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FDA '위험저감 담배제품(MRTP)' 마케팅 인가 승인...식약처 연구결과 정면 반박
[서울=뉴스핌] 박효주 기자 = 미국 담배 업체인 필립모리스가 정부를 상대로 대립각을 세우고 있어 업계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최근 필립모리스 글로벌 본사는 궐련형 전자담배 '아이코스'에 대해 미국 식품의약국(FDA)에서 '위험저감 담배제품(MRTP)' 마케팅 인가에 관한 승인을 받았다.
이를 계기로 한국필립모리스는 아이코스 위해성 저감을 공식적으로 인정받았다며 대대적인 홍보에 나서는 한편 식품의약품안전처를 비롯한 보건당국, 나아가 기획재정부 등에 대해 '이데올로기적 규제'를 하고 있다며 비난에 수위를 높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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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영재 한국필립모리스 대표이사. [사진=한국필립모리스] 2020.09.09 hj0308@newspim.com |
◆백영재 대표, 정부에 돌직구..."이데올로기적 규제 그만해야"
9일 백영재 한국필립모리스 대표는 온라인 간담회에서 "이번 FDA 결정을 통해 아이코스 증기에는 유해물질 적고 유해물질 노출이 줄어든다는 점이 입증된 것"이라며 "이는 일반 담배와는 근본적으로 달라 기존과 같은 방식으로 규제하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말했다.
이어 "과학에 기반을 두지 않은 '이데올로기'적 규제가 이뤄져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이같은 발언은 식약처와 보건복지부, 나아가 기획재정부 등 정부의 담배 규제 정책을 염두 한 것으로 풀이된다. 필립모리스 측은 줄곧 아이코스가 태워서 피우는 일반 담배와 달리 가열하는 방식인 만큼 규제도 차별화돼야한다는 주장을 하며 정부와 각을 세우고 있다.
앞서 식약처는 지난 2018년 궐련형 전자담배 유해성에 대한 연구 결과를 발표하면서 일반 담배에 비해 타르 수치가 높아 인체에 악영향을 끼친다고 분석했다.
이에 필립모리스는 연구 결과에 대한 신뢰성에 대한 문제를 제기, 소송전으로 이어졌다. 필립모리스측은 해외 연구 사례 등을 근거로 식약처 연구가 타르 수치만을 단순 비교했다는 주장이다.
이후 서울행정법원은 올해 5월 궐련형 전자담배 유해성 분석 일부에 관해 필립모리스 측에 공개하라고 선고했고 식약처는 아직 이행하지 않고 있다.
한국필립모리스가 이날 온라인 간담회에서도 식약처와 대립을 여실히 드러낸 이유다. 백 대표는 "한국의 경우 성인 5명 중 1명이 흡연자이며 이들에게도 과학에 기반한 정확한 정보를 제공받을 권리가 있다"고 말했다. 이는 식약처의 궐련형 전자담배 유해성 연구를 겨냥한 발언으로 풀이된다.
한 업계 관계자는 "정부의 금연 정책을 두고 '이데올로기'적 규제라는 비난은 여론의 공감을 사기 어렵다"며 "합리적인 정보 공개 요구 수준을 벗어나 오히려 담배 업계가 역풍을 맞을까 우려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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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배 세금 비교. 2020.09.09 hj0308@newspim.com |
◆궐련형 전자담배 담뱃세 50%→90%, 가격 올리자 점유율 하락세
필립모리스가 정부와 지속적으로 대척점에 서있는 데는 세금과 마케팅에 대한 우려 때문으로 해석된다.
과거 궐련형 전자담배의 세금은 일반 담배에 비해 절반 수준에 불과했다. 궐련형 전자담배에 대한 기준이 없어 담배 회사들이 담배 종류 중 가장 세금이 낮은 '연초고형물' 분류, 신고했기 때문이다.
당시 일반 담배에 붙는 개별소비세는 20개비(1갑)당 594원이었고 궐련형 전자담배(아이코스 '히츠' 등) 20개비(1갑)에 부과하는 개별소비세는 126원으로 일반 담배에 비해 21% 수준이었다.
이후 궐련형 전자담배가 일반 담배에 비해 유해성이 적다고 광고하며 점유율 확대에 나서자 정부는 식약처 유해성 연구결과를 토대로 개정안을 마련했다. 조세 형평성을 고려한다는 취지였다. 현재 궐련형 전자담배에 붙는 세금은 일반 담배 90% 수준이다.
담뱃세가 오르자 필립모리스는 곧장 소비자가격에 이를 반영했다. 아이코스 전용 담배스틱인 '히츠'는 국내 출시 6개월만에 가격을 4300원에서 4500원으로 올렸다.
가격이 오르면서 궐련형 전자담배 점유율 상승폭도 둔화됐다. 이는 곧 해당 사업을 비전으로 삼고 있는 필립모리스에 직격탄을 의미한다.
실제 한국필립모리스는 아이코스 출시 이후 국내 담배시장에서 점유율이 한 때 28%까지 치솟았지만 매년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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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필립모리스 실적추이. |
◆전자담배 기기 판촉 금지 등 규제 강화 입법안 줄줄이...매출 하락세 '곤혹'
올 들어 상황은 더욱 심각해졌다. 올 1분기 국내 담배 판매량에 따르면 궐련 담배는 올해 146억개비로 전년 동기보다 3.8% 늘었고 궐련형 전자담배는 16억개로 같은 기간 무려 11%가 감소했다.
이에 따라 궐련형 전자담배에 치중한 한국필립모리스 역시 점유율이 떨어졌다. 실제 유통업체 포스(POS)기반 담배 판매량 집계를 살펴보면 한국필립모리스의 올해 5월 기준 시장 점유율은 22.75%로 정점을 찍었던 2018년 말에 비해 무려 5.25%p 급락했다. 이는 지난해 6월 점유율(24.78%) 보다도 2.3%p 하락한 수치다.
반면 경쟁사인 KT&G의 경우 아이코스 출시 이후인 2017년 12월 기준 49.5%로 떨어졌지만 올해 5월 기준 56.08%로 반등에 성공했다.
실적도 하향세다. 한국필립모리스의 매출액은 작년 6831억원으로 2년 전 8382억원에 비해 18.5% 감소했고 전년 동기(8706억원) 보다 무려 21.5% 하락했다. 영업이익 역시 2년 전 991억원에서 442억원으로 반토막 났다.
악재도 남아있다. 현재 21대 국회에선 기기 판촉 금지, 기기 경고그림 및 문구 도입, 일반 담배와 동일 수준 규제 등 궐련형 전자담배에 관한 규제가 발의된 상태다.
당장 전자담배 기기 할인권 제공, 무료 체험 등을 통한 판촉 행위를 금지하는 '국민건강증진법' 일부 개정안이 국무회의에서 의결된 상태다.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이번 개정 법률안이 국회에서 통과되면 그간 제도의 미비점을 이용해 성행했던 다양한 담배 판촉행위를 효과적으로 규제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필립모리스가 미국 FDA에서 마케팅 인가를 받은 것은 '노출 저감'이다. 이는 담배관련 위해 및 유해를 현저히 감소시켰을 때 인정되는 '위해 저감'보다 한 단계 낮은 수준이다. 노출 저감은 후속 연구에서 개별 흡연자의 질병 발생률 또는 사망률이 측정 가능하고 상당히 감소할 합리적 가능성이 있을 때 허용된다.
hj0308@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