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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혁개방 40년] 불멸의 중국자본주의 창시자, '신시대'에 돌아보는 덩샤오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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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핌=최헌규 중국전문기자] 이런 사람이 있었다.

고전을 인용해 사람들은 그를 '시대가 낳은 영웅’이라고도 하고 '시대를 만든 영웅’이라고도 한다.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났으나 그는 21세에 공산당원이 됐다. 공산당원임에도 커피와 포도주를 좋아했고 브릿지를 즐겼다. 사람들은 그를 개혁개방의 총설계사라고 부른다. 또 어떤 사람은 그를 ‘중국 자본주의 창시자’라고 부르기도 한다.

일찍이 중국 국공내전 말기 미국 정보부는 ‘중국공산당은 100년 가도 싹수가 안 보일 가망 없는 정치집단’이란 판단을 내렸다. 그런 이유로 미국은 공산당과 싸우는 장제스(蔣介石) 군대에 대한 지원을 중단하고 중국 내전에서 발을 뺐다. 하지만 그에 의해 미국의 이런 정세 판단은 대륙의 역사가 바뀌는 엄청난 오판이 됐다. 반세기 조금 넘는 시간에 중국은 제2의 경제대국이 됐고 지구상에서 미국에 가장 위협적인 나라가 됐다.

그의 이름은 덩샤오핑(鄧小平)이다. 중국의 경제 기적과 함께 매년 새로 태어나는 이름이고 중국 역사에서 쉬 잊히지 않을 이름이다. 2018년 개혁개방 40주년을 맞아 중국 사회는 또다시 ‘불멸의 덩샤오핑’을 연호하고 있다.

덩샤오핑(鄧小平) <사진=바이두>

덩샤오핑. 1904년 쓰촨(四川)성 광안(廣安)현 셰싱(協興)향 파이팡(牌坊)촌의 돈 많은 객가인 집안에서 태어났다. 원래 이름은 선성(先聖)이다. 집안에서는 공자에 대한 무례라며 희현(希賢)으로 개명했고 일상에선 빈(斌)으로 불렀다. 셋째 딸 등용의 ‘덩샤오핑 전기’에 따르면 어려서 덩이 천재였다는 건 마을사람들이 지어낸 얘기일 뿐 그저 말수가 적고 평범한 소년이었다.

덩은 시진핑 이상으로 축구를 좋아했다. 1990년 월드컵 때는 52게임 중 50게임을 다 봤다고 한다. 중국 고전 자치통감을 마오쩌둥(毛澤東)만큼이나 좋아해 늘 머리맡에 놓고 살았다. 마오쩌둥에 충성하기도 했지만 대의 앞에선 과감히 절대권력자인 그와 노선을 다투며 충돌도 피하지 않았다. 혁신과 신념, 용기, 열정이란 덕목으로 보면 요즘 기업인 마윈(馬雲)이 그를 꼭 빼닮았다.

덩샤오핑은 1920년 16세에 자신뿐만 아니라 훗날 중국 운명을 통째 바꾸게 될 프랑스 유학의 장도에 오른다. 유럽에서 그는 자유민주사상과 사회주의를 습득하고 나중에는 '메이드 인 차이나' 사회주의 시장경제 발명가가 된다.

당시 덩의 유학은 신문화운동에 따른 구국의 길이었다. 아편전쟁 후 양무운동(洋務運動) 유신사상으로 ‘서양을 배우자’는 운동이 벌어졌다. 마오쩌둥은 '서양 책은 모조리 읽자'는 캠페인을 벌이면서 인재를 모아 유학을 보내는 근공검학 활동에 공을 들였다. 10대의 덩은 자연스럽게 이런 조류에 영향을 받았다.

덩은 충칭(重慶)에서 장강(長江)의 기선에 몸을 싣고 상하이 황푸, 홍콩, 사이공, 싱가포르, 아랍해를 지나 홍해, 이탈리아를 거쳐 프랑스 마르세유에 도착한다. 흥미롭게도 100년이 지난 지금 중국은 덩샤오핑의 이 여정을 따라 일대일로라는 구호 아래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 중국몽을 펼쳐가고 있다.

