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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약중독자의 고백②] "남편과 딸과 나를 집어삼킨 마약"

마약과의 질긴 인연..중학생 시절 마약중독자에게 성폭행 당해
남편마저 마약중독자에 막내딸마저 필로폰 투약
채무 대신 필로폰 받은 남성, 호기심에 손 댔다 '중독'
경찰에 끌려가는 아들 모습 보고 어머니 오열.."죽고 싶었다"

  • 기사입력 : 2019년04월18일 15:02
  • 최종수정 : 2019년04월19일 14: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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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대한민국은 마약 안전지대인가? 아닙니다. 마약 청정지역이 아니라는 사실이 최근 증명되고 있습니다. 대한민국은 이미 한 해 마약사범만 1만2000명, 많게는 1만6000명이 검거되고 있는 마약 오염국입니다. 최근 재벌가를 비롯해 연예인들의 마약투약 사실이 줄줄이 적발되면서 모방범죄도 우려되고 있는 형편입니다. 문제는 마약의 위험성이 제대로 알려지지 않고 있다는 것입니다. ‘중독증상’이라는 추상적인 부작용만 알려져 있을 뿐입니다. 우리가 모르고 있는 마약의 실상과 위험은 무엇일까? 뉴스핌은 마약중독자와 그 가족의 삶을 들여다보기로 했습니다. 그들이 직접 쓴 수기를 입수해 연중기획으로 보도합니다. 건강한 삶과 가정을 마약이 어떻게 파괴하는지, 마약정책의 문제점은 무엇인지 짚어봅니다. 

<목차> 
[마약중독자의 고백①] "악마의 속삭임에 삶이 무너져 내렸다”
[마약중독자의 고백②] "남편과 딸과 나를 집어삼킨 마약"
[마약중독자의 고백③] 쾌락 너머의 진실..파괴된 삶과 가정
[마약중독자의 고백④] 재범자 양성하는 마약퇴치 정책
[마약중독자의 고백⑤] 전문가 제언 

[서울=뉴스핌] 임성봉 기자 = #남들처럼 스스로 선택한 마약이 아니었다. 박서현(가명)씨에게 마약과 인연은 중학교 2학년 때로 거슬러간다. 어느날 오후 집 근처 골목을 지나는데 한 남성이 말을 걸어왔다. 서울역으로 가는 길 좀 알려달라는 부탁이었다. 서울역으로 가는 방향을 알려주고 돌아서는데, 남성은 집요하게 함께 가서 알려달라고 했다. 그 옆에는 친구로 보이는 남성이 차에 탄 채 박 씨를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아직 넉넉한 인심이 있던 시절, 박 씨는 결국 간곡한 부탁에 남성들을 따라나섰다.

그 선택은 박 씨에게 평생 잊을 수 없는 상처를 안겨줬다. 불과 중학교 2학년때 이 남성들은 어린 박 씨를 후미진 곳으로 데려가 강제로 마약을 투약하고 성폭행했다. 박 씨는 이후 TV를 통해 이 남성들이 유명 음악인이라는, 또 ‘마약 중독자’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애써 상처를 외면하고 살던 고등학교 1학년, 성폭행 사실을 알게 된 친척 오빠가 접근해왔다. 친척 오빠는 “너 남자 경험 있는 거 다 안다”고 협박하며 박 씨를 성폭행했다. 지옥에서 빠져나오기 위해 박 씨는 학교에서 수면제를 먹고 극단적인 선택을 시도했다. 3일만에 깨어나 가족들에게 자살을 시도한 이유를 말했다. 그런데 가족들은 오히려 피해자인 박 씨를 나무랐다. “여자가 어떻게 하고 몸가짐을 다녔길래 그러느냐”는 타박이 뒤따랐다.

‘시집은 다 갔다’고 생각한 새어머니는 아직 졸업도 안 한 박 씨를 이름 모를 서른 살 남성에게 팔아버렸다. 후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이 남성은 박 씨의 이복동생에게 학비를 대주는 조건으로 박 씨를 데려갔다.

남편 아닌 남편은 돈이 많은 ‘마약중독자’였다. 박 씨 역시 자연스럽게 마약에 빠져들었다. 모질고 힘들었던 시간이었다. 남성은 박 씨를 3년 동안이나 외진 곳으로 끌고 다녔다. 그 사이에서 두 딸도 낳았다. 어느 날에는 경찰이 집에 들이닥쳐 남편을 붙잡아갔다. 남편이 약초라고 했던 물건이 사실 대마초라는 사실도 이때 알았다. 무서움에 대마초를 재래식 변기에 모두 버렸다. 출소한 남편은 이 사실을 알고 3살, 1살 된 두 딸을 포함해 박 씨를 죽도록 때렸다. 박 씨는 아기 기저귀 한 장 챙기지 못하고 맨몸으로 도망쳤다.

