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와 의료계 싸움에서 의료계 내부 충돌까지…국민이 가장 큰 피해
올해 의사 국시 실기, 응시율 14%…의·정 분쟁 새 뇌관 가능성
[서울=뉴스핌] 정경환 기자 = '파업을 중단하고 코로나19 사태 안정화 이후 의대 정원 확대 등의 문제에 대해 원점에서 재논의한다.'
국민 건강과 안전을 위해 대승적 차원에서 결단했다는 의·정 합의. 하지만, 누구 하나 시원하게 웃을 수 있는 사람이 없다. 오히려 혼란만 더 커져가는 형국이다. 정부와 대한의사협회 그리고 전공의와 의대생 모두가 어느 하나 얻는 것 없이 상처만 가득한 상황에서 패잔병들의 아귀다툼이 계속되는 의료서비스 체계에 내 몸을 맡겨야 하는 국민들 역시 그 불안감에 또 한 명의 피해자가 되고 있다.
7일 정부와 의료계에 따르면, 의대 정원 확대 이슈로 촉발된 사회적 갈등이 의·정 합의에도 불구 사그라들지 않고 있다.
정부와 의협 간 합의로 의료 파업 사태가 일단락되는 듯했지만, 오히려 정부와 의료계와의 갈등에서 이젠 의료계 내부에서도 개원의와 전공의 그리고 의대생들 간 입장이 나뉘며 서로 간에 골이 깊어지는 모습이다.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오른쪽)과 최대집 대한의사협회장이 지난 4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의사 파업 중단 및 의료 정책 원점 재논의를 골자로 하는 합의문에 서명한 뒤 악수하고 있다. [사진=이한결 사진기자] |
박지현 대한전공의협의회 비상대책위원회 위원장은 이날 열린 '전체 전공의 간담회'에서 오는 8일 오전 7시를 기해 파업을 종료하고 의료 현장에 복귀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대전협 비대위는 "대승적 차원에서 (대한의사협회와 정부의) 합의 내용을 이행하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며 일단 수긍하는 태도를 취하면서도 합의를 인정하는 것은 아님을 분명히 했다.
앞서 보건복지부와 의협은 지난 4일 파업을 중단하고 코로나19 사태 안정화 이후 의대 정원 확대 등의 문제에 대해 원점에서 재논의한다는 취지의 합의문에 서명했다. 구체적으로 ▲의대 정원 확대, 공공의대 신설 추진 중단(의정협의체에서 의협과 협의) ▲의정협의체 구성 ▲4대 의료정책 협의체에서 논의 ▲코로나19 위기로 인한 의료인 보호와 의료기관 지원 대책 마련 ▲의협 집단행동 중단 등이 합의문에 담겼다.
이에 대전협 비대위는 의협이 정부와의 합의를 내부 협의 없이 진행했다며 반발, 최대집 의협 회장의 독단적인 결정에 대한 해명을 요청하며 진료 복귀를 거부해 왔다.
이날에는 다시 입장문을 통해 "약 한 달간의 투쟁 동안 뜨거운 열정으로 하나가 됐던 우리들의 목소리는, 대표단체장의 독단적이고 비겁한 날치기 합의에 철저히 무시되고 외면됐다. 또한, 지금 이 순간에도 거대여당과 정부는 의료계의 미래를 위협하는 졸속 법안과 정책들을 쏟아내려고 한다"며 의협과 정부를 싸잡아 비난했다.
최대집 회장은 이에 대해 "의견 차이가 있었지만 의대 정원 확대, 공공의대 신설 등 젊은 의사들이 문제 삼는 정책을 일방 추진하지 않고 원점에서 재논의하게 됐다. 가능한 범위 내에서 최대한의 실리를 얻을 수 있었던 협상이었다"며 항변하고 있다.
정부는 정부대로 체면을 구기는 중이다. 지난 7월 의대 정원 확대와 공공의대 신설 등을 추진하겠다고 밝힌 이후 정부와 여당을 향해 '졸속 추진'이란 비판이 끊이지 않은 터에 '원점 재논의' 합의로 인해 이제는 의료계에 굴복했다는 비아냥까지 듣고 있다.
게다가 앞으로는 합의로 인해 더 격앙된 의료계와 마주해야 한다. 당장 의대생들이 의사 국가고시 실기시험을 거부하고 나섰다.
의·정 합의에도 불구하고 전공의들의 집단휴진이 이어지며 환자들의 불편이 가중되고 있는 7일 오전, 서울대학교병원이 내원객들로 붐비고 있다. [사진=김 사진기자] |
대한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 학생협회 비상대책위원회는 지난 6일 40개 의대 대표 만장일치로 의사 국가고시 거부 방침을 유지키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이로 인해 올해 의사 국가고시 실기시험의 경우 총 응시대상 3172명 중 446명(14%)만이 응시할 예정이다.
정부는 더 이상의 구제 계획은 없다고 천명, 양측의 충돌은 불가피해졌다. 복지부 측은 이날 "시험 접수 기간을 지난 6일 자정까지 연장, 기한까지 재접수 신청을 하지 않은 의대생들은 올해 실기시험 응시가 어렵다는 것을 여러 차례 고지했고, 시험 준비기간이 부족하다는 의견을 반영해 일정을 조정하기도 했다"면서 "재신청을 다시 연장하거나 추가 접수를 받는 경우는 생각하지 않고 있다"고 했다.
여기에 전공의들마저 가세하면서 남은 갈등의 불씨는 어느새 시한폭탄이 돼가고 있다. 대전협 비대위는 이날 의료 현장 복귀와 준법 투쟁 유지를 선언하면서도 한편으론 "의사 국가고시 실기시험을 거부한 의대생들을 보호하는 조치가 마련되지 않으면 단체행동에 나설 것"이라고 경고했다. 의협 역시 "9.4 합의는 의대생 및 전공의 완벽한 보호와 구제를 전제로 한 것이다. 미응시자 구제를 위해 모든 방법을 동원해 대응할 것"이라며 힘을 보태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시사평론가는 "정부로선 의료계 내부 분열을 반겼을지 모르겠지만, 지금 봐선 아직 그 정도(분열)까진 아닌 거 같다"고 했다.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들 몫이다. 기본적으로 의료서비스가 국민의 건강 및 안전과 직결되는 문제인데다 코로나19라는 전례없는 감염병 유행 사태 속에선 더욱 그렇다. 의사들의 파업으로 인해 응급환자가 제때 치료를 받지 못 해 결국 숨을 거뒀다는 안타까운 소식도 들려온다.
앞선 시사평론가는 "어려운 상황이다. 점점 더 어려워지는 것 같다"며 "결과가 어떻게 되든 양쪽 다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을 것 같다"고 언급했다.
hoan@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