말만 유학일 뿐 덩샤오핑은 프랑스에서 공부보다는 주로 노동을 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철강공장, 장화공장, 르노 자동차공장 조립공으로 일하면서 그는 자연스레 사회주의에 심취했다. 1925년 21세 때 그는 정식으로 공산당원이 됐다. 1926년 모스크바를 거쳐 중국으로 돌아온 후 공산당 활동에 본격 뛰어든다.

덩은 실용주의자였고, 사회주의를 하려면 먼저 생산력이 발전해야 한다는 게 그의 신념이었다. 문화대혁명 전인 1962년 흑묘백묘론을 내세우며 이윤동기 부여, 사기업, 자유시장, 책임생산제 등을 시행했다. 이 때문에 덩은 집단화 등 급진 사회주의 혁명을 앞세운 마오에 의해 2호 주자파(1호는 류샤오치)로 찍혔다.

당내 노선 대립으로 덩은 3번이나 실각했다. 한 번은 마오를 지지하다가, 두 번은 마오에 의해 실각당했다. 하지만 그때마다 다시 오뚝이처럼 일어섰다. 마오는 덩을 핍박했지만 한편으론 그가 귀한 인재라고 치켜세우며 뒤를 봐주기도 했다. 문혁 때 후난(湖南) 동향 사람인 류사오치를 주자파 1호로 지목해 제거한 것과 대조적이다.

덩샤오핑과 마오쩌둥이 함께 애독했던 자치통감에는 '창업은 어렵지만 수성은 더 어렵다'는 말이 있다. 마오가 창업(신중국 설립)에 성공했다면 덩샤오핑은 그보다 훨씬 어려운 수성에 탁월한 지략을 발휘했다. "1949년 신중국 설립 후 마오가 드물게 잘한 일은 덩샤오핑을 살려뒀다는 것.” 중국 사람들의 뼈 있는 농담이다.

‘실천은 진리를 검증하는 유일한 표준이다.’ 문혁 후 1978년 6월 덩의 이 한마디로 이념을 앞세운 마오의 혁명 시대가 가고 실사구시(實事求是) 시대가 열렸다. 마오의 어록이 더 이상 법이 아니고 개인 숭배도 사라졌다. 덩은 11기3중전회(1978년 12월 18~22일)에서 사회주의 현대화를 강조했고 이후 개혁개방이 급물살을 탄다.

타임지 모델로 등장한 덩샤오핑 <사진=바이두>

1989년 6월 톈안먼(天安門) 시위가 발생하고 이 사태는 덩의 유혈진압으로 막을 내린다. 덩이 시위대 편이었던 문혁 말기 1976년 톈안먼 사태를 되새기면 역사의 아이러니라 아니 할 수 없다. 톈안먼 사태로 덩에 비난이 쏟아지고 개혁개방도 급속 냉각했다.

시장경제에 대한 회의감은 성사성자(姓社姓資, 사씨인가 자씨인가 하며 사회주의와 자본주의를 따짐) 논쟁으로 비화됐다. 덩샤오핑은 가만히 있지 않았다. 1992년 봄 덩은 88세의 노구를 이끌고 남부지방으로 내려간다. 1년 전 자신이 만든 선전 증시를 둘러보며 “가난이 공산주의가 아니다. 시장경제가 자본주의 전유물이 아니다”라고 설파했다.

“이 수입 기계의 성이 사인가 자인가. 원래는 자씨였다. 하지만 사회주의를 위해 일하고 있기 때문에 지금은 사씨다.” 덩은 방문 회사 책임자와 이런 대화를 나눴고, 이 얘기는 수구파에 대한 경고의 메시지로 언론에 대서특필됐다. 계획경제 숭배자들은 꼬리를 내렸고, 성사성자 논쟁도 종식됐으며, 개혁개방은 다시 활활 타올랐다. 바로 그 유명한 덩샤오핑의 남순강화(南巡講話)다.

덩샤오핑은 1987년 10월 13차 당대회에서 사회주의 초급단계론을 내세워 ’중국특색의 사회주의’ 건설을 주창한다. 중국은 사회주의 초급단계로서 필히 시장 메커니즘을 받아들여야 한다며 국가경제가 나아갈 방향을 제시한 것.

