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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승주의 수선전도] 동묘와 관우, 그리고 조선의 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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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도심에 우뚝 선 삼국지 관우 기리는 사당
임진왜란 후 국가 제사받은 관운장
다가오는 추석과 코로나시대 제사의 의미

[편집자] 수선전도(首善全圖)는 조선의 수도 한양을 목판본으로 인쇄한 지도입니다. 대동여지도를 제작한 고산자(古山子) 김정호가 만든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북쪽 도봉산부터 남쪽 한강에 이르기까지 당시 서울의 주요 도로와 동네, 궁궐 등 460여개의 지명을 세밀하게 묘사했습니다. 수선전도에 있는 지명들은 지금도 곳곳에 남아 있습니다. '오승주의 수선전도'는 이 지도에 나온 동네의 발자취를 따라 지명과 동네에 담긴 역사성과 지리적 의미, 옛사람들의 삶과 숨결 등을 살펴보고 이를 통해 오늘 숨가쁜 삶을 사는 우리 자신을 되돌아볼 계획입니다.

[서울=뉴스핌] 오승주 기자 =서울지하철 1호선과 6호선이 맞물리는 동묘앞역 3번 출구로 나오면 만물상이 펼쳐진다. '동묘 풍물시장'이다. 매일 문전성시를 이루는 풍물시장에는 골동품부터 '이런 것도 사용이 가능할까'라는 물건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다.

온갖 물건들의 집합소를 돌다보면 긴 담장 속으로 기와건물이 자리잡고 있다. 도심 한가운데 범상치 않은 풍채를 뽐내는 한옥 건물. 바로 보물 제142호 '동묘'다.

◆삼국지 관우 기리는 도심속 사당

동묘의 정식이름은 동관왕묘(東關王廟)다. 관왕, 즉 관우를 모신 동쪽 사당이라는 뜻이다. 관우는 삼국지에 등장하는 유비, 장비의 의형제다. 호는 운장인데, 흔히 관운장(關雲長)이라고도 부른다.

관우는 삼국지에서 적토마를 타고 청룡언월도를 휘두르며 촉나라 장수로 활약한다. 진수가 지은 정사 삼국지를 소설화시킨 나관중의 삼국지연의를 통해 관우는 무(武)와 충(忠), 의리(義理), 재물(財物)의 화신(化神)으로 각인됐다.

삼국지연의에서 관우가 조조에 몸을 맡길 때다. 조조가 관우의 환심을 사기 위해 여포에게서 뺏은 적토마를 선물하자 기뻐한다. "형님(유비)이 있는 곳을 알게 되면 한걸음에 달려갈 수 있다"는 이유였다. 관우는 중국인들에게는 지금까지도 '사람으로 태어나 신(神)이 된 남자'로 칭송받는다.

그런데 중국의 현신(顯神)으로 추앙받는 관우의 사당이 조선의 수도 한양에 번듯하게 자리잡은 까닭은 무얼까. 다름 아닌 임진왜란 때문이다.

조선후기 실학자 이긍익이 저술한 연려실기술(燃藜室記述)은 세간에 떠도는 야사(野史) 총서다. 연려실기술 별집에는 여러 사당과 전국의 명산, 서원, 기이한 이야기 등이 실려 있다.

[서울=뉴스핌] 오승주 기자 = 서울 동묘의 문이 굳게 닫혀 있다. 현재 동묘는 수리와 코로나19에 따른 관람제한으로 오픈되지 않고 있다. 2020.09.24 fair77@newspim.com

연려실기술 별집 제4권 사전전고(祀典典故) 제사(諸祠·여러 사당) 편이다. 동묘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일찍이 임진년과 정유년의 왜란 때에 관우의 신령이 여러 번 나타나 신병(神兵)으로써 싸움을 도와주어 명나라 장수와 군사들이 모두 말하기를, "평양의 싸움에서 이긴 것과 도산에서 싸움과, 삼도(三道)에서 왜병을 구축할 때 관우의 신령이 늘 나타나 음조(陰助)하였다."고 했다. 행주(幸州) 싸움에서 이길 때에도 신병이 나타났다 한다.

