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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큐 공감’에서는 북촌과 서울에서 가장 오래된 한옥마을 익선동, 조선 최고의 건축사 정세권에 대해 알아본다 .<사진='다큐 공감' 캡처> |
'다큐공감' 북촌, 90년의 유산…조선 최고 건축가 '정세권'·한옥마을 '익선동'의 발자취
[뉴스핌=정상호 기자] KBS 1TV ‘다큐공감’은 25일 저녁 7시10분 ‘북촌, 90년의 유산’ 편을 방송한다.
첨단의 고층 건물 가득한 서울 도심 한복판으로 시간을 거꾸로 돌린 듯 전통 한옥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다. 600년 서울 역사를 상징하는 북촌 한옥마을이다.
매년 방문하는 국내외 관광객만 100만여 명으로 전 국민 아니 세계인이 열광하는 명소가 됐다. 그러나 북촌이 언제, 어떻게, 누구에 의해 만들어졌는지 아는 사람은 얼마 없다.
이날 ‘다큐 공감’에서는 북촌에 숨겨진 비밀을 파헤쳐본다.
1920년대 인구가 폭발하면서 도시계획을 공표한 일제. 조선 왕조 600년에 걸쳐서 전통적인 조선인들의 중심지였던 청계천 이북에서 조선인을 몰아내고 일본인의 경성을 만들려는 움직임이 가시화됐다.
조선의 서민들은 자신들의 터전인 북촌에서 쫓겨나 빈민으로 전락해갔다. 이러한 일제의 도시 개발에 정면으로 저항한 사람이 있었다. 바로 당시 조선 최고의 건축사인 건양사의 대표 정세권이다.
얼마 전 북촌 한옥마을에 북촌을 지키고자 한 기농 정세권 선생의 노력을 기리는 특별한 정자가 하나 들어섰다. ‘기농정’ 설계에 참여한 두 명의 젊은 건축가(최두호, 이재성) 각각 미국과 프랑스에서 10여년 이상 활동한 젊은 건축가들이 정세권의 흔적과 그가 남긴 한옥들을 찾아다니며 그 속에 담긴 민족정신과 독립운동의 역사를 추적, 발굴한다.
◆조선 서민을 위한 조선집을 짓다. 근대 한옥 건축왕
정세권의 건양사는 1929년 한 해 경성에서 지어진 한옥의 15~20%를 건설할 만큼 건축업계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다. 당시 일제는 끊임없이 탄압하며 일본식 주택을 지을 것을 강요했으나 정세권은 아랑곳하지 않고 식민지 조선 서민을 위한 도시형 한옥을 건설했다.
정세권은 단순히 서민 주택의 필요성을 주장하는데 그치지 않고 서민들을 위한 최초의 내 집 마련 주택 금융을 제공했다. 한옥을 분양한 후 분양 대금을 입주 전 일시에 받는 대신 입주 후에 월 단위로 받은 것이다.
오늘날 정부 산하 공기업이나 한국주택금융공사의 서민 주택 구입 지원 금융 정책이 놀랍게도 이미 1920년대 한 개인에 의해 시행되었던 것이다. 100여년 전, 엄혹한 일제 치하 시대를 앞선 주택 금융 제도는 조선의 서민을 살리겠다는 민족정신의 발현이자 조선인의 경성을 지켜내기 위한 항일 투쟁의 일환이었다.
◆조선물산장려운동의 황금기를 이끈 숨은 주인공
민족의 단합된 힘으로 근대기업을 일으켜 자주·자립 경제를 수립, 일제의 침략으로부터 우리 민족의 경제권을 수호하고자 했던 조선물산장려운동. 그러나 1923년 기세를 올리던 조선물산장려운동 불과 1년 만에 극심한 재정난과 세력 분열로 인해 대침체기에 빠졌다.
이에 정세권은 1929년 조선물산장려회 이사로 취임하면서 물산장려회의 재정 문제를 단번에 해소하고, 사비를 털어 물산장려회관을 건립하였다. 재정적 지원부터 실제 운영에 이르기까지 정세권의 총력 지원으로 조선물산장려운동은 단순한 조선 물산 소비 촉진 차원에서 벗어나, 대폭 확대되며 최고의 황금기가 도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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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큐 공감’에서는 북촌과 서울에서 가장 오래된 한옥마을 익선동, 조선 최고의 건축사 정세권에 대해 알아본다 .<사진='다큐 공감' 캡처> |
조선물산장려회 이후, 정세권은 목숨을 건 민족운동에 투신한다. 가장 먼저 서울 화동 129번지 2층 양옥 한 채를 조선어학회 회관으로 제공하는 동시에 조선어 큰사전 출판을 위한 지원 등 다양한 재정적 기여를 아끼지 않는다. 이 조선어학회 회관은 단순한 조선어학회 활동 기지가 아닌 독립운동의 전초기지로 독립운동 투사와 독립 이후의 지도자를 양성하는 기관으로 삼고자했다.
일제의 요주의 인물 리스트에 오른 상태였던 정세권의 이러한 활동에 대한 대가는 모진 고문과 재산 강탈이었다. 1942년 조선어학회 사건으로 검거된 정세권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극심한 고문도 모자라 3만5000평 서울 땅을 빼앗기는 등 재산의 대부분을 강탈당하게 된다.
◆서울에서 가장 오래된 한옥마을, 익선동
익선동 한옥마을은 약100년 정도 된 한옥들로 깊은 운치가 느껴지는 서울에서 가장 오래된 한옥마을이다. 이 곳에서 정세권의 숨결을 느낄 수 있는 익선동 166번지. 익선동에서 그가 만든 한옥은 전통 한옥을 상당 부분 변형한 것이었다. 당시에는 파격적으로 수도와 전기가 들어왔고, 환기와 일조권 등 구조에까지 신경을 썼다.
또 행랑방과 장독대, 창고의 위치를 실용적으로 재배치하고, 대청에 유리문을 달고 처마에 잇대어 함석챙을 다는 등 새로운 시도를 했다. 이처럼 익선동 그의 한옥은 20세기형 생활 방식을 고려해 설계된 퓨전 한옥이었다.
정세권은 자신의 이상적 가옥을 꿈꾸며 주택개량을 위한 실험은 계속 됐다. 실제로 자신이 지은 집에서 살며 끊임없이 연구했다. 그 안에서 서민을 위한 행보도 이어졌다. 조선왕족 종친이었던 이해승 소유의 누동궁이 정세권을 통해 68채의 서민용 한옥으로 재탄생한 것이다.
한편 정세권의 발자취를 따라온 후배 건축가 두 사람은 오래된 문서 속에서 정세권의 한옥 설계도를 발견한다. 아쉽게도 설계도는 실제 건축으로 이어지지 못했다. 정세권의 발자취를 따라온 후배건축가 두 사람이 ‘다큐공감’에서 재연에 나선다.
[뉴스핌 Newspim] 정상호 기자(newmedia@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