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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약중독자의 고백②] "남편과 딸과 나를 집어삼킨 마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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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약과의 질긴 인연..중학생 시절 마약중독자에게 성폭행 당해
남편마저 마약중독자에 막내딸마저 필로폰 투약
채무 대신 필로폰 받은 남성, 호기심에 손 댔다 '중독'
경찰에 끌려가는 아들 모습 보고 어머니 오열.."죽고 싶었다"

[편집자주] 대한민국은 마약 안전지대인가? 아닙니다. 마약 청정지역이 아니라는 사실이 최근 증명되고 있습니다. 대한민국은 이미 한 해 마약사범만 1만2000명, 많게는 1만6000명이 검거되고 있는 마약 오염국입니다. 최근 재벌가를 비롯해 연예인들의 마약투약 사실이 줄줄이 적발되면서 모방범죄도 우려되고 있는 형편입니다. 문제는 마약의 위험성이 제대로 알려지지 않고 있다는 것입니다. ‘중독증상’이라는 추상적인 부작용만 알려져 있을 뿐입니다. 우리가 모르고 있는 마약의 실상과 위험은 무엇일까? 뉴스핌은 마약중독자와 그 가족의 삶을 들여다보기로 했습니다. 그들이 직접 쓴 수기를 입수해 연중기획으로 보도합니다. 건강한 삶과 가정을 마약이 어떻게 파괴하는지, 마약정책의 문제점은 무엇인지 짚어봅니다. 

[서울=뉴스핌] 임성봉 기자 = #남들처럼 스스로 선택한 마약이 아니었다. 박서현(가명)씨에게 마약과 인연은 중학교 2학년 때로 거슬러간다. 어느날 오후 집 근처 골목을 지나는데 한 남성이 말을 걸어왔다. 서울역으로 가는 길 좀 알려달라는 부탁이었다. 서울역으로 가는 방향을 알려주고 돌아서는데, 남성은 집요하게 함께 가서 알려달라고 했다. 그 옆에는 친구로 보이는 남성이 차에 탄 채 박 씨를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아직 넉넉한 인심이 있던 시절, 박 씨는 결국 간곡한 부탁에 남성들을 따라나섰다.

그 선택은 박 씨에게 평생 잊을 수 없는 상처를 안겨줬다. 불과 중학교 2학년때 이 남성들은 어린 박 씨를 후미진 곳으로 데려가 강제로 마약을 투약하고 성폭행했다. 박 씨는 이후 TV를 통해 이 남성들이 유명 음악인이라는, 또 ‘마약 중독자’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애써 상처를 외면하고 살던 고등학교 1학년, 성폭행 사실을 알게 된 친척 오빠가 접근해왔다. 친척 오빠는 “너 남자 경험 있는 거 다 안다”고 협박하며 박 씨를 성폭행했다. 지옥에서 빠져나오기 위해 박 씨는 학교에서 수면제를 먹고 극단적인 선택을 시도했다. 3일만에 깨어나 가족들에게 자살을 시도한 이유를 말했다. 그런데 가족들은 오히려 피해자인 박 씨를 나무랐다. “여자가 어떻게 하고 몸가짐을 다녔길래 그러느냐”는 타박이 뒤따랐다.

‘시집은 다 갔다’고 생각한 새어머니는 아직 졸업도 안 한 박 씨를 이름 모를 서른 살 남성에게 팔아버렸다. 후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이 남성은 박 씨의 이복동생에게 학비를 대주는 조건으로 박 씨를 데려갔다.

남편 아닌 남편은 돈이 많은 ‘마약중독자’였다. 박 씨 역시 자연스럽게 마약에 빠져들었다. 모질고 힘들었던 시간이었다. 남성은 박 씨를 3년 동안이나 외진 곳으로 끌고 다녔다. 그 사이에서 두 딸도 낳았다. 어느 날에는 경찰이 집에 들이닥쳐 남편을 붙잡아갔다. 남편이 약초라고 했던 물건이 사실 대마초라는 사실도 이때 알았다. 무서움에 대마초를 재래식 변기에 모두 버렸다. 출소한 남편은 이 사실을 알고 3살, 1살 된 두 딸을 포함해 박 씨를 죽도록 때렸다. 박 씨는 아기 기저귀 한 장 챙기지 못하고 맨몸으로 도망쳤다.