정유년 겨울에 명나라 장수가 울산의 적진을 공격하다 불리하게 되니, 무술년 1월에 퇴병하였는데 명나라 장수 유격과 진인이 힘써 싸우다가 적의 탄환에 맞아 쓰러진 것을 싣고 서울로 돌아와서 치료하면서 숭례문 밖에 있는 산기슭에다 사당 한 채를 창건하고 그 가운데 신상(神像)을 설치하여 관공(關公·관우)을 모셨더니 장수 양호를 비롯하여 모든 장수가 은(銀)을 내어 그 비용을 도왔다. 우리나라(조선)에서도 또한 은으로 도왔다. 사당이 낙성되자 선조(宣祖)께서도 가서 보았는데, 비변사의 모든 관료들이 임금의 행차를 따라 사당 앞뜰에 나아가서 재배하였다. 신상은 흙으로 만든 것으로 낯은 진한 대추와 같이 붉고, 봉(鳳·봉황)의 눈이며, 수염은 배까지 드리웠다. 좌우에 소상 둘이 큰 칼을 가지고 모시고 서 있는데 관평(關平·관우의 양아들)과 주창(周倉·관우의 부하 장수)이라고 이르며, 의젓하여 살아 있는 것 같았다. 이로부터 모든 장수가 출입할 때마다 참배하였으며, 모두 동국(조선)을 위하여 신령의 도움으로 적을 물리치기를 빌었다.'

임진왜란 때 명나라 군대가 왜군에 고전을 면치 못한 싸움이 평양성과 울산 전투다. 패배 직전까지 몰린 명나라 군사 앞에 관우의 신령이 신의 군대를 몰고 나타나 왜군을 해치웠다는 이야기다. 당시 조선 파병 장수였던 유격과 진인이 울산 전투 이후 한양에서 치료를 받을 당시 남대문 밖 산기슭, 서울 남산 근처에 관우 사당을 지었다. 관우의 상은 명나라 장수와 조선 국왕 선조가 은을 십시일반 내어 비용을 댔다.

그런데 한술 더 떠 명나라 황제인 만력제(신종)가 관우의 정식 사당을 세우라고 조선국왕에 명령한다.

[서울=뉴스핌] 오승주 기자 = 서울지하철 1호선과 6호선이 맞물리는 지역에 위치한 동묘의 모습 <사진=문화재청> 2020.09.24 fair77@newspim.com

'만력 30년에 명나라 신종황제(神宗皇帝)가 4천 금(金)을 무신(撫臣·사신) 만세덕(萬世德)에게 부쳐 조선 서울에 관왕묘를 세우도록 하였다. 조서에 이르기를, "관공의 신령이 본래 중국에서 나타났었는데, 왜란을 평정하는 역사에도 뚜렷한 도움을 받았다하니, 조선에서도 당연히 신주를 모셔야 한다."고 했다. 이에 동대문 밖에 땅을 택하여 대신에게 명하여 감독하게 하였는데, 경자년부터 역사(役事)를 시작하여 3년 만인 봄에 준공하였다. 그 소상(塑像)·신상)은 그림의 모양에 의한 것이며, 전각·행랑·문간·쇠종과 북을 설치하여 놓은 것이 무릇 백여 칸이나 되는데, 모두 중국의 제도에 의한 것이다. 편액에 쓸 것을 명나라 조정에 청하여 명나라 임금의 뜻을 받아 '현령소덕왕관공의묘(顯靈昭德王關公之廟)'라고 세웠다.'

국립문화재연구소가 2006년 발간한 '동묘의 건축'에 따르면 중국에서는 고대로부터 공자의 문묘(文廟)처럼 무묘(武廟)를 세워 관우를 숭배해 왔다. 동묘는 임진왜란이 끝난 뒤 명의 사신 만세덕이 명황제 신종의 요청을 전해와 1601년(선조 34년)에 건립됐다. 명나라 장수들이 세운 남대문 밖의 남묘에 조선이 설립한 동묘까지 관운장 사당만 선조대에 2개나 설립된다.

