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핌] 이현경 기자 = 갤러리 벽면에 푸른 잎을 자랑하는 나무가 그려졌다. 빛으로 그려진 바람에 흩날리는 나뭇잎사귀는 마치 실재인듯하다. 이는 제니퍼 스타인캠프의 미디어 아트 작품 'Judy Crook 12'의 이야기다. 캔버스가 아닌 미디어 벽면에 생생한 감동을 선사하는 설치작가 제니퍼 스타인캠프의 세번째 개인전 '소울(Soul)'이 국내에서 펼쳐진다. 코로나 우울도 날려줄 미디어 아트 전시로 기대를 모은다.
전시는 리안갤러리 서울과 리만머핀 갤러리 서울에서 3일부터 10월 31일까지 이어진다. 제니퍼 스타인캠프(62)를 국내에 가장 먼저 소개 한 것은 리안갤러리 안혜령 대표다. 지난 2010년과 2014년 리안갤러리 서울에서 전시를 선보였고 이번 세번째 전시는 리만머핀 갤러리 서울과 손을 잡고 함께 개최하게 됐다. 제니퍼 스타인캠프는 리만머핀 소속 작가다.
[서울=뉴스핌] 이현경 기자 = 제니퍼 스타인캠프의 'Judy Crook 12' 2020.09.04 89hklee@newspim.com |
제니퍼 스타인캠프는 3D 애니메이션 소프트웨어를 활용하고 자연을 소재로 한 작품을 주로 선보인다. 그는 "우리가 자연에서 결코 상상할 수 없는 아이디어를 만들어내는 소프트웨어의 능력에 매료됐다"고 말했다.
제니퍼 스타인캠프는 미디어 아트계에서 선구자다. 그에 대해 리안갤러리 관계자는 "3D 애니메이션과 미디어 아트 분야에서는 나이대가 높고 이 분야를 개척한 인물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그래픽 디자이너로 희망하던 그는 영화 특수 효과를 다루는 전문가가 되고 싶어 했고 결정적으로 1980년대 캘리포니아 공과대학에서 비디오아트 수업을 들으면서 3D애니메이션을 처음 접하고 미디어 아티스트로 성장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서울=뉴스핌] 이현경 기자 = Jennifer Steinkamp_Retinal 1 (2018), Retinal 2 (2019) [사진=리안갤러리] 2020.09.04 89hklee@newspim.com |
그가 리안갤러리에서 선보이는 작품은 'Rential 1,2'와 'Still-Life4', 'Judy Crook 12, 14'이다. 리안갤러리 지하 1층에 설치된 'Retinal1'(2018)과 'Retinal2'는 2018년 건축가 스티븐 네이 홀이 설계한 캔자스시티 넬슨 앳킨스 미술관의 브로쉬 빌딩에 영감을 받아 제작됐다. 스티븐 제이 홀이 빌딩 창문을 렌즈라고 부르는 것을 보고 망막 정맥을 모방한 애니메이션을 만들었는데, 눈 속 망막 정맥의 반투명하고 굴절되는 모습이 운동감 있게 표현됐다. 또 녹색과 분홍색 보라색으로 이뤄진 비정형의 화려한 방울 덩어리와 탯줄처럼 보이는 가닥도 눈길을 끈다. 새로운 생명체를 추상적으로 표현한 이 작품은 인간과 자연을 결합한 것으로 보인다.
형형색색의 과일과 꽃잎이 둥둥 떠다니는 'Still-Life4'도 눈길을 끈다. 전통적인 정물화를 21세기식으로 표현한 것으로 화려한 색감과 일상에서 볼 수 있는 과일과 꽃을 다양한 구석으로 배치해 에너지를 불어놓은 모습이 인상적이다. 황홀한 광경 그 자체를 구현한다.