검찰 /김학선 기자 yooksa@

돈도 기술도 없던 박 씨는 한 아동 상담소를 찾아갔다. 상담사는 아이들을 위해 해외입양을 권유했다. 아직 핏덩이인 아기를 해외에 보낼 수 없었던 박 씨는 결국 국내 한 고아원에 아이들을 맡겼다. 박 씨는 당시 큰 딸이 죽을 듯이 울며 달라붙던 모습을 잊지 못한다. “꼭 데리러 오겠다”는 말만 남기고 박 씨는 고아원을 빠져나갔다.

아이들을 위해 박 씨는 마약을 끊기로 결심했다. 다른 중독자들과 달리 마약을 끊어야 할 이유는 분명했다. 엄마를 기다리고 있을 두 딸. 박 씨는 9년 동안 한 대학 부속병원 신경정신과에 입원했다. 지독한 금단현상이 덮쳐왔다. 몸이 떨리고 신경은 날카로워졌다. 모든 걸 포기하고 싶었던 순간마다 두 딸의 얼굴을 떠올렸다. 박 씨는 의사선생님으로부터 단약에 성공했다는 판단을 받자마자, 딸들이 있는 고아원으로 달려갔다. 박 씨는 20대, 아이들은 어느새 10대가 돼 있었다. 오랜 시간 떨어져 지냈지만, 다행히 아이들은 박 씨를 따라나섰다.

사건은 막내딸이 고등학교 2학년에 접어들면서 터졌다. 아이들 방을 정리하던 박 씨는 그곳에 있어서는 안 될 주사기를 발견했다. 필로폰이었다. 수시로 가출하던 막내딸이 마약에 손 대고 있다는 사실은 박 씨에게 충격이었다. 10대에 처음 마약을 접했던 박 씨는 막내딸에게 마약이 대물림 됐다는 사실이 두려웠다. 박 씨는 곧장 경찰서를 찾아가 도움을 요청했다. 그런데 경찰은 별안간 막내딸을 붙잡아 구속했다. 경찰에 의논만 하려고 한 것이 딸을 전과자로 만들게 됐다는 사실에 박 씨는 가슴을 치며 후회했다. 다행히 딸은 집행유예로 얼마 지나지 않아 풀려났지만 집에 쪽지 한 장 남기지 않고 자취를 감췄다.

막내딸이 집을 나간지 3년이 지난 어느날, 전화가 울렸다. 수화기 너머로 꿈에 그리던 막내딸의 목소리가 들렸다. “엄마, 저예요..” 놀란 박 씨는 숨조차 쉴 수 없었다. 가정으로 돌아온 딸은 엄마가 그랬던 것처럼 단약(마약을 끊는 일)에 성공했다. 두 딸은 번듯한 직장을 잡아 각자의 삶을 꾸려나갔다. 박 씨는 구청에서 하는 여성축구회에도 나가고 검정고시도 준비했다. 마약과의 질긴 인연에 끝을 낸 박 씨는 이제 주변 사람들에게 “마약중독자를 편견으로 바라보지 말라”며 “누구나 교통사고의 위험이 있듯 누구도 마약에서 안전하지 않다”고 말한다.

#친구에게 채무 대신 마약을 받은 그날, 최정락(가명)씨의 인생은 나락으로 떨어졌다. 빌려준 돈을 받기 위해 만난 친구는 대뜸 “돈이 없으니 대신 이거라도 받으라”며 필로폰을 건넸다. 마약을 팔면 빌려준 돈보다 더 많은 돈을 만질 수 있을 거라는 말도 덧붙였다.

젊은 시절부터 조직폭력배에 몸 담았던 최 씨에게 마약은 흔히 볼 수 있는 물건이었다. 마약은 큰 돈을 만질 수 있는 조직의 주요 수입원이었다. 다만 최 씨는 마약에 취한 동료들의 모습을 보며 마약을 경멸했고 또 멀리했다. 오랜 조직 생활에도 마약중독자의 길로 빠지지 않았던 최 씨였지만, 문제는 역시 ‘호기심’이었다. 팔뚝에 주사기를 꽂아넣은 최 씨는 그렇게 마약의 수렁에 발을 담그게 됐다.

곧 최 씨는 필로폰 말고는 어떤 것에도 흥미를 느끼지 못하게 됐다. 심지어 마약을 하지 않으면 몸이 아프기까지 했다. 마약은 최 씨의 몸은 물론 정신까지 잠식해 들어갔다. 4개월 뒤 최 씨에게 처음 마약을 건넸던 친구가 경찰에 붙잡혔다. 당연히 최 씨 역시 마약 투약 사실이 적발돼 구속됐다. 다른 폭력사건까지 겹쳐 2년형을 선고받았다.

