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일 방송한 '웃찾사'에서 흑인 비하 논란이 된 장면 <사진=SBS '웃찾사-레전드 매치' 캡처> |
[뉴스핌=최원진 기자] 개그의 기본은 풍자와 패러디다. 대중들이 개그 프로그램을 보는 이유는 팍팍한 현실을 비틀고 희화화해 부정적인 감정을 웃음으로 승화시켜주는 데에 있다. 그러나 예외는 있다. 사회적 약자나 특정 다수인들을 겨냥한 풍자에 웃을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홍현희는 최근 방송한 SBS '웃찾사-레전드 매치'에서 온 몸을 까맣게 칠한 원주민으로 등장했고 흑인 비하 논란이 일었다.
방송인 샘 해밍턴은 "진짜 한심하다. 인종을 그렇게 놀리는 게 웃기냐"고 지적했고 제작진은 논란이 일파만파 퍼진 뒤에야 부랴부랴 "불편을 드려 죄송하다"며 사과했다. 하지만 이는 홈페이지 시청자 게시판에 공지된 것이었고 사과문 어디에도 홍현희란 이름은 없었다. 특히 논란을 일으킨 장본인은 아직도 어떠한 입장을 내놓지 않은 상태다.
물론 특정 인종을 차별하려던 의도는 아니었을 것이다. 그러나 누군가에게는 큰 상처로 남는다. 가나 출신 방송인 샘 오취리는 홍현희의 개그에 불편한 심기를 감추지 못했다. 그는 24일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2017년에 흑인 분장이라니. 절대 용납되지 않는다. 우리는 개그 소재가 아니다. 정말 실망스럽다. 더이상 흑인 분장은 없어져야 할 것이다. 또한 인종이나 특정 구성원을 향한 차별도 사라져야 한다"며 "마음이 정말 아프고 짜증난다. 앞으로 방송에서 이런 모습 안 나왔으면 좋겠다. 피부색은 다르지만 피의 색은 같다"며 깊은 상처가 됐음을 털어놨다.
방송인 샘 오취리가 24일 게시한 홍현희 '웃찾사' 흑인 비하 논란에 대한 심경글 <사진=샘 오취리 인스타그램> |
이것은 비단 일부 '프로불편러'들만의 문제일까? 까만 피부에 갈매기 눈썹, 도톰한 입술, 홍현희의 모습은 누가 봐도 우스꽝스러웠고 누가 봐도 '흑인' 분장이었다. 입장 바꿔 생각해보자. 해외 개그맨이 '동양인' 분장이라며 머리부터 발끝까지 노랗게 칠하고 테이프로 눈꺼풀을 붙여 작고 긴 눈으로 방송에 등장한다면 어떨까. 이를 '동양인 비하'라고 지적하는 한국인들은 '프로불편러'일까. 우리나라에서는 이를 '역지사지(易地思之)'라고 한다.
부적절한 개그 소재로 논란을 불러온 사람은 또 있다. 이세영은 지난해 tvN 'SNL 코리아 시즌8'에서 B1A4 성추행 논란으로, 장동민은 '코미디빅리그'에서 한 부모 가정 비하로 사회적 논란을 일으킨 바 있다. 홍현희를 비롯한 이들의 공통점은 시청자들을 웃겨야한다는 것에만 몰두한 나머지 꼼꼼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사실 애초에 사람의 외형을 가지고 개그 소재로 쓰면 안되는 것이 맞다. 사회적 약자나 특정 다수들에 불쾌한 요소가 있음을 검토하지 않은 제작진이나 이를 '코미디'라고 믿고 웃기려고 한 개그맨 모두에 책임이 있다.
미국의 유명 연극배우 윌 로저스는 이런 말을 했다. "모든 것은 코미디다. 나에게만 일어나지 않는다면" 같은 개그에 배꼽 잡고 웃는 사람이 있다면 재미 없다며 정색하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그 누구도 눈살을 찌푸리게 만드는 것을 코미디로 여기진 않는다. 실수는 바로잡아 반복하지 않으면 되지만 이를 잘못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면 차별 논란은 언젠가 또 불거질 것이다. 이는 대중들이 제작진의 형식적인 공식입장보다 당사자 홍현희의 진심 어린 사과를 듣고 싶어하는 이유다.
[뉴스핌 Newspim] 최원진 기자 (wonjc6@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