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 소통·오염 유출·지진 리스크 다잡기…안전 확보 비결은 '느리게'
[뉴스핌=함지현 기자] 탁트인 바다와 주변 녹지로 둘러싸인 경주방사성폐기물 처분시설(방폐장). 신라의 대표적 유적지인 문무대왕릉이 코앞에 보이는 곳이지만 근처에 위치한 거대한 봉오리 모양의 신월성 원자력 발전소가 더 눈에 띄는 곳에 위치해있다.
경북 경주시 양북면 봉길리에 자리 잡은 경주방폐장을 지난 15일 찾았다.
방폐장 안에는 자연과 과학을 주제로 한 청정누리 공원이 조성돼 있다. 다양한 체험 학습장과 방문객 센터인 코라디움 등도 자리잡고 있다. 여기서 버스를 타고 조금만 이동하면 방사능 폐기물이 담긴 드럼을 모아 놓은 인수저장소를 볼 수 있다. 다시 10분 정도 더 이동하면 검사를 마친 방사능 폐기물을 저장하는 지하 처분고의 입구가 나온다.
입구엔 2개의 동굴이 있다. 하나는 지상시설에서 인수검사에 합격한 방폐물을 운반하기 위한 1415m의 운영동굴이다. 또 하나는 건설에 필요한 각종 자재를 운반하기 위한 1950m의 건설동굴.
운영동굴 입구에서 완만한 경사길을 따라 어두운 길을 내려가다 보면 지하 처분고에 다다른다. 처분고는 폐기물 처분고인 사일로가 핵심이며, 다중보호방벽을 통해 안전성을 확보하고 있었다.
한국원자력환경공단(KORAD)은 이 모든 시설을 국민들한테 공개하고 있다. 경주방폐장이 국내 첫 방사성폐기물 처분고로 개장을 앞둔 만큼 지역주민과 국민들이 직접 눈으로 안전을 확인해야 신뢰를 쌓을 수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 "오염 유출·지진 리스크 없다"
방폐장 내부는 오염 유출이나 지진 리스크 등에 대한 안전성 확보를 최우선으로 설계됐다.
우선 인수저장시설 검사장에서는 국제규범을 철저히 준수해 안전성이 확보된 방사성폐기물 드럼만 지하 처분고로 보내고 있었다.
사전 교육을 받은 후 방폐장측에서 제공한 안전모와 가운, 장갑, 양말, 신발과 함께 방사능에 피폭됐는지를 알아볼 수 있는 개인선량을 착용하고 인수저장시설 검사장을 방문했다. 개인선량의 수치는 검사장을 나올때까지 '0'을 유지했다.
검사장에서는 각 원전이나 병원 등에서 인수받은 방사성폐기물 드럼이 인형뽑기 기계와 비슷하게 생긴 '그리퍼'(Gripper)를 통해 롤러에 올려졌다. 정밀 검사를 받은 뒤 다시 그리퍼를 통해 처분용기에 담겨졌다.
방폐물 드럼은 이미 인수저장건물 반입 전에 한수원 자체검사와 공단이 발생지 예비검사를 통해 2차례의 검사가 이뤄진다. 하지만 여기서도 방사성핵종분석기·X-ray 검사설비 등을 통해 방사능 농도·표면오염여부 등 11개 항목의 정밀한 검사를 다시 받도록 돼 있다.
인수검사가 완료된 방폐물 드럼은 10센티 두께의 콘크리트 처분용기에 16개씩 밀봉돼 전용 운반트럭을 통해 처분동굴로 이동된다.
지하 80m 지점에 위치한 처분동굴 들어가기 위해서도 2개의 격리 셔터를 통과해야 했다. 만약 내부에서 방사능 등 오염이 유출되더라도 외부로 흘러나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이같이 설계됐다.
이 안에는 방폐장의 핵심시설인 사일로가 자리잡고 있다. 사일로는 높이 50m, 직경 23.6m의 원통형 저장고로 해수면보다 80~130m 아래에 위치한다. 자연암반, 숏크리트, 방수시트, 콘크리트 사일로, 10센티 두께의 처분용기 등 다중 밀폐구조로 이뤄져 있어 각종 오염뿐 아니라 지하수의 유출입도 차단하도록 만들어졌다. 1단계 방폐장에는 총 6개의 사일로가 건설됐는데 개당 1만6700개의 드럼을 저장해 총 10만 드럼을 처분할 수 있는 규모다.