교도소에 갇힌 최 씨는 마약을 끊어야 겠다는 생각보다 밀고한 친구를 원망했다. 오히려 재수가 없어 걸렸다고 생각했다. 출소 후 최 씨는 더 은밀히 마약을 즐길 방법을 찾아다녔다. 이제 최 씨 주변에는 온통 마약 중독자들 뿐이었다. 처음 처벌을 받은 이후 최 씨는 불안증세에 시달리기 시작했다. 단속에 대한 두려움이었다. 신경은 날카로워졌고 사소한 일에도 짜증을 냈다. 최 씨는 마약으로 인한 불안을 마약으로 달래는 악순환을 반복했다.

 

불안은 현실이 됐다. 마약 투약 혐의로 체포된 최 씨는 다른 공무집행방해사건까지 겹쳐 3년동안 차디찬 교도소에서 복역했다. 최 씨는 이때 처음으로 마약에 손 댄 걸 후회했다. 아직 27살, 앞이 창창한 젊은 나이였음에도 삶이 망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이다. 때로는 자포자기하는 심정으로 교도소 내에서 싸움을 하거나 자해하기도 했다. 화를 풀기 위해 폭력을 휘둘러도 후회는 쉽게 가시지 않았다.

최 씨는 오랜 시간 복역을 마치고 교도소 정문을 나섰다. 비가 쏟아지는 날이었지만, 조직 선배들이 마중나와 있었다. 차를 타고 집으로 가는 길, 한 선배가 “회포 좀 풀어야 하지 않겠느냐”며 필로폰이 담긴 주사기를 꺼냈다. 교도소에서 다시는 마약을 하지 않겠다고 각오했던 최 씨는 눈 앞의 마약에 흔들렸다. 정신은 마약을 거부했지만, 몸이 뜨거워졌다. 숨이 가빠오고 손이 떨리기 시작했다. 마약의 간단한 손짓 한 번에 최 씨의 결심은 쉽게 무너졌다. 최 씨는 복역 중 마약을 끊었다고 생각했지만, 이는 단약이 아니라 단지 마약을 할 수 없는 환경이었을 뿐이었다.

출소날 마약을 건네준 조직의 선배가 경찰에 붙잡혔다. 경찰은 이 선배에게 마약투약자 5명의 이름을 대고 검거에 도움을 주면 풀어준다고 약속했다. 결국 선배는 최 씨를 포함해 7명의 이름을 댔다. 최 씨는 출소한지 불과 ‘3일’만에 다시 차가운 철창 속으로 들어갔다. 다시 붙잡혀 온 자신의 모습을 본 최 씨는 비참했다. 특히 경찰에 붙잡히는 그 모습을 모두 지켜본 어머니의 얼굴이 잊혀지지 않았다. 3년 만에 다시 보는 아들의 모습을 다시 경찰서에서 봐야만 했던 어머니. 경찰차에 타지 않으려 몸부림치며 발악하는 아들의 모습을 보고 길바닥에 그대로 주저 앉아 우셨던 어머니. 끝내 범죄자의 모습으로 경찰차에 태워진 아들의 모습을 보고 그대로 쓰러지신 어머니. 그 모습을 본 최 씨는 가슴이 쓰렸다.

최 씨는 결국 유치장 화장실에 들어가 입고 있던 옷을 벗어 끔찍한 선택을 했다. 최 씨는 자신이 없어지면 어머니도 누나도 더 이상 마음 고생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했다. 다행히 옷을 매놓은 쇠철창이 끊어지면서 최 씨는 목숨을 구했다. 눈을 뜬 최 씨는 그날 밀려오는 후회와 서글픔에 냄새나는 담요를 덮고 엉엉 울었다. 최 씨는 죽음의 문턱에서 살아돌아오면서 ‘단약’을 결심했다.

출소일 아침, 최 씨의 어머니는 쌀쌀한 바람을 온몸으로 맞으며 교도소 앞 의자에 앉아 있었다. 어머니 손에는 아들을 위한 두꺼운 옷이 들려 있었다. 최 씨는 곧장 알고 지내던 사람들과의 관계를 모두 정리했다. 스스로 단약에 성공하기 어렵다고 판단한 최 씨는 마약상담을 받기 위해 한 시민단체를 찾았다. 이곳에서 마약을 끊고 있는 한 여성을 보면서 최 씨도 자신감을 갖게 됐다. 매주 중독자 치료모임에 나가 서로가 안고 있던 고통의 시간도 공유하고 격려하면서 단약의 의지를 다졌다. 최 씨는 단약을 넘어 마약에 빠진 청소년들의 상담도 맡았다. 이들에게 자신이 겪은 생생한 경험을 전해주면서 마약중독자의 길로 걷지 않도록 도와주는 역할이다.

최 씨는 마약뿐이었던 지난 인생을 후회하는 만큼, 이제 새로운 삶을 가꾸기 위해 자신과의 싸움을 시작하고 있다.

※ 마약에 중독됐을 경우 한국마약퇴치운동본부를 통해 전문가의 상담을 받을 수 있으며 △국립부곡병원 △시립은평병원 △중독재활센터에서 무료로 치료를 받을 수 있습니다. 

imbong@newspi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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