검찰 /김학선 기자 yooksa@

돈도 기술도 없던 박 씨는 한 아동 상담소를 찾아갔다. 상담사는 아이들을 위해 해외입양을 권유했다. 아직 핏덩이인 아기를 해외에 보낼 수 없었던 박 씨는 결국 국내 한 고아원에 아이들을 맡겼다. 박 씨는 당시 큰 딸이 죽을 듯이 울며 달라붙던 모습을 잊지 못한다. “꼭 데리러 오겠다”는 말만 남기고 박 씨는 고아원을 빠져나갔다.

아이들을 위해 박 씨는 마약을 끊기로 결심했다. 다른 중독자들과 달리 마약을 끊어야 할 이유는 분명했다. 엄마를 기다리고 있을 두 딸. 박 씨는 9년 동안 한 대학 부속병원 신경정신과에 입원했다. 지독한 금단현상이 덮쳐왔다. 몸이 떨리고 신경은 날카로워졌다. 모든 걸 포기하고 싶었던 순간마다 두 딸의 얼굴을 떠올렸다. 박 씨는 의사선생님으로부터 단약에 성공했다는 판단을 받자마자, 딸들이 있는 고아원으로 달려갔다. 박 씨는 20대, 아이들은 어느새 10대가 돼 있었다. 오랜 시간 떨어져 지냈지만, 다행히 아이들은 박 씨를 따라나섰다.

사건은 막내딸이 고등학교 2학년에 접어들면서 터졌다. 아이들 방을 정리하던 박 씨는 그곳에 있어서는 안 될 주사기를 발견했다. 필로폰이었다. 수시로 가출하던 막내딸이 마약에 손 대고 있다는 사실은 박 씨에게 충격이었다. 10대에 처음 마약을 접했던 박 씨는 막내딸에게 마약이 대물림 됐다는 사실이 두려웠다. 박 씨는 곧장 경찰서를 찾아가 도움을 요청했다. 그런데 경찰은 별안간 막내딸을 붙잡아 구속했다. 경찰에 의논만 하려고 한 것이 딸을 전과자로 만들게 됐다는 사실에 박 씨는 가슴을 치며 후회했다. 다행히 딸은 집행유예로 얼마 지나지 않아 풀려났지만 집에 쪽지 한 장 남기지 않고 자취를 감췄다.

막내딸이 집을 나간지 3년이 지난 어느날, 전화가 울렸다. 수화기 너머로 꿈에 그리던 막내딸의 목소리가 들렸다. “엄마, 저예요..” 놀란 박 씨는 숨조차 쉴 수 없었다. 가정으로 돌아온 딸은 엄마가 그랬던 것처럼 단약(마약을 끊는 일)에 성공했다. 두 딸은 번듯한 직장을 잡아 각자의 삶을 꾸려나갔다. 박 씨는 구청에서 하는 여성축구회에도 나가고 검정고시도 준비했다. 마약과의 질긴 인연에 끝을 낸 박 씨는 이제 주변 사람들에게 “마약중독자를 편견으로 바라보지 말라”며 “누구나 교통사고의 위험이 있듯 누구도 마약에서 안전하지 않다”고 말한다.

#친구에게 채무 대신 마약을 받은 그날, 최정락(가명)씨의 인생은 나락으로 떨어졌다. 빌려준 돈을 받기 위해 만난 친구는 대뜸 “돈이 없으니 대신 이거라도 받으라”며 필로폰을 건넸다. 마약을 팔면 빌려준 돈보다 더 많은 돈을 만질 수 있을 거라는 말도 덧붙였다.

젊은 시절부터 조직폭력배에 몸 담았던 최 씨에게 마약은 흔히 볼 수 있는 물건이었다. 마약은 큰 돈을 만질 수 있는 조직의 주요 수입원이었다. 다만 최 씨는 마약에 취한 동료들의 모습을 보며 마약을 경멸했고 또 멀리했다. 오랜 조직 생활에도 마약중독자의 길로 빠지지 않았던 최 씨였지만, 문제는 역시 ‘호기심’이었다. 팔뚝에 주사기를 꽂아넣은 최 씨는 그렇게 마약의 수렁에 발을 담그게 됐다.

