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B들 기후 리스크 대응팀 신설
기후 파생상품 거래량 260% 급증
부동산 인기 지역 직격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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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스핌] 황숙혜 기자 = 기후 위기가 지구촌 곳곳을 강타한 가운데 월가에서는 '큰 장'이 형성되기 시작했다.
이른바 기후플레이션(climateflation)에 대응하려는 헤지 수요와 홍수와 폭염, 산불까지 기후 재난으로 인한 잠재적인 손실 리스크에 대비하려는 기업 및 농가가 급증하면서 기후 관련 파생상품 시장이 몸집을 불리고 있다.
투자은행(IB) 업계에서는 주식 트레이딩 부문과 외환 딜링룸에 기후 리스크 대응팀을 별도로 둘 정도로 지구온난화 문제의 존재감이 커졌고, 전문 투자 컨설팅 업체도 생겨나는 상황이다.
시카고상업거래소(CME)에 따르면 2023년 기후 관련 파생상품의 일평균 거래 규모가 2000건을 상회, 전년 대비 260% 이상 급증했고 현재 체결된 계약 건수가 1년 전에 비해 48% 늘어났다.
시장 전문가들은 기후 재난에 직접 대응하거나 시장 변동성 확대를 포함한 간접적인 리스크에 헤지하기 위한 파생상품 시장 규모가 250억달러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한다.
기후 리스크에 특화된 투자 자문사 파라미터 클라이밋의 마티 말리노우 창업자는 블룸버그와 인터뷰에서 "기후 위기는 금융시장의 변동성을 확대하는 한편 인플레이션 상승을 부추기고, 지구촌의 공급망에도 교란을 일으킨다"며 "지구온난화로 인한 리스크가 커지면서 관련 비즈니스도 확대되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새롭게 등장하는 파생상품 이이에 월가의 전통적인 재난 채권(cat bond) 거래 역시 대폭 늘어나는 모양새다.
와인으로 유명한 산타바바라의 포도 산지를 덮친 홍수 [사진=블룸버그] |
두 가지 상품의 헤지 대상과 고객이 상이하지만 수요가 동반 상승하는 중이고, 시장 규모가 지속적으로 확대될 것으로 월가는 예상한다.
기후 리스크를 헤지하기 위한 금융 상품을 개발, 설계하는 업체 아볼의 스콧 클렘 최고매출책임자(CRO)는 "기후 관련 금융상품 시장이 추세적으로 커다란 외형 성장을 이룰 전망"이라고 말했다.
뉴욕과 도쿄, 파리, 독일 등 특정 지역의 재난 위험을 헤지하는 특화 상품도 트레이더들과 기업들 사이에 인기를 끈다. 해당 상품은 2023년 8월 데뷔했고, 당시 제철 공장으로 유명세를 타는 독일의 에센을 겨냥한 난방도일(heating degree day) 옵션만 5000건의 거래 기록을 세웠다.
기후 파생상품 거래량 추이 [자료=CME] |
과거에는 기후 관련 리스크를 헤지하기 위한 파생상품 거래가 에너지 섹터에 제한됐다. 여름철 기온이 크게 오르지 않으면 냉방 제품 사용이 줄면서 전력 수요 역시 위축되고, 겨울철 기온이 크게 떨어지지 않으면 난방 기기 사용이 줄어들면서 에너지 수요가 위축된다.
에너지 기업들은 이 같이 우호적이지 않은 여건으로 인해 수익성이 저하되는 경우를 옵션을 포함한 파생상품으로 대비했다.
하지만 이제 기후 리스크는 모든 비즈니스 영역에 걸쳐 손실을 일으키는 실정이고, 미국과 유럽을 중심으로 감독 당국이 기업들에게 적극적인 대응을 주문하는 움직임이다.
유럽 기업들은 이제 환경과 관련된 요인이 매출액과 이익에 미칠 수 있는 리스크 혹은 기회를 감독 당국과 투자자들에게 공시해야 한다.
주요 외신에 따르면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 역시 2024년 3월 기업들에게 기후 관련 리스크의 명시를 의무화하는 규정을 최종 채택했다.
시장 중개업체 BGC 그룹의 니콜라스 언스트 이사는 블룸버그와 인터뷰에서 "모든 기업들이 기후 변화에 직간접적인 영향을 받지만 리스크를 충분히 헤지하거나 제대로 대응하는 업체는 그리 많지 않다"고 지적했다.