[서울=뉴스핌] 이현경 기자 = Jennifer Steinkamp_Still-Life 4 (2020)[사진=리안갤러리] 2020.09.04 89hklee@newspim.com |
무엇보다 이 전시장에서 압권은 'Judy Crook12, 14'(2019)다. 생동감 넘치는 나무가 이리저리 소용돌이 치며 열매를 맺고 잎을 떨어뜨리는 성장 과정을 보여준다. 계절에 따라 끊임없이 움직이는 나무의 이미지를 사실적으로 렌더링해 관람객을 몰입시킨다. 눈으로도 보고 영상으로도 찍으며 한없이 미디어 벽면을 바라보면서 힐링 시간을 가질 수 있다.
나무 형태의 작품은 스타인캠프가 대학교 1학년 수업시간에 만든 스펀지 나무를 최고의 작품이라고 칭찬했던 미스 즈네롤드 선생님의 영향으로 시작됐다. 시리즈의 제목은 스타인캠프가 패서디나 아트센터 디자인 칼리지 재학시절 큰 영감을 줬던 색 이론 교수 주디 크룩의 이름을 따 지은 것이다. 나무 한 그루가 봄에 봉오리를 맺고 초록 잎이 돋아나는 여름을 거쳐 가을 단풍이 들고 겨울이 돼 다시 잎이 떨어지는 과정을 겪으면서 사계절을 순환한다. 나무의 삶을 통해 단 몇 분만에 1년을 경험하면서 삶의 순환성과 무한한 존재의 이상을 느낄 수 있다.
[서울=뉴스핌] 이현경 기자 = 제니퍼 스타인캠프의 'Blind Eye4' 2020.09.04 89hklee@newspim.com |
제니퍼 스타인캠프는 3D 애니메이션과 뉴미디어를 이용해 공간, 지각 및 움직임을 다루는 대규모 장소 특정적 설치 작업을 제작하고 있다. 1958년 미국 덴버에서 태어나 패서디나 아트센터 디자인 대학과 캘리포니아 예술대학에서 공부하고 2011년 명예박사 학위를 수여했다. 현재는 로스엔젤레스를 중심으로 활동하며 캘리포니아 대학교 로스앤젤레스의 디자인 미디어 아트학과 교수르 재직중이다.
리만머핀 서울에도 세점의 작품을 만나볼 수 있다. 그의 작품 'Blind Eye4(보이지 않는 눈4)'(2019)는 'Judy Crook12, 14'보다는 규모가 작지만 울창한 자작나무 숲을 볼 수 있다. 나무들이 때때로 거칠게 흔들릴 때마다 잎사귀들은 부드러운 비처럼 흩날린다. 제목은 작품 속 흰껍질 중간중간 박힌 검은 점을 뜻하는데 이는 공허하기 응시하는 눈동자를 닮았다. 소리는 나지 않지만 흔들리는 자작나무 숲을 보며 힐링의 순간을 만끽할 수 있다.
작가의 신작 'Primordial 1(태고의 1)'(2020)도 공개됐다. 이 작품은 공생과 더불어 지구 생명의 초기를 묘사하는 수중 애니메이션 설치 작품이다. 생물과 식물들이 위에서 아래로 내려오며 산소 방울이 위로 상승하는 생명력 넘치는 수중 생태계의 모습을 작가의 상상력으로 표현했다.
[서울=뉴스핌] 이현경 기자 = 제니퍼 스타인캠프의 'Primordial' 2020.09.04 89hklee@newspim.com |
세번째 작품은 '데이지 채인 트위스트 톨(Daisy Chain Twist, Tall)'(2004)이다. 부드러운 바람에 간드러지듯 움직이는 엮인 꽃들이 걸린 화환을 보여준다. 데이지꽃으로 만들어진 장막은 꽃의 에너지로 꿈들 거린다. 섬세한 움직임을 연출하는 작가의 기술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작가의 작품은 스페인 말라가 현대미술관, 터키 이스탄불 미술관, 일본 다와타 아트센터, 미국 버지니아 크라이슬러 미술관, 로스앤젤레스 현대미술관, 휴스턴 미술관, 워싱턴 국립미술관 등 세계 주요 미술관에 소장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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