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범죄 피해자 방청연대 활동가 '연대자D' 인터뷰
"2021년 검경 수사권 조정 이후 수사 부실 지속"
"피해자에게 법률 비용 전가, 사실상 합의 강요"
"현실 분석·평가 선행돼야…檢개혁 토론·소통 필요"
'검찰개혁'이 화려한 정치적 화법으로 정부 여당 중심으로 빠르게 추진되고 있습니다. 보완수사권 등 수사권 조정은 검찰 수사의 99%를 차지하는 민생사건, '보통 사람'과 직결됩니다. 하지만 검찰개혁이 정작 민생사건과 범죄 피해자들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에 대한 논의는 턱없이 부족합니다. 이에 뉴스핌은 '보통사람의 수사' 7회 기획으로 민생사건을 겪은 범죄 피해자의 눈높이에서 검찰개혁의 문제점을 짚고 대안을 모색합니다.
[서울=뉴스핌] 백승은 기자 = # 2022년, 경기도 수원 인근에 거주하는 90대 신체장애인 A씨는 옆집에 거주하는 80대 노인에게 강간미수 피해를 입었다. 사건이 일어난 후 즉시 신고했지만 경찰은 가해자와 즉시 분리 조치를 하지 않았다. 반드시 해야 하는 조치를 하지 않은 것은 이뿐만이 아니다. 이불 등 현장 증거 채취도 이행하지 않았고, 피해자 진술은 무려 2주 후에야 받았다.
# 베트남에서 온 B씨는 남편에게 '벗방'(옷 벗고 진행하는 성인 방송)을 강요받다가, 결국 2021년 하반기 경찰에 신고했다. 신고 후 경찰서에 갔지만 도움을 받지 못했다. 오히려 경찰은 조사 과정에서 B씨를 연신 윽박질렀다. 이미 취약해질 대로 취약해진 B씨는 수사 단계에서 모든 법적 여정을 포기할 수 밖에 없었다.
"피해자들에게 절대 혼자 수사 기관에 준비 없이 가지 말라고 해요. 저도 '수사기관은 당신을 보호하고, 지원해 줄 수 있을 것이니 안심하고 가라'라고 하고 싶어요. 검경 수사권이 조정된 후에는 그런 말을 더 못 해요. 그게 현실이에요."
지난 19일 서울 중구의 한 카페에서 뉴스핌과 만난 익명의 성범죄 피해자연대 활동가 '연대자D'는 경찰이 성범죄 피해에 대해 초동수사를 부실하게 한 사례를 소개하며 이 같이 경고했다.
[보통사람의 수사] 글싣는 순서
1. 성범죄 피해자 도운 활동가의 경고…"검찰개혁, 빨리 하면 빨리 망한다"
2. '수사지연'이 불러온 두 여중생의 비극…父 "누구 하나 징계 받은 게 없다"
지난 11년간 성범죄 사건 재판이 진행되는 법정 방청석 한편에 이 익명의 연대자가 앉아 있었다. 한때 '마녀'라는 이름으로 활동했던 그는 자신도 성범죄 피해자였고, 이제는 피해자에게 보호 기관을 연계하거나 수사 과정에서 관계인으로 동석하기도 하는 '다리'가 됐다.
피해자들을 가장 가까이 지켜봐왔던 그는 지난 2021년 검경 수사권 조정 이후, 수많은 부작용을 마주했다. 연대자D가 현재 상황에서 정부의 검찰개혁까지 단행된다면 "망할 것"이라고 단정하는 데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그의 얘기를 들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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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년 젠더법연구회와의 만남…'피해자'를 재판에
버닝썬 사건과 고(故) 구하라 씨의 죽음이 있었던 지난 2019년, 연대자D는 성범죄 사건에 있어 피해자 입장을 주목하지 않았던 판사들 앞에 피해자를 데려다 놓았다. 그는 대법원 산하 연구모임 젠더법연구회가 제안한 인터뷰에서 '피해자 중심 설문조사'를 먼저 제안했다.
연대자D는 "판사·검사·피고인 및 피해자 변호사는 모두 포함됐는데, 피해자가 빠졌다는 사실을 알고 역으로 피해자에 대한 설문조사를 해 보는 게 어떻겠냐고 제안했다"라며 당시를 회상했다. 직접 신고조차 못 한 피해자·수사 과정에서 끝난 피해자·재판까지 온 피해자 등을 세세히 구분해 온라인으로 익명 설문조사를 실시했고, 30명 가량을 직접 만났다. 그렇게 2019년 12월 20명이 넘는 판사들이 연대자D와의 인터뷰를 위해 서울서부지법에 모여들었다.