이후 조선왕조 말기 구한말에는 관우 숭상 신앙이 고조되면서 한양 서쪽과 북쪽에도 관왕묘가 설립돼 한양 동서남북에 관우 사당이 만들어 졌지만, 현재는 동묘만이 자리를 지키고 있다.

국가에서 관우를 숭상하게 되면서 민간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끼친다. 관우에 대한 신비감은 무속신앙과 결부돼 서민들의 생활 곳곳에 스며들었다. 무속화 등에 관우가 등장하고 국가가 아닌 민간차원에서 관우 사당이 자리를 잡는다. 서울 중구 청계천변에 위치한 성제묘(聖帝廟)가 대표적이다. 내부에는 턱수염을 쓰다듬는 붉은 낯빛의 관우가 뽀얀 얼굴의 부인과 나란히 앉아 있는 무속화가 걸려 있다.

선조를 비롯해 숙종과 영조 등 조선 임금들은 동묘에서 제사(祭祀)를 지냈다. 정묘호란 이후 망한 명나라를 기리는 서인의 사대주의가 기승을 부리면서 관운장 사당은 전국으로 확산한다.

전라도 강진과 남원, 경북 안동과 성주 등지에 관왕묘가 잇따라 설립돼 해마다 음력 5월13일(관우의 생일)이면 성대하게 제사를 지냈다.

'숙종 37년(1711년)에 명을 내려 여러 도에 있는 관왕묘의 제사를 선무사의 예에 따라 경칩과 상강에 향과 축문을 내려보내 본도에서 제사를 행하도록 하였다.'(연려실기술)

[서울=뉴스핌] 오승주 기자 = 서울 중구 방산시장에서 청계천으로 올라가는 곳에 위치한 성제묘의 모습. 관운장이 무속신앙으로 체화된 조선후기 민간신앙을 보여준다. <자료 =서우 중구청>2020.09.24 fair77@newspim.com

◆관우를 위한 제사, 조선의 제사

조선은 관우에 대한 제사를 엄숙하게 실시했다. 관우에 대한 제사는 사실상 조선이 패망에 접어든 순종 때 폐지됐다. 순종은 1908년 7월 23일 '국력이 쇠진하고 나라를 제대로 꾸려나갈 수 없는 형편이 된 마당에 때마다 사당에 제사를 올린다는 것은 너무도 벅찬 일이다'라는 이유를 들어 전국 모든 관제묘에 대한 제사가 한번에 폐지된다.

조선왕조가 공식적으로 문을 닫은 때는 1910년 8월 29일(경술국치)이다. 망국 불과 2년 전에 관우에 대한 제사를 금지한 것은 순종의 뜻도 뜻이지만 아무래도 일제의 영향이 컸던 것으로도 추정할 수 있다.

그만큼 제사는 조선이라는 나라와 민중들에게 중요했다. 조선왕조는 이념기반이 유교다. 현세의 고통을 선하게 잘 참으면 다음 생에 행복을 누릴 수 있다는 고려의 불교철학에 비해 유교는 현실철학이다. 현실세계에서 신분질서를 유지하면서 국가의 안정까지 이어져야 한다.

한번도 겪어보지 못한 내세를 믿는 것보다 현실에서 눈에 보이는 자신을 태어나게 해준 부모, 상전, 임금 등 지배세력까지 충성을 다하는 것이 인간이 살아가는 이유라고 반복한다.

제사는 아무나 지낼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조선은 크게 양인과 천민으로 계급이 나눠졌다. 양인에는 양반과 상민이 포함된다. 양인만 제사를 모실 수 있다. 천민은 제사에서 '열외'였다.

제사도 신분에 따라 철저히 나뉜다. 경국대전 예전(禮典) 봉사(奉祀) 대수(代數)편에는 제사를 지낼 수 있는 대상을 법적으로 명문화했다. 문무관 6품 이상은 위로 3대까지, 7품 이하는 2대, 서민은 부모만 제사를 모실 수 있었다. (문무관육품이상제삼대, 칠품이하제2대, 서인즉지제고비·文武官六品以上祭三代, 七品以下祭二代, 庶人則只祭考妣)

요즘으로 치면 행정고시 통과한 5급 공무원 정도가 돼야 증조할아버지와 증조 할머니 제사를 모실 수 있었다. 벼슬이 없는 서민은 부모 제사로 만족해야 했다. 양반 입장에서는 승진을 해야 조상과 이웃에 체면이 서는 일이기도 했다. 또다른 측면에서 보면 하급관리나 서민들이 제사라는 의식에 사로 잡히지 않고 하던 일에 몰두하라는 의미로도 들린다.

