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 루프트한자 강등 경고…"연금 부채 우려"
관대한 규제, 저금리+노령화 맞물려 부담 늘어
[뉴스핌= 이홍규 기자] 눈덩이처럼 불어난 퇴직 연금 적자 규모가 독일 기업들에 '시한폭탄'이 되고 있다. 저금리와 맞물린 급속한 노령화와 관대한 연금 규제 관행이 독일 기업들의 미래를 위협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지난 1일 자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국제 신용평가사 스탠다드앤드푸어스(S&P)는 작년 9월 독일 항공사 도이체 루프트한자의 신용등급 전망을 '안정적'에서 '부정적'으로 낮췄다. 연금 수령자에게 지급할 회사의 연금 부채 규모가 '중대한 신용등급 약점'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실제 지난 3분기 루프트한자의 연금 지급 의무액은 1년 전보다 50% 불어난 105억유로를 기록했다. 이에 따라 현재 회사는 신규 가입자에게 확정급여(DB)형이 아닌 다른 형식의 연금을 가입하도록 요구하고 있다. 루프트한자의 대변인은 "이는 회사에 매우 중요한 문제"라고 말했다.
<사진=블룸버그통신> |
◆ 기업 연금자산, 지급 의무액에 한참 못미쳐
아직도 많은 독일 기업들이 퇴직 후 근로자들이 연금 가입 당시 설정한 총액을 지급하는 전통적인 연금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이 가운데 대표적인 것은 DB형 연금으로 이는 근로자가 지급받을 연금 수준이 사전에 결정된다. 그런데 독일 규제에 따르면 기업은 미래 비용인 연금 지급을 위해 현금을 별도로 적립하지 않아도 된다.
컨설팅업체 머서에 따르면 작년 10월 말 기준 독일 대표 주가지수인 닥스(DAX)지수에 상장된 30개 독일 기업들의 연금 지급 의무액은 4160억유로인 데 반해 이들이 별도 적립해둔 연금 자산은 2450억유로에 불과했다. 다른 주요 국가들에 비해 한참 낮은 셈이다.
이 같은 관행은 저금리에 따른 운용 수익률 저하와 맞물리면서 막대한 연금 적자(pension deficits)를 만들어냈다. 그리고 이는 회사의 자기자본을 갉아먹기 시작했다. 독일 철강 대기업 티센크루프의 귀도 케르크호프 최고재무책임자(CFO)는 "연금 지급은 지난 3년간 회사의 자기자본을 20억유로 감소시켰다"며 "이는 우리의 장부 자본에 큰 부담이 된다"고 말했다.
특히 수익성이 낮거나 만성 적자를 보고 있는 중소규모 기업들에 연금 지급은 커다란 부담이 되고 있다. CD와 DVD 제작업체인 EDC는 작년 신기술로 무장한 업체들에 밀려 파산했다. 하지만 높은 연금 지급 의무액 역시 파산의 한 원인이 됐다. 회사의 직원 대표 우웨 리텐트루프 씨는 연금 부담은 "아슬아슬하게 버티고 있는 상황에서 회사를 무너뜨린 일"이었다고 말했다.
◆ 저금리보다 더 큰 위험은 '노령화'
미국과 영국 기업들은 미래의 연금 지급을 위해 현금을 특별 기금에 적립해야한다. 프랑스를 비롯한 많은 국가들은 주로 정부가 연금을 관리한다. 하지만 근로자가 국민 연금에 더해 별도의 퇴직 연금을 받는 독일의 경우 기업들이 얼마나 많은 현금을 따로 적립할지, 또는 이를 어떻게 할지 스스로 결정한다.
전기 요금을 지불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기업들은 보유 은행 계좌에서 연금을 지급한다. 연금 지급 의무액은 대차대조표에 부채로 기록되긴 하지만, 자금이 항상 별도의 기금에 적립되는 것은 아니다.
일부 전문가들은 이 같은 관행은 독일 기업들에 재정적인 유연성을 부여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런 시스템은 퇴직자 수가 적거나 회사가 성장하는 경우에만 제대로 작동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견해다. 이에 따라 대기업들을 중심으로 점점 많은 독일 기업들이 별도의 투자 기구에 기금을 분리하고 있다. 하지만 그 비중은 글로벌 평균치보다 아직 낮은 수준이라고 컨설팅업체 윌리스 타워스 왓슨은 지적했다.
많은 독일 내 전문가들은 아직 이같은 '연금 갭(Pension Gap)'에 대해 우려할 필요가 없다고 지적한다. 기업들의 재정 여건은 아직 충분하다는 의견이다. 오히려 우려해야할 것은 저금리가 아닌 급속한 노령화 현상이라는 게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독일 철강업체 잘츠기터의 헤이코 마사 비르트 연금 전문가는 "가장 큰 우려는 이전 근로자가 예상보다 더 오래사는 경우"라며 "이는 진짜 위험"이라고 말했다. 도이체방크의 디터 브로이닝거 연금 스페셜리스트는 "저금리가 장기간 지속되면 인구 변동이 심해질 때 상황은 어려워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뉴스핌 Newspim] 이홍규 기자 (bernard0202@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