곧 최 씨는 필로폰 말고는 어떤 것에도 흥미를 느끼지 못하게 됐다. 심지어 마약을 하지 않으면 몸이 아프기까지 했다. 마약은 최 씨의 몸은 물론 정신까지 잠식해 들어갔다. 4개월 뒤 최 씨에게 처음 마약을 건넸던 친구가 경찰에 붙잡혔다. 당연히 최 씨 역시 마약 투약 사실이 적발돼 구속됐다. 다른 폭력사건까지 겹쳐 2년형을 선고받았다.

교도소에 갇힌 최 씨는 마약을 끊어야 겠다는 생각보다 밀고한 친구를 원망했다. 오히려 재수가 없어 걸렸다고 생각했다. 출소 후 최 씨는 더 은밀히 마약을 즐길 방법을 찾아다녔다. 이제 최 씨 주변에는 온통 마약 중독자들 뿐이었다. 처음 처벌을 받은 이후 최 씨는 불안증세에 시달리기 시작했다. 단속에 대한 두려움이었다. 신경은 날카로워졌고 사소한 일에도 짜증을 냈다. 최 씨는 마약으로 인한 불안을 마약으로 달래는 악순환을 반복했다.

 

불안은 현실이 됐다. 마약 투약 혐의로 체포된 최 씨는 다른 공무집행방해사건까지 겹쳐 3년동안 차디찬 교도소에서 복역했다. 최 씨는 이때 처음으로 마약에 손 댄 걸 후회했다. 아직 27살, 앞이 창창한 젊은 나이였음에도 삶이 망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이다. 때로는 자포자기하는 심정으로 교도소 내에서 싸움을 하거나 자해하기도 했다. 화를 풀기 위해 폭력을 휘둘러도 후회는 쉽게 가시지 않았다.

최 씨는 오랜 시간 복역을 마치고 교도소 정문을 나섰다. 비가 쏟아지는 날이었지만, 조직 선배들이 마중나와 있었다. 차를 타고 집으로 가는 길, 한 선배가 “회포 좀 풀어야 하지 않겠느냐”며 필로폰이 담긴 주사기를 꺼냈다. 교도소에서 다시는 마약을 하지 않겠다고 각오했던 최 씨는 눈 앞의 마약에 흔들렸다. 정신은 마약을 거부했지만, 몸이 뜨거워졌다. 숨이 가빠오고 손이 떨리기 시작했다. 마약의 간단한 손짓 한 번에 최 씨의 결심은 쉽게 무너졌다. 최 씨는 복역 중 마약을 끊었다고 생각했지만, 이는 단약이 아니라 단지 마약을 할 수 없는 환경이었을 뿐이었다.

출소날 마약을 건네준 조직의 선배가 경찰에 붙잡혔다. 경찰은 이 선배에게 마약투약자 5명의 이름을 대고 검거에 도움을 주면 풀어준다고 약속했다. 결국 선배는 최 씨를 포함해 7명의 이름을 댔다. 최 씨는 출소한지 불과 ‘3일’만에 다시 차가운 철창 속으로 들어갔다. 다시 붙잡혀 온 자신의 모습을 본 최 씨는 비참했다. 특히 경찰에 붙잡히는 그 모습을 모두 지켜본 어머니의 얼굴이 잊혀지지 않았다. 3년 만에 다시 보는 아들의 모습을 다시 경찰서에서 봐야만 했던 어머니. 경찰차에 타지 않으려 몸부림치며 발악하는 아들의 모습을 보고 길바닥에 그대로 주저 앉아 우셨던 어머니. 끝내 범죄자의 모습으로 경찰차에 태워진 아들의 모습을 보고 그대로 쓰러지신 어머니. 그 모습을 본 최 씨는 가슴이 쓰렸다.

최 씨는 결국 유치장 화장실에 들어가 입고 있던 옷을 벗어 끔찍한 선택을 했다. 최 씨는 자신이 없어지면 어머니도 누나도 더 이상 마음 고생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했다. 다행히 옷을 매놓은 쇠철창이 끊어지면서 최 씨는 목숨을 구했다. 눈을 뜬 최 씨는 그날 밀려오는 후회와 서글픔에 냄새나는 담요를 덮고 엉엉 울었다. 최 씨는 죽음의 문턱에서 살아돌아오면서 ‘단약’을 결심했다.