[서울=뉴스핌] 오승주 기자 = 동묘 풍물시장에 전시된 판매물품들의 모습. 2020.09.24 fair77@newspim.com

조선시대의 가계승계법제(정긍식, 서울대학교 법학 제51권 제2호, 2010년 6월)에 따르면 조선시대 제사는 첫째아들인 장자만 제사를 이어간다는 고정관념이 있지만, 16세기 중엽까지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제사는 여러 자녀들이 돌아가면서 봉행하는 제자녀윤회봉사(諸子女輪回奉祀)가 조선전기까지 관행이었다. 대상은 친조부모뿐 아니라 외조부모까지 제사를 지냈다.

제사의 원칙은 상속에 있다. 조선초기에는 남녀균분상속이 관행이었다. 부모에게 재산을 물려 받으면 혜택에 따른 의무인 제사도 같이 지내야 한다는 것이다. 아들이 없는 경우 양자를 들이지 않고 딸과 그 자식이 제사를 드리는 외손봉사도 성행했다. 자녀가 없으면 친족이 아닌 다른 누군가를 길러 제사를 부탁(수양·시양봉사)하기도 했다. 남편이 사망한 뒤에 처가 남편과 조상제사를 드리는 가부법(冢婦法)도 존재했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면서 통치 이데올로기인 유교의 주자학에 대한 해석변화와 삶의 방식이 바뀌면서 제사의 본질도 달라진다. 제사에 대한 규정이 집권당에 따라 형식에 치우치면서 엄격해졌다. 결혼 후 남자가 처가에 거주하는 전통이 조선 명종대를 지나면서 서서히 사라지고 부계혈통주의가 강화되면서 친손과 외손의 구별을 따지는 등 사회가 변화한다.

제사 승계에서 딸과 외손이 배제되고, 딸들은 상속에서 차별을 받았다. 여기에 임진왜란과 병자호런을 고친 후 붕괴된 향촌사회 질서를 가문을 중심으로 재편하려는 움직임이 확대된다. 신분제 붕괴가 가속화되면서 양반층도 급속하게 늘었다.

조선초 1%에 불과했던 양반층은 조선후기 70%에 육박하면서 뒤늦게 양반에 편입된 계층은 '예전에 같이 놀던 계급'과 차별화를 위해 제사에 집착하게 된다.

[서울=뉴스핌] 오승주 기자 = 수선전도에 나타난 동묘. 동대문 밖에 관우의 사당이 그려져 있다. 2020.09.24 fair77@newspim.com

◆명절 엄습한 코로나19와 제사

민족 최대 명절인 추석이 다가온다. 이번 추석은 초유의 전염병이 기세를 누그러뜨리지 않는 상황에서 맞는다. 명절 이후 늘상 들려오는 소식은 '제사' 때문에 벌어지는 사건 사고다.

제사와 차례는 조상을 기리고 마음을 다하는 큰 일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봉사(제사 지내는 일) 때문에 가족간 마음이 틀어지면 명절의 의미는 퇴색된다. 올해는 코로나19로 가족이 모이는 일도 겁난다.

현대에 들어 제사의 번거로움은 상당부분 퇴색됐다. 제사의 본질은 마음을 전하는 일이다. 코로나19에도 불구하고 제사와 차례에 집중하든, 여러 이유로 예전처럼 활기차게 명절을 맞기 힘들지 몰라도 제사의 본질만 잊지 않으면 된다. 유교에서 제사의 본질은 성(誠)이다. 정성을 들이는 마음만 가지라는 뜻이다.

