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측근비리 수사와 별개로 진정성있게 개헌 추진해야
여야 정치권 당리당략 버리고 백년대계 위한 새 체제 마련 나서길
[뉴스핌=송의준 기자] 박근혜 대통령이 24일 국회 시정연설에서 전격적으로 ‘임기 내 개헌추진’을 선언하면서 정국이 급격히 개헌이슈에 빠져들고 있다.
야당은 화들짝 놀랐고 여당도 예상 못했을 만큼 박 대통령의 제안은 급작스러운 것이었다. 개헌론에 대해 청와대가 최근까지 “국론분열의 블랙홀”이라고 펄쩍 뛰며 차가운 반응을 보였기 때문이다.
30년 묵은 헌법체계를 바꿔야 한다는 개헌 주장은 일찍부터 제기돼 왔다. 현행 대통령 임기 5년 단임제는 지난 1987년 간선제에서 직선제로 바뀌면서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대표적 대통령제 국가인 미국이 4년 중임제를 선택하고 있음에도 우리나라가 5년 단임제를 선택·유지하고 있는 것은 과거 독재정권의 폐해를 경험하면서 얻은 일종의 ‘피해의식’ 때문이라고도 볼 수 있다.
하지만 단임제는 이제 우리 정치 현실과 맞지 않는 옷이 됐다.
대통령은 취임 초부터 수많은 정책을 쏟아내고, 빠른 성과를 내기 위해 이를 강력히 추진할 수밖에 없다. 여러 정치·경제적 상황을 고려해 긴 호흡으로 정책 시행의 최적기를 찾아야 하지만, 임기 후반으로 갈수록 레임덕에 가까워지면서 정책 추진동력이 떨어질 것을 잘 알고 있어 그럴 여유가 없다.
이렇게 대통령 주도 아래 단기에 성과를 내기 위해 충분한 사전준비나 검증절차 없이 시간에 쫓긴 정책은 여러 부작용을 낳고, 결국 국가와 국민의 몫으로 돌아간다.
또 경제나 외교, 안보 등 정책들이 정권이 바뀔 때마다 등장하는 ‘전 정부 정책지우기’가 반복되며 정책의 연속성이 떨어지고, 중장기 비전으로 글로벌 경쟁력을 갖춰야 하는 산업을 제대로 육성하지 못하는 한계가 나타나고 있다.
한편으론, 대통령에게 너무 권한이 집중된 ‘제왕적 대통령’의 폐해를 거론하며 권력을 분산해야 한다거나 선거구제 개편 필요성을 거론하고 있다.
여러 문제들을 경험한 정치권에서 여야를 막론하고 오래전부터 ‘30년 묵은 체제’의 변화를 요구하고 있다. 2000년대 이후 국회의장들은 제헌절마다 헌법 개정 논의를 주문했다. 하지만 필요성을 인정하면서도 정치적 파장이 클 수밖에 없어 논의가 이어지지 못했다.
전일 대통령의 개헌 추진 발표가 나오자마자 내년 차기 대선을 앞둔 정치권은 또 득실계산에만 분주하다.
물론 청와대가 최순실, 우병우 등 대통령 측근들의 비리 의혹에 떠밀려 개헌 카드를 꺼냈을 개연성도 있어 보인다. 대통령이 비선 실세 의혹을 받는 최순실씨의 월권에 대한 수사가 본격화된 시점에서 이에 대한 관심을 돌리기 위해 개헌을 들고 나왔다면 이는 착각이다.
어떤 이슈도 대통령의 통치 행위에 정상적 시스템이 아닌 비선 측근이 끼어들어 호가호위하며 사익을 추구하는 행태를 덮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 최순실씨를 둘러싼 의혹은 한 점 남김없이 철저하게 수사해 진실을 밝히고 책임질 것이 있으면 응분의 책임을 져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헌은 국민의 공감대를 모아 신중하되 차질없이 추진되어야 한다. 개헌은 박 대통령의 대선공약이었고 시기와 형태가 문제일 뿐 개헌 자체의 필요성에 대해선 폭넓은 공감대가 형성돼 있다는 점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임기 말 개헌 논의에 돌입하면 국정 추진동력이 상실될 우려가 있지만 국가의 미래를 위해 박 대통령은 역사적 소명의식을 가지고 개헌을 제대로 추진해야 한다. 측근 비리 의혹을 덮기 위한 ‘이슈 블랙홀’ 차원에서 개헌론을 꺼낸 것이 아니라면 진정성을 가지고 개헌 필요성과 구체적인 개헌 방향을 제시해 국회와 국민의 합의를 이끌어내야 한다.
여야 정치권도 당리당략을 떨쳐버리고 국가의 백년대계를 준비하는 마음으로 개헌 논의를 시작하는 것이 맞다. 국가의 미래를 위한 개헌이라면 국회 주도 개헌이든, 대통령 주도 개헌이든 방식에 집착할 이유가 없다.
박 대통령 선언을 계기로 대통령이나 국회의 주도가 아니라 국민들의 변화에 대한 열망을 한데 모아 새로운 국가 도약의 추진력을 가져올 수 있는 개헌이 내년중 꼭 이뤄져야 한다.
[뉴스핌 Newspim] 송의준 기자 (myminds@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