판사들은 피해자의 재판 참여를 두고 설전을 4시간 넘게 이어갔다. 연대자D는 "세미나에서 다양한 얘기가 나왔는데, 어떤 판사는 성폭력 피해자가 재판 기록에 대한 열람등사를 신청하면 바로 해 주는데 어떤 판사는 공소장이나 판결문조차 주지 않았더라"라고 지적했다. 피해자가 재판 과정에서 얼마나 소외됐는지 확인할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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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대자D의 다이어리는 한 달치 재판 방청 일정으로 가득 차 있었다. 개인정보보호 차원에서 자세한 일정은 블러 처리했다. [사진=백승은 기자] 2025.09.22 100wins@newspim.com |
◆ "경찰 불송치 시 끝이다"…비용 늘고 고령·장애·비수도권 '이중 소외' 발생
성범죄 사건에서 재판까지 가는 피해자는 소수다. 이미 수사 단계에서 피해자는 궁지에 내몰린다. 연대자D는 지난 2021년 검경 수사권으로 경찰이 수사종결권을 가지게 된 후 수사 과정의 부실함이 심해졌다고 전했다. 그는 "경찰이 검찰과 수사권을 나누는 것만 집중해서 그 수사권을 어떻게 충실히 만들지에 대한 고민이 전혀 없었다"라고 꼬집었다.
피해자 보호와 지원도 부실해졌다. A씨, B씨의 사례처럼 피해자 내에서도 고령자·장애인·외국인이라면 순식간에 사건에서 고립되기 일쑤다.
연대자 D는 "수사에서 기소까지 1년 이상이다. 피고인이 불구속 상태면 재판이 몇 년까지 간다. 그 사이 성인 피해자도 기억이 흐려지는데, 아동이나 청소년·장애인·고령자는 오죽하겠냐. 외국인은 관계망이 없어 더 적극적으로 나서기 어렵다"고 전했다.
비장애인보다 장애인이, 내국인보다 외국인이 피해에 취약하듯 수도권보다 비수도권 피해자가 도움 요청에 더 큰 어려움을 겪는다. 여성가족부가 실시한 '2024 여성폭력 실태조사'를 보면, '평생 가장 심각한 성적 폭력 피해를 받았을 때 대응했는가'라는 질문에 '대응했다'고 답한 대도시 거주자 75.6%, 중소도시 72.9%인 반면, 농어촌은 65.7%에 불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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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 내 피해자보호팀과 수사팀의 감수성 차이도 존재한다. 그는 "피해자보호팀이 초기 안전 조치를 제대로 한 후에도 수사 과정에서 추가적인 안전 조치를 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경우가 잦다. 피해자가 이미 수사관한테 이게 신뢰가 없으니 '경찰은 또 나를 못 지켜주는구나'라고 생각하기 쉽고, 그러다 수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을 수 있다"라고 꼬집었다.
수사 과정의 부실은 결국 피해자의 비용 확대로 이어진다. 그렇기에 연대자D는 피해자들에게 절대 혼자 준비 없이 수사기관에 가지 말라고 당부한다.
그는 "경찰에서 불송치 결정이 내려지면 끝이다. 고소장 작성부터 변호사가 필요한데, 그게 모두 돈이다. 피해자에게 법률 비용이 전가되는 양상이 늘어나자 인터넷에 '소송 비용 모금 후원'이 우후죽순으로 늘어났다"라고 말했다.
첩첩산중에 부딪힌 피해자는 합의를 사실상 강요받는다. 연대자D는 "문제는 수사 단계에서 합의했던 피해자에게 '합의해서 피해가 회복됐냐'라고 물어보면 '합의 과정이 존중 없이 이뤄져서 오히려 마이너스'라고 답하는 피해자가 상당수"라며 불완전한 피해 회복을 지적했다.
◆ "일반 시민 관점에서 데이터 분석·대응책 마련이 답"
연대자D는 부실 수사는 곧 부실 기소, 부실 재판으로 이어진다고 단언했다. 결국 '검찰청 폐지'에만 집중한 지금의 검찰개혁은 더 큰 화를 불러올 것이라는 지적이다. 그는 "빨리 결론을 내리면 빨리 망할 것"이라고 현재 상황을 확신했다.
정부는 '개혁 과정에서 따라오는 부작용'이라고 말한다. 연대자D는 "단순한 부작용이 아니다. 사람이 죽는다. 지금과 같은 검찰개혁이라면 '암장'되는 사건이 더 많아질 것"이라며 두려워 했다.
검경 수사권 조정 후 4년 간의 데이터라도 분석해야 한다고 그는 강조했다. "4년 동안 쌓인 데이터를 분석하고, 대응책을 마련했어야 한다. 그런데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권한만 커지면 그 책임은 누가 지냐"라고 꼬집었다. 과거의 실수를 철저히 분석해 제도를 수정해야 한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그는 "수사와 재판, 그 과정에서의 피해자 보호·지원, 피해자의 권리 등을 포괄해 형사소송절차를 신중하게 돌아봐야 한다. 현실 분석, 평가도 이뤄지지 않은 지금의 검찰개혁은 너무 뻔히 보이는 문제점이 있다. 이렇게 서둘러야 하는 이유를 전혀 모르겠다"라고 했다.
특히 "수사 기관에 가야 하는 일반 시민의 시각과 입장에서 절차 전반에 대한 평가와 분석을 전제로, 세부 사항을 정리해야 한다. 토론과 소통을 통해 문제를 풀어 나가야 한다"라고 짚었다.
100wins@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