fair77@newspi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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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년 의대 490명 더 뽑는다 [서울=뉴스핌] 황혜영 기자 = 2027학년도 의과대학 모집 정원이 3548명으로 늘면서 전년보다 490명이 증원된다. 이에 따라 의대 합격선 하락과 재수 이상 'N수생' 증가, 상위권 자연계 입시 재편 등 입시 지형 변화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10일 열린 보건복지부의 보건의료정책심의위원회(보정심)에 따르면 2027학년도 의대 정원이 현행 3058명에서 490명 늘린 3548명으로 확정됐다. 2028·2029학년도에는 613명, 2030·2031학년도에는 813명씩 증원하기로 했다. [서울=뉴스핌] 정일구 기자 = 정부가 2027∼2031학년도 의과대학 정원을 오늘 확정한다. 보건복지부는 10일 오후 보건의료정책심의위원회(보정심) 제7차 회의를 열고 의대 정원 규모를 논의한 뒤 브리핑을 진행해 2027∼2031학년도 의사인력 양성 규모와 교육현장 지원 방안을 발표할 예정이다. 사진은 이날 서울시내 의과대학 모습. 2026.02.10 mironj19@newspim.com 2027학년도 증원분 490명은 비서울권 32개 의대를 중심으로 모두 지역의사제 전형으로 선발되며 해당 지역 중·고교 이력 등을 갖춘 학생만 지원할 수 있는 구조다. 입시업계는 이번 정원 확대가 '지역의사제' 도입과 맞물려 여러 학년에 걸쳐 입시 전반을 흔들 것으로 보고 있다. 이번 증원은 현 고3부터 중학교 2학년까지 향후 5개 학년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분석된다. 특히 의대 정원 확대에 따른 합격선 하락이 예상된다. 종로학원 분석에 따르면 2025학년도 의대 정원 확대로 합격선 컷이 약 0.3등급 낮아졌으며, 이번 증원도 최소 0.1등급가량 하락을 불러올 것으로 보인다. 당시 지역권 대학의 경우 내신 4.7등급대까지 합격선이 내려오기도 했다. 합격선 하락은 상위권 학생들의 '반수'와 'N수생' 증가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임성호 종로학원 대표는 "의대 문턱이 낮아질 것이란 기대가 생기면 최상위권은 물론 중위권대 학생까지도 재도전에 나설 가능성이 커진다"고 전망했다. 특히 2027학년도 입시가 현행 9등급제 내신·수능 체제의 마지막 해라는 점에서 이미 내신이 확정된 상위권 재학생들이 반수에 나설 가능성도 제기된다. 지역의사제 도입은 중·고교 진학 선택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지역전형 대상 지역의 고교에 진학해야 지원 자격이 주어지기 때문에 서울·경인권 중학생 사이에서는 지방 또는 경기도 내 해당 지역 고교 진학을 고려하는 움직임이 예상된다. 또 일반 의대와 지역의사제 전형 간 합격선 차이도 발생할 것으로 관측된다. 지원 단계부터 일반 의대를 우선 선호하는 경향이 강해 동일 학생이 두 전형에 합격하더라도 일반 의대를 택할 가능성이 높아 지역의사제 전형의 합격선은 다소 낮게 형성되고 중도 탈락률도 상승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전형 구조 측면에서도 변화가 예상된다. 김병진 이투스교육평가연구소 소장은 "490명 증원 인원 전체가 일반 지원자에게 해당되지는 않으며 지역인재전형과 일반전형으로 나눠 보면 실제 전국 지원자에게 영향을 주는 증원 규모는 약 200명 수준일 것"이라고 분석했다. 또 "최근 3년간 입시에서 모집 인원 변동에 가장 민감하게 반응한 전형은 수시 교과전형, 특히 지역인재전형이었다"며 "이번 증원에서도 교과 중심 지역인재전형의 모집 인원 증가 폭이 전체 입시 흐름을 결정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hyeng0@newspim.com 2026-02-10 1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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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파벳 '100년물' 채권에 뭉칫돈 [뉴욕=뉴스핌] 김민정 특파원 = 인공지능(AI) 투자를 위한 실탄 확보에 나선 구글의 모기업 알파벳이 발행한 '100년 만기' 채권이 시장에서 뜨거운 반응을 얻었다. 100년 뒤에나 원금을 돌려받는 초장기 채권임에도 불구하고, 알파벳의 재무 건전성과 AI 패권에 대한 투자자들의 신뢰가 확인됐다는 평가다. 10일(현지시간) 블룸버그통신은 소식통을 인용해 알파벳이 영국 파운드화로 발행한 8억5000만 파운드(약 1조6900억 원) 규모의 100년 만기 채권에 무려 57억5000만 파운드의 매수 주문이 몰렸다고 보도했다. 