2017년 가을 19차 당대회에서 시진핑이 ‘새로운 시대에 진입했다’고 천명한 '중국특색의 사회주의'가 바로 이것이다. 덩샤오핑의 중국특색 사회주의는 고성장과 선부론(先富論)에 초점을 맞췄지만 시진핑의 신시대 중국특색 사회주의는 성장 이후 사회적 불균형을 극복 과제로 한다는 판단이다.

1989년 11월 덩샤오핑은 중앙군사위 주석 사임과 함께 100년 동요 없는 개혁개방 추진을 당부한 뒤 정치무대를 내려온다. 개인 숭배를 막고 지론인 연경화를 실천으로 보여주겠다는 뜻도 강했다. 묘하게도 덩이 마오와 정면으로 맞서 퇴치하려 했던 개인 숭배의 망령은 최근 시진핑 체제에서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생전 덩샤오핑은 반환받은 홍콩에서 하루라도 머물고 싶다는 바람을 얘기했다. 이 꿈은 이뤄지지 못했다. 덩은 홍콩 반환 5개월 전인 1997년 2월 세상을 떠났다. 하지만 반환 이후 홍콩은 덩의 비범한 발상인 일국양제하에 계속 번영을 누리고 있다. 전과 달리 본토인들은 영어와 광동어를 안 배워도 홍콩에서 중국어로 아무 불편 없이 생활할 수 있게 됐다. 홍콩의 원조 자본주의는 덩샤오핑이 만든 중국식 자본주의에 깊이 동화돼 가고 있다.

