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중요무형문화제 제5호는 판소리 고법이다. 판소리는 소리꾼과 북을 치는 고수(鼓手) 두 명이 펼치는 종합 예술이다. 소리꾼이 소리를 잘하고 못하고는 북을 치는 고수에게 달려있다. 고수는 단순한 반주가 아니다. 소리의 흐름을 조이고 푸는 지휘자 역할까지 해야 한다. 소리꾼이 힘을 잃으면 힘을 보태줘야 한다. 관객이 흥을 잃으면 장단 가락으로 흥을 북돋아 줘야 한다. 그러니까 고수는 기획, 연출, 지휘, 반주, 음향 등을 모두 담당하는 만능 예능인이다.
고수는 옛날부터 소리꾼보다 못한 대접을 받아 왔다. 전기 8명창 중 한명인 이날치가 장단을 잘못 쳐 소리꾼에게 북채로 눈을 찔려 애꾸눈이 되었다는 일화는 소리의 길을 열어 주는 고수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는 말해 주는 대목임과 동시에 소리꾼으로부터 제대로 된 대접을 못 받았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소리꾼은 가마를 타고 공연장으로 간다. 고수는 무거운 북통을 메고 소리꾼 가마를 따라 간다. 공연장에 들어서도 관객으로부터 시선을 받는 것은 오직 소리꾼뿐이다. 분명 고수가 있어 소리가 살아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고수는 조용히 뒷자리만 지킨다. 어쩌다 소리꾼이 고수를 소개하면 현란한 가락으로 화답할 뿐이다.
젊은 청년 황상은. 화려한 소리꾼의 길을 가다 고수가 된 청년이다. 중학교 때까지 소리를 배우며 장래가 촉망된다는 평을 받았다. 그러나 변성기 시절 목을 잘못 다스려 소리꾼으로 가기에는 여러 가지 어려움이 따랐다. 과감하게 고수의 길을 선택해 어렵고 힘든 길을 걸어가고 있다.
황상은 대구가 고향이다. 중앙대학교에서 판소리 고법을 전공하고 있다. 판소리 고법의 길을 걸어가는 사람들의 대다수가 전라도 출신이다. 경상도 출신이 고수를 하는 경우는 흔한 일이 아니다. 희한한 늦가을 주말을 즐기고 있을 때 젊은 고수가 사무실로 들어섰다. 수려했다. 눈이 시원하고 이마는 넓었다. 광대뼈가 멋스럽게 골을 이뤘다. 입은 컸으며 어깨선은 두꺼웠다. 음(陰)과 금(金) 기운이 느껴졌다. 전형적인 예능인들에게서 품겨져 나오는 기운이 나왔다.
따끈한 커피 한 잔을 마신 후, 중학교 때 까지 소리를 배웠다는 사실에 기초하여 그에게 소리한 대목을 부탁했다. 손사래를 치면서 ‘해본지 오래 돼 못한다.’ 하면서 이내 눈에서 집중력을 발휘하며 소리를 시작했다.
‘이리 오너라 업고 놀자. 사랑 사랑 사랑 내 사랑이야. 이히 내 사랑이로다. 아마도 내 사랑아 니가 무엇을 먹으랴느랴 수박 웃봉지 떼뜨리고 강릉 백청을 따르르르 부어 씨는 발라 버리고 붉은 점 움뿍 떠 반간진수로 먹으랴느냐. 아니 그것도 나는 싫소.... 이리 오너라 앞태를 보자. 저리 가거라 뒤태를 보자... 아장 아장 걸어라 걷는 태를 보자 방긋 웃어라 잇속을 보자.’ 소리가 시원시원했다. 힘이 넘쳤다. 그는 소리하는 고수였다.
소리가 끝난 후 둘은 따끈한 물 한 모금을 나누어 마셨다. 이어서 ‘화려한 소리꾼의 길을 가지 않고 2인자 자리에서 조연만하는 고수의 길을 택했느냐?’고 질문했다.