처분시설이 다 차게 되면 빈 공간을 채움재로 채우고 운영동굴 및 건설 동굴 입구를 콘크리트로 완전히 밀봉 폐쇄한다.
일각에서 경주방폐장 인근에서 지진이 발생했던 점을 들어 위험하다는 지적을 하기도 한다. 하지만 코라드측은 사일로가 암반에 설치됐고, 규모 6.5의 지진이 사일로 바로 밑에서 발생하는 것으로 가정해 만들어진만큼 지진으로부터 안전하다고 설명했다.
이종인 한국원자력환경공단 이사장은 올 연초에 손주들과 함께 방폐시설을 둘러볼 정도로 안전성에 확신을 갖고 있다.
<사진출처=한국원자력환경공단>
◆ '느리게' 작업해 안전 확보
특이했던 점은 모든 과정이 상당히 '느리게' 진행되고 있다는 것이었다.
인수저장검사장에서 각종 검사를 받는 거리는 약 30m에 불과했지만 한 드럼 당 30분의 검사시간이 소요됐다.
뿐만 아니라 운반 전용트럭의 속도도 방폐장 내에서는 시속 40km, 터널 내에서는 시속 20km이하로 운행하도록 제한돼 있다.
운반 전용트럭에 실려온 처분용기를 사일로에 저장하는 '트롤리'라는 트레인 역시 처분용기를 들어올리는 데에만 30초 이상이 소요됐다. 트롤리는 작업하는 내내 사고를 예방하기 위해 사이렌 소리를 내고 있었다.
인수검사 설비를 통과해 사일로에 놓여지기까지 거리는 1.4Km에 불과하지만 시간은 2시간이 걸릴 정도로 작업은 최대한 천천히 진행됐다.
시간뿐만 아니라 운반 과정도 서두르지 않는다. 고리나 영광, 울진원자력발전소의 임시 저장고에 보관 중인 중저준위 방사성 폐기물은 청정누리호라는 전용 운송선박을 이용해 이 방폐장으로 운송된다.
운송은 1년에 9차례로 예정돼 있는데 해상 조건이 조금이라도 좋지 않으면 아예 출항을 금지시키고, 출발 후 해상 조건이 나빠진다면 즉시 배를 돌리도록 한다.
이 모든 것은 '빠르게'보다는 '안전하게'에 방점이 찍혀 있기 때문이다. 코라드의 경영 이념은 '방폐물의 안전하고 효율적인 관리로 국민생활의 안전과 환경보전에 이바지'인데, 안전이 최우선 이념인 셈이다.
코라드는 방폐장 사업이 우리사회에 꼭 필요하다고 강조하며 앞으로도 국민들과 소통하며 운영하겠다고 밝혔다.
이종인 이사장은 "집을 지으면서 화장실을 안 지을 수 없는 것과 같이 방폐장 사업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라며 "앞으로도 국민들께 다양한 안전개선 아이디어를 받으면서 투명하게 운영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사진출처=한국원자력환경공단> |
◆ 방폐장 공개로 직접 소통 나서…이달 방문객 800명 넘어
"원자력의 시작은 과학이었지만 종착역은 국민들의 마음입니다. 안전을 넘어 안심으로 가야 합니다."
이 이사장은 평소 이렇게 강조하며 직원들을 독려한다.
세월호 참사 이후 우리사회에 안전에 대한 관심도가 높아지면서 '안전을 넘어 안심'이라는 구호가 번지고 있다. 하지만 원자력 분야는 전문성이 필요한 분야여서 '그들만의 리그'로 운영돼 왔다. 그러다보니 원전 마피아 문제 등이 터졌고, 국민들의 신뢰는 땅으로 떨어졌다.
원전관련 사업은 국민들의 신뢰를 얻기 위해 소통을 해야만 한다. 이 이사장은 소통을 통한 국민들의 마음 얻기를 강조하고 나선 것이다.
이 일환으로 이뤄진 것이 바로 국민신뢰확산 프로그램인 방폐장 개방이다. 방폐장은 각계 초청행사와 홈페이지를 통한 신청을 받아 공개된다. 방문객은 이달들어 800명을 넘어섰다. 경주방폐장은 올해 운영을 계기로 1만5000명 이상의 방문객에게 시설을 공개할 계획이다.
코라드는 이달 말까지 시설을 개방한 뒤 정부와의 협의를 거쳐 다음달 준공식을 개최할 예정이다.
[뉴스핌 Newspim] 함지현 기자 (jihyun0313@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