[뉴스핌 Newspim] 최헌규 중국전문기자 (chk@newspi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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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대까지 번진 '사탐런' [서울=뉴스핌] 송주원 기자 = 2027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에서 이른바 '사탐런' 현상이 한층 더 뚜렷해질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자연계열 수험생들 사이에서 과학탐구(과탐) 대신 사회탐구(사탐)를 택하는 흐름이 빠르게 확산하면서 올해 수능에서는 사회탐구 과목을 1개 이상 응시하는 비율이 80%에 육박할 수 있다는 관측도 제기된다. 다만 입시 전문가들은 사탐 선택이 단순히 탐구 성적만의 문제가 아니라 확보한 시간과 심리적 여유를 국어·수학·영어 등 다른 영역 성적 향상으로 연결할 수 있는지까지 따져 신중하게 판단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대학수학능력시험 사회·과학 탐구 응시 인원 비중 추이. [사진=김아랑 미술기자] 7일 교육계에 따르면 지난해 치러진 2026학년도 수능에서는 사·과탐 영역 응시자 53만 1951명 가운데 77.3%(41만 1259명)가 사탐 과목을 1개 이상 선택한 것으로 집계됐다. 이에 따라 올해 11월 실시되는 2027학년도 수능에서는 그 비율이 80%를 웃돌 가능성도 거론된다. 이 같은 변화는 전통적으로 미적분·기하와 과학탐구 선택 비중이 높았던 자연계 상위권 모집단위에서도 확인된다. 진학사가 정시 지원 대학을 공개한 수험생 자료를 분석한 결과 선택과목 제한이 없는 대학 지원자 가운데 사회탐구 응시자 비율은 의대 9.3%, 수의대 40.5%, 약대 23.8%로 나타났다. 자연계 최상위권에서도 사탐 선택이 더 이상 예외적인 사례만은 아니라는 방증이다. 배경에는 주요 대학의 자연계열 수능 지정과목 폐지가 있다. 주요 대학들이 2025학년도부터 자연계 모집단위에서 응시 지정 과목을 없애면서 사탐·과탐 혼합 응시가 빠르게 퍼졌다. 사탐 응시 비율은 2023학년도 53.3%, 2024학년도 52.2% 수준이었지만 자연계 학과에서 사회탐구를 인정하는 대학이 늘면서 2025학년도 62.2%, 2026학년도 77.3%로 급증했다. N수생 집단에서도 과탐에서 사탐으로의 이동은 뚜렷했다. 2025학년도와 2026학년도 수능에 연속 응시한 수험생을 보면, 과탐 2과목 응시자 중 19.7%는 이듬해 사탐 2과목으로 23.7%는 사탐+과탐으로 바꿨다. 전년도 사탐+과탐 응시자 가운데서도 62.2%가 올해 사탐 2과목으로 전환했다. 성적 상승 폭도 컸다. 탐구 2과목을 모두 과탐에서 사탐으로 바꾼 집단의 탐구 백분위는 평균 21.68점, 국어·수학·탐구 평균 백분위는 11.18점 올랐다. 과탐 2과목에서 사탐+과탐으로 바꾼 집단도 탐구 13.40점, 국수탐 평균 8.83점 상승했다. 사탐+과탐에서 사탐 2과목으로 전환한 집단 역시 탐구 16.26점, 국수탐 평균 10.92점 올랐다. 사탐 선택이 단순한 유행이 아니라 점수 안정성을 노린 전략적 선택으로 자리 잡고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지난해 12월 13일 서울 성북구 고려대학교 인촌기념관에서 열린 2026 대입 정시모집 대비 진학지도 설명회에서 수험생과 학부모들이 강의를 듣고 있다. [사진=뉴스핌DB] 다만 대학별 반영 방식은 제각각이다. 상당수 대학이 자연계 지원자에게 미적분·기하나 과학탐구 응시 가산점을 주고 있어 지정 과목이 폐지됐다고 해서 유불리가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다. 국민대·동국대·세종대는 자연계열 지원자가 수학 선택과목으로 미적분이나 기하를 택할 경우 3~5%의 가산점을 반영한다. 성균관대 역시 사회과학계열, 의상학과, 경영학과, 글로벌경영학과, 글로벌경제학과 지원자에게 미적분 선택 시 최대 3%의 가산점을 준다. 과탐 응시자에 대한 가산점도 적지 않다. 경희대·고려대·숙명여대 등은 자연계열 지원자가 과탐을 선택하면 가산점을 부여한다. 서울대의 경우 과탐Ⅱ를 1과목 응시하면 3점, 2과목 응시하면 5점을 추가 반영하며, 과탐Ⅰ만 선택했을 때는 가산점이 없다. 인문계열에서 사탐 선택자에게 가산점을 주는 대학도 있다. 서울시립대는 인문계열 지원자가 사탐 2과목을 응시하면 3%의 가산점을 부여하고, 중앙대는 인문대와 사범대 지원자의 사탐 응시에 5%를 더해 반영한다. 이에 따라 입시 전문가들은 사탐런이 대세처럼 보이더라도 무작정 따라가는 것은 위험하다고 지적한다. 김병진 이투스 교육연구소장은 "많은 학생이 사·과탐 선택에 따른 성적 변화에만 초점을 두지만 핵심은 선택으로 인해 생긴 시간적 여유나 심리적 안정감을 다른 영역 학습에 활용하는 데 있다"며 "사탐 선택으로 줄어든 학습 시간을 국어·수학·영어 등 다른 영역의 성적 향상으로 연결할 수 있는지까지 함께 따져봐야 한다"라고 말했다. 김 소장은 이어 "탐구 과목을 바꿨더라도 결국 같은 학습 시간을 들여야 한다면 입시 전체로 봤을 때 유리한 선택이라고 보기 어렵다"며 "단순히 유행을 좇기보다 자신의 학습 적합성과 대학별 반영 방식, 가산점 구조를 함께 고려해 전략적으로 판단해야 한다"라고 조언했다. 