“저도 소리를 하고 싶었습니다. 초등학교 1학년 때 어머니가 판소리를 해 볼 것을 권유하여 판소리를 시작했습니다. 중학교 때 까지는 나름대로 잘 나가는 장래가 촉망되는 소리꾼이 될 것이라는 기대를 한 몸에 안았습니다. 그러나 변성기 목을 잘 못 다스렸습니다. 소리가 갈라지고 고음이 안 나왔습니다. 안타깝지만 소리꾼의 길을 접고 고수의 길을 가게 됐습니다.” 사연은 슬픈데 목소리는 맑고 여전히 힘이 넘쳤다.
그는 김명환 고수를 존경한다 했다. 김명환 고수는 광대 집안 출신이 아니다. 양반집 자손이었다. 그는 소리를 배우다 고수가 된 사람이 아니다. 애초부터 고수의 길을 선택한 예능인이었다. 명창이자 북소리도 일품이었던 장판개, 오성삼, 신찬문, 주봉현 등 당대 최고의 고수들로부터 북 가락을 배웠다. 박녹주, 김여란 등의 명창들로부터 북 실력을 인정받았지만, 양반 출신이라는 점 때문에 소리판에서 겉돌았다. 김명환의 북소리는 차가웠다. 소리꾼을 누르는 기운이 북으로부터 나왔다. 어설픈 소리꾼은 그의 앞에서 제대로 부르지 못했다. 마침내 김명환을 누를 소리꾼이 없다는 평을 받았다. 소리판에서 제일가는 고수가 된 것이었다.
황상은은 판소리가 지구상에서 가장 완벽한 소리임에도 불고하고 대중들로부터 사랑받지 못하는 현실에 대해 매우 안타깝게 생각하고 있다. 그는 판소리가 사랑받지 못하는 이유를 다음과 같이 진단했다.
“판소리가 대중들이 요구하는 것, 시대가 변하는 것만큼 따라가지 못하고 있습니다. 창작 판소리의 사설을 보면 과거를 주제로 합니다. 선율과 가락도 옛 것을 일정 부문 모방합니다. 권삼득의 놀부 제비후리는 대목 같은 더늠의 곡을 창작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사용하는 말도 온통 과거입니다. 이를 극복하지 못하면 판소리의 대중화는 더디어 질 겁니다.
음악교육도 문젭니다. 저도 초등학교 때부터 대학에 들어가지 전까지 배운 우리소리라고는 딸랑 천안 삼거리 한곡입니다. 이러다 보니 서양음악만이 귀에 익은 대중이 나옵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국악 공연이 있어도 가 보려는 대중은 없는 겁니다. 국악 공연은 국악 전공자들끼리 부조하는 식으로 객석을 채우고 있습니다. 참 안타깝기 그지없는 현실이지요.” 이 또한 일제 강점기 문화식민정책의 후유증입니다.
말하는 중간 중간 손가락으로 발동작으로 장단을 쳤다. 우리의 장단은 무궁무진하다는 것이 황상은의 설명이다. 젊은 고수는 그 수많은 장단 중에서 굿거리장단을 제일 좋아한다고 했다. 굿거리장단은 모든 장단의 기본이면서도 굉장히 어렵다. 장단을 구성하는 가락이 그 때 그 때의 감정과 사연에 따라 변하는 것이 굿거리장단 특징 중 하나이다. 굿은 신명나는 구경거리가 있는 판이다. 그런 판을 들뜨게 하는 굿거리장단은 분명 젊은 고수의 삶을 신명나게 만들 것이다.
어느 국악인은 전망했다. ‘멀지 않아 국악의 천재가 나와 지금의 방법이 아닌 제3의 법고창신으로 대중가요를 뛰어 넘어 국민들로부터 사랑받는 정통 국악이 창조될 것이다.’ 라고. 아마도 그런 국악이 〈소리하는 젊은 고수 황상은〉의 모습일 것만 같다는 생각이 인터뷰 내내 머리를 맴 돌았다.
변상문 국방국악문화진흥회 이사장 (02-794-8838, sm2909@hanmail.net)