출소일 아침, 최 씨의 어머니는 쌀쌀한 바람을 온몸으로 맞으며 교도소 앞 의자에 앉아 있었다. 어머니 손에는 아들을 위한 두꺼운 옷이 들려 있었다. 최 씨는 곧장 알고 지내던 사람들과의 관계를 모두 정리했다. 스스로 단약에 성공하기 어렵다고 판단한 최 씨는 마약상담을 받기 위해 한 시민단체를 찾았다. 이곳에서 마약을 끊고 있는 한 여성을 보면서 최 씨도 자신감을 갖게 됐다. 매주 중독자 치료모임에 나가 서로가 안고 있던 고통의 시간도 공유하고 격려하면서 단약의 의지를 다졌다. 최 씨는 단약을 넘어 마약에 빠진 청소년들의 상담도 맡았다. 이들에게 자신이 겪은 생생한 경험을 전해주면서 마약중독자의 길로 걷지 않도록 도와주는 역할이다.

최 씨는 마약뿐이었던 지난 인생을 후회하는 만큼, 이제 새로운 삶을 가꾸기 위해 자신과의 싸움을 시작하고 있다.

※ 마약에 중독됐을 경우 한국마약퇴치운동본부를 통해 전문가의 상담을 받을 수 있으며 △국립부곡병원 △시립은평병원 △중독재활센터에서 무료로 치료를 받을 수 있습니다. 