이날 알파벳은 3년물부터 100년물까지 총 5개 트랜치(만기 구조)로 채권을 발행했는데, 그중 100년물이 가장 큰 인기를 끌었다. 알파벳은 올해 자본지출(CAPEX) 규모를 1850억 달러로 잡고 AI 지배력 강화를 위한 공격적인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이를 위해 전날 미국 시장에서도 200억 달러 규모의 회사채 발행을 성공적으로 마쳤다. 강력한 수요 덕분에 발행 금리는 당초 예상보다 낮게 책정됐다. 또한 스위스 프랑 채권 시장에서도 3년에서 25년 만기 사이의 5개 트랜치 발행을 계획하며 전방위적인 자금 조달에 나섰다. 100년 만기 채권은 국가나 기업의 신용도가 극도로 높지 않으면 발행하기 어려운 '희귀 아이템'이다. 기술 기업 중에서는 닷컴버블 당시 IBM과 1997년 모토롤라가 발행한 사례가 있으며, 그 외에는 코카콜라, 월트디즈니, 노퍽서던 등 전통적인 우량 기업들이 발행한 바 있다. 기술 기업이 100년물을 발행한 것은 모토롤라 이후 약 30년 만이다. 미국 캘리포니아주 마운틴뷰의 구글.[사진=로이터 뉴스핌] 2026.02.11 mj72284@newspim.com ◆ "알파벳엔 '신의 한 수', 투자자에겐 '미묘한 문제'" 전문가들은 이번 초장기채 발행이 알파벳 입장에서는 매우 합리적인 전략이라고 입을 모은다. 얼렌 캐피털 매니지먼트의 브루노 슈넬러 매니징 파트너는 "이번 채권 발행은 알파벳 입장에서 영리한 부채 관리"라며 "현재 금리 수준이 합리적이고 인플레이션이 장기 목표치 근처에서 유지된다면 알파벳과 같은 기업에 초장기 조달은 매우 타당한 선택"이라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알파벳의 견고한 재무제표와 현금 창출 능력, 시장 접근성을 고려할 때 100년 만기 채권을 신뢰성 있게 발행할 수 있는 기업은 전 세계에 몇 안 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투자자 입장에서는 신중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초장기채는 금리 변화에 따른 가격 변동성(듀레이션 리스크)이 매우 크기 때문이다. HSBC은행의 이송진 유럽·미국 크레딧 전략가는 "AI 산업 자체는 100년 뒤에도 존재하겠지만, 생태계가 5년 뒤에 어떤 모습일지조차 예측하기 어렵다"며 "기업 간 상대적인 서열은 언제든 뒤바뀔 수 있다"고 꼬집었다. 실제로 금리 상승기에는 초장기채의 가격이 급락할 위험이 있다. 지난 2020년 오스트리아가 표면금리 0.85%로 발행한 100년 만기 국채는 이후 금리가 오르면서 현재 액면가의 30%도 안 되는 가격에 거래되고 있다. 이를 두고 슈넬러 파트너 역시 "투자자 입장에서 이 채권의 매력은 훨씬 미묘하고 복잡한 문제"라고 했다. mj72284@newspim.com 2026-02-11 0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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긍정 영향 종목

  • Lockheed Martin Corp. Industrials
    우크라이나 안보 지원 강화 기대감으로 방산 수요 증가 직접적. 미·러 긴장 완화 불확실성 속에서도 방위산업 매출 안정성 강화 예상됨.

부정 영향 종목

  • Caterpillar Inc. Industrials
    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 시 건설 및 중장비 수요 불확실성 직접적. 글로벌 인프라 투자 지연으로 매출 성장 둔화 가능성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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