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면·과자·빵·통조림 연이어 가격 인하 또는 동결
물가안정시책 동참 못한 유업계 '가시방석'
우유 원유가 협상 지지부진...인상 눈치보기도
[서울=뉴스핌] 전미옥 기자 = 정부가 식품업계를 상대로 물가 안정 압박을 이어가고 있는 가운데 밀가루의 다음 타자로 '유제품'이 떠오르고 있다. 이미 우유를 비롯한 국내 유제품 가격이 주변국 대비 높은 상황임에도 우유 원유 가격의 추가 인상이 우려되고 있어서다. 최근 원유가 협상에 돌입한 정부와 유업계, 그리고 낙농가의 행보에도 이목이 집중된다.
7일 업계에 따르면 낙농가와 유가공업계로 구성된 낙농진흥회는 지난달 9일 우유 원유가격 협상에 돌입했다. 올해부터 적용되는 용도별 차등가격제에 따라 흰우유는 L당 69~104원, 가공유는 L당 87~130원 범위에서 인상 폭이 논의되고 있다. 제도 개편으로 협상 금액 범위는 줄었지만 가장 낮은 가격인 L당 69원으로 결정되더라도 지난해 인상 가격보다 10원 이상 높다. 이는 역대 최대 인상폭에 해당된다.
[서울=뉴스핌] 김학선 기자 = 서울 도봉구 창동 하나로마트에서 소비자들이 우유를 고르고 있다. 2021.07.18 yooksa@newspim.com |
이번에 결정되는 원유 가격은 내달 1일부터 가격에 반영될 예정이다. 그러나 낙농진흥회의 협상이 한 달 가까이 진행됐음에도 아직 별다른 진전이 없는 것으로 알려진다. 양측의 입장이 팽팽하게 맞서고 있어서다. 지난해에도 우유 원유가격 협상이 늦어지면서 통상 협상 시기였던 8월을 훌쩍 넘긴 11월에야 원유 가격이 결정됐다. 낙농가에서는 사료가격 상승 등 생산비 증가분을 고려해 가격 인상을 요구하고 있 반면 유업체들은 유제품 수요 감소와 경쟁력 하락 등을 들어 낮은 수준의 인상안 합의를 추진하고 있다.
최근 정부가 강력한 물가안정시책에 나서면서 원유 가격 협상을 진행하는 유업체와 낙농가도 긴장의 끈을 조이고 있다. 정부가 원유가 인상과 이에 따른 유제품 가격 인상에 엄격한 잣대를 들이밀 것으로 예상되고 있어서다.
앞서 지난달 정부는 국제 밀가루 가격 하락을 근거로 라면업계와 제분업계에 가격 인하를 요구한 바 있다. 이에 따라 라면, 과자, 빵 등 가격 인하 러시가 이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또 가격 인상 계획을 번복하는 사례도 나타나고 있다. 동원F&B는 이달부터 스위트콘 등 통조림 가격을 최대 25% 올릴 예정이었지만 이같은 인상안을 전면 철회했다. 정부의 물가안정시책에 맞춘 식품업계 가격 인하 분위기를 의식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같은 가격 인하 및 동결 움직임에 동참하지 못한 유업체들은 가시방석에 앉은 모양새다. 롯데웰푸드는 이달부터 스크류바·돼지바·수박바·월드콘 같은 자사 주요 인기 아이스크림 제품의 편의점 공급가를 25% 인상했다. 매일유업도 이달 치즈 제품 19종 출고가를 10~18.8%, 아몬드브리즈 오리지널·어메이징 오트 바리스타 등 식물성 음료 950㎖ 대용량 제품 가격을 15.1~15.3% 올렸다.
이들 유업체들이 가격 인하 및 동결에 동참하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는 당장 원유 가격 결정을 앞두고 있어서다. 사실상 내달 원유가 인상이 유력한 상황에서 가격 동결을 선언하기 어려운 셈이다. 또 원유 가격 인상이 결정되더라도 한동안 유제품 가격을 올리기도 쉽지 않을 전망이다.
관련해 한국소비자단체협의회는 최근 성명을 내고 "유가공업체들은 원유가 상승 대비 과도한 폭의 가격 인상을 단행하며 원유가 상승만을 핑계로 자사의 이익만을 강구한다"며 "이는 유제품 시장의 축소와 낙농 시장의 하락세를 자초할 것"이라며 우려를 표명하기도 했다.
또한 오는 2025년부터 자유무역협정(FTA)에 따른 미국·유럽·뉴질랜드 우유의 관세 폐지를 앞두고 있는 점도 유업체들에는 부담 요소로 작용하고 있다. 우유 원유가가 지속 오를 경우 수입 우유 대비 국산 우유의 경쟁력 하락이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업계 한 관계자는 "낙농진흥회의 원유가 협상이 진행되고 있기 때문에 업체가 제품 가격 인하나 동결 등 입장을 정리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다"라며"현재 협상 추이를 지켜보고 있다"라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흰 우유의 경우 원유 가격 상승분을 반영할 수 밖에 었다"며 "작년과 재작년 흰 우유 수익률을 살펴보면 적자 또는 적자를 간신히 면한 수준으로 과도한 인상률이라고 보기는 어렵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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