imbong@newspi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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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다시 청와대…낙수효과 기대 [서울=뉴스핌] 조준경 기자 = 지난 22일부터 언론 브리핑이 청와대 춘추관에서 진행되면서, 용산 대통령실 시대가 사실상 마무리됐다. 이재명 대통령은 이달 말부터 청와대에서 집무를 시작할 예정이다. 다시 청와대 시대가 오는 것이다.  23일 서울 종로구 청와대 부근의 효자동과 통의동 인근 상인들과 주민들을 방문해 대통령실 청와대 복귀에 대한 의견을 들어봤다. 기대하는 이들이 있는 한편, 별 차이가 없을 것이라며 시큰둥한 반응을 보이는 이들도 있었다. 다만 기자와 취재원들의 만남이 무작위적으로 이뤄졌기 때문에 전체 상인과 주민들의 입장을 대변하지는 않는다. [서울=뉴스핌] 조준경 기자 = 23일 효자로 남단에서 청와대 방향을 바라본 모습. 우측으로 경복궁 영추문이 눈에 들어온다. 2025.12.23 calebcao@newspim.com ◆ "낙수 효과로 장사 잘 될 것 기대 중" 이날 오전 자하문로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50대 여성 A씨는 대통령실 청와대 복귀에 대한 의견을 묻는 기자의 질문에 "대통령실이 청와대로 돌아왔다니까 기대하는게 크다"면서 "아무래도 직원들도 돌아오고 하니 매출이 늘어나지 않겠어요?"라고 예측했다. A씨는 장사를 시작한지 3개월 가량 지났다고 밝혔다. 점심 무렵인 오전 11시쯤 효자동에서 5년째 음식 장사 중인 김광재 청기와집 사장(62)은 대통령실 용산 이전(移轉) 전후를 설명했다. 김 사장은 "용산으로 가기 전에는 점심 장사로만 60~70명 정도를 받았고, 청와대 외곽을 경비서는 경찰 인력들이 큰 비중을 차지했다"면서 "그러다가 청와대를 일반인들에게 개방하고 나서는 5~6개월간 관광객이 몰려들며 300명씩 받는 '특수'를 누렸다"고 얘기했다. 그는 "이후에 거의 다 관람하고 나서 청와대 신비감이 떨어졌고 2년 가까이 장사가 엄청 안됐다"면서 "용산으로 가기 전에 비하면 반 토막 정도 떨어진 것 같다. 그래서 다시 대통령실이 돌아온다니까 기대가 크다"고 밝혔다. 김 사장과 대화하는 중간에 청와대 외곽 경비를 담당하는 경찰 직원 7명이 식당 안으로 들어왔다. 김 사장이 기자에게 양해를 구하고 손님들의 자리 안내를 한 후 다시 돌아와 인터뷰를 계속했다. "지금도 사람들이 들어오잖아요. 저분들은 기동대인데, 낙수효과지. 근무하는 인원이 몇 천은 될 테니까. 그 안에서 식사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밖으로 나와서 먹는 사람도 있을 겁니다. 도시락을 맞출 수도 있으니까 우리에겐 기회지." 집회나 시위에 대한 걱정이 없냐는 질문에 김 사장은 "시위 걱정? 시위대가 온다고 식당을 부수진 않으니까, 왔으면 밥이라도 한 그릇 먹겠지 우리 손해는 아닐 겁니다"라면서도 "다만 주민들은 피해를 볼 수도 있겠네요. 막 욕하고 시끄럽게 떠들고 할 테니까"라고 내다봤다. ◆ "별 체감 안 되는데" 시큰둥한 반응...임대료 증가 걱정도 효자동에서 남쪽에 인접한 경복궁 옆 통의동 골목에서 25년째 한식당을 하고 있는 60대 여성 B씨는 "솔직히 (장사가 잘 되는)체감이 아직은 안가요. 뭐 돌아오면 나아지겠지?"라며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다. 이어 "우리 집은 경찰이나 직원들이 오는 집은 아니에요. 그 전에도 그렇게 많이 오지 않았고. 주로 경복궁에 놀러 온 사람들이 찾아와요"라며 "(이전에 청와대 사람들이)오더라도 그 사람들은 왜 이렇게 룸을 찾는지, 음식 맛보러 오는 게 아니라 대화하려고 오는거야. 그래서 대통령실 돌아왔다고 해도 그냥 그래"라며 얼버무렸다. 경복궁과 통의동을 가르는 효자로변에서 카페를 운영하는 76세 남성 C씨도 대통령실 복귀가 자신과는 크게 상관이 없다고 설명했다. 오히려 대통령실이 용산으로 갔다가 돌아오는 바람에 상권 변화에 따른 불안정성만 커졌다고 지적했다. "원래 12월은 비수기라 사람이 없어요. 그래서 체감이 안 가는 걸 수도 있는데, 여기서 15년 장사를 했는데, 그 전에도 대통령실 직원들이나 경찰들이 우리 가게에는 오지 않았어요." C씨의 가게는 커피콩을 직접 볶는 '로스팅' 전문점이다. 과거 문재인 정권 시절에는 청와대에서 커피콩을 사러 오는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대다수 고객은 경복궁을 찾는 관광객들이다. "대통령실이 용산으로 가기 전에 이 안쪽 골목에는 비싼 한식집들이 많았습니다. 아무래도 고위 관료들을 대상으로 장사를 하는 곳이었겠죠. 그런데 용산으로 가버리니까, 그 집들이 다 카페로 바뀌었어요. 옛날엔 이 근방에 카페가 5~6곳이었는데, 올해만 20곳 넘게 생겼어요." C씨의 설명에 따르면 청와대가 일반인들에게 개방되며 카페들이 우후죽순 생겨났다고 한다. C씨의 추측으로는 올해 들어 주변 상점들의 임대차 계약 만료일이 겹쳤는지, 전체적으로 월세가 큰 폭으로 올랐다고 한다. "이 부근 월세가 보통 30평에 500만원을 내는데, 다른 카페들 보면 더 큰 평수겠지만 1000만~1500만원 내는 곳도 있습니다. 