기업과 월가의 전문 트레이더 뿐 아니라 개인 투자자들 역시 기후 리스크를 포트폴리오 운용에 적극 반영해야 한다는 의견이 꼬리를 문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기후 민스키 모멘트'라는 용어로 자산시장의 리스크를 경고했다. 기후 재앙으로 인한 잠재 리스크를 투자자들이 인식하기 시작하면서 부동산부터 주식까지 자산 가치가 갑작스러운 하락을 연출할 수 있다는 얘기다.
미국의 싱크탱크 브루킹스 연구소부터 국제통화기금(IMF)까지 투자자들이 지구온난화에 따른 리스크를 충분히 인식하지 않는 실정이고, 주식시장이 이를 반영하지 않고 있다는 쓴소리를 낸다.
싱가포르의 국부펀드 GIC의 의뢰를 받아 케임브리지 이코노메트릭스와 오텍 파이낸스가 공동 실시한 분석에 따르면 전통적인 60-40(주식 60%와 채권 40%) 포트폴리오 전략을 따를 때 40년 누적 수익률이 기후 재앙으로 인해 10% 떨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2100년까지 지구촌의 온도가 산업화 이전에 비해 4도씨 이상 오르는 최악의 상황을 가정하면 60-40 포트폴리오의 장기 누적 수익률이 40% 가까이 떨어진다고 분석자들은 밝혔다.
GIC는 보고서를 내고 "투자자들이 지구온난화로 인한 리스크를 무시하고 있다"며 "그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주식 뿐 아니라 부동산 가치도 기후 변화로 인해 커다란 변화가 불가피하다고 월가는 입을 모은다. 해수면 상승이나 홍수로 인한 침수 리스크가 높은 지역과 산불 위험이 큰 지역의 부동산 가치가 장기적으로 떨어질 가능성이 크다는 얘기다.
모간 스탠리는 보고서를 내고 "지구온난화로 침수 위험이 높은 지역의 주택이 여전히 커다란 인기를 끈다"며 "투자자들이 현실적인 리스크를 외면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무디스 애널리틱스에 따르면 플로리다와 루이지애나, 사우스 및 노스 캐롤라이나, 델라웨어 로드 아일랜드, 뉴저지, 버지니아, 메사추세츠, 커네티컷 등 10개 지역이 미국에서 허리케인과 홍수 위험이 가장 큰 것으로 파악됐다.
플로리다 주 마이애미 시의 경우 2070년까지 해수면이 최대 21인치(53cm) 높아질 것으로 발표한 바 있다.
시장 전문가들은 높은 프리미엄에 거래되는 소위 오션 뷰 아파트나 주택의 가격이 장기적으로 하락할 위험이 클 뿐 아니라 보험 가입도 갈수록 어려워질 것이라고 경고한다.
미국 학술지 네이처에 지난 2월 소개된 연구 결과에 따르면 미국의 홍수 위험 지역의 부동산 가치가 1210억~2370억달러 고평가된 상태다.
이른바 기후 이민도 갈수록 늘어날 전망이다. 호주의 국제 관계 싱크탱크 경제평화연구소(IEP)에 따르면 2008년 이후 극심한 기후 여건으로 인한 이주가 연평균 2000만명을 넘어섰고, 2050년까지 수치는 12억명에 이를 전망이다.
특정 국가는 직접적인 재정 부담을 떠안는 실정이다. 대부분의 지역이 해수면 아래에 위치한 네덜란드가 대표적인 사례. 해안 지역의 침수 피해를 막기 위한 인프라 건설에 매년 500억달러에 달하는 재정을 집행하고 있다.
산불 위험 지역의 부동산 가치 역시 하락 압박에 시달릴 전망이다. 미국 서브프라임(비우량) 모기지 사태를 예측한 월가의 '빅 쇼트' 가운데 한 명인 데이브 버트는 미국 상원 증언에서 "2021년 기준 대형 신불 위험 지역의 보험료와 실제 피해 금액의 차이가 6배에 달했다"며 "보험업계가 이 간극을 줄이고 나서면 해당 지역의 부동산 가치가 최대 4950억달러 감소할 것"이라고 말했다.
shhwang@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