우연철 진학사 입시전략연구소장은 "사탐 응시자가 늘고 이들의 성적이 상승하면서 인문계열 모집단위의 경쟁이 치열해지고, 일부 응시자들은 자연계 모집단위로 눈을 돌릴 가능성이 있다"며 "올해 정시에서는 모집단위별 탐구 반영 방식과 지원 가능 집단의 변화를 함께 고려한 보다 정교한 합격선 예측이 필요하다"라고 강조했다. jane94@newspim.com 2026-03-07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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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가 150달러까지 치솟을 것" 이 기사는 인공지능(AI) 번역을 통해 생성한 콘텐츠로 원문은 3월 6일자 파이낸셜타임스(FT) 기사입니다. [런던=뉴스핌] 장일현 특파원 = 사드 알카비 카타르 에너지장관은 6일(현지 시간) "전쟁이 중단되지 않으면 며칠 내에 걸프 지역 모든 산유국들이 불가항력을 선언할 것"이라고 말했다.  사드 알카비 카타르 에너지장관. [사진=로이터 뉴스핌] 그는 이날 영국 일간 파이낸셜타임스(FT)와 인터뷰에서 세계 최대 액화석유가스(LNG) 생산·수출 기지인 라스라판(Ras Laffan) 산업단지가 이란 공격으로 '불가항력'을 선언할 수밖에 없었다고 밝히면서 "아직 불가항력을 선언하지 않은 국가들도 며칠 내로 그렇게 할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다. 알카비 장관은 카타르 국영기업인 카타르에너지의 최고경영자(CEO)를 겸직하고 있다. 불가항력은 지진 등 자연재해나 전쟁 등의 이유로 계약 이행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선언하는 것이다. 책임이나 보상 등에서 면제받을 수 있다. 석유나 LNG 등의 계약에 필수적으로 포함되는 내용이다. 카타르는 미국, 호주 등과 함께 세계 3대 LNG 생산·수출국으로 꼽힌다. 현재 연 7700만톤 규모인 노스필드(North Field) 가스전의 생산능력을 오는 2027년까지 1억2600만톤으로 늘리는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이 프로젝트가 완성되면 LNG 생산과 수출이 세계 1위가 될 것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 가스전의 첫 증산 물량은 올해 3분기에 시장에 나올 예정이었다.  알카비 장관은 "지금 벌어지고 있는 전쟁은 세계 경제를 무너뜨릴 수 있고, 며칠 내에 모든 걸프 지역 산유국들이 생산을 중단하게 되면 유가가 배럴 당 150달러까지 치솟을 수 있다"고 했다.  그는 현재 가동이 중단된 라스라판 LNG 시설에 대해 "지금 당장 전쟁이 끝난다해도 정상적인 사이클로 돌아가는 데 최소 몇 주에서 몇 달은 걸릴 것"이라고 했다.  유럽의 경우 카타르 수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크지 않지만 아시아 구매자들이 시장에서 더 높은 가격으로 가스를 사들이게 되면 덩달아 상당한 고통을 겪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FT는 "알카비 장관과의 인터뷰 기사가 나간 뒤 브렌트유는 5.5% 올라 배럴당 90.13 달러를 기록했다"며 "이는 이란 전쟁이 터진 이후 최고 수준"이라고 했다.  알카비 장관은 "이번 전쟁이 몇 주만 더 지속된다면 전 세계 국내총생산(GDP)이 타격을 받을 것"이라고 했다.  모든 국가의 에너지 가격이 상승하고 일부 제품은 부족해질 것이며 원자재 공급이 끊기면서 공장들이 생산을 멈추는 악순환이 펼쳐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중동 지역 국가 중 최대 미군 공군기지가 들어서 있는 카타르는 이란과도 전통적으로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해 왔지만, 이번 전쟁의 포화를 벗어나지는 못했다.  라스라판 단지는 지난 2일 이란의 공격 드론의 공격을 받았고, 카타르 정부는 즉각 LNG 생산을 전면 중단했다. 이 단지는 전 세계 LNG 공급의 20%를 담당하는 대규모 시설이다.  알카비 장관은 "군으로부터 해상 시설에 대한 즉각적인 공격 위협이 있다는 통보를 받았고, 즉각 가동을 중단하고 24시간 안에 9000여명의 인력을 철수시켰다"고 했다.  그러면서 "전쟁이 완전히 끝나기 전까지 카타르의 생산은 재개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ihjang67@newspim.com   2026-03-07 0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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긍정 영향 종목

  • Lockheed Martin Corp. Industrials
    우크라이나 안보 지원 강화 기대감으로 방산 수요 증가 직접적. 미·러 긴장 완화 불확실성 속에서도 방위산업 매출 안정성 강화 예상됨.

부정 영향 종목

  • Caterpillar Inc. Industrials
    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 시 건설 및 중장비 수요 불확실성 직접적. 글로벌 인프라 투자 지연으로 매출 성장 둔화 가능성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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