근데 보시면 알겠지만 장사가 안돼요. 내 나이에는 돈 벌려고 하는 게 아니라 월세만 내면 버티지만 다른 곳들은 걱정입니다" 집회와 시위가 늘어나는 것에 대한 질문에는 "시위도 두 종류가 있다"며 "무슨 노조들이 하는 시위는 매출과 관계 하나도 없고 시끄럽지만, 여러 시민단체나 각 개인이 와서 하는 시위는 장사에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청와대 옆 무궁화동산에서 만난 산책 중이던 동네 주민 D씨는 "원래 여기가 조용하기도 하고 시끄러운 곳"이라며 "용산으로 갔을 때도 큼지막한 시위는 항상 광화문에서 했기 때문에 별 차이는 못 느꼈다"고 얘기했다. D씨는 "옛날 2008년에 광우병 시위를 크게 할 때는 집에 가는 길도 시위대랑 경찰에 막혀서 불편한 게 많았다"면서 "그런 것만 제외하면 동네 사는 게 나쁘진 않다"고 설명했다. 한편 일각에선 대통령실 청와대 복귀와 관련해 수백억원의 혈세가 낭비됐다는 비판도 나오고 있다. 용산에서 다시 청와대로 옮기는 데 드는 비용이 269억원, 그 자리에 국방부가 다시 들어오는 데 238억원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2022년 윤석열 정부가 용산으로 대통령실을 옮길 때 든 비용 800억원을 합산하면 총 1300억원의 비용이 낭비된 셈이다. calebcao@newspim.com 2025-12-23 1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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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한카드, 19만명 정보 유출 [서울=뉴스핌] 이윤애 기자 = 국내 최대 신용카드사인 신한카드에서 가맹점 대표자 약 19만명의 개인정보가 유출된 사실이 확인됐다. 신한카드는 해당 사실을 인지한 뒤 개인정보보호위원회에 신고하고 후속 조치에 착수했다. 신한카드는 23일 가맹점 대표자의 휴대전화번호를 포함한 총 19만2088건의 개인정보가 신규 카드 모집 과정에서 유출된 것으로 파악됐다고 밝혔다. [서울=뉴스핌] 이윤애 기자 = 신한카드 본사 전경[ 사진=신한카드] 2025.06.18 yunyun@newspim.com 유출된 정보는 ▲휴대전화번호 18만1585건 ▲휴대전화번호와 성명 8120건 ▲휴대전화번호·성명·생년·성별 2310건 ▲휴대전화번호·성명·생년월일 73건 등이다. 신한카드는 조사 결과 주민등록번호, 카드번호, 계좌번호 등 민감한 신용정보는 포함되지 않았으며, 가맹점 대표자 정보 외 일반 고객 정보와도 무관하다고 설명했다. 해킹 등 외부 침투로부터 비롯된 것은 아니며 조사 결과 일부 내부 직원의 신규 카드 모집을 위한 일탈로 밝혀진 만큼 유출된 정보가 다른 곳으로 추가 확산될 염려도 없는 것으로 파악된다고 덧붙였다 신한카드 관계자는 "현재까지 해당 정보로 인한 실제 피해 사례는 확인되지 않았다"면서도 "향후 피해가 발생할 경우 적극적으로 보상에 나설 계획"이라고 말했다. 신한카드는 홈페이지를 통해 사고 사실과 사과문을 게시하고, 가맹점 대표자가 본인의 정보 포함 여부를 직접 확인할 수 있는 조회 페이지를 운영 중이다. 아울러 개별 안내도 병행하고 있다. 신한카드 관계자는 "이번 일로 심려를 끼쳐드린 점에 대해 깊이 사과드린다"며 "고객 보호와 유사 사례 재발 방지를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해당 사안이 '목적 외 개인정보 이용'인지, '정보 유출'인지 추가 조사를 통해 확인해야할 필요가 있으나, 적극적인 고객 보호를 위해 '정보 유출'에 준하는 조치를 취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yunyun@newspim.com 2025-12-23 1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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긍정 영향 종목

  • Lockheed Martin Corp. Industrials
    우크라이나 안보 지원 강화 기대감으로 방산 수요 증가 직접적. 미·러 긴장 완화 불확실성 속에서도 방위산업 매출 안정성 강화 예상됨.

부정 영향 종목

  • Caterpillar Inc. Industrials
    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 시 건설 및 중장비 수요 불확실성 직접적. 글로벌 인프라 투자 지연으로 매출 성장 둔화 가능성 있음.
이 내용에 포함된 데이터와 의견은 뉴스핌 AI가 분석한 결과입니다. 정보 제공 목적으로만 작성되었으며, 특정 종목 매매를 권유하지 않습니다. 투자 판단 및 결과에 대한 책임은 투자자 본인에게 있습니다. 주식 투자는 원금 손실 가능성이 있으므로, 투자 전 충분한 조사와 전문가 상담을 권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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