은 집권 이후에도 이런 양상은 이어졌다. 2014년 9~10월 김정은이 약 40일간 공개 활동을 하지 않아 유고설이 불거졌지만 지팡이를 짚고 다시 나타났다. 과체중으로 추정되는 다리 혹은 관절 수술 때문으로 파악됐다. 2020년 4월에는 김일성 생일 참배 불참을 계기로 심혈관 수술 후 위중설, 사망설이 퍼졌다. 일부 정치인이 "99% 확신한다"고까지 단언했지만, 김정은은 20일 만인 같은 해 5월 1일 순천인비료공장 준공식에 모습을 드러냈다. 지난해 5월에도 원산에서 현지지도 중 의식불명 상태에 빠졌다는 소문이 외교가와 증권가를 중심으로 돌았다. 번번이 오보로 끝났지만 가짜뉴스와 소문은 '죽지 않는 각설이'처럼 주기적으로 존재감을 과시한다. ◆'일단 베껴 쓰고 보자'…줏대 없이 흔들린 언론 이번 사태에서 가장 뼈아픈 대목은 언론의 대응이다. 유력 외신뿐 아니라 우리 언론도 줏대 없이 흔들렸다. 확인되지 않은 소문이 확산일로를 걸으니 '일단 베끼거나 받아쓰고 보자'는 심리가 작동한 것으로 보인다. 남이 쓰니 나도 쓰고, 안 쓰면 낙종이 될까 불안해 쓰는 식이다. 그 결과 독자와 시청자, 국민은 전례 없는 혼란을 겪었다. 소문이 가장 먼저 들이닥친 주식시장은 출렁였고, 포털과 SNS에는 확인되지 않은 정보가 넘쳐났다. 유튜브 일부 채널과 콘텐츠는 한술 더 떴다. 자극적인 제목과 섬네일을 앞세워 사망설을 기정사실처럼 다루며 혼란을 부채질했다. 조회수와 수익이라는 상업적 계산 앞에서 최소한의 사실 확인 의무는 실종됐다. 필자 또한 이번 사태의 한복판에서 적지 않은 시달림을 겪었다. 수많은 지인과 독자들로부터 '정말 사망한 것이냐', '평양이 지금 난리라는 데 파악해 볼 수 있냐'는 문의 전화와 질문 공세가 쏟아졌다. 지난 34년간 북한 취재 현장에서 여러번의 '사망·유고설'을 겪었지만 이번은 유독 파장이 크다. 최근의 남북관계와 북한 김정은과 김여정 남매의 비정상적이고 호전적인 도발 상황이 국민이 불안감을 키운 것이란 생각도 든다. ◆'강 건너 불구경'식 정부 대응도 문제 정부 대북부처의 대처도 비판받을 소지가 많다. '가짜뉴스 엄정 대응'을 공언해 왔지만 이번엔 사실상 강 건너 불구경하듯 했다. 국가정보원은 지난달 30일 국회에 김정은의 체중이 약 140kg에 이르러 심혈관계 질환 위험이 높다고 보고한 바 있다. 이런 상황이라면 소문이 돌 때 더욱 신속하고 구체적인 사실관계 설명이 필요했다. 책임 있는 당국자가 직접 나서 구체적인 사실관계를 설명하고 소문을 일찍 진화했어야 했다. 국회 정보위원회의 대응도 도마에 오른다. 정보위가 국정원 긴급보고를 받아 사망설이 가짜라는 점을 확인하고, 즉각 공개했더라면 불필요하고 소모적인 논란을 차단할 수 있었다는 지적이 나온다. 국가 안보와 직결되는 사안일수록 정보위가 정치적 계산을 앞세우지 않고 사실을 확인해 국민에게 알리는 역할을 해야 한다.  서울 내곡동 국가정보원 본부 청사와 원훈석 [뉴스핌 자료사진] ◆전문성 키우지 못한 언론도 책임 느껴야  이번 사태의 근본 원인은 북한 체제의 폐쇄성에 있다. 더구나 김정은 한 사람에게 모든 권력이 집중된 수령 유일지배 독재체제다. 김정은이 유고상황에 빠지면 대책이 없어진다. 이런 사정에 있다보니 '사망설'을 비롯한 소문의 파괴력은 클 수밖에 없고, 거짓인 줄 알면서도 시장과 사회가 뒤흔들리는 기형적인 상황이 현실로 나타나는 것이다. 정보의 불투명성과 체제의 취약성이 만나 만든 구조적 고질병이라 할 만하다. 하지만 우리 언론의 책임도 결코 가볍지 않다. 북한 보도가 지라시 수준의 글에 휘둘리는 이유는 전문성을 갖춘 저널리스트를 제대로 키우지 못했기 때문이다. 한때 언론사들이 전문기자를 두고 연구소 등을 운영하기도 했지만 경영 논리와 남북관계 경색에 밀려 유명무실해졌다. 북한 정보의 진위를 가려낼 안목과 취재 네트워크를 갖춘 기자가 줄어들면서 확인되지 않은 SNS 글 한 줄에 증시와 언론, 여론이 함께 휘청이는 모습이 연출됐다. '김정은 사망' 같은 민감한 대북 정보는 우리의 안보와 남북관계, 한반도 정세에 미칠 파장이 크다. 이번 일을 일과성의 해프닝으로 넘길 일이 아니다. 제대로 된 진단과 대책마련이 없으면 김정은은 앞으로도 몇 번이고 죽을 수밖에 없을 것이고 그때마다 우리는 휘둘리게 될 것이 분명하다. 정부 대북 부처와 유관기관, 언론, 학계 등이 재발 방지를 위한 대책 마련을 서둘러야 한다. yjlee@newspim.com 2026-10-21 06:12
기사 번역
결과물 출력을 준비하고 있어요.
종목 추적기

S&P 500 기업 중 기사 내용이 영향을 줄 종목 추적

결과물 출력을 준비하고 있어요.

긍정 영향 종목

  • Lockheed Martin Corp. Industrials
    우크라이나 안보 지원 강화 기대감으로 방산 수요 증가 직접적. 미·러 긴장 완화 불확실성 속에서도 방위산업 매출 안정성 강화 예상됨.

부정 영향 종목

  • Caterpillar Inc. Industrials
    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 시 건설 및 중장비 수요 불확실성 직접적. 글로벌 인프라 투자 지연으로 매출 성장 둔화 가능성 있음.
이 내용에 포함된 데이터와 의견은 뉴스핌 AI가 분석한 결과입니다. 정보 제공 목적으로만 작성되었으며, 특정 종목 매매를 권유하지 않습니다. 투자 판단 및 결과에 대한 책임은 투자자 본인에게 있습니다. 주식 투자는 원금 손실 가능성이 있으므로, 투자 전 충분한 조사와 전문가 상담을 권장합니다.
안다쇼핑
Top으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