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핌] 김은빈 기자 = 카를로스 곤 전 닛산자동차 회장이 레바논 정부의 '위기'를 심화시킬 가능성이 있다고 6일 니혼게이자이신문이 보도했다.
미국의 이란 제재로 인해 레바논 경제도 어려워진 상황에서 곤 전 회장의 도피에 정부가 관여했다는 의혹이 국민들의 불신을 낳기 때문이다. 또한 국제사회로부터 경제지원을 받는 데도 곤 전 회장의 도주가 장애가 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카를로스 곤 전 닛산자동차 회장(왼쪽)과 부인 캐롤 곤 [사진=로이터 뉴스핌] |
앞서 로이터통신 등 주요 외신은 곤 전 회장이 29일 밤(현지시각) 터키에서 개인용 제트기를 타고 레바논에 입국했다고 전했다. 곤 전 회장은 브라질의 레바논 이민자 가정 출신으로 청소년 시기를 레바논에서 보냈으며 국적도 보유하고 있다.
곤 전 회장의 프랑스 변호인은 지난 3일 니혼게이자이신문 인터뷰에서 곤 전 회장이 레바논으로 도주한 이유에 대해 "곤 전 회장의 부인이 살고 있는 나라이며 (레바논) 국민과 당국이 지금까지 호의적이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었다.
실제로 곤 전 회장은 세계적인 기업 경영자로 성공을 이루면서 레바논에서 영웅으로 여겨져왔다. 곤 전 회장의 도주가 알려진 뒤 한 레바논 시민(27세)은 NHK 취재에 "스스로 무죄라고 생각하니까 레바논으로 돌아온 것"이라며 "곤 전 회장은 회사를 위해 노력한 성공자"라고 말했다.
하지만 곤 전 회장에 대한 반대여론도 만만치 않다. 특히 반정부 시위에 나선 시민들은 비판적이었다. 시위에 참여한 한 레바논 청년은 니혼게이자이신문 취재에서 "(곤 전 회장은) 이 나라 특권층 부패의 상징"이라고 비판했다. 다른 청년도 "영웅같은 건 필요없다"며 곤 전 회장에게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곤 전 회장에 대한 이들의 냉랭한 태도엔 지난해 10월부터 이어진 반정부 시위가 영향을 미쳤다. 시위의 발단은 레바논 정부가 국민들이 자국 내에서 널리 사용되는 와츠앱 이용자에게 매일 세금을 매긴다고 발표한 것이었다. 이로 인해 총리가 사임했지만 해를 넘긴 현재까지 새 내각은 발족되지 않은 상태다.
하지만 시위의 배경에는 미국의 이란 제재로 촉발된 심각한 경제난과 정부의 부정부패에 대한 불만이 있다. 레바논의 청년층 실업률은 30%가 넘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 시위참가자들은 "엘리트층은 국민의 돈으로 사욕을 채우고 외국 은행에 저축하고 있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신문은 "이들에게 거액의 회사자금을 사적으로 유용한 혐의를 받는데다 레바논 엘리트층과 연을 갖고있는 곤 전 회장은 같은 부류"라며 "그를 옹호하는 정부에 대한 불신이 깊어지고 있다"고 풀이했다.
레바논의 유명 저널리스트인 다이애나 므칼렛도 NHK 인터뷰에서 "(곤 전 회장은) 돈과 힘이 있기 때문에 입국이 가능했는데 이건 특권계층 사람들만 가능한 일"이라며 "정부가 특별취급한다고 여겨지면 사람들의 분노가 더욱 강해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한 레바논 지역TV 방송은 곤 전 회장이 30일 레바논에 도착한 직후 미셸 아운 대통령을 면담했다고 보도했다. 대통령 측은 부정하고 있지만 레바논 국민들 사이에선 의심이 뿌리깊게 자리하고 있다. 한 시위 참가자는 "도망에 관여한 게 분명하다"고 단정했다.
곤 전 회장의 도주가 이미 위기를 맞이한 레바논의 어려운 경제에 더한 타격을 줄 수 있다는 견해도 있다. 카네기 중동센터의 모한나드 밧지 알리 연구원은 정부의 관여가 사실이라고 전제한다면 "채무불이행을 피하기 위해 필요한 국제사회의 경제원조를 얻을 수 있는 신용을 잃게 될 수 있다"며 "위험한 행위"라고 지적했다.
세계은행에 따르면 레바논의 정부채무는 국내총생산(GDP) 대비 약 150%에 달한다. 로이터통신은 경제각료 경험자를 인용해 국제통화기금(IMF) 등으로부터 필요로 하는 금융지원은 약 200억~250억달러에 이른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알리 연구원은 "(레바논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이란 문제도 중동 지역의 긴장을 고조시키고 있어 레바논의 어려움이 가중되고 있다"며 "이 나라는 곤 전 회장의 문제까지 안고 있을 여유가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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